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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매가 한 가문에 시집오다 |
임하리는 오똑한 동산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산의 동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오류헌이라면, 산의 위쪽에 올라앉아 있는 것이 양동댁이다. 시골마을이므로 마을길은 폭이 좁아 자동차가 움직이는데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이 오히려 조심하게 하는 이점이 있으리라. 양동댁 울타리 밖. 한 할머니가 콩밭을 매고 있다. 수건을 하나 목에 걸고, 펑퍼짐한 몸빼 바지를 입었다. 구두 모양의 남색 슬리퍼를 신고, 능숙한 솜씨로 밭을 맨다. 시골할머니라는 점을 누가 의심할 수 있으랴. 그러나 이 아주머니가 이 집의 안주인, 이제는 타계하고 없는 종손을 대신하고 있는 종부이다. 서울 사는 아들 집에서 어린 손주들 돌보느라 양동댁에 내려와 앉아 있을 여가가 없었지만, 이제는 어린 손주들이 제 앞가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내려와 보곤 한다는 것이다. 6남매를 둔 할머니란다. 이 노종부께서는 친정이 울산이다. 밀양박씨. 오류헌 노종부와는 자매간이란다. 양동댁 할머니가 언니이다. 울산의 친정어른이 딸을 지례의 의성김문으로 시집보내고 나서, 시집 보낸 딸이 외로울까봐 또 한 딸을 지례 의성김문으로 시집을 보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지만 두 자매는 정작 지례에서는 서로 보기도 어려운 처지였다고 한다. 산 하나를 넘어야 서로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례가 오죽 깊은 산골짜기 속이던가. 지례에서 나오려면, 지례로 들어가려면, 사방 30리 길을 산을 넘어 다녔다고 할머니는 회고하신다. 오늘날은 지례 들어가는 시멘트 도로가 닦였지만, 마을이 사라져 버린 다음에야 길이 닦이는 것도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산만 두 자매의 교통을 방해한 것은 아니었다. 양동댁 할머니는 대부분의 세월을 안동 시내에서 보냈다고 한다. 남편이 초등학교 교편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김태길. 길이라는 외자 이름을 쓰기도 한다. 양동댁 할머니는 남편 수발 뿐만 아니라 다른 시동생 공부 뒷바라지를 하느라 청춘을 다 보냈다. 할머니는 이제 80세가 다 됐다고 한다. 양동댁 할머니가 생애 대부분의 세월을 지례 밖에서 보냈으므로, 그것도 오류헌 할머니와 쉽게 만날 수 없게 하는 조건이 되었다. 이래저래 두 자매가 외로울 것을 걱정하여 같은 곳, 같은 가문으로 시집을 보낸 울산의 밀양박씨 댁 어른은 공연한 수고만을 하고 목적은 이루지 못한 결과가 되어 버렸다. 아니,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얻은 것이 아니던가. 한 딸의 외로움을 덜기 위해 다른 딸까지 외롭게 만들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러나 세월은 항용 예기치 못했던 결말을 만들어내곤 한다. 세월만큼 강력한 힘을 갖춘 연금술사가 없지 않던가. 임하댐이 거기 설 줄을 누가 알았으며, 큰 산의 이쪽과 저쪽에 나누어 살았던 두 자매가 그곳을 떠나 작은 동산의 위 아래로 나누어 살게 될 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이제 두 할머니는 몇 백m 사이를 두고 살게 되었다. 이제는 노구를 이끌고 움직여야 할 일이지만, 그만한 거리라면 서로 만나 회포를 풀고 외로움을 달래는데 무슨 큰 문제가 있겠는가. 울산의 밀양박씨 어른이 지하에서 부지런히 움직이신 결과일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
첫댓글 참 재미있게 글 쓰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많이 올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