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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돈 기호태 대부분 그가 혼자서 극을 이끌어간다.
고수 장단을 맞추어 주고 때로는 돈 기호태를 연출하기도 한다.
무 대
도시의 공터, 역전, 지하도, 시장 인근, 창고 따위 등 어디든 가능하다. 아무런 장치도 필요 없다.
막
돈 (무대 뒤에서 노래하듯 소리치며 나온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이리 이 리 오너라.
(고수의 빈 자리를 보며) 어라, 이 염병이 아직도 안 나왔네. 안녕들 하슈? 조금 기다려야겠수다. 저 작자가 나와야 뭘 해도 하지…….
에 또, 그럼 나부터 먼저 소개해버릴까.
아니, 먼저 물어보자.
(객석을 한바퀴 빙 둘러본 뒤 한 여자를 지적하며 아주 다정하게) 너, 내가 누구더냐? 몰라? 돈키호테? 오냐 말 잘 혔다.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며 목소리를 가다듬고) 나의 이름은 돈 기호태! 나이 는 이제 한창때의 후반, 얼굴은 그 판대기 가다가 아직 남아 있어서 여인들 의 가슴을 뛰게 하고, 환상을 좇기에 유난히 반짝이는 두 눈, 사정이 있어 조 금 일찍 은퇴한 무일푼의 영주, 이제는 하루 종일 책읽기만 하다가 어느 때 는 꼬박 밤을 새우기도 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집안에 하나밖에 없는 여자 로부터 (다시 변사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밤이면 밤일, 낮이면 낮일 그 어느 것 한 가진들 제대로 하는 게 없는 무능력자의 판결을 받고, 생각하고 고민 하고 떨고 격분하고 혼자 지랄 염병하다가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있었으나 끝내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으니 세상으로 나가자, 이 악랄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 저 춥고 바람 부는 지하도, 사나운 청소부가 문전 박대하는 백화점 화 장실, 전철역 같은 곳을 골고루 순회하며 삐뚜러진 세상을 바로잡자는 기사 의 정신이었던 것이었다. 그래 이제부터 나는 무사 돈 기호태! 괭이부리의 돈 기호태!
(다시 좀 전의 그 여자 관객 앞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기사의 예를 갖추며) 예로부터 공자 맹자께서도 속이 뜨거운 미녀는 영웅을 알아본다고 했으니 이 돈 키호태 영웅의 본색을 잘 알아맞춘 아까 저 여인에게 신의 축복과 함께 내 타오르는 연모의 정열을 보내노라.
(그때 언제 나왔는지 고수가 북을 딱 소리가 나게 크게 친다. 돈 키호태 놀라 일어나며) 아이고, 잡것. 깜짝 놀라버렸네. 저게 어디 가서 무얼 빨다가 이제 와 가지고는 저 지랄이야.
(고수에게 다가가 발길질을 하려는 시늉을 한다.) 야 너 늦게 나온 주제에 왜 남 무드를 깨냐, 깨기를? 이게 그냥! 야, 너 바람났냐? 저기 어떤 여자냐, 늦 게 들어온 저 여자허고 너 뭐 허다 왔제?
고수 (두 손 빌며) 늦어서 미안해.
돈 너 그런데 입술은 왜 그렇게 새빨가냐? 꼴에 이게 그냥! 바른대로 말해. 빨았 어?
고수 아냐, 아냐. 늦어서 미안해.
돈 너 한 번만 더 딴 수작 피우면 알지? 박통을 부셔버릴 테니까. (객석 어디 한 구석을 가리키며) 너도 주의햇!(그리고 고개를 꼬며 혼자 궁시렁거린다.)
고수 알았어. 잘못했어. 자 인제 한 번 놀아봐야지.
돈 뭐? 놀아 보자고? (엉덩이를 슬슬 돌리다가 팍 꽂는 시늉을 한다.) 이렇게?
좋아. 놀자면 놀지. 그런데 놀기 전에 사실 고백할 게 하나 있는데, 사실은 나 집 나올 때, (엄숙한 목소리로 바꾸어서) 들어라. 너 삭막하고 지겨운 이 세상아, 때묻고 타락한 세상아, 여기 용맹스러운 기사가 깃발을 휘두르며 너 를 쳐부수리라.
나는 나, 돈 기호태! 괭이부리의 영웅 돈 기호태! 운명이 손짓하여 나는 떠난 다.
운명의 거센 바람이 나를 앞으로 이끈다.
운명이 나를 어데로 이끌던 서슴치 않고 달려가리라. 하며,
이렇게 거창하게 나오고 싶었는데 (다시 여자 목소리를 흉내내어) 사실은 몰 라, 몰라, 여편네한테 쫓겨난 거 있지잉.
그래. 뭐, 요즘 세상에 쫓겨난 남자가 어디 나 하나뿐인가. 저녁에 전철 지하 도에 가 봐라. 발에 걸리는 게 맨 못난 등신 새끼들 투성이더라.
아무튼 이바구는 이만 까고, 인생은 일장춘몽, 조여청사모성설이요, 화무는 십일홍이라 놀아 봐야 쓰것제?
(고수를 바라보며) 야, 졸고 앉았지만 말고, 너도 밥이라도 얻어 걸리려면 일 을 해야 할 것이 아니냐? 내 지금부터 춘향이허고 이 도령이 놈 놀아나는 대목을 해 볼 양이니까, 북 잘 두드려.
(고수 대답 대신에 떠덩 북을 친다.)
하여튼 남녀 어우르는 시기는 대체로 어느 때뇨, (판소리 가락으로) 놀기 좋 은 삼춘이라. 호연, 비조, 뭇 새들은 농초화답 짝을 지어 쌍거쌍래 날아들어 온갖 춘정 다투는데 남산화발북산홍과 천사만사수양지에 황금조는 벗부른다. 나무 나무 성림하고 두견 접동 다 지나니 일년지가절이라.
(다시 판을 깨며 관객을 향해) 어떠냐? 제법 무드가 흐르냐? (한 쪽을 가리 키며) 젠 아주 눈을 감고 갔구나.
고수 (판을 깬 것이 불만인 듯 혀를 차며) 어이, 참.
돈 아니, 이 망종이 얻다 대고 입맛을 다셔. 야, 내가 돈 기호태 씨면 넌 내 충 실한 마부며, 부관이며, 집사며, 이 세상 끝까지 주인 나리를 지키는 충복, 산 쵸의 신분이거늘 어디다 대고 시건방을 떠느냐?
고수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어.
돈 그럼 이번에는 불문 곡직, 직방, 그 애들 둘이 그거 하면서 노는 장면으로 들 어간다.
(음탕하게 한 번 웃고는) 아냐.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여기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이 비록 문닫은 지하도 상가 앞이지만 어찌 금준미주에 옥반가효를 꿈조차도 못 꿀소냐? 더구나 영웅과 미녀가 일을 치르기 위해서는 합환주가 있어야 하느니. 그래 거기부터 하자.(고수 북을 딱 친다.)
주효를 차릴 적에 안주 등물 볼 것 같으면 (이제부터 판소리 투로 하되 무척 빠른 장단으로) 괴임새도 정결하고 대양푼 가리찜, 소양푼 제육찜, 풀풀 뛰는 숭어찜, 포도동 나는 매추리탕에 동래 울산 대전복, 대모 장도 드는 칼로 맹 상군의 눈썹처럼 어슷비슷 오려 놓고, 염통산적 양볶이와 춘치자명 생치 다 리, 적벽 대접 분원기에 냉면조차 비벼 놓고, 생률 숙률 잣송이며, 호도 대추 석류 유자 준시, 앵두 탕기 같은 청술레를 칫수 있게 괴었는데, 술병 치레 볼 것 같으면 티끌 없는 백옥병과 벽해수상 산호병과 엽락금정 오동병과 목 긴 황새병 자라병 당화병 쇄금병 소상동정 죽절병 그 가운데 천은 알안자 적동 자 쇄금자를 차례로 놓았는데 구비함도 갖을 시고.
술 이름을 이를진대 이적선 포도주와 안기생 자하주와 산림처사 송엽주와 과 하주 방문주 천일주 백일주 금로주 팔팔 뛰는 화주 약주 그 가운데 향기로운 연엽주 골라내어 알안자 가득 부어 청동화로 백탄 불에 남비 냉수 끓는 가운 데 알안자 둘러 불한불여 데어 내어 금잔 옥잔 앵무배를 그 가운데 데웠으니 옥경 연화 피는 꽃이 태을 선녀 연엽선 뜨듯 대광보국 영의정 파초선 뜨듯 둥덩실 띄워 놓고 권주가 한 곡조에 일배 일배 부일배라.
헤 헤 헤. (몹시 숨가빠 하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방정스럽게) 에고 숨 차라, 오늘 나 죽네. 이제 나도 물이 갔나벼.
고수 고까짓 걸 하고는…….
돈 저게 오늘 왜 이렇게 쌍심지를 돋게 만들어.
(천천히 일어나며) 오냐. 이 오살을 맞을 것. 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 한가지 목숨, 그래 어디 한 번 해 보자. 헌데…….
고수 (맞받아서) 헌데?
돈 내 지난 날 라만차인지 괭이부리인지를 눈물로 떠나올 때 적토마커녕은 비루 먹은 당나귀도 못 타고 마누라한테 내몰리던 그 심사가 떠오르네 그려.
고수 (떠덩 북을 치며) 그럼 어디 무슨 사연인지 한 번 들어나 볼까.
돈 내 일찍이 우리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역발산 기개세하던 천하의 제 일 대장부 쪽은 못되었어도 그래도 명색이 사내 꼭지 소리는 들었다 이 말이 지. 국민학교 때는 줄반장 중에서도 가장 출중하지를 않았나, 중․고등 시절 에는 (추억에 잠기는 듯 사이를 두고) 도나스 집으로 우동 집으로, 여학교 기 집애들한테 그야 말로 인기가 대단했었는데…….
(손짓으로 여체를 그리며) 아이고, 고 명숙이란 년, 고 삼삼한 허리하며, 경자 년 치뜨는 눈매하며, 에고, 나 또 죽는다.
고수 (못 참겠다는 듯이) 아, 그래서?
돈 요런, 밝히기는. 뭐 어디 너처럼 내가 호박씨 까는 놈인 줄 아니? 야, 산쵸야, 내가 가진 것이 기사도 정신뿐인데 네 놈 불한당 같은 생각을 언감 먹지도 않았다.
아무튼 그 후, 이러저럭 대학도 나왔고 웬만한 회사에 취직도 했고 결혼도 그럴 듯한 여자 얻어 했는데, 그리고 거기서 빈 밭에 무 뽑듯 쑥쑥 애새끼도 둘씩이나 생산했고…….
그런데 이게 뭐가 안 되려니 그만 아엠에픈지, 무슨 에프킬라가 아픈지가 불 어 닥치는 바람에 첫 빳따로 목이 날아갔단 말이야.
(입맛을 다시며) 왜 첫 빳따냐고? 아, 당연하지. 영웅 주색 아니냐? 술 좀 먹 고, 쪼깨 농땡이 칭께 안 짤리것냐? 나부텀이라도 고런 놈 썩 자르것다.
하루는 아침에 회사에 나가니께 글쎄, 게시판에 내 이름이 붙었는데 아무날 부로 면직이라 하는 거여. 면직! 야, 너 왜 웃냐? 어디 충남 당진군 어디 면 사무소에라도 발령난 것인 줄로 아냐? 이런 싹박아지 없이 무식한 것! 면직 이 뭐냐면(손 칼로 목 자르는 시늉을 하며) 이거여, 이거!
(작은 목소리로) 근데 사실은 말여, 나도 첨엔 그게 뭐 좋은 건 줄로 알았다. 생전 어디 그런 벽보에 이름이 나 봤어야지.
아, 이러고는 아직 모가지 붙어 있는 녀석들이 그래도 섭섭하다고 술 한 잔 하자기에 삼겹살에, 닭똥집에 밴댕이 회에 실컷 때려 먹고 거기다 이차, 삼차 까지 안 갔겠냐?
새벽 두 시쯤 되니까 한 놈, 한 놈 다 도망가고 나만 남더라. 그래, 나도 에 이, 이젠 들어가자. 집에 와 보니 이놈 마누라 천지가 개벽을 했는지도 모르 고 그 살찐 넓적다리!
(갑자기 정색을 하며) 여러분은 지금부터 빠크샤, 요크샤 양돈장의 백도야 지를 상상하시기 바랍니다. 그 육중한 두 넓적 다리 사이에 떡 허니 내 베개 를 끼고는 (타령하듯 박자를 맞춰 가며) 드르렁 푸쉬쉬, 드르렁 푸쉬쉬, 아, 풍차를 돌리고 있지 않겠냐?
서방이 왔는지 지나가던 어떤 똥개가 굴러 왔는지 상관없이 천하태평 드르렁 푸쉬쉬, 이걸 그냥 냅다 요절 박살을 내고 싶어도, 내일 아침부터 당장 갈 데 없는 실업자가 무슨 용빼는 수가 있겄냐?
하는 수 없이 살찐 백도야지 옆에 조아리고 얹아 아주 공손히, 여보, 여보, (패티 김 흉내를 내며) 마리아, 마리아, 사랑하는 마리아, 마리아, 마리아, 사 랑하는 마리아, 이렇게 깨웠더니, 아, 글쎄 천장이 들썩일 만큼 두 콧구멍으 로 풀무질을 하던 이 여편네가 황소 같은 두 눈을 멀뚱멀뚱, 아마 한 식경은 좋이 뜨고 바라만 보길래, (손으로 아기를 어르듯 얼굴에 대고 빙빙 돌려 보는 시늉을 하며) 여보오, 나야, 나 왔어어, 했더니 그만 발따닥 일어나 앉는
거여. (흉내를 내며) 아이구, 참으로 풍신 좋더라.
(아양떠는 목소리로) 여보, 당신 가사일 돌보느라 몹시 피곤했지? 했더니, 이 여자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목소리를 나직히 깔면서 왈, (마누라 목소 리로) 기호태 씨, 아무래도 당신 무슨 사고 친 모양인데 사실대로 말해. 지금 몇 시야? 누구하고 지금까지 마셨어?
영업부 김 과장, 경리부 박 과장, 또 민 대리, 현장에 있는 한 주임, 그리고 우리 총무과 이 대리, 윤 과장 그렇게요.
이 이가, 정말, 그런데 왜 다른 날 같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살금살금 기어 들어와 자빠지던 사람이 오늘은 무슨 용천이 뻗혀서 사람을 깨우고 이 난리 를 피운단 말이야? 아휴, 술 냄새.
여보, 미안해.
미안한 줄 알면 어서 씻고 잠이나 자요.
그냥 자?
아니, 그럼 그냥 자지, 지랄 방정이라도 한 번 떨고 자남?
(고개를 숙이고 잠시 사이를 두고) 아무튼 이렇게 그 날 밤은 그냥 잤는데 며칠 있다가 그만 빵꾸가 나지 않았겠냐? 아이구, 그 날 생각하면 치가 떨리 고 이가 갈려 송곳니가 방석니 된다.
세상에 글쎄, 내가 목이 떨어지고 나니까 룸살롱에서 고 불여우새끼 같은 마 담 년이 제일 먼저 득달같이 달려와서는 (여자 목소리로) 어머, 김 과장님이 야 워낙 쫀쫀한 분이니까 먹고사는 데는 큰 지장 없으시죠? 하며 염장을 지 르는데 참으로 환장하것더라. 또 그뿐이면 좋게. 당장 지난달에 카드 긁은 것 날라 오지, 마누라 몰래 증권 투자한다고 몰래 대출 받은 거 상환 독촉 오지.
뭐? 증권 어떻게 됐느냐고? 그걸 뭘 물어보나, 이 사람아. 깡통이지, 깡통.
또 뭐냐? 옳다. 고등학교 동창 놈 사업한다고 은행 대출 보증 서 준 거 대신 상환하지 않으면 그나마 하나 남은 아파트 차압하겠다는 통지가 안 오나, 정 말 죽겠더라.
(다시 마누라 목소리로) 기호태 씨, 나도 몸이 불어 밤에는 만사 귀찮아 당신 이 터진 풀 자루처럼 주변머리가 없어도 상관없었지만 이건 달라. 이 벌건 백주 대낮에 애새끼들하고 거리에 나앉게 생겼으니 이제부터 잔말말고 내 하 자는 대로 해.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뭔데--요?
(마누라 목소리로) 으이그, 속 터져. 내일 당장 법원 가자. 이혼하는 거야. 나 그리고 아파트 내놓을 거야. 줄여 가서 살 궁리해야지. 지금 그나마 조금이라 도 건질 수 있는 방법이 그거니까 알아서 해. 그리고 당신도 나가서 살 궁리 해. 참 자알 한다. 살다, 살다 이제 쪽박까지 차고 거리에 나앉는구나. 에구, 이 모진 년의 팔자야. 어쩌면 서방이라는 것이 저렇게 밤낮으로 지지리 못났 을꼬?
맞더라고. 내가 봐도 내 이름자 앞에 ‘돈’자가 그냥 돈자가 아니더라고. 그게 (손가락으로 이마 옆에 원을 그리며) 돌았다는 돈자지.
참 내가 생각해도 내 자신이 지랄 같더라니까. 오죽하면 장타령에도 그런 게 다 나오것냐? 들어볼래?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에에 씨구 씨구 들어간다.
저얼 씨구 씨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에헤 품바가 자리 헌다.
길가 길가나 가다가
서방이라고 만난 것이 지랄같이도 생겼네.
똥통 대가리 양푼 낯짝 실내끼 모가지에 빈대코.
어떠냐? 맞지? 내 푼수하고 맞냐?
(또 관객 중의 한 여자 앞으로 가서) 너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골라. 나 같은 거한테 걸리면 평생 줄줄이 안팎으로 고생이여. 알겠니?
사내라는 짐승들은 개뿔도 없으면서 기집 하나 후리는 재주는 있거든. (옆의 남자를 흘끗 보며 세끼 손가락을 펴 보인다.) 이거야? 이것도 수께나 쓰게 생 겼는데. 만만치 않겠어.
모름지기 요조숙녀라는 것은 군자의 호구라고 했으니, 이거 어디 나오는지 아니? 시경에 나온다. 어험, 내 이렇게 유식하기도 하다. 그래, 군자의 뭐라고 했어? 그래, 호구! 그게 호랑이 아가리라는 말이 아니고 좋은 배필이라는 뜻이여.
그런데 실제로 그게 호랑이 아가리가 되는 경우가 많으니, 첫째 남자들의 감 언이설과 교언영색을 경계할 것.
이 여자라는 동물은 참으로 어리석어서 늑대나 호랑이의 목소리를 구별을 못 해.
참 머릿결이 곱고 인상적입니다. 언제나 그 향수를 쓰십니까? 전 그 향수 냄새만 맡으면 마치 꿈꾸는 듯한 환상에 빠집니다. 어쩌구 하면 벌써 대번에 맥박이 뛰고 숨이 할딱할딱 가빠 오면서 먹은 게 얹힌 것처럼 가슴이 뻐근하 기도 하고 골이 띵한 것이 금세라도 발라당 자빠지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 이 말이야.
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곧 너희 같은 쑥맥들 바로 신세 조지는 호랑이 아갈 지라 이 말이여.
(다시 그 여자 관객한테 가서) 너 정말 조심해. 얼굴 보니까 수도 없이 자빠 라지게 생겼어. 아직 한 번도 그러지 않았지?
(남자 관객에게) 너두 너무 수 쓸 생각만 하지 말어.
기왕지사 옆으로 새나간 이야기, 한 가지만 더 해 줄까?
세상 농부 중에 부지런한 농부와 게으른 농부의 차이점이 뭔지 아는 사람? 맞히는 사람 내 입장료 도로 준다.
(주머니를 뒤지다가 돈이 나오니까 얼른 도로 넣고 고수에게 다가간다.) 이 봐. 돈 좀 꿔 줘.
고수 나 돈 없는데.
돈 이 썅. 대갈빡을 부수기 전에 어서 내놔.
(하는 수 없이 고수 돈을 내놓는다. 돈 기호태 그 돈을 들고)
상전이 내놓으라면 내놓아야지.
어디 아는 사람, 손 들어봐. 없어?
좋아. 그럼 하는 수 없네. 이 돈은 내가 정답을 말하고 내가 가지면 되는 거 지. 자, 잘 들어요.
(옛날 이승만 박사 목소리로) 여러분, 나 리승만입네다. 우리 조국이 부자가 되려면 모두 부지런히 밭을 갈아야 합네다. 저 조밭을 보십시오. 부지런한 농 부의 조대가리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게슴츠레 하게 뜨고 사타구니 쪽을 슬 슬 문지르며) 게으른 농부의 조대가리는 빳빳하게 서 있습네다. (히히 웃는 다.)
아이, 실없는 이야기 많이 했네. 다시 그럼 그 이야기!
(다시 돌아와 정색을 한 채) 하여튼 그럭허구 당나귀 한 마리 없이 터덜터덜 고향 산천 괭이부리를 떠나올 때 이 기호태 씨의 억장은 무너지고 산촌 초목 도 울었던 것이었다.
(또 변덕이 난 듯) 아까 전에 시작할 때, 내가 삐뚜러진 세상을 바로 잡고 어 쩌고 한 것 사실은 다 뻥이여. 돈키호테하고 이름이 비슷해서 그렇지 내가 무슨 기사고, 무슨 무사이것냐? 난 정말 그런 사람 바짓가랑이도 못된다.
그런데, 하여튼 이렇게 지하도로 화장실로 다니며 보니까 마음 하나는 편하 더라.
(갑자기 대단한 발견이나 한 듯 발을 탕 구르며) 참, 너희들 노숙자, 노숙자 그러는데 세상에 여자 노숙자 본 적이 있냐? 기지배 노숙자 말여. 남자 놈 들은 평생 쎄 빠지고 뭐 빠지게 일하다 한 방에 날라 가 그만 공중 변소에서 쭈글시고 앉는 신세인데 엄동설한에 신문지 덮고 누워 자는 년 본 적이 있 냐?
아이고, 원통 절통해라. 여편네들은 처먹고 찐 살 뺀다고 찜질방에서 그 큰 놈의 언덩이를 이리 씰룩 저리 씰룩 뒹굴다가 또 목마르다고 동치미 국물, 미역국에 밥 말아먹고 그래도 심심하면 고스톱에 짓고땡에 시간 가는 줄 모 르고, 웬 놈의 담배는 그리 피는지 콧구녕이 노래지도록 발심 발심 빨아대는 데…….
헌데 불쌍한 인종, 사내들은 하릴없이 거리 공중 변소간로 내몰렸구나.
고수 그런 곡절이 있었구먼. 안 됐네. 허지만 어쩌나. 자, 지난 일 잊고 어디 신명 나게 한번 놀아나 보자니까. 오늘 하루는 지난 과거 다 잊어버리고 놀기로 했잖아?
돈 그래. 내 이 세상 하직할 때, 하직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번 놀아 볼 테니까. 아까 어디까지 했지?
고수 술상 받아 놓고 일배, 일배, 부일배까지 했지.
돈 옳거니. 자, 그럼 다시 시작한다. 아니, 아니, 시도프! 참, 하나만 더 묻고 시 작하자.
고수 아, 왜 또 그래.
돈 잔말 말고 기다려, 이…….
나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만 너희들 배부르고 등 따수면 뭐가 생각나니? (또 관객을 지적하며) 너, 뭐가 생각나니? (귀를 기울여 들으며) 뭐가? (이야 기를 듣고 시침 뚝 따는 얼굴로 아주 천천히 반대쪽으로 몸을 돌리다 갑자 기) 염병하고 자빠라졌네. 그래, 너는 색도 모르냐? 색즉시공, 공즉시색 하는 색도 몰라?
자고로 공자께서도 설파하셨다. 군자는 혼자 있을 때 도를 생각하고 소인이 배불러 한가하고 혼자 있으면 손이 (자신의 사타구니에 손을 넣으며) 요리로 이렇게 들어간다고 하셨다. 쯧쯔, 참 무식한 너희들 오늘 많이 배운다.
(활짝 돌아서며) 어이, 산쵸, 이제 시작한다. 어험.
(판소리 가락으로) 춘향과 도련님 마주 앉아 놓았으니 그 일이 어찌 되겠느 냐.
(고수를 돌아보며) 요기서부터지?
(고수 끄덕인다.) 사양을 받으면서 삼각산 제일봉 봉학 앉아 춤추는 듯 두 활 개를 에구부시 들고 춘향의 섬섬옥수 바듯이 겹쳐 잡고 의복을 공교하게 벗 기는데 두 손길 썩 놓더니 춘향의 가는 허리 담숙 안고
“나삼을 벗어라.”
춘향이가 처음 일일 뿐 아니라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 몸을 틀 제 이리 곰실 저리 곰실 녹수에 홍련화 미풍 만나 굼니는 듯, 도련님 치마 벗겨 제쳐 놓고 바지 속옷 벗길 적에 무한히 실랑된다. 이리 굼실 저리 굼실 동해 청룡이 굽 이를 치는 듯
“아이고 놓아요. 좀 놓아요.”
“에라 안 될 말이로다.”
실랑 중 옷끈 끌러 발가락에 딱 걸고서 끼어 안고 진득이 누르며 기지개 켜 니 발길 아래 떨어진다. 옷이 활딱 벗어지니 형산의 백옥덩이 이 위에 비할 소냐. 옷이 활씬 벗어지니 도련님 거동을 보려 하고 슬그머니 놓으면서
“아차차! 손 빠졌다.”
춘향이가 침금 속으로 달려든다. 도련님 왈칵 좇아 들어 누워 저고리를 벗겨 내어 도련님 옷과 한데다 둘둘 뭉쳐 한 편 구석에 던져두고 둘이 안고 마주 누웠으니 그대로 잘 리가 있나.
(여기서 뚝 끊고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야, 죽인다, 죽여.
고수 어허, 참.
돈 오냐. (다시) 골즙 낼 제, (장난스럽게 한 번 더) 고올즙 낼 제, 삼승 이불 춤 을 추고 샛별 요강은 장단을 맞추어 청그렁 쟁쟁 문고리는 달랑달랑 등잔불 은 가물가물 맛이 있게 잘 자고 났구나. 그 가운데 진진한 일이야 오죽하랴.
요기꺼정이 첫날밤 장면인데 어떠냐? 좋제? 어린것들이 참 맹랑도 하지?
난 그 나이에 공부밖에 몰랐다.
V=½GT! 이게 뭔 공식인지 아니? 뉴턴의 제1법칙이다. 뭐? 다시 한 번 더 설명하라고? 난 리바이벌은 안 해.
아무튼 너희들도 틈나는 대로 공부 좀 열심히 해. 소년이로에 학난성이라고 했거늘. 뭔 소린지 알겄냐? 아이새끼는 금세 나이 처먹어 어른되고 공부는 때 놓치면 못한다 이 말이다.
대저, 공부라는 것이 뭔가. 일간 스포츠 빨간색 만화만 보지 말고 제대로 된 책 읽으라는 소리여. 어때? 내 말 하나도 그른 것 없제? 엉? 박수! (박수 소 리 듣고 만족한 듯 끄덕이며)
헌데 어떤 인간 말종 같은 놈은 책 읽으라니께 글쎄, 프레이보이를 떡 펴들 고 그걸 읽는다고, 내 참 기가 막혀, 그런 종자는 그냥 작두로 그걸……. 하 기사 (몸을 비틀며 코 먹은 소리로) 그 책 그림 하나는 정말, 징그럽게 좋은 거 있지? 아휴!
(다시 정색을 하고) 아무튼 대가리 아직 말랑거릴 때 제대로 공부 안 하고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의 사타구니를 가리키며) 요기 허리하학적으로만 사람 이 발달을 해버리면 이내 온몸 삭신 뼉다구가 녹아버리고 소갈병에 걸려 하 루에도 열두 번씩 자다가도 물을 찾고, 급기야는 우리 마누라 넉두리 가사처 럼 된다 이 말이야. 그게 뭐냐구?
그래, 천하의 돈 기호태, 이 기사님도 사람이니 허물이 있는 법. 오늘 기왕지 사 다 들통 난 거, 속 시원히 말해버리겠어. 산쵸야, 해도 되겄냐?
(고수 끄덕이며 시작 장단을 친다.)
뒷동산에 딱따구리는 생나무 구멍도 잘 파는디
우리 집에 그 사람은 뚫어진 구멍도 못 파누나
어랑 어랑 어허야 어험마 내 사랑이로다
(관객을 한 번 둘러보고) 뜻은 대강 알제? 이게 바로 우리 집 여자가 부르던 신고산 넉두리 타령인데 말여, 하루는 내가 큰 맘 먹고, 아마 그 때가 밤 한 시경은 되었을 겨. 잠은 안 오고……, 아무튼지간에 두 아이 다 꿈나라로 행 차한 야심한 밤을 틈타 슬슬 올라가지 않았것어?
사실 시골서 돼지를 잡을 때는 말여, 돼지란 놈을 하루 종일 놓아 배불리 멕 인 다음 담장 그늘에서 꾸룩꾸룩거리며 잠들어 있을 때 백장놈의 새끼가 도 끼 뒷등으로 단번에 골통을 박살내서 황천길로 보내버리는, (갑자기 두 손을 합장하고) 나무 관세음보살! 그게 순서거든.
그런데 형상은 그 비슷해도 내가 올라간 돼지는 그 게 진짜 돼지가 아니고 사람이잖아. 이 물색없고 감각 없는 여자 좀 보소. 만사는 불여튼튼! 내가 올라가서 일단 사주 경계를 펴기 위해 딱 엎드려 숨을 죽이고 한 오 분을 엎 어져 있는데도 도무지 콧방귀도 뀌지 않는 거 있지?
에라 모르것다. 먼저 쌍봉산을 공격하는데 아, 그제서야 감이 왔는지 끙, 하 는 소리를 내더니만 홱 옆으로 돌아눕는 거야. 내가 어떻게 되었겠나. 난 이 게 이제 뭔가 달짝지근한 느낌이 와서 제대로 되는구나, 이리 생각하고 있는 데 (몸을 홱 회전시키며) 이렇게 돌아누우니 내 신세 그만 오뉴월 논둑에 패 대기친 개구리 신세, 그러니 시구문 쪽은 가보지도 못하고 보기 좋게 침대 아래로 굴러 떨어져서 떡을 치고 말았지. 말도 말아. (허리춤을 까 보이며) 그 때 입은 중상!
그런데 그날 더 가관인 것은, 아 글쎄, 서방을 그 지경으로 패대기를 쳐 놓 고는 비로소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부스스 눈을 뜨는 거야.
희미끼리한 어둠 속에서 한참 나를 내려다보더니 그만 쯪쯔 하고 혀를 차면 서, 잠버릇도 참 드럽게 사납네. 어찌 나이가 들어갈수록 저 지경, 망녕이 된 다냐? 아, 어서 올라와요. 이러는 아니것어? 증말, 증말 기가 멕혀!
하는 수 없이 침대로 올라가기는 갔는데 영 성난 뼉다구에 분이 풀리나. 그 런데 더 썩 죽이는 거 있지?
내가 여보오, 당신도 무드는 있지? 하고 슬쩍 강화조약을 맺으려고 운을 떼 니까 아, 이 여편네 눈치는 빠르게 벽 쪽으로 다시 끙 돌아누우면서 주제를 알아야지 주제를, 고작 1분도 못 가면서…….
그래, 좋다. 세상 남자들 다 별 볼일 없게 되면 너희들 뭐 좋을 거 있는 줄 아니? 좋아. 이제부터 밤이면 너희 여자들이 올라가! 옛날부터 여자가 올라가 면 어떻다고 했는지 알아? 여천이면 기왓장이 뒤집어진다고 했어.
그리고 그거, 올라가서 흔들고 힘쓰는 거 그거, 너희들 예삿일로 아는데 어디 한 번 해보라지. 눈깔이 뱅뱅 돌기라.
아주 이참에 호주도 문패도 여자 이름으로 다 갈아 버리고, 나가서 돈도 벌 어와. 남자들 전부 집에 들어앉아서 주는 돈 받아 살림하면 안 될 것도 없어. 아주 애도 낳아 줄게.
고수 아, 잠깐, 잠깐! 아니, 오늘 한 번 걸판지게 놀기로 해 놓고선 왜 자꾸 옆으로 새는 거야. 여기 여자분들 많이 오셨는데, 너무 그러지 말고…….
돈 아, 이 잡것, 산쵸야, 시작부터 늦게 들어오면서 뭔가 수작이 있는 것 같더니 만, 이게 아주 이제 노골적으로 여자들을 감싸고 도네.
고수 그게 아니고.
돈 그게 아니면 거죽이냐? 오냐, 좋다. 내 비록 정식으로 받은 작위는 없지만 돈 기호태 기사의 명예를 걸고 너희 연놈의 부정한 행실을 밝혀 내고야 말리라.
고수 어허, 참.
돈 (객석의 여자들을 노려보며) 누구냐? (칼을 빼는 시늉으로 볼펜 꼭지 하나를 꺼내든다.) 저 산쵸 녀석을 호려낸 요망한 여자가 누구냐?
고수 그게 아니래두 그러네. 꼭 어제 저녁 풍차 카페에서 시비 붙던 모양과 똑같 다니까.
돈 네 놈이 뭐라 했느냐? 풍차 카페의 일은 마술왕 뜨리스톤의 장난인 것을 …….
고수 (돈 기호태에게는 안 들리게 객석을 향해) 돌긴 이름자처럼 참말로 온전히 잘 돌아 버렸는데.
돈 그 놈이 나를 얕잡아 본단 말이야.
고수 (화가 난 듯 북을 챙겨 들고 일어나면서 큰 소리로) 정 하기 싫으면 그만 둬. 나도 내일부터는 다른 지하철역으로 가기로 했으니까.
돈 아, 아, 아, 내가 켕겨서 그러는 것은 아니고, 자네 산쵸의 내게 대한 충성심 이 그 지경이니 내 자네의 갸륵한 뜻을 받아들이노라.
(관객을 둘러보며) 여기 계신 모든 기사와 귀족 부인들께서도 그러하오? 좋 소. 그럼 다시 시작하리다.
춘향아, 궁자 노래를 들어 보아라.
애고 얄궂고 우습다. 궁자 노래가 무엇이오?
네 들어 보아라. 좋은 말이 많으니라. 좁은 천지 개탁궁 뇌성벽력 풍우 속에 서기 삼광 풀려 있는 엄장하다 창합궁 성덕이 넓으시사 조림이 어인 일고. 주지객 운성하던 은왕 대정궁 진시황 아방궁 문천하득하실 적에 한태조 함양 궁 그 곁에 장락궁 반첩여의 장신궁 당명황제 상춘궁 이리 올라 이궁 저리 올라 별궁 용궁 속의 수정궁 월궁 속의 광한궁 너와 나와 합궁하니 평생 무 궁이라. 이 궁 저 궁 다 버리고 네 양각 새 수룡궁에 나의 심줄 방망이로 길 을 내자꾸나. (여기서 멈추고 음탕스럽게 낄낄낄 웃는다.)
아이고, 넘사스러워. 뭐, 심줄 방망이로 길을 내. 고연 것들. 자, 다시 계속.
춘향이 반만 웃고
그런 잡담은 말으시오.
그게 잡담이 아니로다. 춘향아, 우리 둘이 업음질이나 하여 보자.
애고 참 잡상스러워라. 업음질을 어떻게 하여요.
업음질 여러 번 한성 부르게 말하던 것이었다.
업음질 천하 쉬우니라. 너와 나와 활씬 벗고 업고 놀고 안고 놀면 그게 업음 질이야.
애고 나는 부끄러워 못 벗겠소.
에라 요 계집아이야 안 될 말이로다. 내 먼저 벗으마.
버선 대님 허리띠 바지저고리 훨씬 벗어 한 편 구석에 밀쳐놓고 우뚝 서니 춘향이 그 거동을 보고 삥긋 웃고 돌아서며 하는 말이
영락없는 낮도깨비 같소.
오냐, 네 말이 좋다. 천지 만물이 짝 없는 게 없느니라. 두 도깨비 놀아보자.
그러면 불이나 끄고 노사이다.
불이 없으면 무슨 재미있느냐. 어서 벗어라. 어서 벗어라.
(몸을 비비 틀며 무대를 다닌다.) 휴, 망할 자식.
춘향의 가는 허리를 후리쳐다 담쏙 안고 기지개 아드득 떨며 귓밥도 쪽쪽 빨 며 입술도 쪽쪽 빨면서 주홍 같은 혀를 물고 오색단청 순금장 안에 쌍거 쌍 래 비둘기같이 국궁 끙끙 으흥거려 뒤로 돌려 담쏙 안고 젖을 쥐고 발발 떨 며, (진저리치듯 떨면서) 젖을 쥐고 발발 떨며, 젖을 쥐고 발발 떨며, 젖을 쥐 고 발발 떨며……
고수 스톱! 판이 걸렸어? 자꾸 헛 돌잖여?
돈 어허라. 거기서 또 걸렸구나. 젖을 쥐고 발발 떨며에서 걸렸지?
저고리 치마 바지 속곳까지 활씬 벗겨 놓으니 춘향이 부끄러워 한편으로 잡 치고 앉았을 제 도련님 답답하여 가만히 살펴보니 얼굴이 하여 구슬땀이 송 실송실 앉았구나.
이 애 춘향아, 이리 와 업히거라.
춘향이 부끄러하니
부끄럽기는 무엇이 부끄러워. 이왕에 다 아는 바니 어서 업히거라. (관객석을 돌아보며) 잘 논다. 그치?
춘향을 업고 치키시며
어따 그 계집아이 똥집 장히 무겁다. 네가 내 등에 업히니까 마음이 어떠하 냐?
한껏나게 좋소이다.
좋냐?
좋아요.
좋냐?
좋아요.
좋냐?
좋아요.
으흐흐 나도 좋다.
(이때 밖에서 사납게 들리는 호각소리. 동작을 멈추고 소리나는 쪽을 노려본 다.) 오늘 또 나왔다 이거지.
저게 말이여. 우리들 여기서 자지 말고 나가라, 이거요. 허긴 우리 같은 사람 들이 여기서 잠을 자도 좀 질서를 지키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고 개판을 치니 철도청에선들 가만히 있것냐고.
내 오늘, 이 돈 없는 돈 기호태 씨가 여러분들한테 좋은 얘기도 쪼가 허고 신명도 내 주었으니께 불만은 없제? 엉? 그리고 아까 너, 오늘 춘향이 노는 거 고대로 숭내 내설랑은 안 된다. 넌 눈가에 뭐가 흘러. 조심혀. 춘향이 이 도령은 다 정절 지키고 해피 엔딩했지만 요즘 어느 시러배 아들놈이 일편단심 이고 어느 개 어렐레 딸년이 정조를 지키것냐? 이 불쌍허고 흉악한 시대에 함 부로 흔들어 대고 함부로 발라당 하는 년이 불쌍한 년이여. 명심해.
또 내가 기사로서 느그 아기들에게 주는 충고니께 잘 들어. 아무리 돈 없어도 서방은 서방이고 지에미는 지에미인겨. 그것이 하늘이 낸 인연인데 그걸 무시 하면 세상이 어찌 되것냐? 잘들 생각해 봐.
그리고 나 간다. 저 샤타 내리기 전에 나가야지 그러지 않으면 내일까지 꼼짝 없는 감옥살이 신세여. 잘들 가. 나 돈 기호태 씨도 잘 갈 테니께.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