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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쥐불놀이
정월 대보름의 하루 전날인 열나흗날이 되면 마을의 어린아이들이 논이나 밭두렁에 불을 붙이고 돌아다니며 노는 쥐불놀이를 한다. 특히, 밤에 아이들이 길다란 막대기나 줄에 불을 달고 빙빙 돌리며 다닐 때는 불곷이 혈란한 원을 그리며 장관을 이룬다.
쥐는 일년동안 땀흘려 지운 곡식을 축내고 때로는 못된 병균을 퍼뜨리기도 하는 고약한 짐승이므로, 이를 퇴치해야 하는데, 눈이 밝아 밤에 잘 다니는 쥐를 꼼짝 못하게 하려면 어두운 밤에 불을 밝혀서 그 눈을 멀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 데서 나온 놀이이다.
또 논두렁에는 한 겨울 동안 많은 해충이 숨어지내는 곳이므로 마른 잔디를 태워 일종의 소독을 하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이 쥐불놀이는 가끔씩 산불을 일으키기도 하는 위험한 놀이이므로 요즈음은 금지되어 있다.
2.널뛰기음력 설날에 아녀자들끼리 모여서 즐기는 놀이의 하나이다.
길다란 널빤지의 양족 길이가 같도록 중간부분을 밑받침대 위에 걸친 다음, 양족 끈에 한사람씩 올라서서 번갈아 가며 뛰고 구른다. 고려시대 때에는 이 놀이가 매우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당시 봉건사회에서 행동의 제약을 많이 받았던 아녀자들이 설빔을 곱게 차려입고 마음껏 즐기며 맵시를 자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날이었으므로, 한적한 규중생활로 인한 운동부족을 해소하는 데에도 큰 의의가 있었다.
3.연날리기연을 공중에 띄우는 놀이다. 연날리기는 오랜 옛날부터 전승되어 오는 민족전래의 기예의 하나로서 소년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성들의 흥미를 끌어 제2차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음력 정초가 되면 해마다 우리 나라 각처에서 성행하여 장관을 이루었던 민속놀이였다. 연을 날리는 데는 연실을 한없이 풀어내어야 하므로 연날리기는 주위에 장애물이 없는 데서 행하여진다.서울에서는 옛날 청계천변이 중심지였고, 시골에서는 대개 신작로변이나 개울가 또는 동산 같은 데서 많이 날린다.연을 날리는 시기는 음력 정월 초하루에서부터 보름까지가 본격적인데, 대체로 12월 20일경이면 벌써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연을 날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정월 보름 며칠 전이면 절정에 달하는데, 구경꾼들의 성원도 이때쯤에는 한층 더 열기를 띠게 된다.아이들은 끊어진 연실을 걷느라고 서로 다투어 남의 집 담을 넘어 들어갈 때도 있고, 심지어 남의 집 지붕으로 올라가는 일도 있어 말썽을 빚기도 한다. 또 끊어져 나가다가 가라앉는 연을 줍느라고 논바닥 속으로 뛰어가다가 빠져서 옷을 버리기도 한다.연날리기는 젊은이와 어른들도 많이 한다. 다른 연과 어울려서 끊어먹기를 많이 하므로 경기가 열기를 뿜는다. 다른 연을 끊어먹도록 하는 것을 ‘깸치 먹인다’고 하는데 이 끊어먹기는 대개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청장년은 청장년들끼리 많이 한다.연은 날리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 한 곳에 머무르는 일이 없이 가로 세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기도 하고 뒤로 물러갔다 급전진하는 등 자유자재로 날린다. 끊어먹기를 할 때에 연을 잘 끊어먹도록 하는 것은 연을 얼리는 이의 기술에 달리기도 한다.연날리기는 정월 대보름 며칠 전에 성황을 이루고, 보름이 지나면 날리지 않기 때문에 대보름이 되면 ‘액(厄)연 띄운다.’ 하여 연에다 ‘厄’자 하나를 쓰기도 하고, ‘送厄(송액)’이니 ‘送厄迎福(송액영복)’이라 써서 날리고는 얼레에 감겨 있던 실을 죄다 풀고는 실을 끊어서 연을 멀리 날려 보낸다. 그러므로 보름이 지나서도 연을 날리는 이가 있으면 ‘고리백정’이라고 놀려대고 욕한다.
4.윷놀이
본래 농경생활의 습속에서 시작되었다는 윷놀이는 그 기원이 삼국시대에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윷놀이의 끝수단위의 명칭은 ‘도, 개, 걸, 윷, 모’라 불리우고 있는데, 이는 일년 중 세초에만 행하는 윷놀이는 농사의 흉풍을 점치는 일종의 점술적인 면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정초에 가족과 친지가 모인 안방이나 동네의 공터, 시장터 등에서 남녀노소가 함께 즐기는 오락이 되어있다.
5.씨름
씨름은 오늘 날까지도 널리 행해여 오고 있는 민속놀이이다. 특히 음력 5월 단오절에는 바짐없이 씨름대회가 열리고 잇으며 4월 초파일, 7월 백중절과 8월 추석 등의 명절에 즐겨 행해지는 씨름은, 경기의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상품으로도 당시로서는 매우 귀중한 재산이 될 수 있었던 황소 한 마리를 주는 등 우리나라의 남성들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스포츠의 하나로 각광을 받아왔다.서기 5세기경으로 추측되는 고구려시대의 고분(각저층)에 이미 씨름하는 장면이 벽화에 그려져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놀이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여려 문헌에도 그 기록이 빈번하게 나타난다씨름의 종류는 샅바를 오른족 다리에 끼고 하는 ‘왼씨름’또 샅바를 왼쪽 다리게 끼고 하는 ‘오른씨름’, 그리고 허리에 띠를 매고 하는 ‘띠씨름’등 원래 세가지가 있었는데, 요즈음에는 대부분 ‘왼씨름’만을 한다. 상대방을 완력이나 여려가지 기술로써 제압하여 쓰러뜨리는 씨름은 다른 격투기처럼 상대방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지 않고도 이길 수 있으므로 매우 신사적이다. 경기의 기술은 손을 이용하는 ‘팔재간’과, 발을쓰는 ‘다리재간’, 두손과 다리를 사용하여 상대방을 땅에서 들어올리는 ‘들재간’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그 세부적인 기술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오늘날에는 씨름이 스포츠로서 체계화되어 공식적인 운동경기로 인정을 받고 잇으며, TV에서는 프로 경기로 정착하여 일년에 몇 차례 식 대회가 치루어지고 있다.
6.제기차기
제기차기는 사내아이들이 주로 겨울철에 행하는 놀이이다. 한가운데 구멍이 뚫어져 있는 엽전이나 쇠붙이 등에 한지, 헝겊, 털실을 달아서 만든 제기를 땅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회수를 거듭하여 발로 차 올리는 놀이로서, 가장 많은 회수를 기록한 사람이 우승을 차지한다. 제기차기는 반드시 겨울철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을 분 아니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놀이여서, ‘두발로 차기’, ‘땅에 한발 안대고 차기’등 기본적인 기술 외에도 갖가지의 놀이방법이 있다.
7.그네뛰기
북방의 유목민이 체력단련을 위하여 그네뛰기를 했던 것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까지 전해진 것이라 한다. 고려시대의 문헌에서 이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볼 수가 있는데, 당시는 남녀 모두가 즐기는 놀이였으며, 왕실과 권신들이 많은 돈을 들여 행사를 치룰 정도로 중시되었던 놀이이다. 조선시대의 소설 “춘향전”에서 춘향이가 그네를 뛰는 장면이 잘 묘사되어 있고, 또 이도령과 단오날 광한루에서 처음 만난 것이 그네뛰기하던 때로서 널리 알려져 잇듯이 많은 청춘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엮어낸 장소가 되기도 했다.
점차로 여성위주의 놀이로 흘러온 이 그네뛰기는 여성의 민속놀이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며, 지금도 향토의 제전이나 축제 행사의 하나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그네는 한사람이 뛰는 경우와 두 사람이 함께 뛰는 경우가 있고, 경기를 벌일 때에는 가장 높이 올라가는 사람에게 가장 많은 점수가 주어진다.
8.강강술래
전라남도의 해안지방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강강술래는 민족의 최대 명절인 추석을 전후하여, 달밤에 아녀자들이 노래와 함께 원무를 추는 놀이이다. 마침 추수를 거둔 시기여서 햇곡으로 지은 음식과 술을 차려놓고 조상에게 제례를 드린 후,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달빛이 휘황한 가을밤의 강강술래는 신비로운 느낌을 갖게 하는 환상적인 분위기속에서 진행된다.
남성이 참가하지 않는, 여성들만의 이 놀이는 동네의 아낙네들이 손에 손을 잡고 커다란 원을 그린 후, 빙빙 돌면서 춤을 추는데 도중에 ‘문턱넘기놀이’, ‘멍석말이놀이’, ‘남생이놀이’, ‘쥐잡기놀이’ 등을 함께 섞어서 한층 흥을 돋우기도 한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이순신장군의 일화와 관계가 있는 이 놀이는 병정들의 수가 모자라, 인근 마을의 부녀자들로 하여금 산 위에 올라서 원무를 추게하여 그 숫자가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왜적의 사기를 꺾었다는 이야기로 너무나 유명하다.
9.놋다리밟기
해마다 음력 정월의 대보름날 밤에 몸단장을 곱게 한 젊은 부녀자들이 모여서 행하는 놀이이다. 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람들이 모이면 모두일렬로 늘어서서, 각자 앞사람의 허리를 두 손으로 껴안은 채 엎드린다. 그 다음에는 어린 소녀를 뽑아서 사람들의 등을 밟고 지나가게 하고, 키큰 사람 둘이서 양쪽으로 그 소녀의 손을 잡아 부축해 준다. 이 때, 놋다리 밟기의 노래가 불리워지며 그 가사 속에는 이 놀이가 생겨난 배경이 잘나타나 있다. 고려시대의 공민왕이 중국의 홍건적에게 쫓기어 안동지방으로 파천했던 일이 있었는데, 당시 함께 갔던 왕비인 노국공주가 시내를 건널 때, 쉽게 건널 수 있도록 사람다리를 놓았던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노래속에는 여러 가지 궁중의 의복, 집기, 음식 등을 지칭하는 말이 나오며, 이 ‘놋다리’라는 말의 뜻은 “시냇물 위에 놓은 다리”라고 한다
10.지신밟기
지신밟기는 ‘마당밟기’, ‘매귀 굿’이라고도 하며, 음력 정월 초사흗날부터 대보름날 사이에 행하는 놀이로서 옛날에는 왕실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퍼져 있었다. ‘지신’은 집안에 우환을 몰고 온다는 잡귀.잡신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 지신을 발로 밟아서 진압시켜 그 해가 무사하기를 비는 것이다.
이 놀이는 선두에 ‘지신밟기’라고 쓴 깃발을 앞세워 행진하며, 농악대와 갖가지 모습으로 분장한 가장행렬(假裝行列)이 그 뒤를 따라다니면서 마을의 집집마다 방문하여 지신을 밟아 주는 일을 한다.
행렬이 집에 도착하면 먼저 마당에서 ‘마당놀이’를 한 다음, 큰 마루 앞에서는 ‘대청 지신 풀이’를, 큰 방 앞에서는 ‘큰 방 성조 풀이’를, 각각의 방마다에는 ‘각방치장풀이’를 하고, 부엌앞에서는 ‘부엌(조왕)지신풀이’를, 곳간 앞에서는 ‘곳간지신풀이’를 해주어 그 집의 재앙을 막아주는데, 그 답례로서는 집주인은 술과 음식 등을 내어 접대를 한다.
11.고싸움놀이‘
고싸움’이라는 말은 우리 전통의 상인 한복의 옷고름에서 보이는, 둥글게 말아 매듭을 지은 부분의 ‘고’와, ‘싸움’이라는 말의 합성어라고 한다. 즉, 볏짚으로 거대한 모양의 ‘고’를 만들어 이웃 마을끼리 편싸움을 벌이는 놀이이다.‘고’가 만들어지면 이웃마을과 함께 굿놀이를 하여 자기 마을의 승리해 달라고 기원을 올리고, 그 다음에는 싸움의 대책회의를 열어 자기편의 고싸움을 지휘하게 될 ‘줄패장’을 선출한다. 줄패장은 ‘고’위에 올라서서, 상대편의 ‘고’를 밀어 붙이거나 혹은 내리 눌러서 땅에 닿게끔 하도록 자기편을 지휘한다. 고가 밀려서 땅에 닿으면 싸움에 지게 되므로, 상대방이 거세게 밀어 붙이면 후퇴를 하거나 좌우로 돌아 공격을 피하고, 상대편이 불안정하고 통일된 행동을 잃을 때에는 기회를 보아 돌진하도록 한다.
고싸움은 줄다리기와 같은 덕목을 지닌 마을의 대농놀이이며, 준비 기간도 길고 또 ‘고’를 만드는데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큰 규모의 민속놀이로서 아직까지도 그 명맥을 잘 유지하고 있다.
12.차전놀이
차전놀이는 고려왕조의 태조 왕건과 견훤이 싸운 고사에서 유래한다고 전하며 이것의 기원에 대해서는 뚜렷한 기록이 없다. ‘동체싸움’이라고도 불리는 이 놀이는 경북안동지방에서 가장 잘 전승되고 있으며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국의 여려 지방에서 매년 열리는 향토 문화행사에 등장하고 있다.이 놀이를 행하는 방식은 ‘쇠머리대기’와 거의 비슷하며, 다만 나무로 만든 소머리 대신에 ‘동체’라 불리는 기구를 사용하는 것이 다른 점이다. 동체는 약 10미터쯤 되는 통나무 두개를 사다리 모양으로 교차시킨 다음, 그 윗부분을 새끼줄로 단단하게 묶고, 사다리꼴의 안쪽에는 폭이 1미터쯤 되도록 판자를 얹어 고정시켜 만든 것이다.
이렇게 하여 동체가 완성되면 마을을 대표하는 대장이 그 위에 올라타서 지휘를 하게 되는데, 동체는 처음에는 수평으로 있다가 싸움이 시작되면 양쪽 머리부분이 맞물려 수직 방향으로 일어서게 되므로, 몸통 부분에 부착시킨 줄을 왼손으로 단단하게 쥔 채 오른손을 내저어 지휘를 한다. 차전놀이는 동체만으로도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고, 동체를 메지 않은 장정들도 앞쪽에 진을 치고 있다가 상대편에게 격렬한 몸싸움을 벌여서 동체가 앞으로 잘 진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느 한편의 동체가 상대편의 동체를 내리 눌러 땅에 닿도록 하면 승리를 거두게 되며, 이때 승리한 쪽에서는 자기가 신고 있던 짚신을 하늘로 던져 올려서 기쁨을 표시하기도 한다.
투호놀이
병을 놓고 일정한 거리에서 병 속에 화살을 던져넣는 민속놀이.
서울의 궁내(宮內)와 양반집안에서 주로 행해지던 놀이로 〈예기 禮記〉에 투호법이 등장할 정도로 오래된 놀이이다. 원래 중국 당나라 때 성행했으며. 일찍이 한국에 전래되었다. 넓은 마당의 잔디밭이나 대청에 귀가 달려 있는 항아리를 갖다놓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동서로 편을 갈라 10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화살을 던진다. 화살을 항아리나 귀구멍에 많이 넣은 편이 승리하게 되며, 무희들이 나와 한바탕 춤을 추어 흥을 돋우기도 한다. 살은 병 위 5치가량 되는 데서 반듯하게 떨어져 병 속이나 귀구멍 어느 쪽이든 가운데에 들어가게 한다.
이때 살을 던지는 이는 양쪽 어깨의 균형을 취해 어깨가 기울어지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이기는 것을 현(賢), 지는 것을 불승(不勝)이라 하며, 점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서 헌배(獻盃)·벌배(罰盃) 등이 행해진다. 투호병은 입구의 지름이 5치·4치·2치이며, 귀의 크기나 종류도 여러 가지이다. 살은 청살과 홍살 2가지로 겨룬다. 남자들도 많이 놀았지만, 함부로 바깥출입을 할 수 없었던 양반 부녀자들이 집 안에서 많이 즐겼다.
1.씨름
씨름은 두 사람이 다리에 낀 샅바와 허리에 맨 띠를 璲?넘어뜨리기를 겨루는 방법으로 한다. 씨름은 예전에는 씨름판 주위에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놀이였지만, 경기로 정착되면서 단체 겨루기는 몸무게에 따라 여러 급을 나누어 하거나 몸무게에 구별 없이 겨루기도 한다. 우리나라 씨름은 넓적다리에 샅바를 매고 하는데 어느 쪽에 매는 가에 따라 왼씨름과 바른 씨름으로 구분한다. 그 가운데서 왼씨름이 보편적이다. 씨름은 단옷날이나 여름에 하는 놀이이다.
장치기 놀이는 나무 채로 공을 치는 놀이로 요즘의 하키와 비슷한 놀이이다. 놀이를 위한 준비로서는 채와 공을 준비하여야 한다. 놀 이채는 1미터 정도의 단단한 나무를 골라 끝이 구부러지게 하여 공을 치기 편리하게 만든다. 공은 소나무의 옹이가 있는 부분이나 고양 나무, 박달나무와 같이 굳은 나무를 둥글게 깎아서 만들면 된다.
장소는 넓은 풀밭이나 운동장을 이용할 수 있고 길이 40∼50미터, 너비 30∼40미터 정도의 장소에 가운데에는 공이 들어갈 만한 구덩이를 하나 파놓는다. 놀이는 두 편으로 갈라 하되 한편을 10명 정도로 하는 것이 좋다. 네모로 사방에 구역을 만들고 가운데에 중앙선을 정한다. 축구장 같은 골문은 없고 다만 축구처럼 중앙선 가운데서 시작되어 공채로 공을 쳐서 상대방의 골라인을 많이 넘기는 편이 이기는 것이다.
'술래잡기'로도 불리는 이 놀이는 지방에 따라서 '숨기놀이', '숨박질','숨기내기', '숨키박질', '술래놀이' 라고도 하였다. 남녀아이 모두가 실내나 마당, 골목길 등 어디에서나 놀았던 놀이로, 한 사람을 술래로 정한 다음, 그 술래가 나머지 숨은 아이들을 찾는 놀이이다.
조그마한 돌을 가지고 손 위에 얹었다 공중에 올려 다시 받는 놀이로,먼저 다섯 개의 돌을 손에 쥐고 그 가운데 한 알을 위로 던져 올리는 동시에 나머지 네 알은 땅 바닥에 놓은 다음, 던져 올린 돌이 땅에 떨어지기 전에 받는다. 그 돌을 다시 던져 올리면서 땅바닥의 돌 하나씩과 내려오는 돌을 같이 잡기를 네 번 한다. 한 알씩 잡기가 성공하면, 다음은 두 알씩 잡기를 두 번 하고, 다음으로 세 알, 네 알 잡기로 늘려간다.
이 순서가 끝나면 한번에 다섯 알을 다 공중에 던져 올려 손등으로 받은 다음, 다시 공중으로 올렸다가 떨어지는 것을 채어 잡는다. 이때 채어 잡은 돌의 숫자에 따라 3년, 5년 하는 식으로 해를 계산하는데, 일정하게 정해놓은 해에 먼저 도달한 편이 이기는 것이다. 옛날에는 여자만 했던 놀이이다. 겨울에 하는 놀이지만 지금은 어느 때나 다한다.
나무꾼들이 갈퀴를 던져서 이기고 지는 것을 겨루는 놀이로서 칼 땅 치기라고도 한다. 갈퀴를 쥐고 빙 돌리면서 힘껏 던져서 갈퀴가 엎어지면 이기고 젖혀지면 지는 것이다. 또는 옆으로 던지기도 하고 뒤로 던지기도 한다. 대체로 나뭇짐을 걸고 내기를 해서 나무를 따먹기도 한다. 진 사람은 자기 나무는 못하여도 이긴 사람의 나무를 하여 주어야 하고, 이긴 사람은 나무는 하지 않고 실컷 잠만 자고서도 나무 한 짐이 거뜬히 생긴다. 겨울에 한다.
깡통을 마당 가운데 놓고 술래잡기하는 놀이로서 술래가 숨은 사람을 찾아 깡통을 먼저 밟으면 술래를 바꾸는 놀이다.
열 살 안팎의 남녀 아이들이 많이 하는 놀이로 절름발이 놀이라고도 한다. 사람 수는 여섯 내지 일곱 사람으로 먼저 가위 바위 보로 두 사람의 술래를 정한다. 그리고 둥그렇게 진을 땅 바닥에다 그려놓고 쫓는 술래나 달아나는 아이들이나 모두 한쪽 발을 쥐고 절름발이가 되어 뛰어 돌아다니는데 술래에게 붙잡힌 사람은 진 가운데 갇히게 된다.
운동장 구석에서 흙이나 모래를 쌓아 놓고 주위에 흔한 나무 막대를 주워 다가 쉽게 할 수 있는 놀이로, 아스팔트 위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흙을 만져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놀이이다. 또한 놀이를 통해 ‘욕심이 과하면 성공할 수 없다’라는 것을 일깨워 줄 수 있는 놀이이다. 대체로 여름에 한다
*놀이 방법
① 모래나 흙을 산처럼 쌓은 다음 나뭇가지를 가운데 꽂아 놓는다.
② 가위바위보나 다른 놀이로 1등부터 순서를 정한다.
③ 1등부터 차례대로 가져가고 싶은 만큼 모래를 가져간다. 조금 이라도 꼭 가져가야 한다.
④ 모래를 가져가다가 깃대를 쓰러뜨리는 사람은 져서 꼴지가 된다.
⑤ 나머지 사람들은 모래를 많이 가져간 순서대로 다시 순서를 정한다.
⑥ 다시 3번부터 놀이를 반복한다.
여자아이들이 소꿉놀이할 때 각시를 만들어 가지고 논다. 이것을 각시놀이 혹은 박쥐놀이라 한다. 수숫대 한쪽 끝에 옥수수 수염을 달아서 머리를 만들고 이것을 땋아서 댕기를 들이거나 쪽을 지어 작은 막대기로 비녀를 꽂기도 하며 옷을 만들어 입히기도 한다. 어른들이 삼을 삶을 때 여자아이들이 삼을 주워 다가 입에 넣고 씹어 진물을 뺀 다음 삼실을 말렸다가 실을 추려서 잘 빗은 다음 수수깡을 마디마디 잘라서 한 끝의 속을 파내고 삼실을 꽂은 다음 가르마를 타서 댕기를 땋고 색시 옷을 입혀 각시를 만들기도 하고 삼실을 틀어 트레머리를 만들고 노인에 옷을 입혀서 시어머니를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신랑, 각시, 영감 , 할멈을 만들고 방을 만들어 세워 놓고 소꿉놀이를 한다.
남녁에서는 꼰 이라고도 하는 둘씩 노는 놀이로 우물고누, 네발고누, 여섯발 고누, 호박고누, 물레고누, 곤지고누, 참고누, 바뀌고누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어 여름철 나무그늘 밑에서 놀던 놀이이다.
고무줄놀이는 여자아이들이 줄 위에서 또는 줄을 넘나들며 노는 놀이이다. 마치 춤을 추듯 몸을 움직여 놀지만 몸짓이 줄에 의해서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이 놀이는 고무줄이라는 재료의 특성으로 보아 우리나라의 일반 전래 놀이와는 달리 역사가 짧은 놀이로 볼 수 있다. 먼저 손바닥 뒤집기나 가위 바위 보로 편을 가르고 순서를 정한다. 기둥을 사이에 두고 고무줄을 매거나 진편의 아이가 양쪽에서 고무줄을 잡으며 노래 하나가 끝 날 때마다 조금씩 높이를 올려가며 논다. 고무줄 사이를 노래에 맞춰 뛰고, 닫고 , 휘감으며 논다.
남해안 일대에 전승되어 오는 민속놀이로 주로 팔월 한가위에 여성들이 노는 놀이인데 , 여성놀이 중 가장 정 서적이며 율동적인 놀이이다. 고대 부족사회의 공동축제 등과 같은 모임 때 서로 손과 손을 맞잡고 뛰어 놀던 단순한 형태의 춤이 강강술래의 기원으로 추측된다. 수십 명의 부녀자들이 손을 맞잡고 둥그런 원을 지어 무리를 이룬다. 이 들 중에서 목청이 빼어난 사람이 앞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은 뒷소리를 받으면서 춤을 춘다. 노래는 처음에 느린 가락의 진양조로 시작하다가 점점 빨라져 춤동작도 여기에 따라 변화한다. 이렇게 노랫가락에 맞추어 여러 형태로 원을 변형시키며 고사리꺾기, 덕석몰이, 청어엮기, 문열기, 기와밟기, 가마둥둥, 닭살이, 남생이 놀이 등 재미있는 춤놀이를 벌이는 것이다. 가을에 한다.
농촌에선 가을에서 봄까지 산에서 나무를 해 다가 불을 땐다. 산에 나무를 하러 갈 때 여러 사람이 떼지어 가는 수가 많다. 나무를 하다가 쉬는 시간에 낫치기를 한다. 낫치기는 나무를 한 다발 해서 10발짝쯤 되는 거구에 세워두고 멀구에서 제각기 낫을 던져 나뭇단에 꽂히게 하는 것인데 낫이 제대로 꽂히면 이기고 낫이 꽂히지 않고 땅에 떨어지면 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간단히 승부를 내는데 이긴 사람은 해놓은 나무를 갖고 진 사람은 나무를 뺏겨 다시 나무를 해야만 한다. 봄철에서 가을까지 사이에 꼴을 벨 때에도 풀 단을 세워놓고 낫을 던져 낫치기를 한다.
약한 나이 어린이들에게 술래의 역할과 의무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기에 적합한 놀이이다. 단순히 쫓고 쫓기는 유형의 놀이이지만 아이들이 즐겁게 즐길수 있는 놀이이다. 봄이나 여름에 하는 놀이이다.
이 두꺼비집 짓기 놀이는 주로 모래를 이용한 놀이인데, 소년과 소녀들 사이에서 흔히 바닷가나 강변 등지에서 많이 행하여지는 놀이이다. 이 놀이의 방법은 우선 왼손을 모래 속에 파묻고 바른 손으로는 그 위를 두들겨서 단단하게 만든 다음. 왼손을 빼면 그 모양이 마치 두꺼비 같이 보이므로 이 놀이를 두꺼비집 짓기 놀이라 부른 것 같다. 특히 이 놀이는 여름철의 해수욕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린 아이들의 놀이이지만, 때로는 어른들도 가담하여 아이들의 흥취를 돋구어 주고 있다 .
이 풀묻기는 주로 모래가 있는 곳에서 소년과 소녀들이 즐기는 놀이이다. 놀이의 방법은
우선 풀뿌리나 나무뿌리 등으로 엄지손가락이 들어 갈 정도의 올가미를 만들어 모래 속에
감추어 놓고, 이를 나무꼬챙이나 손가락으로 꿰어 내는 것이다. 올가미를 먼저 꿰어내는 사람이 이기는 것인데, 이 놀이는 주로 여름의 백사장에서 흔히 행하여지는 것이다.
이 풀싸움은 봄철과 여름철에 주로 많이 하는 놀이인데, 소년과 소녀들 사이에서 행하여졌다. 이 놀이는 참가한 사람 모두가 제 각기 많은 종류의 풀잎과 나무 잎을 뜯어다 모아놓고 마주 앉아서 하나씩 서로 견주어서 같은 종류는 버리는데, 이때 같은 종류를 뜯지 못했거나 또는 뜯은 풀이 없을 때에는 지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풀싸움 놀이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또한 식물의 명칭도 많이 알 수 있는 매우 바람직한 교육적인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마놀이는 주로 소년과 소녀들 사이에서 행하여지는 것인데, 세 사람이 있어야 가마를
만들고 탈 수 있는 놀이이다. 세 사람이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하는데, 이 때 이긴 사람은 가마를 타고, 진 두 사람은 가마를 만들어야 한다. 가마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재료를 구입 해다 만드는 것이 아니고, 두 사람의 팔을 엮어서 즉석 가마를 만드는 것이다. 우선 한 사람이 바른 손으로 자신의 왼쪽 손목을 잡고, 다시 왼손으로 상대방의 바른 손목을 잡으면, 상대방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손을 잡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손이 4각형으로 조립된다. 이와 같이 손가마가 만들어지면, 이긴 사람이 가마에 올라타고 지정된 목표까지 갔다 돌아오는 놀이이다. 다음은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결정하고, 위와 같이 되풀이하여 즐겁게 노는 놀이이다. 봄, 여름에 한다.
깨끔질이란 방언으로서 앙감질을 말한다. 흔히 닭싸움이라고도 하는데, 한자로는 침탁이라고 쓴다.이 놀이는 주로 소년들 사이에서 유행된 것인데, 두 사람 이상상대가 있어야 가능한 놀이다. 방법은 바른쪽 발은 딸을 짖고 왼쪽 발을 무릎에 꼬부려 올린 다음 손으로 발목이나 바지 끝을 움켜쥐고 한발로 뛰어 다니며 상대방을 손으로 밀면 반칙으로 지는 것이다. 이 놀이는 서로 규칙을 잘 지켜서 정정당당하게 싸워야 재미있는 즐거운 것이다. 또한 어느 정도의 재치와 요령이 필요하다. 한 발로 뛰어다니며 상대방의 무릎을 아래에서 위로 들어올리거나, 아니면 위에서 밑으로 강하게 눌러서 상대를 쓰러뜨려야 한다. 또는 용감하게 상대방 앞으로 돌진하여 무릎이나 몸통으로 상대방을 밀어서 쓰러뜨려야 이기는 것인데, 인내력과 힘이 겸비해 있으면 더욱 유리하다.
이 그림자 놀이는 저녁에 등잔불 주위에 모여 앉아 손으로 여러 가지 물건의 시늉을 내면그 그림자가 벽에 나타나 마치 실물의 모양과 비슷하므로 매우 재미있는 놀이가 되는 것이다.
지금은 농촌에도 대부분 전기가 들어와 밤에도 낯같이 밝아서 이 그림자 놀이가 잘 안되지만, 예전의 등잔불 밑에서는 개·여우·나비·꼬깔 등 여러 가지 그림자를 만들어 매우 유쾌하게 놀았던 것이다. 그림자를 만들 수 있으면 할 수 있다.
이 눈싸움은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서로 눈을 크게 뜨고 오랫동안 깜박이지 않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의 눈이 깜박이도록 손가락질을 하여 방해하는 수도 있으나,
이는 반칙이므로 사전에 룰을 정해 놓고 시작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누구나 다 알겠지만 겨울에 하는 놀이이다.^0^
이 다리헤기 놀이는 주로 소년과 소녀들 사이에서 행하여지는 것인데, 방이나 마루 등에 마주 앉아서 상대방의 다리와 다리 사이에 서로 다리를 뻗고 하는 놀이이다. 이렇게 다리를뻗고 마주 앉은 바른 쪽에서부터 다리를 헤어 가는데 이때 헤는 사람이 노래를 부른다. 다리를 헤며 노래를 부르는데, 노래의 끝소리가 다리에 닿으면 그 다리는 제쳐놓는다. 이렇게 몇번 되풀이하여 마지막에 남는 다리가 벌을 받거나 또는 재수가 없는 다리라 하여 여러 사람들이 놀려준다. 이와 같이 다리 헤기의 놀이를 할 때에는, 반드시 노래를 부르게 되어 있는데, 이는 각 지역에 따라 다르다. 본 군내에서 불리워 졌던 다리 헤기 노래를 참고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한거리 두거리 각거리 인사 만사 주머니 끈 돌돌 말아 장두 칼 애 장두 허리 띠 고드래 문이로 뚱기땡」
이 딱지치기는 주로 소년들이 마루나 평평한 땅바닥에서 실시하는 것인데,이때 딱지는 두꺼운 종이를 오려서 만들거나, 또는 보통 종이를 몇 겹으로 단단히 접어서 쓰는 것이다. 이 딱지치기의 순서는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는데, 진 사람이 자기 딱지를 땅바닥에 엎어놓으면, 이긴 사람이 자기 딱지로 내려쳐서 상대방의 딱지가 젖혀지면 그것을 따먹지만, 만약 젖혀지지 않을 때는 상대편과 교대해야 한다. 또한 일정한 선을 그어 놓고 딱지를 내려쳐서 상대방의 것이 선 밖으로 나가면 따먹는 등 몇 가지의 딱지놀이가 있다. 한창 재미있게 딱지치기를 할 때에는 식사시간도 잊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