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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5월, 각종 행사와 기념일이 많은 5월이 중반을 향하고 있다. 여러 기념일중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지났고 얼마 안 있으면 스승의 날이다.
한없이 하늘같은 은혜를 베풀어 준 스승, 우린 그들의 가르침으로 인생의 항로를 바로잡으며 살고 있다.
군남면 포천리 양지마을에서 만난 노스승 박세창(83)씨. 어린 학생들과 평생을 생활한 탓인지 그는 나이보다 훨씬 젊은 낮빛이었다.
군남면 오동리(현재 염산면 오동리)에서 1남5녀중 외아들로 태어난 박 씨는 3대 독자이자 종손으로 집안의 귀남(?)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 등의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고 어렵사리 광주사범학교를 마치고 1951년 8월 교직에 입문했다.
장흥에서 교사로 첫발을 내디딘 박 씨는 승진 등의 이유로 여수 등 외지학교에서도 잠깐씩 근무를 했지만 군남, 염산, 법성, 홍농서초 등에서 제자를 양성하며 주로 관내의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박 씨는 교사생활 16년만인 37세에 교감으로 승진했고 13년 이후 다시 교장으로 승진해 14년간 재직, 총 43년 동안 교직에 몸담고 지난 1994년 묘량초등학교에서 퇴임했다.
슬하에 2남5녀를 둔 박 씨는 장학사 등 교육연구 전문분야로의 진출기회도 있었지만 자녀 뒷바라지를 위해 지역에 남아 인재양성에 충실했다.
박 씨는 “제가 교사를 맡았던 시절은 무척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다”며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 학생들을 위해 우리 교사들은 최선을 다했었다”고 지난 시절을 회상했다.
지금처럼 최첨단 학습자료와 쾌적한 시설의 학교가 아닌 낡고 변변한 학습자료 하나 없던 시절 교사를 지낸 박 씨는 학생들의 바른 인성함양과 실력향상에 주력했고 낙후된 시설보강·설치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거의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동안 학교에 머물다 퇴직한 박 씨는 같은 교직출신의 동료들과 산행을 하고 담소를 나누며 일상을 보내고 있다.
또 지난 2008~2009년까지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군남노인대학 학장을 맡아 노인복지와 여가선용에 크게 기여했다.
“과거를 생각하지도 미래를 꿈꾸지도 않으며 현실에 충실하면서 사는 것이 노후의 최선인 것 같다”고 말하는 박 씨.
그는 영광출신 교직자들의 모임인 영광교직회 고문으로 활동하며 아내와 작은 텃밭을 가꾸고 틈틈이 책을 읽으며 평화로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