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그 옛날 술탄의 삶에 관심이 없듯
오늘 구석에 핀 들꽃은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생생하게 현재를 좇는 아이의 눈은
죽은 자의 흔적을 따라가느라 치열하게 피어나는 생의 에너지를 발견하지 못하는 나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는 것이다.
그런 일은 터키를 여행하는 내내 일어났다.
아이의 보폭은 좁고 일정은 늘어졌지만
아이는 그렇게 걷지 않았으면 결코 보지 못했을 것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것들은 모두 작고 조용하고 낡은 것들이었다."
- 오소희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중에서..
prologue..
언젠가
그녀의 아이처럼,
느리게 걷고
여유롭게 바라보고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었다.
episode 1.
가보고 싶은 섬 굴업도.
여러 블로그 포스트에서 그 명성을 익히 들었지만
정말 그럴까?
먼지같은 생각 하나.
episode 2.
큰 바위 얼굴.
제목이 우습다며 까르르 함께 웃던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굴업도 초입에서
추억에 잠기다..
episode 3.
바람이 우리를 만나게 해 주었지 Ⅰ
마을 입구까지 이어진 숲 길.
나뭇잎 사이로 녹아내리는 햇빛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의 이야기
싱그럽고 상쾌한 풀 향기에
걸음은 더뎌지고
찬찬히 바라본다.
참골무꽃.
청초하고 새침한 모습이 매력적이야
천남성.
열 발자국이란 별명이 있는 너는
그 옛날
사약의 원료로 쓰였다지
그런데
그런 이야기에서 오는 으스스함보다
굴업도를 세파로부터 지켜주는 것 같아
왠지 믿음직스러워
이 곳에서는
거미도 예술하나보다
거미줄에 맺힌 물방울들이
아슬아슬 싱그럽다
episode 4.
그 유명한 이장님댁 밥상.
소박한 첫인상에
역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걸까..
잠깐 실망을 햇더랬는데
웬걸,
요샛 말로
킹왕짱 별 백만개 주고 싶게 맛있다
반쯤 덜어 놨던 밥을 다시 내 공기에 담아서
냠냠
episode 5.
바람이 우리를 만나게 해 주었지 Ⅱ
도둑 게.
저녁 무렵 부엌으로 몰래 숨어들어와
찬 밥을 훔쳐 먹는다 하는..
딱 걸렸어 ㅋ
먹구렁이.
전 세계에서
자기 알을 품는 뱀은 0.3%밖에 안 된다지
그런 너여서
도망가지 않고 한동안 지켜볼 수 있었나봐
검은머리물떼새.
전 세계에 10만마리밖에 없다고 해서
사실 기대를 못 했는데
와아..
빨갛고 날씬한 주둥이가
정말 멋져
그 낭랑한 목소리도
사이 좋은 고동.
너무 다정해보여서
질투가 나려고 해
치.
그리고 야생 사슴.
너의 하얗고 토실한 엉덩이에
모두가 반해버렸지
산길을 잘도 뛰어가던데
등산화 신은 거야? ㅋ
episode 6.
어느 곳을 보아도 멋진..
진실의 입.
로마에서 보았던 그 진실의 입도
이걸 보면
합죽이가 되겠지 ^^
이건 메머드임에 틀림없어.
암~
해식지형.
지구과학 교과서에서 글자로만 보던 걸
실제로 보게 되다니
와우..
총천연색 맑은 바다와 주상절리.
가까이에
이렇게 맑고 푸른 바다가 있었다니..
바다가 좋아서 그리워하네
생각만 해봐도 맘 넓어지네~ ♪
episode 7.
그래서 더욱 간절한 마음 하나.
적당히 번거롭게 찾아간 굴업도는
맑았고
푸르렀고
상쾌했고
따사로왔고
순수한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나의 조급한 생각을, 발걸음을
천천히..
나의 조급한 마음을, 시선을
차분하게..
그렇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런 굴업도에 골프장이 들어선다 하니
내가 만난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바람(風)이 나를 굴업도로 데려다 주었듯
나의 바람(希)이 굴업도를 지켜주길..
epilogue..
굴업도야
조만간 또 갈게
잘 있나 보러.
그때까지 건강해~*
첫댓글 감정이 흘러내리는 명작이군요.
히야...
명작다운 글솜씨..
칭찬은 명작을 글쓰게 한다? ^^* 감사해요~*
명작님.. 닉네임 하나 명작이십니다^^ 오래 오래 쓰세요~
굴업도의 모든 것을 본 거 같네요.. 저도 조만간 굴업도에 갑니당.
다녀오시면 아시겠지만, 여기 있는 건 열 발의 피 정도에요 ㅋ 잘 다녀오세요 ^^*
정말 글 잘쓰십니다. 저희 가족 7월 11일날 굴업도로 고고씽합니다 ^^
제가 이글보고 굴업도 갑니다^^ 8월 9일날 피서로 갈 계획이지만 이글을 볼수록 왠지 조용한 날 혼자 더 가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