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승리자에겐 특별한 것이 있다
런던 올림픽 여자양궁 결승전. 우리나라의 기보배 선수와 멕시코의 아이다 로만의 경기였다. 5대 5 무승부에서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전은 슛 오프제로 단 한 발로 결정하는 경기방식이다. 동점이라도 표적에 더 근접한 선수가 이긴다. 기보배선수가 쏜 화살이 표적을 향해 날아갔다. 관중석에서 먼저 "아~"하는 탄성이 나왔다. 아쉬운 8점. 선수보다 관중들이 더 실망했다. 기 선수도 순간 자신이 졌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비웠다. 그러나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우리 선수의 점수를 확인한 멕시코선수의 얼굴에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표적을 바라보는 눈매가 범상치 않았다. 그러나 그녀도 긴장했는지 조준시간이 길었다. 드디어 시위를 떠난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기보배 선수는 상대가 실수하기를 바라기보다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도 상대선수가 쏘는 것을 바라보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탄성 대신 "와~"하는 함성이 들려왔다. 그때서야 기 선수도 표적을 보았다. 로만이 쏜 화살이 같은 8점에 꽂혔지만 기보배선수보다 더 벗어나 있었다.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녀는 여자양궁 2관왕이 되었다.
우리나라 양궁이 "세계최강"인 것은 자타가 공인한다. 이것은 그동안의 기록만으로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역대 올림픽 메달의 집계를 통해서다. 여자양궁은 단체전에서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이번까지 무려 7차례나 연속 우승을 차지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기록을 세웠다. 개인전도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제외하고 모두 석권했다. 즉 7번의 올림픽, 14개의 금메달 중에서 13개를 땄다는 말이다. 이러니 우리나라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도리어 최고의 이변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세계신기록에 관한 것이다. 양궁의 세계기록은 주니어대회부터 성인대회까지 남녀 모두 26개의 기록이 있다. 그런데 그 26개의 기록 모두를 우리나라 선수들이 세웠다 하니 과연 세계가 인정하는 "신궁의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우리나라 양궁이 왜 이렇게 잘하는 것일까?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활을 가까이 하고 잘 쏘았기에 요즘으로 말하면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일까.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에서 여자양궁을 지휘한 백운기 감독은 "우리나라 여자양궁이 왜 이렇게 강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한국여성들이 강하고 섬세한 점, 그리고 책임감이 강하고 하고자 하는 의욕과 신념이 있고 또 평정심을 잃지 않는 침착함 때문이라 하였다. 비단 이뿐이겠는가. 올림픽 끝나면 선수들이 두 번 다시 안 볼지도 모른다고 백감독이 걱정할 정도로 혹독한 훈련이 있었음은 말 해 무엇하랴. 한 네티즌은 한국양궁이 강한 이유를 두터운 선수층, 협회의 전폭적인 지지, 체계적이고 공정한 선수선발과 어떤 상황에도 대비하는 과학적인 훈련비법 등을 빼놓을 수 없지만 무엇보다 공정한 선수선발을 강점이라 하였다. 그러면서 다른 종목의 선수선발에 대한 불공정성과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혈연과 학연, 지연 등 고질적인 부정의 고리를 지적하였다.
그런데 나는 지난 2004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양궁해설을 맡은 김경욱 해설위원이 또 다른 이유를 말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전 대회에서 카메라 렌즈를 두 번이나 맞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그야말로 "신궁"인 그녀였기에 더욱 그 해설의 의미가 깊었는지도 모르겠다. 결승전이 열린 시간, 아나운서가 우리나라 양궁이 왜 이렇게 잘 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김 위원은 "우리선수들이 선수촌에서 합숙훈련을 하면서 빼놓지 않는 것은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되, 마지막 발을 쏘고 나서 경쟁자가 실수하거나 자기보다 못 쏘기를 바라지 않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 하였다. 즉 남의 실수로 내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내 실력으로 당당히 이기는 것, 그래서 "최선을 다한 후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도 훈련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 더 좋은 성적이 나온다고 하니 우리나라 양궁의 7연속 금메달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강자에게는 특별한 비결이 있었던 것이다. 상대가 실수하고 무너져야 승리하는 스포츠 경기에서도 이런 바른 인성을 바탕으로 하는 한국양궁은 실력만이 아니라 진정한 스포츠맨십에서도 최고였던 것이다. 이런 마인드를 지닌 선수와 협회가 "세계최강" 자리에 더 오래 머물러 있더라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을 일이다. 성경도 말한다.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잠24:17)"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