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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계향산 미암사 성지순례 ① -세계최대와불과 쌀바위- 扶餘 戒香山 米岩寺 聖地巡禮 一
가을에 한 번 성지순례를 하고자 하여 번개모임을 주선했습니다. 성지순례 전문인 봉찬회에서 마침 미암사 순례가 있다고 해서 봉찬회를 이용 하여 하고자 했습니다. 출발 1주 전인데 45인승 좌석이 많다고 해서 4명을 얼른 예약을 했습니다. 지난 번 봉정암 순례 때도 이용하려다가 성원 미달로 못 간다고 하여 가까스로 금강자비회를 이용한 바 있어서 이번에도 불발이면 어쩌나 했는데 금요일 오후 늦게 봉찬회에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이번 성지순례 동참자가 많아서 봉고를 이용해야 하는데 괜찮으냐고 문의해서 토요일 연락을 드리겠다고 하고선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보화님께 연락하 니 괜찮다고 하셔서 그리 할까 했는데 연화심이 이번 일요일은 성지순례 동참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예약취소하고 백우거(白牛車)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봉찬회에서는 미암사 참배가 끝나고 계룡산 갑사와 신원사를 순례하기로 되었 었는데 우리는 그 곳보다 안 가본 부여 고란사와 대조사로 가고자 당초의 계획 을 변경하였습니다. 집결지도 조계사에서 서울역 사당역으로 바꾸었지요.
04시 30분 길상님이 포천에서 출발하여 저희집으로 향하시고 부평의 보화님은 05시 서울역으로 향하셔서 일찌감치 오신 길상님과 함께 서울역으로 향하면서 07시에 사당역에서 만나기로 한 황심행님께 전화하여 06시 30분까지 만나기로 하고 사당역으로 출발했습니다.
6시 40분경 황심행님과 만나 희희낙낙 즐거운 순례길에 올랐습니다.
아침을 천안 망향의 동산 휴게소에서 보화님께서 정성들여 끓여 온 채소죽을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는 틈에 일어나 죽까지 끓이셨는지... ㅎㅎㅎ
미암사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33층 진신사리탑 사리탑 친견에 대해서는 뒤에 따로 정리합니다.
부여 휴게소에서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10시경 미암사에 도착했습니다. 와 보니 봉찬회 버스가 와있더군요. 보니 순례자가 대개 연세가 지긋하셨습니 다. 그래서 봉고를 이용하라고 했던 모양입니다. ^^
그리고 토요일에는 국화 10만송이 축제가 있었다고 하네요.
사리탑을 지나 최대와불 친견하러 가는 길에 경치가 좋아 잠시 찰칵 보화님 감격이 너무 넘친 거 아니유~ ㅎㅎㅎ
단풍이 곱지요?
살짝 모습을 드러내셨네요.
미암사 연혁 미암사 홈페이지에서 옮겼습니다.
백제 무왕(武王) 4년(602년) 관륵(觀勒)이 창건(創建)하였다. 쌀바위전(殿)에 머물던 백제 삼론학자(三論學者) 관륵이 일본국에 건너가 백제불교를 일본에 전파하여 역법(曆法), 천문둔갑, 방술(方術)들의 일본 승강(僧鋼)의 초석(礎石) 을 닦았다.
의자왕 20년(661년)에 당라연합군이 백제를 침범하면서 미암사를 전소(全燒) 시켜 버렸다. 이때 대웅전(大雄殿)에 봉안(奉安)되었던 금동관세음보살상(金銅 觀世音菩薩像)을 인근(隣近)의 야산에 매장(埋葬)하였다고 하나 현재 문헌을 찾을 길이 없고 그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하여 안타깝게도 찾지 못하고 있다.
무학대사(고려 충숙왕 13년 丁卯(1372)에 삼기군에서 출생)는 용문산 혜명스님 에게서 불법을 배운 후 묘향산, 금강산, 계룡산 등지를 돌아다니면서 수행하다 가, 서산 영암사에서 나옹스님을 만나 수년간 머물렀다.
나옹스님의 손을 잡고 이곳에 따라 왔다가 쌀바위를 면벽하고, 100일간 용맹정진 끝에 무아(無我)에 들어 세상은 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불교교화에 나섰다. 이때 쌀바위를 떠나면서 성불기념으로 적송(赤松) 두 그루를 심었는데, 지금은 그 단아한 모습은 소진되어 볼 수가 없고 자손이라 여겨지는 적송들이 계향산 곳곳에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후 1356년(공민왕5년)에 나옹스님은 왕사(王師)가 되어서 무학을 수좌(首座) 로 앉히려 했지만 끝내 거절하였다. 이태조 원년(1392년)에 태조에 의해 송경에 가서 왕사가 되었고, 이조(李朝) 태종(太宗) 5년(1405년)에 금강산 금장암에서 입적(入寂)하였다.
이후에도 수차례 화재(火災)로 이하여 전부 또는 일부가 소실(燒失)되어 개,보수(改,補修)하였고, 근세에는 1903는 윤하영 스님이 수도(修道)중에도 화재로 전소(全燒)되어 10평정도의 법당(法堂)을 중건(重建)하여 수행(修行)중 1925년 열반(涅槃)하였으며, 그후 여러 스님이 묵어 갔고, 이후 이주희 스님이 입산(入山)하여 1992년까지 수도하였다. 1992년 2월 28일부터 미암사 조실 석만청 스님께서 백제불교의 중흥을 위하여 현재까지 대작불사를 일으키며 주석하고 계신다.
국화 속에 누워 계신 부처님 열반상 모습입니다.
세계최대와불(열반상) 안내문 전문
臥佛(열반상)은 화신불 8상(八相)의 하나인데 세존이 입멸하는 상으로 부처님이 80년간 중생을 교화하고 화연(化緣)이 다하여 중인도 구시나가라 의 사라쌍수에서 일일일야(1日1夜)를 대열반경을 설하여 마치고 머리는 북쪽으로 얼굴은 서쪽으로 향하고 오른쪽 옆구리로 누워 ≪생각을 바르게 갖는 것을 臥法이라 한다.≫ 역순으로 사공정(四空定)과 멸진정(滅盡定)에 들었으며 또한 모든 선정을 초월하여 마침내 제4선정에서 입멸(入滅)하니 때는 2월 15일의 한밤중이었다.
이때에 주위는 사라쌍수가 꽃을 피어 흰 학의 무리가 모인 것과 같았다. 곧 전륜성 왕의 다비식으로 금관(金棺)에 옮기고 모든 대력사들이 구시나가라성을 9번 돈 뒤에 다비소에 이르렀다. 7일이 지난 뒤에 대전단을 쌓고 향촉(香燭)을 던져 태우려 했으나 불이 붙지 않았다. 아누루타가 말하기를 “이는 가섭존자가 올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하였다.
이때 가섭이 오백제자와 기사굴에서 있었다. 가섭은 여래의 열반하심을 알고 여래의 최후를 참석하고자 다시 7일이 경과한 뒤에 다비소에 왔다. 그때 여래가 금관에서 두 발을 내어 보게 했다. 그리고 모든 역사들이 칠보의 큰 햇불을 던지니 모두 꺼졌다. “가섭이 말하기를 인천(人天)의 횃불로써 어찌 여래의 보관을 다비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때에 여래가 대비력으로써 스스로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 심흉(心胸) 가운데로부터 불이 관 밖으로 솟아나와 점점 다비가 되어 7일만에 향루와 보루가 모두 다 타버렸다. 8국의 왕들이 사리를 가져가려고 다투어 모두 군사를 일으키자 도로나(徒盧那) 향성(香姓) 바라문이 사리를 모든 왕들에 게 고루 나누어 주니 모두 탑을 세워 모셨다고 한다≪涅槃經≫,
길이 27m, 높이 6m, 폭6m 발바닥에는 전륜과 음字 1만 8천여자가 새겨있는 동양최대 여래의 와불을 조성하는 동안 미암사 주변에는 때아닌 동지 섣달 인데도 개나리 꽃들이 노랗게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만발했다.
발바닥에 법륜과 음자를 관(觀)하면서 손으로 만지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룰 수 있으며 중생의 번뇌를 쳐부수고 차례차례 교화하며 만복을 얻는다.
충남 부여군 내산면 저동리 21-5 계향산 미암사 조실 석만청 합장
부처님은 두 발을 포개시고 머리를 북쪽으로 하신 다음 오른쪽으로 누어 서쪽을 바라보시며 위대한 열반을 실현하셨습니다.
불족(佛足) 부처님 발바닥
발바닥에는 1만 8천여 자의 옴자가 새겨져 있는데 발바닥에 손을 대고 문지르면 업장이 소멸된다고 하네요.
와불 내부 법당입니다.
석가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봉찬회에서 사시불공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와불 앞에서
저도 섰습니다.
와불 옆에는 저 유명한 쌀바위가 있습니다.
쌀바위를 배경으로... 황심행님
보화님과 길상님
연화심님
저도 기념으로
바위에 一心이란 글자가 보이는데 바로 그 밑의 구멍이 쌀이 나오던 구멍이라 합니다. 인간의 욕심을 경계한 쌀바위 대한 전설은 불교이야기방을 참조하세요.
기를 받으세요
다함께 기를 받아 건강하게 삽시다.
미암기(米岩氣) 잘 받으셨나요?
다음은 국화의 향기 속으로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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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네 미녀분들의 얼굴이 환하십니다.
제가 청일점이었습니다. _()_
오랜만에 108배를 드렸답니다~~ 마음이 평온했습니다
비좁았는데 용케도 108배를 드렸군요. 저는배만 하고 나왔습니다. _()_
네 명의 미녀들 사이에 이 묘법이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ㅎㅎㅎ....나무묘법연화경()()()
에이 묘법님낑 갔으면 아마도 대작이 나왔을 겁니다 약 오르셨지요
그러나 어짭니까 많이 생각났습니다. _()_
향불방 법우님들 제가 미암사 쌀 바위에 가서 쌀을 공수해 와 가지고 야채죽을 끓인거랍니다 아싸 눈 코 입 귀가 하루좋일 거운 하루 였답니다 언제나 순례길을 행복 하여라<백우님 감사합니다>_()_
채소죽 정말 맛있었습니다. 덕분에 배가 든든했습니다. 죽 사진 하나 찍었는데... 다른 용도로 써 보려고요. _()_
백우님! 기대 해 보겠습니다
올렸으니 찾아 보세요.
보화님은 늘 먹을걸 잘 챙겨 주세요 보시하는 고운마음... 쌀바위 참 신기합니다
함께 하셨으면 좋았을 걸... 면회 잘 다녀오셨지요 나중에 인연이 닿으면 다녀오세요. 유씨 노파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다른 이가 욕심 부렸겠지요 쌀바위 일심이란 글짜가 묘하더군요. _()_
얼마만에 만끽하는 외출인지 모르겠네요. 쌀바위 전설을 어떻게나 얘기하던지... _()_
그래도 얘기를 듣고 가니 좋지 않은가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