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내려서일까. 가로수 길 어느 카페에서 풍겨 나오는 커피 향이 촉촉하다. 커피 향을 따라 들어간 카페에서 만난 반가운 얼굴, 연극배우 박정자 씨의 표정이 봄처럼 싱그럽다. 예순일곱이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총총한 눈빛. 뮤지컬 <19 그리고 80>의 막이 내린? 지 열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여전히 그 숨결과 표정, 몸짓 속에는 ‘모드’가 살아 숨쉬고 있었다. “‘조그만’ 성공으로 공연을 잘 끝냈어요. 대대적인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순일곱이란 나이를 잊고 공연을 위해 노력한 만큼, 표현하고 싶었던 만큼 했고, 그 순간을 관객 분들과 함께 했으니까요. 예순일곱, 정말 예쁜 나이에요.
어떤 여배우가 나이 앞에서 이렇게 여유로울 수 있을까. 남들처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애써 나이의 의미를 부정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나이만이 가질 수 있는 연륜과 경험을 즐기고 있다. 누구나 느끼는 나이 듦에 대한 섭섭함이, 연극배우 박정자만큼은 비켜간 듯했다. 박정자는 <19 그리고 80>에서 ‘나이 듦’ 그 자체보다 ‘나이 듦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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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그리고 80>은 죽음을 코앞에 둔 80세 할머니 모드와 죽음을 유희로만 여기는 19살 청년 해롤드의 사랑을 그린 작품. 콜린 히긴스의 시나리오로 1971년 <해롤드와 모드>라는 영화로 제작됐다. 19세 청년과 80세 할머니의 범상치 않은 러브스토리로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컬트영화가 됐다. 이 작품은 1973년 각색을 거쳐 연극으로 프랑스에서 7년간이나 장기공연 됐다. 뮤지컬로는 작사가 톰 존스가 대본과 가사를 쓰고 조셉 탈큰이 음악을 맡아 2005년 미국 뉴저지에서 처음 무대에 올려졌다. 파격적인 설정만 놓고 보면 ‘별난 러브스토리’쯤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막상 무대의 막이 오르면 진지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삶의 소중함에 대해 말을 건넨다. 19세의 해롤드는 장례식과 죽음을 병적으로 좋아하며 어머니의 애정과 관심을 끌기 위해 자살 시도를 하는 등 쓸데없는 소동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청년이다. 어느 장례식장에서 우연히 만난 80세 노인 모드는 삶에서 즐거움과 자신을 발견하는 방법을 해롤드에게 가르쳐준다. 해롤드는 그런 모드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낀다. 19세 청년과 80세 할머니 간의 믿기지 않는 이 로맨스는 인萱?의미, 아름다움, 가능성 등에 대해 들려주는, 아름다운 우화로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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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이 카페의 사장님은 어떤 분일까. 테이블이며 의자, 조명까지 모두 똑같은 게 없어. 가죽 소파, 나무 의자, 플라스틱 의자, 걸상 등등 모양들이 다양해. 나도 어떤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연극에 ‘유기농’이란 말이 자주 나오는데, 나 정말이지, 무공해 유기농 같은 인간이 되고 싶어요.” 한편의 모노드라마다. 박정자가 쓰고, 연출도 하고, 연기도 하는 ‘모노드라마 박정자’. 청중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말투, 청중을 고루 훑는 듯한 자연스러운 시선은 물론 웃음도 80대의 인자한 미소에서부터 10대 소녀의 그것과 닮은 꺄르르까지 다양했다. 그 웃음들 사이에 눈물도 이슬처럼 언뜻 맺혔다가 금세 사라졌다. 격렬한 손짓과 정확한 호흡으로, 열정적으로 쏟아 붓는 그의 ‘대사’들은 생명을 가진 듯 통통 튀며 카페 안에 울려 퍼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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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이 제각각이어서 자유로워 보인다는 그 의자와 테이블들은 어느새 청중이 되어 박정자의 모노드라마를 보고 있다. 똑똑 유리창을 두드리는 봄비는 음향효과를 맡았다. 무공해, 유기농 같은 인간이란, ‘소유’란 개념에서 자유로운 인생을 사는 할머니 모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공유와 생명 존중을 우선시하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80세 할머니 모드.
..“저는 이 세상이 모드처럼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들로 가득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이 사회가, 이 세상 전체가 훨씬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봐요. 세상이 아름다워지도록 하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름답게 살면 되는 거예요. 아름다움은 전염되는 것이에요. 모드는 ‘무공해’ 할머니에요. 세상 모든 것을 ‘무소유’의 태도로 대하죠. ‘이 세상에 주인은 없다. 오늘 이 세상에 있다가 내일이면 떠날 텐데 소유한다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해?’라고 이야기해요.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비롯한 모든 물건 중 ‘소유’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가진 것도 다 내어 놓고, 남의 것에 대해서도 특별히 구분을 안 해요. 네 것 내 것이 없는 거예요.” 박정자는 이러한 모드를 사랑한다. 그녀 역시 스스로를 위해 값비싼 물건을 사지 않고, 직접 운전하는 것을 즐긴다. 남의 이목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매일 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이 삶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공해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적어도 연극이란 땅 위에서만큼은 오롯이 무공해의 길을 걸어 왔다. 실제로 ‘할머니’가 된 지는 이제 갓 백일(이제 백일 지난 친손녀가 있다). 하지만, 이미 20대부?연극 무대에서는 ‘할머니’로 살아왔다.
공식 이력은 1963년 동아 방송국 전속 성우로 입사하면서부터다. 유명 화장품 CF에서 카피를 읊조린 그의 목소리를 아직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정도로 박정자의 목소리는 일품이다. 단지 목소리가 좋아서 성우가 된 것은 아니다. 연기가 하고 싶어서였다. 본격적인 배우 활동은 66년 극단 ‘자유’의 창립 멤버로 합류하면서부터다. 이병복 대표의 깃발 아래 김정옥 연출과 나옥주, 김용림, 윤소정, 최불암, 김혜자 등 기라성 같은 연기자들이 뭉친 ‘자유’는 연극배우 박정자를 키운 요람이자 우주다. 1986년 임영웅 씨가 연출한 ‘위기의 여자’에서 박씨는 강인한 카리스마로 요약되던 기존 캐릭터에서 180도 변신, 흔들리는 중년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이후 연극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2005), 연극 ‘박정자의 우당탕탕, 할머니의 방’(2004), 연극 ‘피의 결혼’(2004), 뮤지컬 ‘넌센스’(2002, 1998), 연극?쩝穉?‘19 그리고 80’(2008)까지 40여 년간 ‘박정자’라는 이름 하나로 연극 무대를 지켰다.?? “수녀원장, 광대, 무녀, 하녀에서 왕비까지 하고 싶은 역할은 다 해보았어요. 게다가 죽기도 많이 죽었었죠. 독약 먹고 죽고, 총 맞아 죽고, 불나서 죽고, 그리고 모드는 죽음을 선택하죠. 그래서 ‘죽음’은 멀리 동떨어진 남의 일이 아니라, 삶과 아주 밀접해 있는 동반자 같은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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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자는 사실 예순세 살이 될 때까지 특별한 꿈이나 희망이 없었고 뭔가를 정해 놓고 해본 적도 없었다고 고백한다. 딱 예순넷에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을 정도. 하지만 그 생각은 예순셋에 만난 연극 <19 그리고 80>으로 바뀌었다. ‘나이 60이 넘어도 꿈이란 것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을 실현시킬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 “예순넷에 죽고 싶다고 생각을 한 이유는, 딱 그 나이면 더 이상 밉지도 늙지도 않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이젠 모드 나이가 될 때까지 이 극을 하겠다는 목표가 생겼어요. 뮤지컬로든 연극으로든 2년에 한 번씩 할 생각이에요. 이 작품은 제가 여든 살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에서 건너야 할 강이고 넘어야 할 산이에요. 구체적인 목표이고 푯대이며 꿈이죠. 그동안 많이 넘어지거나, 자빠지고, 심지어 그 곳까지 못 간다 해도 저는 그 과정을 사랑할 거예요.” 하지만 지난해 그 꿈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 있었다.
사진_ julie Mayfeng
<신의 아그네스> 개막 전날 발을 헛디뎌 심하게 다쳤던 것. 상태는 심각했으나 아프다는 생각보다는 ‘공연 어떡하지’란 걱정밖에 되지 않았다. 다음날 공연 때 얼굴에 온통 반창고를 붙이고 성치 않은 몸을 이끌며 무대를 올랐으나, 잠꼬대로도 외우는 대사가 전날 사고의 충격으로 막혀 버렸다. 결국 대본을 들고 연극을 했던 쓰라린 기억이 흉터처럼 가슴에 남았다. “배우로서 죽음보다 더한 굴욕이었어요. 그 순간만큼은 차라리 가루가 돼 공중으로 흩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배우한테 무대란 그런 곳이죠. 나이 80이 되었을 때, 주름도 많고 다리에 힘도 빠지겠지만 무대에 서서 연기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요. 죽음은 끝이 아니에요.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거죠. 죽음을 무겁지 않게, 너무 비극적이기 않게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할 뿐이에요.”
..동전의 양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과 죽음. 누구나 겪었고, 앞으로 겪어야 할 일일 뿐이라며 모드처럼 활짝 웃어 보이는 박정자. 그녀를 보고 있노라니 이외수 씨의 시 ‘할미꽃’이 떠올랐다. ‘나도 허리 굽은 그 나이까지 꽃이 될 수 있을까.’ 박정자라면 가능할 듯하다. 늘 거침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배우이기에. 연극하는 후배들의 복지를 위해서도 아낌없이 노력하는 예순일곱의 연극배우 박정자는 그렇게 우리에게 무대를 사랑하는 법을, 동시에 삶과 죽음을 사랑하는 법을 묵묵히 보여주고 있다.
출처 : Tong - justinKIM님의 | 무대와 실험통
Jeg Ser Deg Sote Lam[그대 곁에 소중한 사람]- Susanne Lunde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