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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의 섶길 답사-진위(振威)‘뿌리길’
진위(振威)라는 지역성
진위(振威)는 잊혀진 고을이다. 수 천 년 평택지역의 최고 중심지였지만 근대문물에 밀려 사그러져가는 지역이다. 진위지역에 고을이 설치된 것은 삼국시대부터다. 어쩌면 고조선이나 삼한시대에도 중심지였을 것이다.
‘진위’라는 지명은 통일신라 경덕왕 때 만들어졌다. 그 전에는 송촌활달, 연달부곡으로 불렀고, 5세기 고구려가 지배할 때는 ‘부산현’이 되었다. ‘부산(釜山)’이라는 지명은 봉남리 뒷산인 ‘부산’과 관련 있다. 혹자는 견산리성이 ‘부산’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고을의 읍치(邑治)를 산성(山城) 안에 두는 경우가 많았다. 전쟁이 생활의 일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진위(振威)’라는 지명은 유래를 알 수 없다. 본디 지명이란 마을의 위치, 모양, 형세, 특징 등으로 만들어지는데 ‘위엄을 떨치다’라는 대단히 작위적인 지명이 어떤 연유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평택지역의 중심이었던 탓에 진위지역에는 다양한 역사와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먼저 조선시대 진위현의 읍치였던 봉남리에는 동헌(東軒) 터를 비롯하여 진위객사 터, 진위향교, 성황사 등 공해(公廨)가 남아 있다. 이밖에도 옥거리, 조산, 장터, 아곡, 향교골 같은 지명과 조선말기 정승을 지낸 심순택 고택과 묘 등도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평택지역 3.1운동이 평택역과 함께 진위면 봉남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사실과, 1938년까지만 해도 평택지역의 명칭이 진위군이었다는 사실도 진위지역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진위면의 섶길은 ‘뿌리길’이라고 명명해야
그래서 진위면 일대의 섶길을 ‘뿌리길’이라고 명명해야 한다. ‘뿌리’라는 명칭은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요소를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논란을 우려하여 조심스럽게 반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평택지역의 역사를 놓고 평가할 때 진위면을 빼놓고 이 명칭을 사용할 지역은 어디에도 없다. 설령 혹자가 ‘객사리’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엄밀히 객사리는 평택지역의 중심이었다기보다는 1914년에 진위군에 통합된 충청도 지역의 작은 고을에 불과하다.
7월 21일 조정묵, 이상권, 장순범씨와 나 이렇게 넷이서 길을 나섰다. 답사가 거듭되면서 이런 저런 사정으로 네 명으로 굳어지는 느낌이다. 운전기사는 김용래 국장이 업무로 바쁜 틈에 조정묵 대표가 꿰어(?)찼다. 가장 연로하신 분에게 거친 운전대를 맡기는 것이 영 송구하지만 평소 적극적이고 낙천적인 성격 탓에 크게 개의치 않아서 미안함을 덜고 있다.
답사코스를 놓고 장순범 국장과 나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 장국장은 시민들의 교통편을 고려하여 진위역에서 출발하여 끝내도록 할 것과, 일정구간 1번 국도를 걷더라도 진위천 둑방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반면, 나는 굳이 힘들고 위험한 1번 국도를 걷지 말고 하북1리 성뒤마을길을 가로질러 가곡3, 4리 후북과 신북마을, 가곡2리, 1리를 거쳐 봉남리로 넘어가는 코스를 주장했다.
몇 번의 논쟁 끝에 우선 자동차로 코스를 확인하자는 의견에 따라 견산리 앞에서 장호들 하수종말처리장 건설공사장을 거쳐 진위천 둑방을 지나 신리교까지 답사하였다. 답사를 하였지만 역시 이 코스는 신리교에서 진위역까지 약 1km구간이 문제였다. 둑방길 답사를 마치고 이번에는 내가 주장했던 하북에서 가곡리, 봉남리로 연결된 코스를 답사하기로 하였다.
나름대로 좋았던 하북1리에서 가곡리 사이 길
출발지점인 진위면 하북리는 일제강점기부터 1번국도와 경부선 철도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였다. 일제 말에는 강제공출미가 하북에 집산되어 인천항으로 운반되었기 때문에 미곡을 거래하는 시장이 있었고, 경찰지서도 위치하여 소규모 도시가 형성되었다. 하북1리 성뒤마을 골목은 자동차 1대가 겨우 지날 정도로 좁았다. 반면 옛 도시의 흔적이 완연하고 식당, 슈퍼, 이발소 등 30, 40년 이상 된 상점이 즐비하여 사라져가는 소도시 골목길을 걷는 즐거움을 주었다. 길은 에바다학교 뒷 담장을 끼고 하북4리 마을회관으로 연결되었다. 에바다학교는 오랫동안 학원민주화투쟁으로 평택지역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이름을 떨친(?) 장애우학교다.
하북5리 마을회관을 넘어서면 가곡리 후북마을이다. 후북마을과 바로 옆의 신북마을에는 쵸코파이와 고깔콘을 만드는 롯데제과 평택공장과 동양잉크공장이 있다. 그래서 마을도 단독주택과 소형아파트가 섞여 있어 시골스런 풍경은 많이 쇠퇴하였다. 하지만 마을 뒷산 능선 사이로 연결된 마을길은 차량통행이 거의 없고 호젓하여 걷기 좋은 길로서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후북에서 능선을 따라 약 1.5km를 진행하면 1번 국도를 나타나고, 1번 국도를 건너면 가곡2리 가야실(개실) 입구다. 가야실 입구에는 최근 공장건물과 전통도구를 판매하는 가게가 들어섰다. 마을입구는 변화하고 있지만 마을 안쪽은 아직 변화가 없다.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가곡1리 신가곡과 동천리로 넘어가는 갈림길에서 잠시 갈등을 하였다. 신가곡은 조선후기부터 경주 이씨의 터전으로 이정좌, 이계조의 무덤과 재실이 있으며, 마을 입구에는 ‘경주이씨천’ 이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또 1911년 독립운동가 이회영 집안이 만주로 집단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할 때 처분했던 5만 평의 토지가 있었던 마을로도 유명하다. 신가곡을 거쳐 봉남리로 넘어가는 길은 여러 모로 유용하였지만, 다시 동천리 만기사까지 갔다가 아스팔트도로를 따라 돌아오는 길이 거칠고 험해서 우리는 동천리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환상적인 동천리길
우리는 동천리길을 택했다. 동천리길은 5, 6년 전까지만 해도 도로포장이 중간에서 끊어졌었는데 이번에 답사해보니 건너편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더구나 건너편 암자 주변 연못에는 연꽃과 부레옥잠이 한참 꽃을 피워내고 있어 아름다움을 더했다.
장순범 국장은 고갯마루 정상에서 봉남리 부산으로 연결된 등산로를 발견하고는 그 길을 걸어 봉남리로 넘어가는 코스로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놨다. 사실 필자도 동천리길의 실체를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터라 동의를 하였다. 하지만 ‘산길’은 좋아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어린아이와 함께 가족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선택하기 힘든 코스일 수도 있다는 주장에 따라 우선 다른 길을 찾아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고갯마루 갈림길에서 길을 찾다가 산기슭으로 난 비포장 길로 접어들었지만 우목장에서 끊겨 있었다. 다시 돌아나와 동천리 방향으로 더 내려가 보기로 하고는 조심조심 차를 몰았다.
암자를 자나면서 울창한 숲 사이로 자동차가 지날 수 있는 비포장도로가 나왔다. 비포장도로는 동천1리까지 약 1km쯤 되었는데, 길옆으로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계곡사이에 개간한 계단식 논들이 아름다워 환상적이었다. 이상권선생은 동천리 코스만큼은 대중들에게 알리지 말자는 주장을 거듭하였는데, 이유를 알고 보니 평택지역에서는 이 같은 길이 거의 없어 본인만 호젓함을 즐기겠다는 의도여서 일행의 비난(?)을 받았다.
동칫골에서 다시 하북까지
동천1리는 동칫골이다. 동칫골은 본래 경주 이씨의 터전이다. 아직도 마을 안에는 경주 이씨 묘역이 남아 있고, 마을 뒷산에는 경주 이씨 평택 입향조격인 이연손과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광좌의 묘가 있다. 마을 동쪽 숲은 백로와 왜가리가 떼를 지어 서식하고 있다. 그래서 조류보호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하였는데, 트레킹을 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체험학습장이 되리라 생각되었다.
마을 앞 동천리 저수지는 사철 낚시꾼들이 몰려드는 아름다운 저수지다. 마을 입구의 학농원도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휴식처가 될 수 있다. 학농원 안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이딸리아노’라는 품격 있는 퓨전한정식집이 있다. 동천리 입구 못미처에서 우회전하여 만기사로 들어가는 길을 확인만 하고 다시 차를 돌려 봉남리로 향했다. 만기사는 보물567호 철조여래좌상이 모셔진 사찰이고, 그 앞에는 무봉산 청소년 수련원이 있다. 청소년수련원에는 서바이벌게임과 천문대가 있지만 사전에 단체예약을 하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는 한계가 있는 반면, 풀장과 눈썰매장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만기사와 청소년수련원을 경유하는 코스는 여러 모로 유용할 것이라 생각된다.
봉남리 진위향교는 너무 잘 알고 있는 유적이어서 위치만 확인하였고, 진위면사무소와 봉남초등학교 진위관아터만 답사하였다. 진위면사무소는 3, 4년 전 신축되어 일제강점기의 옛스런 모습은 잃었지만, 입구에 진위현청 터이며 3.1만세운동 유적이었다는 표석이 세워져 있어 답사객의 좋은 안내판 구실을 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면사무소 앞에서 봉남교 방향으로 직진한 뒤 진위천 둑방을 걸어 1백 미터쯤 직진하면 진위천 유원지다. 진위천 유원지는 작년에 100억 원 가까운 시비를 투입하여 캠핑장, 풀장, 레일바이크 등 다양한 레저시설을 갖춰 놓았다. 사전에 안내를 철저히 한다면 좋은 편의시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둑방길을 걷다가 하수종말처리장 부근에서 논길을 따라 조금 걸으면 출발지점에 다다른다. 전체 코스는 약 12km쯤이다.
에필로그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진위면 일대의 섶길을 ‘뿌리길’이라고 명명한 것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진위면은 평택지역의 뿌리이며, 옛 중심이기 때문이다. 이 코스에서 ‘뿌리’라는 전통과 오랫동안 사람의 삶과 문화를 체험하게 하려면 여러 가지 장치가 필요하다.
우선 어느 코스나 마찬가지지만 성실한 안내판이 필요하다. 안내판에는 전체코스와 함께 현재의 위치, 주변의 볼거리, 체험거리를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표현하면 좋겠다. 곳곳에 마을의 내력과 크고 작은 문화유산들을 소개하는 안내판도 반드시 필요하다. 또 먹거리, 체험거리와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는 다양한 정보 등도 함께 수록해야 한다. 특히 주요 유적 가운데 하나인 만기사와 진위향교, 진위관아 터의 경우는 좀 더 상세한 안내판과 안내서, 그리고 가급적이면 해설사 배치 등도 고려하면 좋겠다. (2012.7.22)
첫댓글 동천리 가는 길 사진을 올리려고 하는 데 용량이 찾다고 거절하네요. 저번 처럼 가장 중요한 사진만 못 올리는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아직 용량이 많이 남아있는데 왜 그럴까요?
사진 1장이 10Mb가 넘지는 않는지요?
동천리 길이 압권인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