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화 저주받은 인형 (중)
“......”
남자 인형의 이야기를 다 들은 스이긴토는 오늘은 웬일인지 침묵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가 굉장히 충격적이고, 끔찍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입을 열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대충 이런 이야기지. 그래서 나는 그 녀석이 사람들의 꿈속에 나타나서 악몽을 만들기 전에 해치우려고 한 거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들은 어느새 스이긴토의 꿈속에 도착해있었다. 그녀의 꿈속은 언제나 어둡고, 겨울바람처럼 매우 추우며 주변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고독과 고통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 어두운 배경 탓인지 누군가 나타나서 살인을 저지를 것 같은 느낌이 저절로 들곤 했다.
“이 꿈...... 조금도 변하지 않았군. 정말 침울한데?”
“나에 대해 알지 못하면 가만히 있는 것이 좋아. 여기는 내 꿈이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그래? 그럼 내 마음대로 이 꿈을 산산조각 내버릴까?”
“!”
그의 도발적인 말을 들은 그녀는 오른손에 주먹을 쥐더니 그의 뒤에서 기습공격을 시도했다. 그런데 그녀의 공격시도를 어떻게 알아챈 것인지 재빠르게 뒤를 돌아 자신에게 날아오는 그녀의 주먹을 붙잡았다. 그녀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심하게 일그러져있었고, 날카롭게 쏘아보는 두 눈빛은 변함이 없었다. 이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 순간적으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 것 같은데, 이 남자인형은 얼굴표정하나 바뀌지 않았다. 마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보통 인형처럼 말이다.
“농담이니 열을 받을 필요가 없다. 나는 누구도 꿈을 부셔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까...... 내가 말하는 녀석을 제거하는 대로 사라져줄 테니까 역겹더라도 참아주기 바란다.”
“그, 그것보다 네가 제거할 녀석을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어? 그 녀석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은데......”
그녀가 질문을 하자, 남자인형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한번 본적이 있다고 대답하고, 제거할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 들려주었다.
*
이번에는 첫 번째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 후부터 시작하였다. 그때가 최초의 남자인형이 버려지고 2일 뒤에 저주받은 인형이 태어나게 되었다. 쓰레기통에서 나온 남자인형은 여기저기주변을 둘러보다가 길에서 우연히 꼬리를 내린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나게 되었다. 고양이를 보던 남자인형은 고양이가 자신을 공격할까봐 재빨리 주머니에서 총을 꺼냈지만, 고양이는 그를 보고 더욱 놀래며 그대로 도망쳐버렸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일까 하고 생각하던 그는 고양이가 등장했던 골목길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문이 살짝 열린 한 채의 집이 눈에 들어왔다. 그 집 안에서부터 이상한 기운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기운을 조차 못 느낀 그는 아무런 의심 없이 살짝 열린 대문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에는 커다란 자명종시계와 쇼파, 탁자, 의자 등 없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이제야 이 집이 수상하다는 것을 알아챈 그는 조심스럽게 집안을 구경하다가 무슨 붉은 물감이 줄지어 칠해져있는 바닥을 발견하게 되었다. 저게 뭘까 하고 손가락으로 붉은 물감을 살짝 찍어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건 미술시간에 쓰는 붉은 물감이 아니었다. 사람의 몸속에 들어있는 새빨간 피었다. 이 집안에서 누군가 살해된 것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킨 그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핏자국을 따라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세발자국......
“!”
그는 무언가 놀라 자신도 몰라 발을 한참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그 앞에는 조각용 칼을 들고 있는 한 인형이 사람의 시신을 마구 찌르고 있는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아버지가 만들었던 이상한 인형이었다. 드디어 첫 번째 살인사건을 일으켰던 장본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시신을 마구 찌르던 인형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은 순수함은 어디가고, 잔인함을 즐기는 듯한 날카로운 눈으로 변해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의 옷에 사람의 피가 단 한 방울도 묻어있지 않았다.
“네 짓이냐? 죄 없는 인간을 죽인 놈이?”
“키키키...... 맞아, 키키키......”
“왜 죽인 거지?”
“나랑 안 놀아주니까...... 나랑 안 놀아줘서 죽였어...... 나랑 안 놀아주는 인간은 필요가 없거든......”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단지, 자신과 놀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죄가 없는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누구나 사정이라는 것이 있을 것인데, 그것조차 들어주지 않고 살인을 저질렀으니 반드시 제거해버려야 할 녀석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반드시 제거해야할 녀석으로 손꼽혀야만 한다.
그의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은 남자인형은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그를 겨누며 입을 열었다.
“자, 귀찮은 일을 벌이지 말고 얌전히 무기를 내려놓으실까?”
“키키키...... 방해하지 마...... 오랜만에 재미있는 일을 하는데, 방해하면 죽여 버릴 거야. 어느 누구도 날 방해 못......”
-탕!
그의 말이 끝나가는 순간에 방아쇠를 당기는 남자인형. 그대로 날아오는 총알을 맞은 인형은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 한 동안 움직일 줄 모르자, 죽었나보다 하고 생각한 그는 총을 주머니에 넣고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탁탁탁! 푹!
그때, 벽에 부딪쳐 쓰러져있던 인형이 갑자기 일어나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조각용 칼을 높게 들어 그의 가슴을 깊게 찔렀다.
“크윽......”
가슴에 칼이 꽂힌 남자인형은 그의 무게에 눌려 쓰러져버렸다. 다행이 인형이라서 신체적인 아픔을 못 느꼈으니 망정이지, 진짜 사람이었다면 커다란 아픔과 함께 생명이 끊어질 것이다.
그는 가슴에 칼을 한번으로 끝냈지 않았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잔인하게 웃으면서 마구 찌르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악마 같은 인형이 또 어디에 있을까......
계속 당하고만 없었던 남자인형은 주먹을 쥐어 그의 볼을 향해 힘껏 때렸다. 그 반동으로 인해 날아감과 동시에 조각용 칼을 떨어뜨리자, 그는 재빨리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그리고 그가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조각용 칼과 멀어지게 해놓고 권총을 그의 얼굴에 겨누었다.
-탕탕탕! 탕탕탕!
방아쇠를 당겨 그의 두 눈을 향해 사정없이 갈겼다. 순식간에 그의 두 눈자리에 큰 구멍들이 생겨 끔찍한 인형의 모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움직여 적을 향해 공격하는 모습이 정말 어떻게 보면 대단하다고 여겨야 될지 아니면 미련한 놈들이라고 여겨야 될지......
한참 동안 죽을 각오로 싸우던 이상한 인형은 탁자 위에 놓여있는 꽃병을 들어 그에게 던졌다.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해 창문 밖으로 도망쳐버렸다. 꽃병을 맞고 쓰러진 남자인형은 다시 일어나 그가 도망친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사라지고 난 뒤였다.
자신을 공격하고 도망친 그를 제거하지 못해 화가 난 남자인형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
“그 후로 몇 년 후...... 너희들이 태어난 후에도 계속해서 그를 찾아 헤맸지. 그러다가 우연히 너의 꿈에 방문을 했을 때, 녀석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짐작하게 되었지. 그 녀석은 저주받은 인형이라 항상 어두운 곳을 좋아하지. 어두운 꿈속은 너 밖에 없어서 같이 가자고 부탁을 한 거다.”
“......”
그의 이야기를 다 들은 스이긴토는 고개를 돌려 그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옷을 입어서 정말로 상처가 생겼는지 알 수가 없지만, 왠지 숨기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너무나 궁금해서 그의 옷을 벗기면서 상처를 찾고 싶었지만, 그의 차가운 성격상 그렇게 대담한 짓은 하지 못했다. 그저 상처자국을 보여주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
“바로 여기이다.”
그들은 폐허가 된 한 건물 앞에 멈췄다. 그는 그녀에게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 건물 안으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지하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장면을 지켜본 스이긴토는 약간 머뭇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밖에서 그를 기다릴지, 그를 따라 들어가야 할지 고민이 생겨버린 것 같았다. 언제나 차가운 마음을 지니고 있는 그녀. 그런 그녀에게 점점 그 차가운 마음을 녹여줄 매개체가 한 순간에 찾아오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