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12일 월요일 맑음. 처갓집을 들러 이흥렬시인 집을 방문하고.
오늘도 따뜻하다. 이미 입춘이 지나긴 했지만 그래도 예전 같으면 아직도 추워야 할 날씨인데, 지구 온난화가 가속되어 올겨울은 별 추위 없이 다 지난 것 같다. 오늘은 오랜만에 장거리 외출을 하게 되었다.
경주에 계시는 장인어른 생신을 맞이하여 아내가 먼저 10일 날 갔었는데, 난 처갓집에서 생활하기가 불편하여 함께 가지 못하고 얼굴만 보일려고 오늘 친구의 차를 맞추어 타고 정산에서부터 임동~진보~청송~죽장~안강~강동을 거쳐 천북 동산의 처갓집으로 갔다. 먼저 장인어른께 안동양반의 큰절을 올려야 하는데 완전히 엎드리면 팔 힘이 약해서 앞으로 꼬꾸라질 것 같아서 겨우 자세를 잡고 모양새는 그래도 큰 절로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 그간의 안부를 여쭙고, 차를 운전해 준 친구를 소개하고 아내가 차려온 점심을 먹고, 장인장모님께서 해외여행을 하면서 찍었다는 사진을 보며 덕담 몇 마디를 주고 받았다.
그 시간이 약 1시간 정도 소모되었을 것이다. 그때 처가 동네 어른 한분이 놀러 오시는 바람에 근처에 사는 처남 집에 가봐야 한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다는 인사는 제대로 하지도 못한 체 장모님과 함께 우리는 처남집에 가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처조카,질녀에게 용돈 조금씩을 주고 장모님께도 적은 액수의 용돈을 드린 뒤 돌아가는 길에 포항에도 들러 봐야한다고 서둘러 나왔다.
아내도 장모님께서 설음식으로 만들어놓은 유과와 몇 몇가지 보따리를 챙겨 싣고, 함께 타고 포항으로 향했다. 화산~20번국도~포항철강공단~오천읍~용덕리 이흥렬씨가 사는 영남아파트까지 미리 인터넷 지도검색으로 약도를 익혔던바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구형 5층짜리 아파트인지라 4층까지 계단으로 올라야 하는데, 처음 몇 계단은 내 힘으로 올라갔는데, 계단의 두께가 더 높아진 탓에 도저히 내 힘으로는 4층까지 올라갈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그때 이흥렬시인의 부인이 휠체어를 갖고 와서 앉으란다. 이미 장애인 손님들이 많이 찾아서 미리 익혀둔 기술이라며 부담 갖지 말고 앉으란다. 난 아직까지 그런 대접을 받아보지 못했다. 남자가 돼 가지고 여성을 도와줘야 할 판에 힘이 모자라니 여성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그냥 사양하고 밖에서 잠시보고 오고자 했지만, 그 부인의 완강한 권유에 못 이겨 휠체어에 앉았고, 아내가 조금 도우며 그 부인이 숨소리가 헐떡거리도록 휠체어에 앉은 나를 4층까지 끌어올렸다. 나는 미안해서 죽는 줄 알았다. 63Kg이나 나가는 내 체중도 원망스러웠다. 그러면서도 ‘세상에는 이렇게 천사 같은 분들도 있구나.’ 하며 마음으로 감사했다. 그 힘든 과정 끝에 나는 발가락시인으로 이름난 이흥렬님을 만났고, 함께 간 친구도 소아마비장애가 있지만 역시 안동의 장애인문인으로서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우리는 문학과, 장애와 또 장애인으로서의 결혼과 가정생활에 대한 주제로 한참동안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러는 동안 이흥렬님의 부인이 새로 밥을 짓고, 생선회를 시키고 해서 맛있는 저녁상을 대접받았다. 그리고 이 시인이 가끔씩 드신다는 청하로 술잔을 부딪히며 미래의 꿈을 다지기도 했다. 참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 시인은 이미 앉은뱅이꽃이란 시로 장애 문학계에선 이름을 날렸었고, 그 계기로 앉은뱅이꽃이란 영화(홍경인 주연)도 제작하여 상영한 바 있었다. 그런데 혼자서 살던 이 시인이 지난해 51살의 나이로 천사 같은 분을 만나 결혼을 했고 그분이 살아가는 의지력이 높이 평가되어 이번에 다시 그분의 삶이 영화로 제작된다. 제작기간은 약 1년이 소요된다 하는데 이번엔 서울의 극장가에서도 상영될 거라 하니 자못 기대가 된다.
아무튼 나는 차 있는 친구의 도움으로 처갓집에도 갈수 있었고, 장애인문인협회 대경지회 회장으로 있는 이시인의 집을 극진한 대접으로 방문할 수도 있었다. 오늘 같은 기분이라면 나도 다시 힘을 내어 무엇이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샘솟는다.
그 즐거운 시간 끝에 돌아서기가 아쉬웠지만 우리는 후일을 기약하고 이 시인의 집을 나와 돌아오는 길은 포항~영덕~진보~임동으로 해서 무사히 집까지 도착했다. 집에 와서 차 태워 준 친구(동목님)의 고마움을 “숙표커피?” 한잔으로 마시며 오늘의 즐거웠던 과정을 잠시나마 이야기로 되풀이 했다.
그리고 그 친구마저 돌아간 늦은 시간에 나는 우리 월초35회 카페가 궁금하여 들렀고, 새 글이 별로 없는 탓에 오늘의 일기를 글감으로 올리고자 이렇게 썼다. 모두들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정산집에서 권오웅이가-
이 일기도 또 울궈먹네요. 새로 쓰기는 귀찮고 해서.....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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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세상에서 악인보다는 선인이 더 많다는 사실을 이 카페에 들어오면서 부터 알았지만 너무나 착하신 이흥렬 시인님의 부부께 다시금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그리고 남들처럼 떳떳이 처가집에서 즐거운 시간을 맞이하시지 못하고 이 사회의 그릇된 통념의 희생양이된 햇살님과 모든 장애우 여러분들을 생각하면 나 자신의 일처럼 가슴이 아려옵니다.그래도 늘 웃음과 기쁨을 잃지 않고 밝게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있기에 이 험하고 추악한 세상이 돌아간다는 자부심으로 힘들 내시길 바랍니다.우리 또한,육신은 온전한 인간이지만 영혼은 이미 구제할수없이 일글어저버린 장애인이되어 있음을 다시금 반성하게하는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장애인의 심중을 헤아려주는 복이형, 고맙다.
오막님 글이 더 가슴에 와닿네요..
줜장님의 진솔한 삶을 쓴 2월의 일기 여기서 다시 대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리며 즐거운 저녁시간 되세요^*^
오랜만에 처갓집과 이흥렬 시인님 집을 방문했군요. 참 좋은 여행을 하셨습니다. 좋은 추억을 담아오셨군요. 특히 이흥렬시인님의 생활상을 엿본 것 같아 의미가 깊습니다. 저는 이흥렬 시인님이 포항근처에 산다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오늘 눈에 본듯이 잘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파트 계단을 휠체어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일기 감사합니다.
예, 김선생님. 도와주는 사람의 마음에따라 수동휠체어에 타고도 아파트 계단을 오를수 있더군요. 그것이 난생 첫 경험이었기에 그때 일기로 써봤습니다.
아자~어자~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