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로 향하는 특별기에 올랐다. 장거리 비행기를 타면 지난 일들에 대한 상념들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삶에 대해 잠시나마 경건한 마음을 갖게 된다. 이제 중년으로 접어드는 나이 탓인지, 주변에 대한 책임의 무게가 무거워진 탓인지.... 활주로를 이륙한 특별기가 제 궤도에 진입하자 모든 긴장이 사라지며 나는 잠시 과거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남편과의 이별은 나의 뉴욕연수 발령과 함께 시작되었다. 외교관이 된 순간부터 이미
예견한 일이었지만, 한창 신혼 때라고 불릴 수 있는 결혼 6개월만에 남편을 서울에 남겨
두고 떠나야했다. 슬픔 반 설렘 반의 감정으로 시작된 뉴욕생활은 새로운 매력을 안겨
주었고 나는 곧 그 분위기에 동화되어갔다. 청바지차림의 철부지 같은 나에게 첫 아기가
태어났다. 어쩔 수 없이 아기를 서울의 아빠와 외할머니 곁으로 보내놓고, 다시 맞은 싱
글의 생활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 딴에는 무척이나 애를 썼다. 그런 내 모습이 애처로
웠는지, 서울에서 방황하는 남편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본부에서
는 남편을 뉴욕으로 출장 보내주었는데... 나는 그만 그 시간에 뉴욕에서 서울로 불려
들어오고 말았으니! 내가 노태우대통령 내외분의 동남아순방에 여사의 통역수행원으로
갑자기 선정된 것이었다. 남자통역은 절대 왕비궁에 들어갈 수 없으니 꼭 여자통역이 필
요하다는 브루나이 왕국의 요청에 따른 결정이었다고 한다. 결국 뉴욕에 온 남편은 경비
에게 맡겨 놓은 열쇠로 내 텅 빈 스튜디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선 이틀 밤을 혼자 자고
떠났다. 벌써 12년 전의 추억이 된 이 일은 한 편으론 안타까운 운명의 장난 같기도 하
지만 내게는 좋은 경험이 되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때를 시작으로 초임 시절부터
많은 통역을 하면서 견문을 넓힐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여자였기 때문인데..... 외무부에
여자직원이라곤 몇 안 되던, 시대를 잘 만난 덕이 아니었는지.
각각 뉴델리(인도)와 뉴욕 그리고 부산이라는 국제적 도시에 흩어져 살던 남편과 나,
우리아기는 여러분들의 따뜻하신 배려로 눈물의 이산가족 상봉을 이루게 되었다. 남편
은 주 인도대사관 참사관, 나는 주 인도대사관 영사로 같이 출근하고, 같이 회의하고, 같
이 점심먹고, 같이 퇴근하고 24시간 동행체제가 갖추어졌는데 우리가 너무 지겨운 사이
가 될까봐 주말은 자연스럽게 따로 따로 지내게 되었다. 나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지냈고 남편은 때때로 그 더운 열기속의 골프장에서나마 운동을 하는 여유를 가졌다 .
일은 똑같이 하면서도 육아는 내 몫으로 돌아오는 것에 대한 억울한 생각이 한동안 머리
속에 가득했다. 그러나 내 자신을 위해서는 사고를 전환하는 편이 훨씬 득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즉 천진난만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 하며 느끼는 기쁨의 순간 순간들
을 나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는데 남편은 이 기쁨의 순간도 모르고 지내는구나 라
고 상황을 정리하고 나니 마음의 여유를 얻게 되었다. 이러한 나의 편의적 상황정리는
그 후로도 계속되어 일종의 행동패턴이 되었다. 한번은 남편이 운동으로 연휴 계획을 채
워버렸다. 금쪽같은 연휴를 망치든 말든 화를 내버릴까 잠시 망설이다가 마음을 고쳐먹
었다. 그리고 나는 네팔로 가서 경비행기를 타고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히말리아의 아
름다운 봉우리들을 다 감상하고는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자신의 계획을 후
회했었던 것은 당연지사 누구를 탓할까. 부부가 서로 좋아하는 것을 나누며 함께 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세상은 이상적으로만 움직이지 않으니, 남편이 좋아하는 것을 못하게
하기보다는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차선이 아닐까? "최선이 차선을 막아
서는 안된다"는 경구(원래 있었던 경구인지는 모르지만)가 내 생활의 지침이라고나 할까.
우리 가족이 서울로 돌어와 서울의 각박한 생활을 허덕허덕 꾸려나가다가 어느정도
자리잡을 즈음, 신혼에 내가 자유롭게 연수를 떠났던 것처럼 이제는 남편이 가족의 울타
리를 떠나 혼자의 자유와 발전을 향해 떠났다. 그때, 떠나는 이와 남겨진 이가 다르다는
것, 남겨진 이는 그냥 헤어진 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가슴이 아팠다. 내게는 홀로
서기가 더 튼튼해졌고, 홀로 서 있음으로써 함께 서 있을 때가 더욱 값지다는 것을 알게
된 기간이라고 할까?
이렇게 또다시 2년 동안 떨어져 지낸 후 뉴욕에서 제2차 가족 상봉을 이루게 되었다.
뉴욕 총영사관에서 보낸 2년이 내게는 가장 여유 있고 풍요로운 기간이었다. 다른 영사
들께서는 정말 힘들고 바쁜 업무를 담당 하셨는데 내 경우는 비교적 맡은 업무부담이 크
지 않아 남는 시간은 남편내조도 좀 하고(남편이 이점에 동의할지는 미지수), 한참 엄마
와 정신적 교감을 필요로 하는 시기의 아이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냈고, 아이들 학교 선
생님들과 아이들 친구엄마들과도 수시로 어울리며 지낼 수 있었다. 내게는 정말 황금 같
은 시간들이었달 수밖에. 국제회의 전문가로서 스스로를 발전시켜 보겠다는 생각으로 유
엔대표부로 갔다가, 남편이 대표부로 발령받자 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총영사관으로 옮
겼는데, 여자 선배의 입장이 안타까웠는지 한 후배가 "선배는 같은 동료로서 왜 자기 몫
을 완전히 못챙기고 적당히 타협하느냐?"고 물어온 적이 있다. 나보다 남편이 직업적
성취감을 더 느낄 수 있는 자리에 있다고 해서, 그리고 내가 좀 덜한 자리에 있다고 해
서 보람이 작다고 할 수 없으며,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총체적인
행복지수가 얼마나 높은가가 중요한 것 아니겠는지. 비록 국제회의 전문가로서 역량을
크게 쌓지 못했어도 좋은 엄마 노릇을 좀더 할 수 있었다는 것, 스스로를 즐길 수 있었
다는 것만으로도 알차고 넘치는 시간들이었다고 여겨진다.
뉴욕에서 서울로 돌아와 내가 청와대에서 의전업무를 맡게 되면서 남편이 먼저 나가고
늦게 들어오는 지금까지의 패턴이 바뀌어 남편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먼저 집을 나서는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과거의 상념에서 벗어나, 유럽으로 향하는 특별기 안이라는 현실로 돌아온 나는 아이
들 숙제를 챙겨주고 있을 남편의 모습을 그려본다. 헤어졌다 합쳤다하는 생활을 앞으로
도 담담하게 해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이별은 어쩌면 혼자로서의 자유를 당당하게 누
릴 수 있는 젊음과 주변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가 결혼하기로 했을 때 많은 선배님들이 앞날에 대해 염려해 주셨다. 당시
과장님께서는 '앞으로 남편의 그림자를 밟지 않도록 하라'는 좋은 충고를 주셨다. 그밖
에도 많은 분들의 사랑과 배려가 여러모로 부족한 우리 부부가 지금까지 외교관 부부로
서 직업과 가정을 나름대로 잘 꾸려올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주위의 도움과 배려만을 기대할 수는 없음 또한 나는 알고 있다. 혼자를 당당
히 살아낼 수 있는 젊은 마음과 진정한 행복을 분별해 낼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도
록 스스로 노력해야 할 일이다. 또 결혼할 때 남편은 여러 가지 말로 나를 감동 시켰는
데 그중 "적어도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막는 사람이 되지는 않겠다"는 약속
아닌 약속과 "항상 the best를 희망하되 이만을 고집하지는 말고, the worst를 맞을 마음
의 준비도 하자"는 말 두 가지가 내게 단단히 새겨져 있다.
나는 부부는 일심동체란 말을 믿지 않는다. 부부는 이심이체다. 아무리 같은 일을 하
고 같이 시간을 보내도 부부는 딴 몸 딴 마음이다. 적어도 우리 부부는 그렇게 생각한
다. 부부가 부부인 것은 다른 몸 다른 마음을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지브란의 시로
이 쑥스러운 글을 마감할까 보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 중략 ---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를 혼자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 중략 ---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운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외교관
대통령 비서실(의전) 근무
출처 : '외교등' (외교관 부인회 발간) 제12호
첫댓글 1등! -_-;; 근데요... 자유인님, 남자 외교관 수가 줄어서 앞으로 외교통상부 안에서도 삼각관계가 심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와하하하하 ㅋㅋㅋ 재밌어요 ㅎㅎ
ㅎㅎㅎ 재미있는 추측이군요. 인간사에 비추어 그럴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사례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연상녀-연하남의 유행이 외교부에도 영향을 주어, 연상 선배 여자 외교관이 연하 후배 남자 외교관과 결혼하는 사례는 늘어날 것 같습니다. 이미 발생하였지요.^^;;
ㅋㅋㅋ 그런 경우도 있군요. ^^
너무 아름답네요 ^^ 박은하 외교관님처럼 현명하고 가슴이 깊은 부인을 두신 남편분은 행복하시겠어요.
감동입니다 ^-^
한참 어린 제가 이런 평가를 내리는 것이 외람되지만 대단히 현명한 여성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자라면 한번은 이 문제로 고민해보셨을테고 저도 결혼은 물건너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박은하 외교관님처럼 생각할 수 있다면 충분히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듯 하네요~ ㅎㅎ 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힘든 상황을 다 이해하고 함께 같은 길을 갈 수 있는 남편분을 만나신 게 정말 부럽습니다~ㅎㅎ
감동입니다.
너무 잘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