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 김종윤
자식들 기르며 앞만 보며 살아왔는데
나이 들어 친구들과 함께 간 노래방
글씨 모르는 걸 들킬까봐
마이크도 한 번 잡지 못했다
이곳에 이사 와 붂러움 던져버리고
한글 공부 시작했지
한 자 한 자 알아가니
거리의 간판 글씨가 눈에 쏙쏙
남편 칠순 잔치
마아크 들고 자신 있게 노래하며
가슴이 벅찼던 그때의 기쁨
새로 태어난 것 같은 행복 세상
새로운 하루의 시작 / 최천례
가난 때문에 딸이기 때문에
살아온 70년 까막눈에서 눈물이 난다
책을 보면 모두 검은색
답답한 가슴을 치며 부끄러워 숨는다
한글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가나다라마사아자차카타파하, 하하!
눈이 뜨이고 입이 열였다
이제는 책을 펴면
꽃이란 글자에서 향기가 나고
라무라는 글자에서 가지가 뻗고
행복이란 글자에서 웃음이 핀다
책을 보면
새로운 하루의 무지게가 떠오른다
눈이 뜨이고 입이 열리면
나무가 가지를 뼏는군요
바람과 햇살이 찾아오고,
새들이 찾아와서 세상으로 뻗어자는
새잎 피는 나뭇가지,
그 나뭇가지에 앚아 새가 울겠습니다
전화번호부 / 유점례
우리 집 방 안에 외로운 책 한권
전화번호부 쓰임은 냄비받침 뚝배기 받침
어느 날 손에 쥔 한글 공부 책
친구 되어 나란히 걷게 되었네
내팽개친 받침은 새로 태어나
지식들과 소통하는 길이 되었네
때늦은 공부 / 김용녀
여든하나
난생처음 글로 써보는 내 나이
어릴 적 공부도 못하면서
월사금만 가져간다고
큰오빠가 책을 홀라당
불구덩이에 던져버릴 땐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데
서른아홉 혼자되어 아들 셋 키워보니
공부 안 한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네
벌어먹고 사느라 공부는 엄두도 못 내고
이 늙은 나이에 한 자라도 배워
동네 식당 간판이라도 읽고 싶어
시작한 때늦은 공부
어느 날
'송강'이라는 간판을 읽고 있는
나에게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벽에 붙은 한글이랑 구구단도
눈에 환히 들어온다
이제는 아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어
오늘도 여덟 칸 공책에다
침 묻힌 몽당연필로 아들 이름 동네 이름
꾹꾹 눌러 써본다
눈 감으면 / 박옥남
눈을 감으면
어린 옥남이가 뜨오른다
가난한 부모님
기성회비
학교
눈물
모두 서럽다
이제는 눈을 감지 않는다
아니
감을 수가 없다
깨알 같은 글자가
내 눈 속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눈을 감으면 오늘 배운 글들이
머릿속에서 자꾸 숨박꼭질한다
그러다 영영 숨어버릴까 눈을 안 감는다
서러움 맣던 어린 옥남이는
이제 글밭을 찾는다
언젠가 글꽃이 피길 바라며......
한글이란 치료제 / 유형임
한글은 심장약이다
깁갑한 가슴
답답한 가슴을
숨쉬게 해주기 때눈이다
한글은 관절염 약이다
손마디가 비틀어져
쑤시다가 연필을 잡으면
안 아프게 해준다
앚았다가도 일어서기
싫은 나이
팔십하고도 셋의 나이에
한글은 치료제다
별 / 이현정
어릴 적 나의 모습 속에서
검정 고무신
꼴망태만 기억에 남아 있다
학교 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뒷산 바위에 앉아 엉엉 울기도 했다
우는 나에게 어머니는 매를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십이 넘어 소원이었던 공부를 하게 되었다
처음 자전거 타고 학교에 왔을 때
학교는 하늘에 있는 별같이 보였다
출석을 ㅂ르시는 선생님은
제일 예쁜 꽃을 보는 것 같았고
부끄럼 없이 살아온 나에게
학교라는 선물은 나를 더 빛나게 한다
나의 행복 / 변상철
식은 밥 한 덩이 훔쳐 먹다
하루 종일 두들겨 맞던 고아원 시절도
공부시켜주고 호적에 올려준다더니
십 년을 소처럼 일하고 매타작당하던 시절도
그냥 그렇게 사는 걸로만 알았다
나이 오십이 넘도록 글도 몰라
자격증도 못 따고
은행도 병원도 마음대로 못 갔지만
그것도 그렇게 사는 거지 싶었다
이제 조금이나마 글을 배우고 보니
남들과 말도 통하고 간판도 눈에 들어오네
글씨가 삐뚤삐뚤 못나도 부끄럽지 않다
요즘은 길을 걸어도 밥을 먹어도
그냥 행복하다
나의 인생살이 / 김영기
높은 산 고목처럼 살아온 내 인생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도 받지 못하고
남편의 사랑도 바람같이 날아갔네
글 몰라 가슴 치고 돈 없어 가슴 치고
70년 인생길 돌아보면 후회도많아
산에 피는 진달래꽃은 예쁘기나 하지
내 얼굴의 주름은 굽이굽이 접혔네
푸른 강산 건너다 보니
세월 따라 흐르는 인생길 허무해도
기억 니은 배운 공부 내 마음에 가득하네
나는 행복한 여자 / 최복심
내 평생 가슴 한켠
글 못 배운 설움 알고
사위가 보내준 한글교실
동생 업고 병원 가던 날
글 몰라 눈치 보다
이리저리 치이고......
친구들은 책보 메고
까막눈은 동생 업고
처량하게 숨었네
하루하루
끼니걱정, 방세 걱정
안 해본 일 없는데......
단 하나
글 배우는 것
못했네
육십삼 년 처음 만난
가, 나, 다, 라
너무 좋고 감사하네!
손자 손녀 책 읽어주고
사랑 문자 주고받으니
너무 좋고 행복하네!
오, 홍천 / 한미숙
눈이 있어도 볼 수 없어
혼자서는 어딜 가본 적이 없었어요
글을 익히고 배우던 중
강원도 홍천에 다녀올 일이 생겼지요
평택에서 수원, 수원에서 홍천
홍천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곳
혼자서 잘 찾아갈 수 있을까?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는 건 아닐까?
두근두근 방망이질하는 가슴을 누르며
천천히 글자를 보고 버스를 탔어요
드디어 눈에 들어온 '홍천시외버스터미널'
볼일을 보고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하루가 정말 꿈만 같았지요
자신감을 안겨준 첫 나들이길
홍천을 결코 잊지 못할 거예요
카페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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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 김종윤 외 10명
붉은 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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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06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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