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가장 약한 존재들 여전히 아픔 호소하고 있어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마지막 미사봉헌과 장례를 치르고 모처럼 여러 신부님들이 쉬고 있겠다 싶지요?
그런데 지금 경기도 양평 수원교구에서는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며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윤종일 신부님께서 2주 가까이 단식을 하고 계시고, 저 멀리 바다 건너 제주교구에서는 일방적으로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에 항의해 주민들과 함께 제주교구 신부님들도 연행되었습니다. 신부님들은 석방되었지만 주민들이 경찰서에 유치되어 강우일 주교님께서 그분들 면회도 하셨답니다.
지난 21일(목)에 서울 병원에 검진 받으러 간 김에 양수리에 가서 윤종일 신부님을 보고 왔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자연과 우주, 해와 달, 물과 불을 한 핏줄로 여기셨습니다. 하느님의 피조물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서로 자매형제이며 그들에 대한 섬김과 나눔의 삶을 사는 것이 참된 영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그 영성을 따르며 ‘교회와 세상 안에서 효과적인 현존’이라는 사목방향을 지닌 프란치스칸으로서 윤종일 신부님에게 자기 눈앞에서 펼쳐지는 4대강 파괴 사업은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엄동설한에 단식이란 얼마나 혹독한 것입니까. 더구나 단식하다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큰 수술을 받은 저 같은 본보기 선배신부도 보았으니 장기간 단식이란 또 얼마나 두려운 것입니까.
4대강 개발로 죽어가는 생명의 소리와 함께 쇠약해진 윤종일 신부님을 보고 있자니, 멈추라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계속 하라 하기도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곡기를 끊어서라도 탐욕과 죽음의 질주를 향해 저항코자 하는 그 진심을 누구보다 잘 알겠고, 또 한편으론 장기단식이 자칫 큰 어려움을 가져올 수도 있음도 잘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천주교인들에겐 묵주가 있지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 천주교인들에게 아주 소중한 필수품입니다. 불가에는 염주가 있지요.
아무튼 그것들은 둥글게 생겼고, 우리는 서로 묶여있는 알들을 천천히 빙글빙글 돌려가며 기도하고 묵상합니다. 둥근 형태의 묵주는 일치와 공동체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묵주는 영구한 건 아닙니다. 사용하다 끊어질 수 있습니다. 끊어지면 더 이상 묵주로서 자기 역할을 하기 힘듭니다.
묵주가 왜 언제 끊어질까요? 체인이나 고리 같은 것들이 왜 언제 끊어질까요? 그 많은 것들 중 딱 하나, 아주 약한 부분이 끊어질 때 전체가 영향을 받습니다.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붕괴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선 과연 그분이 꿈꾸는 공동체, 추구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이사야 예언자의 말을 들어 선포하십니다.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이 실감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같은 뜻을 사도 바오로가 아주 잘 이해하며 공동체에 설득력 있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공동체 안에서 약한 것들과 덜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들, 점잖지 못하고 모자라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특별히 더 돌보고 감싸야 한다고 말합니다.
묵주고리에서 가장 약한 부분이라 할 이 존재들을 무시하고 억압하고, 결국 그 대가는 공동체 전체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배제하고 방치한 채 그 누구도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니 구원의 섭리니 하는 것들을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존재들이 여전히 우리들에게 아픔을 호소하고 돌봐달라고 애원하고 있습니다.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지키기 위해 막무가내 지자체와 국방부를 힘겹게 상대하고 있는 강정마을 사람들, 인간 탐욕에 무자비하게 희생당하고 있는 자연, 가난한 사람들, 머무를 곳 없이 떠도는 사람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
우리 시대, 우리 사회의 약한 사람들이 튼튼하고 강하게 되게 해달라고, 다른 지체의 호소와 고통이 우리 자신의 것임임에 눈 뜨고 마음 열게 해달라고, 묵상하며 말하고 선포합시다.
반복해서 듣고 말하고 선포하고 행동하면, 분명히 하느님 나라, 예수님의 꿈, 사도 바오로의 소망이 성취될 것입니다.
그 여정에 초대받은 우리의 특권과 책임이 더욱 실감나고 의미 있을 것입니다. 말씀이 거룩한 계시가 되어 우리 삶 한 가운데서 생생하게 살아나고 성취될 것입니다.
문규현 신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