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명소 순례 :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Museo del Prado)
답사지 : 프라도 미술관 (Museo del Prado) 장소 : Madrid, Spain 일자 : 2010년 3월 24일 동행 : 한진관광 여행팀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Museo del Prado) 개요
답사메모
마드리드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왕궁에 들린 후 다음 코스로 프라도 미술관을 찾았다. 프라도 미술관은 8000점이 넘는 방대한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어
프라도 미술관에는 유럽 미술사에 길이 남을 거장들의 화폭이 현란하게 펼쳐져 있는터라
미술관 주변
미술관(우측 건물)으로 들어가는 길
무슨 특별전을 하는 모양이다.
입구에 있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동상
동상 아래에는 그가 사랑했던 여인이었을 모델의 그림인 "옷을 벗은 마하"의 조각이 있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이 여기서 사진 한장씩 찍는다.
주요 작품
우선, 현대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프라도의 영웅으로 일컬어지는 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Goya, 1746~1828)의 작품으로는
이 중에 꼭 보아야 할 작품들을 대충 정리해간 터라 가이드 따라 다니면서도 잠시간 시간을 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말로만, 사진으로만 보던 세계적인 명작의 진품을 바로 앞에서 내눈으로 본다는 것은 미술에 눈이 어두운 사람에게도 꽤 흥분되고 특별한 감동이 밀려 들었다...
이번에 감상하고 온 작품 중 특히 기억에 남는 몇몇 작품들을 인터넷을 통해 상기해 보았다.
(사진 위를 누르면 일부사진은 확대)
고야, "카를로스4세의 가족 (La Familia de Carlos IV)" 고야는 낭만주의의 선구자로 14세때부터 그림을 공부하여 나중에 카를로스 4세의 궁정화가가 된다. 위 그림에서는 사치스럽고 그리 능력없던 카를로스 4세를 비꼬기 위해 여러 훈장들을 오른쪽에만 치우치게 그리고, 뒤에서 외면하며 이들을 냉소적으로 쳐다보는 화가가 바로 고야 본인이다. 이러한 작가의 사상이나 시대정신이 뭍어 있기에 더 명작이 되는게 아닐까? 고야, 알바공작부인 (The Duchess of Alba, 1795) 고야와 연인관계이었다는 통설이 있는 스페인 명문귀족인 알바 공작부인의 초상 그러나 그저 예술가와 의뢰자의 평범한 관계이었다는 추측도 있다.
고야, 알바공작부인 반지에 각각 "Alba"와 "Goya"가 적혀있다고 해서 가까이서 보았으나 작아서 확인이 안되었다. 단지 "오직 고야 (solo Goya)"라고 적힌 바닥을 가르킨다고 해서 보니 흐릿하나마 그리 보인다.
(사진 위 누르면 큰 사진) 고야, 옷을 벗은 마하 (La Maja Vestida) 프라도 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그림이다. 현대인에게도 예술적 가치보다도 요염한 관능미에 보다 더 시선을 빼앗긴다. 요즘은 고야가 그저 몰래 상상해서 그린 그림이라는 설, 모델의 모습이 정숙한 상류층의 여자가 아닌 것 같아보여 몸과 얼굴의 여자가 서로 다르다는 설 등 등
고야, 옷을 입은 마하 (Clothed Maja, 1800-03, oil on canvas)
고야, 5월2일 El Dos de_ Mayo de 1808 en Madrid, 1813년 고야, 몽클로아의 총살 5월 3일, 1814년
고야 작품 다음으로 관람객들이 많이 찾는 작품은 벨라스케스일 것이다. 벨라스케스는 펠리페 4세의 궁정 화가가 되어 펠리페 4세를 비롯한 왕족들의 그림을 많이 남겼다. 브레다 성의 항복 (La Rendicion de Breda o las Lanzas)도 유명한 작품이다.
벨라스케스( Velazquez), 직녀(실짜는 여인들)The Spinners (The Fable of Arachne), 1657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제로 한 것으로 오른쪽 흰 블라우스 입은 여인이 아테네에 도전한 직조기술이 뛰어난 아르크네이고, 왼쪽 노파가 변신한 아테네. 뒷쪽의 다른 무대에서도 아테네와 나중에 거미로 변한 아르크네가 묘사되었다는데 잘 모르겠고. 또한 이 그림은 당시 포르투갈과 까딸루냐가 에스파냐에 반기들 든 상황을 은유한다는 이야기 등 꽤 내용이 어려운 작품이다.
벨라스케스는 후세의 많은 화가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같은 스페인 출신의 피카소도 벨라스케스를 너무 존경하여 아래의 <시녀들>의 주제만 가지고 수많은 탐구와
(그림 위 누르면 대형 사진) 벨라스케스 (Velazquez), 시녀들 (Las Meninas) 이 그림은 벨라스케의 대표작으로 너무 유명하여, 인터넷을 찾아보면 많은 설명이 있다. 중앙에 왕위계승자인 마르가리타 공주, 왼쪽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궁정화가인 벨라스케스 본인, 시녀 둘이 공주 양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고 화면 오른쪽에는 남, 여 난쟁이가 있어 공주와 비교된다. 거울속에는 국왕부부가 비춰지고 있다.
벨라스케스 (Velazquez), 브레다 성의 항복(La Rendicion de Breda o las Lanzas) 1625년 네델란드의 브레다 성이 스페인에 함락되는 장면 패한 군대의 남루하고 비굴해 보이는 모습에 비해 스페인 군대는 화려하고 힘차보인다 (말까지도)
엘 그레코(El Greco,1541년? - 1614년)는 그리스에서 태어난 스페인 화가로. "엘 그레코"는 에스파냐로 올 때 "그리스인"과 같다고 해서
스페인 회화의 3대 거장 중의 한 사람으로 프라도 미술관에도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표작으로 볼 수 있는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톨레도 산 토메 교회에 걸려 있다. (톨레도 편에서 소개)
엘 그레코, 가슴에 손을 얹은 기사 (El Caballero de la Mamo en el Pecho) 엘 그레코의 작품 가운데 최고의 수작 중의 하나이다. 세째 네째 손가락을 붙여 그리는 것은 무슨 종교적 의미기 있다고 한다.
그리고 주요 작품 들
안젤리코, 수태고지 (Anunciacion) 대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와 성령으로 인해 수태하게 될 것을 전하는 내용의 그림. 기둥 위의 하느님도 수태고지의 장면을 내려다 보고 있다.
귀도 레니(Guido REN), 아틀란타와 히포메네스(Atalanta and Hippomenes, 1612 황금사과를 줍느라 경기에서 진 아틀란타.
루이스 데 모랄레스(Luis de Marales), 성모자 (Virgin con el Nino)
무리요, Virgin and Child with a Rosary 무리요는 17세기 스페인에서 가장 인기를 누렸던 바로크 양식의 종교화가로서
피테르 브뢰겔( Peter Brugel), 죽음의 승리(The Triumph of Death), 1562 왼쪽 윗부분에서 죽음이 신나게 조종을 울린다. 그 아래 납골당에 일렬로 늘어선 죽음의 오케스트라가 팡파르를 울리고, 성탑 앞으로 비루먹은 말을 탄 기사가 커다란 낫을 휘두르며 하찮은 인생들을 수확하고 있다.
화면 아래에선 이렇게 생자와 사자의 결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화면 위쪽에서는 포로들의 고문과 처형극이 벌어진다. 교수형, 참형, 그리고 바퀴로 으깨는 잔혹한 처형으로 희생된 시체들이 여기저기 녈려 있다. 화면 왼쪽 끝의 지평선은 지상에서 타오르는 불길로 벌겋게 달아 있다. 이 작품은 당시에 벌어졌던 어떤 학살을 암시하고 있다. 당시 1533년 이래로 플랑드로 지방은 스페인/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었다. 특히 스페인 황제 필립2세는 칼뱅주의 개신교 발흥을 막기 위해 종교 재판을 이전보다 더 강화하여, 1566년에는 6000여 명의 시민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고 한다. 당연히 시민들의 저항도 거세졌고, 드디어 같은 해 9월 시민들의 폭동이 일어난다. 이들은 교회에 불을 지르고, 수도원을 약탈하고, 성화를 찢고 성상을 내던져 깨뜨려버렸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필립2세의 반응은 단호했다. 그는 롬바르디아에 있는 연대 병력을 즉각 출동시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 시기에 희생당했는데, 브뤼겔은 1568년에 이 작품을 그림으로써 스페인 학살자들의 고발자가 된다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의 이야기 (4연작중 제1편) - 사랑을 거절한 여인을 쫓아와 죽이는 기사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의 이야기 (4연작중 제2편) - 여인을 죽이고 내장을 꺼내 개에게 던져주는 기사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나스타조 델리 오네스티의 이야기 (4연작중 제3편) - 나스타조가 사랑하는 여인을 초청한 파티에 기사와 쫓기는 여인을 나타나게 한다.
제4편은 프라도 미술관에 없고 다른 곳에 개인 소장품으로 있다고 한다. 4편에서는 겁먹은 여인이 나스타조에게 결혼을 승락하게 된다.
이 그림은 미술관 출입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므로 가이드가 안내하지 않더라도 잠시만에 보고 올수 있다.
스페인 명소 순례 :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Museo Picasso) 답사지 : 피카소 미술관 (Museo Picasso)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 (Museo Picasso) 개요
답사메모
마드리드에서 포르투갈을 거쳐 바르셀로나로 날아 왔다. 한진관광의 여행은 항공기 이동이 많아 시간을 효과적으로 쓸수 있어 좋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안토니오 가우디의 독특한 건축물과 피카소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예술의 도시이다.
피카소 미술관은 파리에 있는 것이 크기는 하나, 피카소를 그림에 입문하게 한 역사성이 있는 동네에 피카소 본인이 작품을 직접 기증하여 개관한 미술관 주변
이곳 피카소 미술관은 다른 유명 미술관과 사뭇 다르다.
피카소가 살던 시절의 모습과 크게 바뀌지 않은 듯한 동네의 모습 좁은 골목길에 건물 베란다에는 빨랫감이 널려 있다. 이 골목을 따라가다가 피카소 미술관을 만났다.
흐름한 건물 벽면에도 예사롭지 않은 그림이 붙어 었다.
피카소 미술관 입구
미술관 벽에 걸린 피카소의 노년 모습
주요 작품
1881년 스페인의 남부 말라가에서 태어난 파블로 피카소(Pablo Luiz Picasso)는 미술교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14살에 바르셀로나로 이주하여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이후 19세 때부터는 그림 공부를 위해 마드리드, 파리 등으로 옮겨 다니다가 23세 때인 1904년부터는 파리에서 정착해 살았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피카소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하였으며, 13살 때에 그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이 미술관에는 그의 유년, 소년, 청년 시절의 스케치나 낙서, 습작, 밑그림을 다수 소장하고 있으므로
아래에는 이번 여행에서 유심히 보고 왔던 작품 중에서
과학과 자비 (Science and charity), 1897, 16세때 전국미술전에 출품 이 그림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마드리드로 떠난다.
자회상, 1896
첫 영성체, 1896, 15세때작품 15세의 작품이라고 볼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고 정교하다.
시녀들(las meninas), 1957 피카소 후기의 작품으로 프라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50점의 연작이다 이 작품은 ‘피카소 회화의 신학’이라고 까지 불리며 이와 같이 대가 피카소도 끊임없이 분석하고 탐구함으로서 비로소 자기의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시녀들(las meninas)연작 중의 일부
비둘기(Pigeons) 연작 (1957) 비둘기 연작도 모두 8점으로 그려졌으며
Quatre Gats menu (1899) 까탈로냐 광장 주변에 있는 카페 꽈뜨레 갓츠. 고양이 네 마리라는 뜻의 이 카페는 피카소가 단골로 드나들었던 곳이고
Seated man (1969)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아쉽게 이번에 들르지 못한 곳이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이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겨우 10분 거리에 있는데... 페키지 여행이라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미술관은 피카소의 가장 대표작인 게르니카로 유명하다. 사진으로나마 잠시 감상해 본다.
게르니카(1937), 크기 349x775 cm
게르니카는 스페인 바스크지방의 작은 도시로, 1937년 스페인 내란 중 프랑코를 지원하는 독일의 무차별 폭격에 의하여 폐허가 되었다. 이 작품은 파리만국박람회를 비롯하여 구미 여러 나라에서 순회전을 가졌다. 비극성과 상징성에 찬 복잡한 구성 가운데 전쟁의 무서움, 민중의 분노와 슬픔을 격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상처입은 말, 버티고 선 소는 극적인 구도와 흑백의 교묘하고 치밀한 대비효과에 의해 죽음의 테마를 응결시켜 20세기의 기념비적 회화로 평가된다. (인터넷 사전에서)
- Spanish Rose - Ed Calle |
출처: Wonderful World 원문보기 글쓴이: 戊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