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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소부리 꿈틀 원문보기 글쓴이: big brother
1993년 12월 12일 국립부여박물관에 의하여 백제 나성<羅城>과 능산리 고분군 사이 논바닥
제3건물지 중앙칸 서쪽의 한 구덩이에서 출토된 이 향로는 금동광배편 등 450여점의 유물과 함께 수습되었다.
전체 높이가 64㎝나 되는 대형 향로로, 크게 보아 몸체와 뚜껑으로 구분이 된다. 그러나 별도로 부착한 봉황장식과 받침대를 포함해서는 네 부분으로 구성됨을 알 수 있다.
3단의 외반<外反>된 연꽃잎들로 장식된 몸체는 마치 활짝 피어난 한송이의 연꽃을 연상케하며 받침대는 이 연꽃송이의 밑부분을 입으로 문 채 하늘로 치솟듯 고개를 쳐들어 떠받고 있는 한 마리의 용으로 되어 있다.
몸체의 각 연잎 표면에는 가릉빈가(불사조<不死鳥>)와 물고기,
기타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하나씩 양각되어 있고,
뚜껑에 배치된 23개의 산들은 4∼5단으로 첩첩산중을 이루어 심산유곡<深山幽谷>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피리와 소, 비파, 현금, 북을 연주하고 있는 진악인물상<秦樂人物像>을 비롯하여 택견무인상과
기마무인상<騎馬武人像>, 기마수렵상(騎馬狩獵像), 코끼리를 탄 인물, 책을 보는 인물,
그리고 산양<山羊>과 호랑이, 새, 원숭이, 멧돼지 등 현세의 동물과 신수<神獸>, 서조<瑞鳥>,
폭포, 나무, 불꽃무늬 등 약 100여가지의 문양들이 변화무쌍하게 표현되어 있는 뚜껑 꼭대기에
별도로 부착된 봉황은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고서 날개를 활짝 편 채 힘있게 서 있는데,
길게 약간 치켜올라간 꼬리의 부드러움은 백제적인 특징이라 하겠다.
한편 봉황의 앞가슴과 악기를 연주하는 인물상들 앞뒤에는 5개씩의 구멍이 뚫려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몸체에서 피어난 향연<香煙>이 빠져나올 수 있도록 하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경이적인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이 향로는 중국 한대<漢代>에 유행한 박산로<博山爐>의 영향을 받은 듯 하지만 중국과는 달리 산들이 독립적·입체적이며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전체적으로 보아 창의성과 조형성이 뛰어나고 세부표현에 생동감이 넘쳐 흐르는 이 향로는 제조기법 또한 뛰어나며,
불교와 도교가 혼합된 종교와 사상적인 복합성까지 보이고 있어 백제시대의 공예와 미술문화,
종교와 사상, 제조기술까지도 파악케 해 주는 귀중한 작품이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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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나성과 능산리 무덤들 사이 절터 서쪽의 한 구덩이에서 450여점의 유물과 함께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높이 61.8㎝, 무게 11.8㎏이나 되는 대형 향로로, 크게 몸체와 뚜껑으로 구분되며 위에 부착한 봉황과 받침대를 포함하면 4부분으로 구성된다.
향로란 : 향로는 고대 동양의 인도, 중국등 여러 나라에서 냄새의 제거, 종교의식, 그리고 구도자의 수양정진을 위하여 향을 피웠던 도구이다.
대략 2천 년 전에 바다를 상징하는 받침접시(이것을 승반이라 함) 위에 한 개의 다리와 겹쳐진 산봉우리 형의 몸체를 갖춘 박산향로가 만들어 졌고 이것이 향로의 기본 형태이다.
박산향로는 당시 중국의 산악숭배, 무속, 불로장생 사상, 무위사상, 음양사상 등을 쫒는 신선사상이 조형적 배경이 되었다.
박산향로는 우리나라에도 전래된 듯 하나 부여 능산리 절터 유적에서 백제금동대향로가 출토되기 이전에는 알려진 예가 없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승반과, 하나의 다리를 대신하여 머리를 들어 올린 용을 조각하여 받침을 삼았고, 그 위에 산을 표현하였으며, 꼭대기에는 봉황 한 마리가 서 있어 외형적으로는 신선사상의 지향처인 삼신산을 가리킨다는 박산향로의 형식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 향로는 높이가 64cm나 되는 유례없는 대작인데다가 용과 봉황의 비중이 상당히 두드러져 있다. 그리고 박산이라는 명칭이 중국적인 체취가 남긴 이름이므로 여기서는 우리 선조들에게 삼신산 중에서 가장 오래도록 친근하게 불리워 온 봉래산(逢來山)이란 이름을 붙여 백제금동용봉봉래산향로(百濟金銅龍鳳逢來山香爐)로도 불리게 되었다.
형태 : 이 향로의 외형적인 구성은 '연화화생'이라는 불교관과 깊은 관련을 보이고 있다. 연화화생이란 연꽃이 만물을 화생, 즉 성서로운 조화로서 다시 탄생시킨다는 불교적 생성관으로 저승에서는 모든 존재가 화생이라는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극락정토에서의 화생은 오로지 연꽃을 통하여 만물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물이 연꽃에 의하여 탄생될 때에는 빛을 뜻하는 불꽃이 먼저 발산된다고 한다.
이 향로에서 연봉오리, 또는 보주형으로 나타낸 몸체는 결국 연꽃 모양인데 이 연꽃은 연화화생의 기운을 뜻하는 불꽃과 함께 한대 전통의 박산, 즉 여기서는 봉래산이란 신비로운 삭악으로 솟 아오르고 있다. 여기서의 불꽃들은 뚜껑과 향로의 몸체 사이에 있는 잔 무늬와 산악의 능선마다 테를 두르며 그 안에 빗금 무늬로서 표현되어 있다. 또 전체의 산악들은 지금도 화생이 계속되어 마치 작은 나무와도 같은 33곳의 작은 봉우리들의 능선 테두리에도 역시 불꽃을 의미하는 빗금무늬가 빠짐없이 표현되어 있다.
이러한 연화화생에 의하여 봉래산을 탄생시키는 표현은 공주 무령왕릉에서 나온 은잔이나 부여 외리 출토 '산수무늬 벽돌', '산수봉황무늬 벽돌' 그리고 청풍에서 나온 '활석제 불보살병립상'에서도 공통적인 예를 볼 수 있어 당시 백제에서는 불교의 연화화생에 의한 조형원리가 널리 적용된 듯하다.
그러나 이 향로에서 표현하고자 한 내용과 주제는 한 대의 향로에서 볼 수 있던 봉래산을 중심으로 한 신선의 세계이다. 향로의 꼭대기에서 날개를 활짝 펴고 서 있는 봉황은 봉래산에 살고 있는 상서러운 전설의 새이며 천하가 태평할 때 세상에 나타난다고 한다. 이 봉황의 속성 가운데 하나가 저절로 노래하고 저절로 춤을 춘다고 하여 예로부터 춤과 음악에 흔히 동반된다. 이러한 봉황의 노래에 귀를 기울인 듯 5마리의 원앙새(또는 기러기)의 시선과 동작이 봉황을 향하고 있으며, 신선계의 악사들도 봉황을 맞아들이기라도 하듯 각기 다른 악기로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산중의 신선들은 명상에 잠기기도 하고, 낚시도 하며, 머리도 감고, 말을 타고 달리거나, 수렵을 즐기기도 한다.
이 향로 뚜껑에는 74곳(41곳의 능선을 가진 산과 화생중인 33곳의 산)의 봉우리와 봉황, 용을 비롯한 상상의 날짐승과 길짐승, 현실세계에 실재하는 호랑이, 사슴, 코끼리, 원숭이, 멧돼지 등 39마리의 동물과 5인의 악사, 산중의 신선 등 16인의 인물상이 표현되고 있다. 이밖에도 6군데의 나무와 12군데의 바위, 산중턱을 가르며 난 산길, 산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잔잔한 물결까지 나타낸 호수가 있다. 또 향로의 몸체를 싸고 있는 연꽃잎들에는 두 신선과 날개 달린 물고기를 비롯한 수중생물, 물가의 생활과 밀접한 것으로 여겨지는 사슴과 학등 26마리의 동물이 보여 결국 이 향로 전체에는 신선으로 보이는 인물 18인, 동물 65마리가 표현되고 있는 셈이다.
가치와 의의 : 백제금동대향로는 중국향로의 형식을 바탕으로 하였으나 조형성이나 회화적인 구도는 오히려 중국을 뛰어 넘는 탁월한 예술적 감각과 독창성을 발휘하고 있다. 이 향로는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정치적 안정을 되찾은 7세기초에 백제인들의 정신세계와 예술적 역량이 함축되어 이루어진 백제 공예품의 진수라 할 것이다. 그리고 불교와 신선사상이라는 동양인의 사고체계를 형성한 장엄한 두 바퀴가 불꽃처럼 어우러져 성취된 백체인들의 세련된 공예문화요, 화생예술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