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 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
신라 시대 6세기경에 청도 호거산 운문사를 중심으로 한 다섯 갑사 중 하나로 세워진 소작갑사(小鵲岬寺)가 전신이다. 대비사는 대비갑사(大悲岬寺)로도 불리는데, 고려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 이름을 대비사(大悲寺)라고 한 것은 불교의 대자대비(大慈大悲)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일설에는 당시 신라 왕비가 수양 차 이 절에 와서 오랫동안 지냈기 때문에 소작갑사를 대비갑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초창은 신라 시대로 추정되는데 청도군의 오갑사 창건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여러 기록들에 따르면 566년(진흥왕 27)에 한 신승(神僧)이 세우고 600년(진평왕 22)에 원광 법사(圓光法師)가 보수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후삼국의 난리에 없어졌다가 고려 시대 이전에 박곡리 마을에 있었던 절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오며 중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운문사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호거산(虎踞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560년(진흥왕 21) 한 신승(神僧)이 대작갑사(大鵲岬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고, 591년(진평왕 13) 원광(圓光)이 크게 중건하였다. 원광은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지어 이곳에서 아주 가까운 가슬갑사(嘉瑟岬寺)에서 귀산(貴山) 등에게 주었다고 전한다.937년(태조 20)에는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후삼국의 통일을 위해 왕건을 도왔던 보양(寶壤)이 중창하고 작갑사(鵲岬寺)라 하였으며, 이 때 왕이 보양의 공에 대한 보답으로 쌀 50석을 하사하고 ‘운문선사(雲門禪寺)’라고 사액한 뒤부터 운문사라고 불렀다.
1076년(문종 30)에 원응국사(圓應國師)학일(學一)이 중창했으며, 1105년(숙종 10)에는 원진국사(圓眞國師)가 송나라에서 천태교관(天台敎觀)을 배운 뒤 귀국하여 이곳에 머물면서 중창하였다. 그 뒤 조선시대에 들어와 1690년(숙종 16)에 설송(雪松)이 중건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임진왜란 때 당우 일부가 소실되었으나, 현재 대웅보전·작압전(鵲鴨殿)·미륵전·오백나한전·금법당(金法堂)·만세루(萬歲樓)·관음전·명부전·강원·요사채 등의 옛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전체 17동의 전각이 있는 큰 사찰이다. 이 중 대웅보전은 보물 제8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193호로 지정된 금당 앞 석등을 비롯하여 보물 제316호로 지정된 원응국사비(圓應國師碑), 보물 제317호로 지정된 석조여래좌상, 보물 제318호인 사천왕석주(四天王石柱), 보물 제678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보물 제208호로 지정된 동호(銅壺) 등이 있으며, 오백나한전 안의 나한상은 보기 드문 작품이다.
대웅전 앞에 있는 2기의 3층석탑은 대웅전이 위치한 자리의 지세가 행주형[行舟形: 전복되기 쉬운 배 모양]의 흉맥이라 하여 그 지세를 누르기 위해서 양쪽에 탑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만세루는 조선 초기의 건물로 우리나라 사찰건물 중 가장 큰 것이라고 한다. 입구에 천연기념물 제180호로 지정된 처진 소나무가 있다.
부속 암자로 절의 동쪽에 청신암(淸神庵)과 약수로 이름난 내원암(內院庵), 북쪽에 북대암(北臺庵), 동남쪽에 사리암(舍利庵), 서쪽에 호거암(虎踞庵)이 있다. 이 절은 1958년 불교정화운동 이후 비구니 전문강원으로 선정되어 승려교육과 경전연구기관으로도 유명하다.
대적사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송금리 동학산 기슭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9 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
2017년 정유년
첫 108사찰순레 삼사순례입니다.
회원님의 많은 동참 바랍니다.
총 무 이영숙 010-9124-3795
회 장 정환대 010-4539-5151
부회장 이복자 010-2803-3854
***차량 출발지가 오천에서 도구면사무소앞으로 변경 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참석 하실분은 회비 30,000원 선입금 부탁드립니다.
농협 정환대
356-0892-557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