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란 시인이 읽은 세상의 소리 없는, 소리 낼 수 없던 고통이다. 그러나 시를 소리 없이 눈으로 혹은 머리로만 읽을 때는 그 깊은 곳까지 다가갈 수 없다. 시가 깊은 우물이기 때문이다. 우
물은 그 자체로는 고요하기에 누군가 그 안에 울림을 만들어줘야 비로서 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인이 느낀 세상의 아픔을 공감하고, 내 고통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기 위해서 시인이 파놓은 깊은 우물에 대고 소리를 내어본다. 그리하여 우리의 영혼이 시로 인해 정화되는 신성한 공감의 시간을 나누게 된다.
이 주 전 나는 몇몇 시인들을 모시고 독자와 함께 시를 낭독하는 모임에서 사회를 보았다. 사회자의 입장으로 무대 위의 시인들과 무대 밖의 청중들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되었다. 그 중 하나가 낭독을 통해 낭독자와 청중이 하모니를 이룰 때, 시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채우는 더욱 소중한 친구가 되리라는 믿음이다.
그 날 신경림 시인은 월북 시인인 이용악 시인의 슬픈 사람들끼리’를 낭독해 주셨다. 슬픈 사람들끼리’의 시어 하나하나가 소리의 실에 꿰여 무대 밖 후미진 자리로 까지 전달되는 동안 그 많던 청중들은 숨소리마저 죽이고, 이제 헤어져도 행여 다시 못 볼 수도 있는 얼굴 웃으며 헤어지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시를 체험했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시인 신경림 시인이 존경했다는 이용악 시인의 삶이 녹아든 시어가 신경림 시인의 마음에서 솟아나 입 밖으로 흘러 흘러 마지막 구절인 ‘웃음으로 웃음으로 헤어져야 마음 편쿠나 슬픈 사람들끼리’에서 멈추었을 때, 누군가의 서러운 한탄(恨歎)의 낮고 긴 한숨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 민요에 관심이 많은 신경림 시인은 근래 들어 시가 본연의 운문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양식의 산문체가 되어가는 경향에 대해 개인적인 우려를 드러내셨다. 시란 인류의 노동이 시작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 만큼 장구한 역사를 지녔는데, 그 때 시는 노래처럼 흥얼거릴 수 있어 노동을 하는 동안에도 그 시름을 즐거움으로 전화시키는 순기능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해 주셨다. 현대인들이 점점 시를 어렵게 생각하고 시에서 멀어지는 작금의 현상도 시가 본령에서 멀어지고 머리로 사유하는 난해시가 그럴싸한 시로 칭송되는 문화적 현상에 기인한다고 한다. 21세기 들어 각 문예지와 일간지 신춘문예 시 부문 응모작을 보면 내재된 운율을 잃은 산문적인 시가 주류를 이룬다고 한다. 산문은 본디 소리를 전제로 한 문학 장르가 아니다. 그래서 시와는 그 기능도 다르다. 그런데 시가 산문처럼 길게 늘어지게 되면 압축의 미를 잃고 리듬과 운율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리듬과 운율이 없는 현대시를 낭송하며 여럿이 즐기기 위해서는 가락이 있는 음악보다는 랩(rap)이 제격이라는 시인의 우스갯소리를 단순히 재치 있는 입담으로 치부하기는 어려웠다. 왜냐하면 그 대목에서 시 장르에 까지 파급된 속도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 나는 80년대 후반 학번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학과 공부보다는 사회(?) 서적을 봐야만 하는 강박적 관념에 지배를 당한 세대이고, 맥주를 먹자 치면 서로의 눈치가 보였고 돈도 없었기에 막걸리 마셔가며 소위 ‘운동권 노래’를 합창하며 학교 앞 주점들을 드나들던 청춘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최루탄에 눈물 흘려야 했고, 사회적 양심을 끊임없이 검열 받아야 했던 공동체 연대 의식이 살아있던 시대에서 20대를 보낸 개인이다. 장황하게 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80년대야 말로, 시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때 냉엄한 현실에 대한 아픔을 달래기 위해 은유와 환유로 돌려 말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시문학이 꽃봉오리를 활짝 피운 시대임을 환기시키기 위함이다. 실제로 당시에는 사회참여적인 시 뿐이 아니라 서정적인 시들이 검열의 대상이 되던 책들과 나란히 대다수의 젊음이의 가방에서 발견되곤 했다. 어쨌든 시절을 겪으며 어느덧 어설픈 생활인이 되어 사회의 물을 먹고 20대 청춘이 거의 끝나갈 무렵 아주 쇼킹한 시집과 조우하게 되었다. 너무나도 용감하게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들고 나온 여인, 최영미를 알게 된 사건이다. 상투어를 넘어서는 육두문자를 폭탄처럼 던진 배짱 좋은 그녀는 겁쟁이인 내게 아마조네스 여신같이 두려우면서도 부러운 존재였다. 누구나 말로는 내뱉으면서도 감히 글로는 적어서는 안 되는 상용어 육두문자를 시어로 버젓이 내놓은 그녀가 아름다운 여인이고 미술사학을 공부했다는 점에서 내 호기심은 잠복기와 발현기를 반복하며 지금까지 지속되어 왔었는데, 마침내 낭독회를 계기로 아마조네스의 여신을 직접 만나는 행운을 맞이했다. 그러나 내가 만나 본 최영미 시인은 내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투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세월의 시련에도 단련되지 못해 가늘게 목소리가 떨리고, 현실의 유혹 앞에서도 세련되지 못해 올곧은 속내를 감출 수 없는 계집 아이 같기만 했다.
예민한 감성과 날카로운 통찰력의 양날을 품고 있기 때문에 더욱 힘겨운 일상을 살았을 시인이 낭독을 위해 선택한 시는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는 시 <선운사에서>였다. 선운사에서 피었다 지는 동백꽃을 보며 지나간 사랑을 생각하는 시를 시인이 직접 ‘꽃이 지는 건 쉬어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이라며 마지막 구절까지 낭독했을 때, 나도 이른 봄 날 선운사를 동행했던 그를 마음에서 품고 있다 어쩌면 ‘영영’ 잊지 못할 것이라는 감정에 젖어 하마터면 진행을 놓칠 뻔 보았다.
◆ ‘천왕성에선 평생 낮과 밤을 한 번밖에 못 본다. 마흔두 해 동안 빛이 계속되고 마흔 두 해 동안은 또 어둠이 계속된다. 그곳에선 하루가 일생이다.’로 시작되는 고두현시인의 시 <별에게 묻다>는 우주의 신비로부터 시작되어 청중들이 쫑긋 귀를 세우게 만들었다. 울프 다니엘손이 쓴 책 시인을 위한 물리학,(에코 리브르,2006)이 떠올라 고두현시인에게 짓궂지만 정말로 궁금해 질문을 했다. “시에서처럼 정말 천왕성에는 마흔두 해 동안 낮이고 마흔 두 해 동안 밤이냐고, 그런 과학적 지식은 어디에서 찾으시냐고.” 시인은 우연히 과학 다큐멘터리를 보다 영감을 얻게 되었다고 했다. 남해 출신의 시인에게 천왕성은 빗금 치며 해안 절벽에 꽂히는 별빛이 되어 “생애 단 한 번 피고 지는 대꽃 틔울 때까지 너를 기다리며 그립다 그립다”고 편지를 쓴다. 마흔두 해가 지속되는 긴 밤 내내 그리움으로 애타게 낮을 기다리다, 편지를 부치고 돌아오는 아침, 고두현 시인이 말했다. “우체국에서 여기까지 길은 얼마나 먼가.”라고.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자와 그 대상과의 심리적 거리감을 천왕성의 우주적 거리감에 병치하여 보여주는 시를 통해, 청중들은 애달픈 그리움에 마음 절절해졌다.
가끔 어떤 시를 보면 시인이 전달하고자 한 바가 무엇일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당황하면서 내 이해력의 짧음을 한탄하게 되곤 한다. 그러나 소통이 불가능한 시를 쓰는 시인이 있다면 그 역시 교만한 자가 아니라 할 수 없겠다. 시인은 자신만의 언어를 조탁하는 탁월한 언어 감각도 있어야겠지만, 자신이 발견한 세상을 나눠주고 그 즐거움을 공유할 수 있는 아량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마음이 가난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고두현 시인이야 말로, 누구나 시인으로부터 위로를 받게 되는 따듯한 시를 선물할 줄 아는 마음씨 고운 사람이다.
◆ 그렇다면 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다는 점에서 서정시가 능사인가? 이에 대한 답은 그날 <한강>과 <재식이>를 낭독해 주신 이재무 선생님의 시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가슴을 치는 둔탁한 감동을 주는 시, 인물이 소설 속에서처럼 잘 형상화 되어 있는 시를 만나는 시간이 이어졌다. 혹독한 가난을 체험한 사람들은 생활이 안정된 다음에도 꺼지지 않는 허기 때문에 식탁에서 과식하기 쉽다는 소설가 현기영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그러나 지독한 가난을 경험해도 식탐을 내려놓고 심리적 허기증으로 창작에 몰두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시인이다. 그리고 그런 시인이 바로 이재무 시인이다. 가난의 대물림 속에서 온갖 고생을 겪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먼저 떠난 동생 <재식이>를 그리며 한과 슬픔을 내면에만 남겨 둘 수 없어 펜을 잡았을 시인의 아픔이 눈물겹다. “그 논에 모둘 꽃고 온 동생의 하루가 내 살아온 부끄러운 나날에 비수되어 꽃히던 달도 없던 그날 밤”이라며 담담한 척 낭독하는 이재무 시인에게 그 시는 분노를 삭이고 또 삭인 자만이 일구어 낼 수 있는 언어의 땅이다. 농촌의 가난은 이재무 시인에게 국한되는 수난이 아니기에, 이 시에서 살아 있는 시인의 동생 재식이는 구체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인물이 된다. 그러나 거칠게 읽히지 않는 이유는, 곰삭은 아픔을 시인의 메타포 구사력으로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날 시인들과의 뒷풀이에서 이재무 시인께 들은 바에 의하면 가난이란 것이 더 이상 떳떳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렸기에, 더는 시 속에서 가난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어쩌면 천민자본주의가 팽배한 시대가 진정한 땀을 흘리며 살아가고자 하는 이땅의 진실로 살아가는 이들의 입까지 봉해버린 것은 아닐까? 어쩌면 시인이 <한강>에서 이미 이야기해버린 것처럼 그들의 “분노 이제 더 이상 저 두껍고 높은 시멘트 둑 넘지 못할 것이다.”가 현실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갈수록 삭막해져 가는 사회 속에서 인간다움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해주는 시가 있음에 우리는 “제도의 모범생”을 벗어나지 못하는 순응주의자로 살아가는 우리들 대다수의 치욕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리라.
◆ 시는 참으로 다양하게 읽힌다. 마음으로도 읽고 눈으로도 읽고 또 그날의 낭독회에서 처럼 목소리로 읽고 들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이 사회를 둘러보면 또 하나의 목소리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소리 나지 않는 목소리’를 대변하는 ‘수화’가 그것이다. 그 날 낭독회에서는 수화로 시를 낭독하는 엄숙한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평범한 우리들과는 달리 선천적인 청작장애자들은 형용사와 부사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감상하는 시어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형용사와 부사를 공감할 수 없다고 한다. 그날의 낭독회 사회를 마치면서 내 마음에는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독서는 개인의 개별적 행위라고만 생각했던 내게 그 날의 행사가 커다란 깨우침을 준 것이다. 비단 시 낭독뿐만이 아니라, 소설이나 수필의 낭독을 통해서도 독서의 체험은 공동체의 소중함을 일깨워 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였는지, 내 마음에 내린 다양한 목소리의 시들이 하얀 눈처럼 곱게 쌓여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아직까지 낭독의 공간도 부족하고, 낭독의 문화 역시 낯간지러운 일로 여겨져 소홀해졌다면, 이제라도 식구들끼리 그림책이라도 펼치고 함께 소리 내어 읽어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그렇게 하기에 더 없이 좋은 그림책도 마침 있다.
그림책 속의 시인 프레드릭
손자들과 기차를 타고 맨하튼에서 코네티컷으로 여행을 하던 중이던 젊은 할아버지(나이 50세)가 있었다.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할아버지와는 달리 어린 손자들은 치고 박고 토닥거리며 좁은 공간에서 느끼는 갑갑증을 해결하고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한 할아버지가 가방에서 [라이프]지를 꺼내 종이를 찢어내 즉석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파란 종이는 파랑이가 되고 노란 종이는 노랑이가 되어 기차에 타고 있던 많은 이들의 이목을 모으게 되자, 젊은 할아버지는 자신도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리고 광고 회사의 아트 디렉터 경력을 십분 활용하여 그림책을 만들었다. 바로 <파랑이와 노랑이>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 젊은 할아버지의 이름은 레오 리오니(Leo Lionni)이다. 그는 여든 아홉의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마흔 여 권의 그림책을 만들고 꿈틀꿈틀 자벌레(1960), 으뜸 헤엄이(1963),프레드릭(1968),새앙쥐와 태엽쥐(1969)로 칼데콧 아너상을 네 번씩이나 수상했다. 또한 1969년에는 브라치스라바 그림책 원화 비엔날레에서 금사과상을 받았다.
이처럼 화려한 경력의 그림책 예술가인 레오 리오니가 그림책 분야에 뛰어든 시기는 그의 나이 50일 때였다. 평생을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던 그가 훗날 어린이에게 관심을 선회하고 어린이들을 위한 철학 그림책을 만들기 까지 필요했던 시간이 50년이었다고 해석을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주 오래 전에 모 수입출판사에서 그의 그림책 10권에 대한 오디오 작업을 하면서 꼼꼼하게 그의 작품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내가 무척 아끼고 좋아했던 책이 바로 여기에서 소개할 프레드릭이다. “나는 시인이야”라고 말하는 쥐 프레드릭을 통해 비로서 레오 리오니는 자신의 진정한 소명이 예술가라는 것을 시인한 셈이다.
나는 그를 ‘20세기의 이솝’이라고 칭하고 싶다. 이솝의 우화가 삶의 관조에서 비롯된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듯이 레오 리오니도 그림책들에서 ‘정체성’,‘진정한 행복’,‘공동체 의식’ 등과 같은 짐짓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프레드릭에서는 <개미와 배짱이>의 서사 구조를 비틀어 ‘배짱이라도 그것이 그가 추구하는 진정한 삶의 가치라면 배짱이의 인생은 행복하다’는 예술가 정신을 보여준다. 혹독한 시절을 대비해서 노동을 통해 물질을 비축해 두는 것이 일반적인 개미들의 삶의 전형이라면,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배짱이는 빈둥빈둥 놀며 좋은 계절을 보내고, 겨울을 맞아 개미에게 빌붙어 지내는 의존적 인물이다. 옛이야기 속의 ‘배짱이’는 이처럼 노동의 신성한 가치를 모독하고 현재에 충실하지 못한 대가로 개미에게 의존해서 연명하게 된다. 일견 참으로 맞는 이야기 같으면서도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라는 고전적인 지배논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은 신성하다. 하지만, 상상력을 이용하여 자신과 타인 모두의 감성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데 기여한다거나, 여가 시간이 노동 시간을 위한 재충전의 의미를 너머서 이왕이면 그 자체만으로도 창의적 활동의 시간이 될 수 있음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당연한 패러다임이다. 바로 이 점에서 빈둥거리며 노는 것으로 인식되어 손가락질 당한 시인 ‘프레드릭’이야 말고, 인간이 ‘밥만으로 살 수 없는’ 유희적 인간(Homo Ludens)의 속성을 드러내준다. 그럼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자.
헛간과 곳간으로 부지런히 곡식들을 실어 나르는 들쥐들은 밤낮없이 열심히 일을 한다. 하지만, 웅크리고 앉아 골몰히 생각에만 열중하고 있는 프레드릭은 누구에게나 밉살스런 존재이다. 참다못한 들쥐들이 볼멘소리로 묻는다. “프레드릭, 넌 왜 일을 안 하는 거야?” 그러자 프레드릭이 천연덕스레 대답한다. “나도 일하고 있어. 난 춥고 어두운 겨울날을 위해 햇빛을 모으는 중이라고.” 정말 뜬금없고 얄밉기 그지없는 대답입니다. 재화를 생산하기 위해 노동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약속된 미덕이기에 프레드릭의 뚱딴지같은 대답은 게으름에 대한 변명처럼만 들린다. 프레드릭은 잿빛 겨울날을 위해 햇살을 모으고, 색깔들을 모으고 있다. 거듭되는 들쥐들의 질문마다 얄미운 대답으로 일관하는 프레드릭을 향해 대다수의 들쥐들은 프레드릭을 ‘꿈만 꾸는 자’로 지탄한다. 결국 남들이 일을 하는 동안 프레드릭은 햇살을 모으네, 색깔을 모으네, 이야기를 모으네 하며 시간을 보내다 겨울을 맞게 된다.
첫 눈이 내리고 날이 추워지자 들쥐들은 침침한 굴속에서 지내게 된다. 처음에는 비축해둔 식량도 넉넉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양도 줄어든다. 배고픔도 걱정이기는 하지만, 걱정을 하지 않고 즐겁게 겨울을 보낼 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아 들쥐들은 우울증에 걸린다. 그러다 문득 프레드릭이 모아둔 햇살과 색깔이 떠올랐다. 프레드릭이 활약할 시간이 온 것이다. 프레드릭은 기운을 잃은 동료 들쥐를 모아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 눈을 감아 봐. 내가 너희들에게 햇살을 보내 줄게. 찬란한 금빛 햇살이 느껴지지 않니?” 프레드릭이 햇살 이야기를 꺼내자 동료 들쥐들은 점점 몸이 데워지는 것을 상상하게 된다. 이윽고 들쥐들은 프레드릭이 모아둔 색깔도 보여 달라며 조른다. 간청에 못 이긴 척하며 프레드릭은 파란 덩굴꽃과 노란 밀짚 속의 붉은 양귀비 꽃, 또 초록빛 딸기 덤불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치 무대 위에서 공연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모두의 호응을 얻자 흥에 들뜬 프레드릭은 내친 김에 눈을 지그시 감고 시를 읊는다.
눈송이는 누가 뿌릴까? 얼음은 누가 녹일까?
궂은 날씨는 누가 가져오고 맑은 날씨는 누가 가져올까?
유 월의 네 잎 클로버는 누가 피워 낼까?
날을 저물게 하는 건 누구고, 달빛을 밝히는 건 또 누구일까?
하늘에 사는 들 쥐 네 마리.
너희들과 나 같은 들 쥐 네 마리.
봄 쥐는 소나기를 몰고 온다네.
여름 쥐는 온갖 꽃에 색칠을 하고,
가을 쥐는 열매와 밀을 가져온다네.
겨울 쥐는 오들오들 작은 몸을 웅크리고 있지.
계절이 넷이니 얼마나 좋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딱 사 계절
프레드릭의 시가 끝나기도 전에 다른 들쥐들은 박수를 치며 감탄을 한다. “프레드릭, 너는 시인이야.” 프레드릭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나도 알고 있어.”
진중권씨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상상력으로 돌파하라고 주장한 바 있다. 아는 것만으로는 힘이 되기에는 부족하고, 새로운 시대에는 ‘상상하는 것이 생산력’이 된다며 그는 자신의 저서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휴머니스트, 2006)에서 강조하고 있다. 그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상상력의 힘은 SF영화를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도 있다. ‘놀라운 상상으로 만들어진 과학 기술이 과연 현실에서 가능할까?’, ‘영화처럼 되면 참 좋겠다.’는 의혹과 부러운 시선으로 SF 영화를 보던 것이 불과 십여 년 전 일인데, 영화 속에서처럼 우리는 핸드폰을 들고 다니고, PDP 벽걸이형 텔레비전을 보고 동영상 화상 채팅을 한다. 조금은 거리감이 있어 보이지만, 상상의 차원에서 시인의 그것과 물리학자의 그것간의 거리를 좁힐 수만 있다면, 사회구성원들의 상상 놀이를 통해 미래 사회는 낭만적 진보와 함께 엄청난 부가가치를 지닌 생산성을 갖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과학책과 시집을 동시에 건네주자며 감히 주장한다.
음악으로 노래한 ‘시인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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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은 1827년 발표된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의 시집 『노래의 책 ,Buch der Lieder』에서 작곡가가 직접 선택한 16편의 시에 피아노 반주를 붙인 예술가곡이다. 독일의 문호 하이네는 삼촌 잘로몬인 사촌 아말리에를 사랑했으나 그녀와의 사랑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데, 이 시들에서도 실연의 우수에 젖은 절망을 느낄 수 있다. 한편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1810 ~ 1856)은 아마도 독일 작곡가를 통틀어 문학적으로 가장 숙련되고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는 음악가였을 것이다. 그의 부친은 출판업자로 바이런의 작품을 독일어로 번역하고, 여러 국가의 고전 작품을 포켓판으로 출판한 바 있는데, 어린 시절부터 슈만이 책을 좋아하게 된 연유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슈만과 클라라(Clara)의 사랑은 너무나도 유명한데, 클라라는 슈만에게 피아노와 작곡을 가르쳐 준 비크(F. Wieck)의 딸로서, 비크는 그녀가 장차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희망하여 모든 수완과 힘을 다 해 딸을 후원했었다. 비크는 자신의 딸을 사랑하는 슈만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결혼을 승인해주지 않아, 결국 그들의 결혼은 길고도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친 후 법원의 결정을 통해 마침내 가능해졌다. 클라라와 결혼한 1840년 9월 12일, 슈만의 창작 활동은 1단계를 종료하였는데, 그 때까지 쓰여진 대표곡으로는 작품 1번부터 23번에 이르는 피아노 중심의 작품이 주가 된다. 유명한 『사육제 Carnaval』Op. 9(1834/35), 『어린이의 정경 Kinderszenen』Op. 6(1838) 등이 1기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의 사랑, Diechterliebe』Op.48 은 1844년에 발표된 연가곡집인데 본래 슈만은 전체 20곡의 곡으로 이 가곡집을 구성하였지만, 출판업자들에 의해 네 곡이 거절되어 ‘Dein Angesicht','Esleuchtet meine Liebe','Lehn deine Wang'과 ’Mein Wagen rollet langsam'등을 제외하고 총 16곡만을 수록하여 발표하게 되었다. 참고로 슈만과 문호 하이네와의 관계를 잠깐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한때 문학 소년이었고 청년이 되어서도 문학을 동경했던 슈만이 라이프치히 대학에 있던 1828년 친구와 함께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열광적으로 읽혀지고 있던 시집 『노래의 책 ,Buch der Lieder』을 쓴 하이네를 방문할 목적으로, 뭔헨에 잠시 들렀다. 그 때 하이네와 잠시 교류하고 그것으로 더 이상 만날 수는 없었지만, 슈만의 음악 속에서 하이네의 영향은 지속되었다. 슈만은 하이네의 문학에 몰두하면서 하이네 시의 의도적 과장부터 감정의 침잠에 이르는 문학적 표현들을 음악정신으로 새롭게 표현했다. 뉘앙스, 분산된 감정, 즐거움과 우울 사이의 몽상, 오만과 빈정댐으로 변하는 우수, 불투명한 언어회화 등등, 슈만은 하이네의 서정시가 가진 모든 특성을 주의 깊게 탐색하고, 이를 자신이 독특한 가곡양식에 끌어들였다고 대성악가인 피셔 디스카우(D. Fischer Dieskau)가 말한 바 있다.(독일 음악 속의 문학』엄선애저, 경성대학부출판부, 118쪽)
슈만은 이 『시인의 사랑』에서 응답 없는 사랑, 고통을 표현했다. 이 작품에서는 『시인의 사랑』이라는 큰 제목 외에도 각 곡마다 '아름다운 5월에', '내 눈물에서' 등의 제목을 쓰기도 하는데, 이는 각 곡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제목이 아니라 각 곡에서 사용된 詩의 첫 구절을 그대로 옮겨 쓴 것이다. 전체를 이루는 16개의 곡은 내용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제1곡부터 제6곡까지는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고 있으며, 7번부터 14번까지는 실연의 아픔을 그리고, 마지막 제15, 16곡에서는 지나간 청춘의 향수와 실패한 사랑에 대한 쓰라린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영국이 낳은 테너인 이안 보스트리지(Ian Bostridge)가 쥴리어스 드레이크(Julius Drake)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부르는 『시인의 사랑』은 내가 요즈음 자주 듣는 음반이다. 깊어가는 겨울 스산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면서 옛 시인의 사랑과 떠나보낸 사람을 생각하면 우울했던 감정이 조금은 다스려지는 느낌이 든다. 독일어를 모르면 어떤가, 가사가 들리지 않아도 피아노 반주만으로도 성악 못지않은 아우라를 갖추고 있는데. 흔히들 가곡의 왕을 슈베르트라고 하지만, 내 경우 가곡 중 최고의 가곡은 역시 『시인의 사랑』이 사랑이 차지해야할 것이라고 우기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