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창원(昌原)은 경상남도 남쪽에 위치하는 산업도시이며 도청소재지이다. 고대에는 금관가야(金官伽倻)에 속했으나 신라가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굴자군(屈自郡)이 설치되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의안군(義安郡)으로 이름을 바꾸고, 합포현(合浦縣: 馬山)·웅신현(熊神縣: 熊川)·칠제현(漆隄縣: 漆原)을 영현으로 관할하였다. 1018년(고려 현종 9)에 금주(金州: 金海)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뒤에 감무가 파견되면서 독립되었다. 1274년(원종 15)과 1281년(충렬왕 7)에 원나라와 고려 연합군의 일본 정벌 때 창원지방은 합포를 중심으로 연합군의 기지가 되었다. 그 공으로 1282년에 의안군이 의창현(義昌縣)으로, 합포현이 회원현(會原縣)으로 승격되었다. 1408년(태종 8)에 회원현을 병합하여 창원부(昌原府)로 승격되고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영이 설치되었으며, 1413년에는 창원도호부(昌原都護府)가 되었다. 임진왜란 직후인 1601년(선조 34)에 창원대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603년(선조 36)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영이 진주로 옮겨갔다. 1661(현종 2)~70년(현종 11)에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진주부 창원군이 되었고, 1896년에 경상남도 창원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창원군에 다시 편입되었다. 1980년에 마산시 의창동을 편입하여 창원시로 분리 승격되었다.
성씨의 역사
창원현씨(昌原玄氏) 시조 현덕유(玄德裕)는 연주현씨(延州玄氏)의 시조 현담윤(玄覃胤)의 셋째 아들로 1186년(명종 16) 문과에 급제한 후 이부(吏部)와 예부(禮部)의 시랑(侍郞)을 거쳐 서경유수(西京留守)로 나갔다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냈다. 이후 대사공(大司空) 등을 역임하였고 회원군(檜原君: 창원의 옛 지명)에 봉해졌다. 이로써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창원(昌原)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그의 아들 현승(玄昇)이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역임한 이후 손자인 현장(玄璋)이 추밀원사(樞密院使)를 지내는 등 이후 후손들이 중앙 정계에 진출을 거듭하여 가문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분적종 및 분파
창원현씨는 연주현씨에서 분적된 성씨이다.
주요 세거지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양동리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창원현씨는 376가구 총 1,261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