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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사랑 운동론
김성복 박사(샘터아동상담센타 원장)
1. 인천사랑은 인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운동이다. 인천에서 태를 묻었던 안 묻었던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천이라는 지역에서 지역 공동체를 이루면서 서로 다른 면을 가지고 있는 것을 오히려 장점으로 생각하고 만들어 가는 운동이다.
2. 다르다는 것은 축복이다. 근대화 과정 속에서는 무조건 한 목소리를 내야 안심을 하곤 했다. 전체주의적 가치관이 지배했다. 권위주의적 발상이 우위를 점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런 시대는 갔다. 만일 아직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위험천만한 일이다. 망하기 십상이다. 오늘의 살 길은 다른 것을 만나는 것이다. 다른 이를 만나서 발견하는 것이다. 다른 점을 자기 발전의 원동력으로 만드는 일이다. 우리 민족은 이 일에 적극적이었다. 그리하여 자주적이면서도 창조적인 문화를 일구어 왔던 것이다.
3. 인천은 다른 문화를 가진 이들이 만나는 곳이다. 인천은 항구다. 황해도, 강화도, 인천 앞바다 섬들, 서산 당진 충청도, 그리고 강원도, 영, 호남에 제주도까지 경향각지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 수용하고 격려하며 하나됨을 만들어 가는 곳이다. 어느 특정세력이 다른 세력을 억누르고 지배하는 곳이 아니다. 개방되어 있고 기회가 주어진 땅이다. 개척 정신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희망을 나눌 수 있는 곳이다.
4. 이제 인천에 또 다른 문화를 가진 이들이 진입을 시도하려고 한다. 아니 인천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보다 나은 21세기를 위하여 그들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다. 외국인들이다. 이곳 인천에서 살기를 원하는 많은 외국인들과 우리는 함께 살 준비를 해야 한다. 적어도 5만 명 이상이 인천에 살게 될 것이다. 배타적 국수주의는 망하는 길이다. 개방적 수용적 자세로 그들을 맞이해야 한다.
5. 샘터 교회의 부설기관 중에 미혼모를 돌보아주는 “꿈이 있는 집”이 있다. 그 시설에 ‘파키스탄 남편과 한국인 아내’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돌보아 준 적이 있다. 며칠 전 까지는 ‘한국인 남편과 콜럼비아인 아내’ 사이에 난 아이를 보호해 주었다. 벌써 그들은 만나서 사랑을 나누고 2세를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를 우리는 능동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단일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그들을 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6. 젊은이들이 만나서 2세를 만드는 것이 꼭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문화 다른 인종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존중하며 서로 다른 것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천사랑운동은 이런 가능성의 운동이다. 그래서 외국인이 살기 좋은 국제도시를 만드는 운동이다. 다시 찾게 만드는 운동이다. 인천을 21세기 세계 도시로 만드는 운동이다. 엄청난 변화를 따라잡는 운동이다.
제언-인천사랑운동의 참여를 위하여...[전문가기고]
김성복 목사(인천사랑지도자 아카데미 연구개발부장)
어느 깊은 산 오솔길 옆 작은 연못에 예쁜 붕어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 둘이 싸우다가 그 중에 한 마리가 그만 죽고 말았다. 이 죽은 친구의 살이 썩어 들어가 나머지 한 마리도 죽고 말았다. 양희은의 노래 중에 ‘작은 연못’ 줄거리를 옮겨 보았다. 나는 이 이야기의 주제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자각을 갖자는 차원에서 이해하고 싶다. 특히 ‘나’의 삶의 터전인 인천에 대한 공동체의식을 공유함으로서 ‘우리’는 보다 바람직하고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설령 잠깐 머물다가 가는 곳이라 하더라도 관심을 주고 사랑을 받고 머물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인천사랑운동은 공동체운동이다. 우리 모두가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자각을 하고 서로 아끼고 돕고 격려하는 운동이다.
인천사랑운동은 인천의 역사를 찾는 운동이다. 인천에서 뿌리 찾기를 하면 십중팔구는 인천 밖으로 나가게 된다. 애향심을 말하면 조선 팔도 전역으로 관심이 옮겨가는 도시다. 고향 찾아가는 운동이 아니다. 아니 인천을 고향으로 만드는 운동이다. 본적지를 인천으로 옮기는 운동이다. 마음붙이고 몸 붙이고 정을 나누는 운동이다. 우리는 한 둥지에서 살고 있는 이웃이라고, 그래서 서로를 축복하며 격려하는 운동이다. 인천에서 만난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인천의 과거를 알고 현재를 이해하며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멋있게 살아보자는 운동이다.
먼저 이 곳에 살던 사람만이 이 곳의 주인이 아니다. 오늘 이 곳에 머물고 있는 모든 이들이 주인이 되어 삶의 터전인 인천을 아름답게 꾸미는 운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천사랑운동은 주인의식 회복운동이다. 사실 돌이켜보건대 인천에서 40년을 넘게 살았어도 주인 노릇 한 번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어렸을 때 주안염전 저수지로 수영을 하러 오곤 했었다. 그 부근의 갯벌이 공단 폐수로 죽어 갈 때 당연히 그런 것이려니 하며 받아들였다. 애처롭게 날아가는 갈매기를 보고는 ‘너는 어서 여기를 떠나라’라고 생각했다. 소위 ‘개발’과 ‘발전’ 때문에 우리의 환경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였던 과거에 대한 반성이 인천사랑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천사랑은 새로운 운동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해반문화사랑회를 비롯하여 인천의 갯벌과 바다사랑을 실천해 온 모든 환경 시민단체들을 높이 평가하며 격려하는 운동이다. 그 운동을 전인천적으로, 범시민적으로 확장 전개하는 운동이다. 이 인천사랑운동이 인천시의 입장을 강화하고 대변하는 운동이라면 결사반대다. 지난 2년간 이 운동을 추진해온 실무자의 입장에서 이 점을 강조해 왔다. 이 운동은 기존의 샘물을 막아 없애는 운동이 아니다. 그 샘물에 감사하며 그 샘물을 온 시민이 함께 마실 수 있게 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철저하게 민간주도로 전개되어야 하며 관의 개입은 최소화 내지는 배제되어야 한다.
인천사랑운동은 분명히 시민운동이다. 또한 NGO운동이다. 자발적 참여운동이요 개척자적 자세로 인천을 새롭게 하는 운동이다. 그런데 왜 세금을 받아서 사용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각 참여 단체난 기관은 자신이 스스로 낸 회비로 운영되고 있다. 다만 협의회는 시 예산의 지원을 받는다. 세금은 우리가 낸 돈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업이라면 우리가 낸 세금을 이용할 권리가 있다고 본다. 일본의 어느 지방자치단체에서 시민위원회를 조직하고 NGO를 후원하여 그들이 아시아 여러 나라와 연대사업을 하고 있다는 보고를 들은 기억이 있다. 선한 사업에 시민의 세금을 사용하는 것이다.
오늘 인천에서 대부분의 NGO들이 프로젝트 사업을 진행하기 위하여 세금을 지원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업을 전개하기 위해 우리 세금을 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공감대 형성이다. 이 공감대 형성에 시간이 너무 짧았고 정성을 들이지 못한 점은 집고 넘어가야 한다. 그러나 중단해서는 안 된다. 이 운동은 아물리 서둘러도 지나침이 없다고 본다.
이제 인천사랑운동을 범시민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참여 단체를 모집하기 시작하였다. 30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는 모든 단체나 기관은 누구나 다 참가할 수 있다. 나는 여기서 특별히 그 동안 인천의 민주화운동을 전개해온 모든 시민단체들에게 선입견이나 오해를 풀고 참여를 촉구하고자 한다. 이 운동은 여와 야를 떠나서, 진보와 보수가 함께 하는 ‘하나의 광장’인 것이다. 세대차이, 출신지역, 종교와 이념의 벽을 넘어 하나됨을 만드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참여해야 한다. 참여만이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특히 시민단체들에게는 이 모임을 주도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충분히 조성해 놓고 있다. 겉모습만 보고 거부하지 말고 내용을 꼼꼼히 따져보고 찬찬히 살펴본 후 참여해 줄 것을 다시 한번 간절하게 촉구하는 바이다.
2003년 1월 25일자 5면
기고-'춤의 도시 인천을 위하여.[전문가기고]
김성복 목사(인천사랑아카데미 연구개발부장)
얼마전 구월동에 있는 게러리 진에서 인천 문인협회 전 회장이었던 숭산 김학균 님의 시각전이 있었다. 시를 짓고 손수 나무에 새겨 전시회를 열었다. 그 중에 단연 눈에 띤 작품은 춤출 무(舞)자를 그림으로 형상화한 양각 작품이다. 춤사위를 흔들어 대는 모습이 정말 무용의 신들린 듯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춤으로 여는 하늘, 땅, 바다’를 주제로 오는 9월 16일 부터 24일 까지 인천전국무용제가 열릴 것이라고 한다. 인천이 춤의 도시로 그 문화적 지평을 열어가게 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면서 몇 마디 거들고자 한다. 2000년 세계 춤 축제가 실패한 후에 다시는 시민들의 참여가 없는 축제는 만들어서는 아니 된다고 공감대가 이루어 졌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이러한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하리라고 주변의 모든 이들이 염려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인천 시민이 그 입장권을 사 줄 것이냐 하는 점이다. 여기에서 우리 인천 시민의 문화의식이 어느 수준이냐를 정확히 진단하고 적절한 처방을 내려야 한다고 본다.
조금은 다른 예가 될 지 몰라도 중년 이상에게 인기가 있는 가수 양희은의 새로운 곡을 모은 CD가 전국적으로 단지 300 장정도 밖에 팔리지 아니한다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우리의 문화수준이 어느 정도 인지를 알 수 있으리라. 먼저 시민의 문화사랑 의식을 높이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무용제 입장권을 사기 위하여 지금부터 용돈을 절약하며 준비하는 시민 십만 명을 만들어 내야 성공한 대회가 될 것이다.
세계 속의 ‘춤의 도시 인천’을 만들기 위하여 무용 대회를 잘 치르는 것만이 아니라 전체 시민들이 춤의 철학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전통적으로 우리 민족은 춤과 노래를 즐겨하던 민족이었다. 고달픈 삶을 극복하는 ‘노동 속의 춤’은 신명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춤이라는 단어가 많은 오해를 가져온다. 춤하면 춤바람과 댄스를 떠올리고, 댄스 하면 카바레를 떠올리고 또 불륜의 현장을 떠올린다.
이러한 연상작용을 극복하기 위하여 올림픽 종목으로 가능성이 높은 댄스스포츠를 대중적으로 보급하면 어떨까 싶다. 중 고등학교 뿐 만 아니라 초등학교에서도 일치감치 댄스스포츠를 가르치는 것이다. 사회지도급 인사들이 솔선수범하여 회원으로 가입하고 참여하여 배운다면 사회적 저항감도 줄어들 것이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 춤 축제는 다시 한번 준비하여 새로운 차원에서 시도해 볼 만하다고 본다.
사회주의 중국을 방문하여 공원에서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무희를 즐기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북한 평양을 방문하였을 때 축제 끝 무렵에 무려 2시간이 넘도록 집단 군무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솔직히 말해서 질려버렸다. TV를 통하여 본 그 상황은 역동적이었고 신비스러워 보였다. 춤을 광장으로 끌고 나온 것이다. 떳떳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숨어서 추는 춤이 아니라 함께 즐기며 같이 추는 춤을 만들어 가는 인천이 되기를 바란다.
설령 혼자서 밤새 추는 춤이라 할지라도 요령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특별히 인천사랑을 실현하고자 애쓰는 모든 분들에게 한마디 드리고 싶다. “샬 위 댄스?
2003년 4월 1일자 5면
독자포럼-인천을 상징하는 산은?...[독자투고]
김성복 목사( 인천사랑 아카데미 연구개발부장)
지난 3월21일자 인천일보 기고 중에 인천에서 처음 열리는 고교야구대회 명칭을 말하는 가운데 계양산을 따서 계양기로 하자는 제언이 있었다. 상투적인 인천시장기보다는 한결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기회에 우리 인천의 상징이 될 만한 산은 과연 어느 산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인천은 인천, 부평 그리고 강화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세 지역을 상징하는 세 산
을 꼽는 다면 문학산 계양산 마니산을 말할 수 있다. 세 산 중에서 높이로 따지자면 마니산이 469.4m로 가장 높다. 그다음이 계양산 394m 그리고 문학산은 213m에 불과하다. 따라서 만일 산의 높이만으로 결정을 한다면 마니산기 쟁탈 전국고교야구대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인천 앞바다 대부도에서 태어나 7년을 고향에서 자라난 후 인천에서 20년, 부평에서 20년을 살고 있는 본인의 처지에서 부평의 진산 계양산을 인천의 상징으로 주장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솔직하게 문학산의 정기와 계양산의 정기를 한번 비교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에 발간된 인천광역시사 2권 역사편을 보면 임진왜란 시에 두 산이 겪은 역사는 극명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1592년 5월 19일 부평에 침입한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이끄는 왜군은 부천의 원미산 장대봉에서 항거하는 선거이(宣居怡) 장군을 물리치고 그날로 부평읍(오늘의 계산동) 에 침입하여 계양산성을 수축하여 근거지로 삼았다. 이 때 부평유사 남유(南瑜)는 겁에 질려 싸우지도 않고 도망쳐 피신만 하였다. 계양산성을 근거로 한 왜군의 일부는 5월20일 인천으로 진격하였으나 부평 출신인 김민선(金敏善) 인천 부사가 만반의 방어태세를 갖추어 안대평에서 왜군을 격퇴시켰다. 지금의 간석역 앞으로 이곳 하천에 다리가 생기니 일본군이 패전하여 흩어진 곳이라 하여 왜산교라고 불러왔다. 일본군의 수차에 걸친 침공에 문학산성을 사수한 김민선 부사의 넋을 기리는 안관당이 문학산성 안에 있다.”
위의 사료에 의거하면 계양산은 왜군에 농락 당하였던 반면 문학산은 왜군의 공격을 막아낸 민족정기가 서려있는 곳이다. 그런즉 굳이 문학산기와 계양산기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면 문학산기가 더 자존심을 살리는 것이 아닐까 한다. 더군다나 문학 경기장에서 월드컵 승전가를 부르지 아니하였던가!
오늘 다시 한번 문학산을 바라본다. 지금은 레이다 기지로 쓰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자유롭게 방문할 수 없는 이 산 정상에 고성의 석축이 파손돼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1986년 인천시 기념물 1호로 지정된 ‘문학산성’이다. 일 년에 단 며칠만이라도 개방하여 인천 시민의 가슴속에 문학산이 다시 살아날 수 있기를 소원해 본다. 민족 정기와 함께.
2003년 4월 23일자 4면
기고-두 자살사건 반성과 과제...[전문가기고]
김성복 목사/샘터아동상담센터원장
최근 경제적 어려움과 폭력으로 인하여 각종 자살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 인천에서 있었던 30대 주부가 세 자녀와 함께 동반 자살한 사건과 전남 광주에서 있었던 친부의 폭력피해 아동의 자살사건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접근하여 그 해결방안을 모색해 보고 싶다.
먼저, 부평구 청천동의 어느 고층아파트에서 있었던 네 모자의 자살사건은 오늘 ‘신빈곤층’의 문제가 심각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몰락한 중산층- 그들이 신빈곤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극빈층은 기초생활보장법으로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데 반하여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230만 명에 이르는 자들에 대한 보호 장치는 미흡하기 때문에 오늘의 자살사건이 빈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 극빈층으로 분류되어 보호를 받을 수 있는가? 9년 된 승용차가 있기 때문에 극빈층에서 탈락되어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이번 죽음의 이유 중에 하나이다.
우리는 어떠한 이유라도 자살을 옹호할 수 없고, 옹호해서도 안 된다. 더군다나 어린 생명들을 동반하여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은 결코 합리화 할 수 없는 죄악이다. 그러나 이렇게 정죄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 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우선 그 주부가 일하러 나갈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지 못한 것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기초생활 보호법이라는 사회 안전망에서 해결할 수 없는 점이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 본다면 이 사안은 ‘정부지원 어린이집’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정부지원 어린이집에서 무료나 혹은 최저기본료만 받고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주부들은 아이들을 맡기고 일터로 갈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근무시간에 맞추어서 24시간 어느 때에라도 아이들을 맡기고 찾아갈 수 있는 운영체제를 가동한다면 일하는 부모들의 걱정은 덜게 된다.
그런데 그 보육료가 비싸기 때문에 엄마가 뼈 빠지게 일을 해서 돈을 벌어온다 해도 세 아이 보육료도 마련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가 있다. 이럴 경우 종교단체나 후원자들을 통하여 무료로 보육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도록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모든 보육료를 지급해주는 시스템을 도입하여 위기가정을 지원하는 제도가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20~30년 후에 경제인구의 감소로 인하여 국가경제가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출산 장려 차원에서라도 보육문제는 국가에서 책임져주는 제도를 시급히 정착하여 마음 놓고 출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고 본다.
두 번째 우리를 슬프게 한 자살 사건은 전라도 광주에서 아버지의 학대로부터 보호를 받던 한 어린이가 학대예방센타에서 물건을 훔쳤다가 집으로 보낸다는 말을 듣고 고층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이다.
부모의 폭력은 폭력 그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 확장되어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만들고 있다. 따라서 폭력을 예방하고 또 피해자를 치료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문제는 그 폭력의 원인이 치유되기까지 폭력으로 피해를 당한 자를 완전하게 돌볼 수 있는 구조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피해를 입은 자들을 위한 육체적, 심리적 치료프로그램과 폭력의 가해자를 위한 치료프로그램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고 이것은 상당한 기간을 요하며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 중에 격리되어 있을 수 있도록 장기간 숙식과 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원 체제가 확립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가정폭력문제를 안일하게 접근하여 대충대충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다가는 폭력의 확대재생산만 이루게 되고 결국 가정이 파국을 맞게 되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반복되는 폭력으로부터 진정으로 해방되어 자유롭고 평안한 가정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적절한 지원구조를 만들어 낸다면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 점차적으로 걷혀지리라 생각된다.
2003년 7월 30일자 5면
김홍섭구청장의 `실미도 발언'...[전문가기고]
김성복 샘터교회 목사
며칠 전에 영화 ‘실미도’를 보았다. 국가권력이 그리고 그 정책이 얼마나 비인간적일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수작품 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관람객이 4백만을 돌파하고 있다. 그런데 그 영화를 촬영한 섬 실미도가 있는 인천에서, 촬영 세트장 철거 문제로 불거진 문책성 인사에 대하여 김홍섭 구청장의 글을 읽고 그냥 넘어가서는 아닐 될 대목이 있어서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문제의 발단은 영화 ‘실미도’를 촬영하면서 실미도 세트장에 방문한 인천시장이 이 촬영장을 그대로 보존하여 관광 자원화 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그리고 영화촬영이 끝났을 때 그 지시가 이행되지 아니하고 관할 중구청에 의하여 철거된 것이다. 그리고 부구청장이 문책인사성 발령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철거에 대하여 일부의 사람들은 아쉽다, 안타깝다는 의견을 표하였고 반면에 행정을 집행하는 중구청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주장이다. 전자의 사람들은 ‘태조 왕건’의 문경 새재나 바로 이웃한 부천의 야인시대 세트장을 예로 들면서 관광상품화하여 성공한 예를 들어 실미도도 그렇게 활용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영화산업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해야 한다. 장차 우리를 먹여 살릴 산업이 IT정보기술 산업 BT 유전자기술산업 NT 극미세 기술산업에 CT를 추가한다. 문화 관광산업이다. 그 중에 으뜸이 영화산업이다. 자동차 수만 대를 팔아서 벌 돈을 영화 한편으로 벌어들이는 것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아왔다.
김홍섭 청장의 말대로 영화 ‘실미도’가 흥행이 안 되어 섬 실미도가 폐허가 되어 영화세트장을 나중에 철거하느라고 세금만 까먹고 말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다.
영화가 유명해지니 그 곳에 방문하고 싶은 사람들을 방문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면 관광 상품화 되는 것이다. 무의도와 실미도의 밀물과 썰물의 때를 맞추어야 하는 불편을 극복하게 방법을 강구하고, 방문객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없으면 미리 예약을 하게하여 헛걸음을 면하게 하면 된다. 그 표를 파는 사람, 연락선을 운행하는 사람, 묵어갈 사람들을 위해 숙소를 관리하는 사람 등 잘하면 수십 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요즈음 군부대에 입소하여 받는 담력훈련장, 특수훈련 코스를 만들어 상품화하면 영화 속의 주인공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으로 히트 상품이 될 수도 있다. 세트장 철거가 아니라 영구보존하기위하여 더 투자해야 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 작품이 국제영화제라도 출품이 되고 또 수상을 하면 그 가치는 더 높아진다. 인천공항에서 가까운 곳에 있으니 한번 둘러보라고 홍보하면 관광 패키지 상품 속에 들어 갈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현대인의 문화적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감각과 모험심이 있는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민선지도자들이 필요하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창조적으로 도전하는 용기 있는 지도자들이 필요한 것이다. 만일 김구청장의 말대로 부정적인 측면만을 생각하고 현실에 안주하면 21세기의 인천의 결론은 뻔하다.
심하게 말하여 ‘굶어 죽으면 된다.’
2004년 1월 14일자 4면
다시 한 번 孝를 생각한다 -김성복...[전문가기고]
김성복 목사(샘터아동상담센터 원장)
눈은 침침해 지고, 귀는 멀고, 그리고 무릎이 흔들리는 노인이 있었다. 그는 테이블에 앉았을 때 숟가락을 잡기에 어려웠으며, 식탁보에 수프를 엎었다 ,그리고 조금은 그의 입 밖으로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의 아들과 며느리는 그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고, 마침내 그 노인은 소외당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에게 둥근 사발에 충분하지 않은 적은 양의 음식을 주었다.
그는 슬프게 테이블 쪽을 바라보곤 했고 눈에는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어느 날 그의 떨리는 손들은 밥그릇조차도 잡을 수 없게 되었고 밥그릇은 마루에 떨어져 조각이 나고 말았다. 젊은 며느리는 그를 꾸짖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 없이 한숨만 내쉬었다. 해결책으로 그녀는 그에게 나무로 만든 사발을 사주었고 그는 거기에다만 음식을 먹어야 했다.
어느 날 그들이 앉아 있을 때 그의 4살 난 손자가 마루에서 판대기들을 맞추고 있었다. “너 거기에서 뭐하고 있니?” 라고 아빠가 물었다. 그 아이는 “내가 자라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먹일 구유를 만들고 있어요.” 라고 대답했다. 그 부부는 잠시 동안 서로 쳐다보다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고 즉시 노인을 테이블로 데려왔다.그 때부터 그들은 노인에게 항상 그들과 함께 식사하도록 했고 그가 엎질렀을 때라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 이야기는 언젠가는 누구나 노인이 된다는 사실 앞에서 노인을 공경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요, 새삼 효(孝)를 생각하게 한다.
지금 70을 넘어서는 세대의 노인들에게는 특별히 연금보험이라는 것이 없다. 그들은 오로지 자식을 잘 키우면 그 자녀들이 노후를 보장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자녀 교육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고 투자하며 살아왔다. 논밭을 팔고 소를 팔아 그들의 모든 것을 바쳐 교육을 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투자하여 교육시킨 자식을 통하여 노후를 보장받으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그 자녀들이 명태(명퇴)다 ,황태(황퇴)다 하며 줄줄이 직장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38선,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이 진부해질 정도요, 육이오- 육십이 세에도 직장에서 버티기를 하면 오적이라고 하는 것-라는 말도 생겨나고 있다. 게다가 은퇴 후에 시작한 사업도 원금을 들어먹고 길바닥에 나 앉은 경우가 많다. 노후 보장은커녕 며느리 눈치 보기 바쁜 하루하루이다.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이런 현실 속에서 전통적인 효를 강조하는 견해들이 크게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인 효는 수직적이며 강요적이라는 면에 있어서 거부당하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에 현실적인 상황을 인정하며 수평적이며 참여를 통해 만들어가는 효도 문화를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참여적 효도! 참여적 효도는 먼저 현실을 인정하고 눈높이를 낮추는 것이다. 노인은 노인대로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적절한 수준의 봉양-대접을 하고, 또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가정에서부터 이러한 노력을 시작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들도 그러한 노력에 동참하여 효를 거들고 나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인층도 변해야하고 노인들을 봉양하는 세대들도 변해야 한다. 우선 노인층은 노인복지를 위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하여 기존의 예산 중 줄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한다. 평화를 위한 예산인가, 전쟁을 위한 예산인가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평화체제구축과 군비축소로 인한 여유 재정은 노인복지를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의 화해와 교류 협력의 정책에 대한 지지가 필요하다고 본다.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해 가는 우리 사회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다고 본다. 노인문제와 가족 해체라는 위기의 시대를 ‘참여적 효도’ 로 슬기롭게 극복하여 누구에게나 행복한 나라가 세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2004년 1월 6일자 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