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돌산 이야기
5.16 혁명 후, 박정희 정부시절에 시작된 일이다.
정부에서는 벌거숭이 민둥산을 푸른 산으로 조림하기 위해서
사유림의 소유주를 확인하고 등기부를 정리했다.
산주에게 산림녹화의 의무를 주고,
세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 정부에서 사유림을 일제히 정비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당시 등기부에 등재된 산주는 대부분 오래전에 사망하고
아랫대에서 관리하는 문중 산이었고 버려진 땅이었다.
그 마을에도 대대로 내려오는 문중 산이 하나 있었다.
산의 규모는 컸지만, 묘터도 없는 돌산이고 악산이었다.
돌산에서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퇴적암의 얇은 석판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돌이었다.
구둘장으로 사용하기 너무 얇아서 화재 위험이 있었다.
따라서 아무 데도 쓸모없는 돌이었다.
이 돌산도 등기를 서둘러야 했었다. 쓸모없는 돌산이지만 규모는 컸다.
등기하면 적잖은 세금이 나올 거라고 우려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종손은 고민이 깊어졌다.
돌산에 식목은 불가능했고, 세금을 내느니, 차라리 국가에 헌납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문중 어른들과 의논했다. 다들 이의가 없었다. 그렇게 합의가 이루어졌다.
문중에는 건달이 하나 있었다. 유일하게 대학에 입학하였지만,
사업을 실패한 아버지가 사고로 죽자 청년은 졸업하지 못했다.
따라서 취업도 못하고 마을에서 건달로 지내고 있었다.
문중 산을 국가에 헌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청년은 종손을 찾아갔다.
헌납할 바에는 자기에게 달라고 부탁했다. 미래를 내다보고 전망이 있어서 달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
재산이 전혀 없으니까 못 쓰는 산이라도 가지고 싶었고,
암만 생각해도 돌산이지만 버리듯 주어버리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산에 세금이라고 해야 얼마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달라고 졸랐고, 문중 어른들이 허락했고, 그는 등기를 마쳤다.
그로부터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정부에서는 연탄을 보급하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연탄 아궁이로 바꾸었다. 그런데, 기존 온돌 구둘장이 너무 두꺼워서 열이 고루 전달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산에서 나오는 얇은 석판은 연탄 아궁이의 구둘장으로 더없이 좋았다.
단단해서 깨어지지 않았고, 가벼워서 작업하기 쉬웠고, 방이 골고루 따뜻해졌다.
이 석판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돌산은 불과 몇 달 사이에 구둘장 광산으로 바뀌면서 하루에도 수십 대의 트럭이 실어냈고,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가난하던 건달 청년은 몇 해 만에 큰 부자가 되었다.
이를 본 문중에서 그냥 있을 리 만무했다.
내놓으라느니, 안된다느니 만날 때마다 시비가 붙었고 싸움으로 이어졌다.
또 소송으로 이어졌고, 대법원의 판결까지 몇 해가 걸렸다.
돈을 많이 번 청년이 모든 소송에서는 쉽게 이겼지만, 민심은 청년 편이 아니었다.
청년은 그사이에 엄청난 재산을 모은 부자가 되었다.
앞으로 군의원이라도 하려면 싸울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청년은 산을 문중에 양보하기로 했었다. 돌산의 명의는 다시 종손 이름으로 돌려놓았다.
그동안 돌산은 구둘장 광산기업으로 세금이 많이 불어나 있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세금이 많은 만큼 수익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연탄 아궁이는 연탄가스라는 복병을 안고 있었다.
흐린 날 저기압이 되면 연탄가스 중독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연탄가스로부터 국민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었는데,
마침내 연탄보일러를 개발했다. 보일러는 구둘장이 필요 없었다.
시멘트 바닥에 호수만 깔면 해결되었다. 돌산에 구둘장을 사러오던 트럭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거짓말처럼 딱 끊어졌다.
종손에게는 무거운 세금 부담만 남았다.
몇 해가 지났다. 다시 문중 회의가 열렸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돌산을 건달에게 다시 돌려주고,
세금이나 줄이자고 종손은 제안했고, 돌산은 다시 젊은이에게 돌아갔다.
다시는 반환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문중 어른들이 연명으로 서명하고 이전했다.
그로부터 또 여러 해가 흘러갔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4대강 개발사업을 했고,
강에서 그냥 퍼담으면 되던 자갈과 모래를 이제는 해외에서 수입하기에 이르렀다.
버려졌던 돌산은 채석장으로 바뀌었다.
국민 소득이 2만 불($)을 돌파하자, 전원주택 붐이 일어났고, 마당에는 잔디를 심었다.
넓은 잔디밭에 아름답게 다듬은 석판을 깔아놓으니 멋진 오솔길이 되었다.
넓은 석판에 다리만 달면 야외 정원에서 삼겹살을 굽는 멋진 식탁도 되었다.
버려졌던 돌산은 석판을 캐는 광산과 채석장으로 변하였고,
오늘도 수많은 트럭이 석판이나 자갈을 가득 싣고 나가고,
또 빈 트럭들이 실으려고 꼬리를 물고 들어온다.
모든 명예직에서 은퇴한 사장은 수입금의 상당액을 문중에 기부하고,
어려운 이웃을 몰래 도우며,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후하게 주고 있다는 소문이다.
복은 하늘이 내리지만, 붙잡는 것은 본인의 몫이다.
그렇게 얻은 복은 끌로도 팔 수 없다고 했다던가?(동악골과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