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타이완 민주화에 지대한 영향을 준 <야화집(野火集)>을 펴내며 대만을 대표하는 지식인이 된 룽잉타이(龍應台). ‘들불’을 의미하는 이 책은 수십 년을 이어온 국민당 1당 지배 체제에서 타이완 정치의 부패와 문화의 부식을 꼬집었다. 하지만 그녀는 줄곧 살해 위협을 받으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다가 망명하듯 독일로 떠난다. 12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4년간 타이페이 시 문화부 국장을 역임한 뒤 독일에 두고 온 아들을 다시 만났을 때, 품 안의 아이는 어엿한 열여덟 살 청년이 되어있었다. 아들은 엄마가 건네는 말에 시큰둥했고, 엄마는 아들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다가가면 안드레아는 물러났다. 무슨 얘기라도 해볼라치면 그 애는 얘기는 무슨 얘기냐고 했다.
간절히 캐물으면 아이는 말했다. “전 엄마의 사랑스러운 안안(安安)이 아니에요. 저는 저라고요.”
나는 안드레아와 대화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드레아가 응한다 해도 막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열여덟 살 아들은 내가 알던 그 아이가 아니었다.
룽잉타이는 아들과 편지 형식의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3년간 주고받은 편지는 책으로 나오자마자 인기 도서가 됐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생활해온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는 엄마와 아들이 나누는 단순한 일상의 이야기에서, 국가와 사회·문화 현상에 대한 인문학적인 이야기로, 먼저 산 어른 엄마와 낯선 세상으로 들어가는 아들의 인생사에 대한 진솔한 대화로 이어진다.
3년간 편지 36통을 주고받은 뒤 룽잉타이와 안드레아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열여덟 살 사람의 삶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됐다. 안드레아 역시 처음으로 자신의 엄마를 알게 됐다. 앞으로 삶의 여정에서도 당연히 각자 흩어져서 정처 없이 떠돌 것이다. 인생에서 영원히 함께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 3년 동안 바다 위 수기신호로 별을 응시했고 달을 만끽했다. 뭘 더 욕심을 부리겠는가. _룽잉타이의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