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沐浴湯(목욕탕)하면 명절을 앞두고 발디딜 틈도 없이 북새통을 이뤘던 옛날 6.70년대 동네 목욕탕이 먼저 떠오른다. 완전한 구세대인 셈이다. 지금은 沐浴文化가 자리잡아 눈을 돌리면 어디에서나 사우나 간판이 눈에 뛸 정도로 많아지고 심지어는 목욕탕 한달치를 등록하고 하루에 몇번씩 목욕을 하는 한가한 사람도 있으니 목욕문화에 관한 한 일본이 선진국, 우리가 후진국... 이제 이런 말도 옛말이 되어버렸다.
처음부터 우리가 일본인보다 목욕을 게을리 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三國史記에는 고구려 서천왕 17년(286)에 왕이 溫泉湯에 가서 유곽을 즐겼다는 기록도 있고 新羅(しらぎ)時代 귀족들의 저택에는 목욕시설을 갖추었을 뿐 만 아니라 목욕용 향료도 썼었다니 지금 나의 목욕 수준보다도 더 진보적이며 귀족적이다. 옛날 우리나라에 무슨 대중탕~! 어림없는 말 같지만 그 또한 일본 못지않다. 불교가 전파되고 절이 생기면서 절안에 대중목욕탕이 생겼었는데 이는 마음을 씻는 행위. 즉 제례적 의식으로서의 목욕이라는 성격이 더 강했다.
高麗(これい)人들은 新羅, 百濟(くだら)인들보다 더 목욕을 즐겼다고 한다. 고려에 宋나라 사신으로 왔던 서긍이 기록한 <高麗都景>에는 사람들이 하루에 서너 차례 목욕을 즐겼으며 절뿐만 아니라 개경의 큰 강이나 냇가에서도 남녀가 한데 어울려 목욕을 했다는 환상적인 기록이 분명 있다. 당시 여인들은 목욕용 모시 치마를 입고 물에 들어갔다고 하니 몸매가 어땠는지는 몰라도 운치를 아는 여인네였어라....
하지만 朝鮮(ちょうせん)時代에 들어오면서 儒敎(じゅきょう)的인 풍습으로 인해 목욕문화는 퇴색하고 만다. 유교적인 관습은 노출을 극히 꺼려 천민은 여름엔 강가, 냇물에서 씻고 겨울엔 물을 데워서 헛간, 부엌에서 씻기도 했지만 양반들은 혼자 목욕할 때조차도 옷을 다 벗지 않은 채 필요한 부분만을 씻었다 한다. 목간통이라 하는 나무로 만든 둥근 욕조를 안방 또는 사랑방에 들여놓고 하인들이 운반해 온 물을 끼얹어 목욕을 했다는 것이다. 못난 양반들.....
● 風呂(ふろ)는 목욕이라는 뜻의 일본어이다. お風呂に入(はい)る(목욕을 하다)를 어원적으로 해석하면 증기목욕 욕조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이었다. 헤이안(平安)시대 여류문학가 淸少納言(せいしょうなごん)의 수필집 枕の草子(まくらのそうし)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 小屋(こや)あってその內(うち)に石(いし)を多く置き之(これ)をたきて水を注(そそ)ぎ湯氣(ゆげ)を立(た)て そのうえに竹のすのこを設(もう)けてこれに入(はい)るよしなり 大方(おおかた)むらむらにあるなり...
▶ 작은 방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돌을 쌓아두고 여기에 불을 떼어 물을 부어 김이 나오게 한 다음 그 위에 대나무 발을 설치해 놓고 그 곳에 들어간다. 대개 마을마다 있었다.
요즘 한국에서 대 유행하는 "옥돌 찜질방" "황토흙 찜질방"과 다를 게 없으니 참 재미있지 않은가...! <ふろ>라는 말 자체는 각 가정의 방을 室(むろ)라고 했는데 이것이 변하여 <ふろ>가 되었다고도 하고 풍로(風爐/ふうろ)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후세에 와서 흙으로 만든 풍로를 七輪(しちりん)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음식을 끓이는데 7厘(しちりん/1錢의 7/10)쯤의 숯이 든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센토 (錢湯/せんとう) : 일본판 동네 대중탕이 錢湯(せんとう)이다. 가정에 순간온탕기인 湯沸かし機(ゆわかしき)가 보급되면서 요즘은 점차 사라지는 추세여서 그런지 센토(錢湯)가 우리나라의 대중목욕탕보다 결코 많이 눈에 띄는 건 아니다. 일본에서 센토(錢湯)에는 일본 연수기간중 딱 한번 들어가 봤다. 소문을 들어 男女混湯의 꿈은 접었지만 그래도 희미한 남녀구분의 일본 목욕문화를 은근히 기대했건만 한국의 세계적 초호화 사우나에 익숙한 나는 깨끗했지만 초라한 일본 목욕탕에 실망했다. 입구는 한국처럼 남녀의 경우로 구분되어 있지만 양쪽 입구의 중앙에 조금 높은 위치에 카운터가 있어서 카운터에서는 남녀 탈의실이 보이게 되어있다. 일부러 기회를 엿본다면 힐끔 여자 탈의실도 볼 수 있지만 그러는 사람은 없다. 일본인의 목욕탕은 때 미는 곳이란 우리의 개념과는 달리 씻고 피로를 푸는 곳이다. 정말 목욕하기에 게으르다는 중국인도 일본인도 韓國あかすり(한국 때밀이) 관광에 열을 올리는 걸 봐도 <때를 빡빡 민다>는 개념은 참 독특한 한국의 목욕문화인 것 같다.
●로텐부로 (露天風呂/ロテンブロ) : 우리나라도 노천탕 수가 점점 늘어나는데 일본에서 노천탕을 露天風呂(ろてんぶろ)라고 부른다. 이 ロテンブロ(露天風呂) 역시 남녀혼욕 문화가 역사속으로 사라진 것을 빼고는 정말 맘에 든다. 우선 상쾌하다. 부곡 하와이, 수안보 와이키키의 손바닥만 한 노천탕이 아니다. 온천지대의 야외 목욕탕이란 설명이 더 정확하다. 대자연 속에서 홀딱 벗는다는 것. 제한된 공간에서의 제한된 행위의 문화지만 이보다 더 자유로울 순 없다. 지금도 산골짜기 시골 온천에는 남녀 혼욕이 가능한 노천탕이 있기는 있다던데 내가 들른 箱根(はこね)의 岡田(おかだ) 露天風呂는 계곡의 바위를 따라 칸막이가 쭉 처져 있었다. 이 역시 여인네의 몸매를 훔쳐볼 수도 있는 여기저기 틈새가 많지만 그런 사람은 못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