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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5 강 - 坐禪品
교재에는 나와 있지 않고 다음 시간에 이어질 坐禪品에 대한 법문입니다.
坐禪品(좌선품)이라!
坐禪! 이 좌선이 참 중요한데 오늘날 이 禪이라고 하는 것이 동서를 막론하고, 禪이 상당한 바람을 일으키지요. 그래서 禪文化(선문화)! 건축에도 선 스타일을 아주 많이 권장하고, 요즘 상당히 빛을 보는 스타일이 선 스타일입니다.
선 스타일이라고 하는 것은 건축에 있어서 선 음악. 선무용. 이것은 익히 아는 것이고, 선 미술은 그야 뭐 일반화 되어 있는 것이니까 더 말할 나위 없는 것이고, 禪畵(선화)니 禪書(선서)니 禪彫刻(선조각)이니, 이런 분야는 이미 이야기가 다 끝난 상태이고, 건축에까지 어떤 선의정신. 선의사상이 개입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서양이나 우리나라 까지도, 여러분들 아파트 광고 자세히 보세요. 저는 뭐 아파트 살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쩌다가 광고를 보니까 선 스타일이라고 해놓은 거예요. 그 다음 부턴 아파트 광고만 나오면 계속 봐요.
보니까 요즈음 새롭게 잘 지은 아파트는 거의 선 스타일이라고 해놨어요. 처음에는 젠 스타일이라고 일본식 발음으로 해놨는데, 일본 선사들이 선을 서양에다가, 전해서 서양에서 다시 우리나라로 들어오니까 젠 스타일이라고 신문광고에 그렇게 나와요. 지금도 그렇게 나는 광고들이 가끔 있어요.
건축에까지 아파트, 생활공간에까지 이미 禪이 침투해 있는 거예요.
그것은 한 마디로 뭘 뜻하느냐? 건축에서 선은 간결미. 대개 簡潔美(간결미)를 강조해요. 그전 아파트는 붙박이도 많고, 온갖 장식할 것이 많은데, 요즘 선 스타일이라고 해 놓은데는 아주 간결해요.
禪房(선방)을 상상하면 돼요. 특히 일본선방. 일본 曹洞宗(조동종) 같은데 선방에 보면, 우리나라 선방에는 보면 가사장삼도 걸려 있어요.
일본선방에도 그런 데가 있는데, 가서 보면 일본선방이 더 간결해요.
한국선방도 아주 간결하고 청소도 얼마나 깨끗이 잘 돼있고 아주 간결하지만, 일본선방은 훨씬 더 간결해요. 그런 간결하고. 簡素(간소)한 선 스타일이라는 소위 아파트가 결국은 간결하게 돼있고 간소하게 돼있고, 그것을 어떤 美로서 감지할 수 있으면, 그것은 어떤 禪의 정신을 어느 정도 아는 겁니다.
리틀붓다의 아버지가 건축가지요? 영화에 나온 이야기인데, 자기가 설계한 그집이 시애틀에 있는데요. 거기도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그집 방도 보니까 보통 현대 아파트하고 전혀 달라요. 그런 것을 어떻게 찾아내서 했는지 정말 그 사람이 자기가 설계해서 지었다고 그 영화에 그렇게 나오잖아요. 그렇습니다.
이 좌선이라고 하는 것이 오늘 날 너무너무 일반화 돼서, 우리 건축 문화에까지도 말하자면 젖어 들어있다고 볼 수가 있는데, 불자들은 禪에 대해서 정말 잘 알아야 돼요. 불자 아닌 사람도 이런 것은 알고 있는 상태고...
특히 여름에는 수련대회가 불티가나요. 곳곳에 “수련대회”간판만 걸면 접수가 쇄도해서 벌써 봄에 다 차버려요. 보통 큰 절에는 7회까지 하는 데가 있거든요. 다 받아들여 수용할 수가 없어요. 거기에 중심적인 관심이 이 禪에 관심이 있어서 그래요.
물론 전반적으로 사찰생활 체험. 수도생활 체험 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핵심은 禪입니다. 제일 많이 오는 데가 송광사인데, 송광사가 禪中心(선중심)으로 한다고요. 우리 불자들은 이 禪에 대해서 실수도 많이 해야 됩니다. 잘못하는 失手(실수)가 아니라, 실다운 수행을 實修(실수)라고 그래요. 실제적인 체험을 실수라고 그래요.
우리 禪家(선가)에서 잘 쓰는 말로서 실다울 實(실)자 닦을 修(수)자. 실수를 많이 해야 되는데, 깊이 체험은 못하더라도 이론적으로 형식적으로라도 알아야 돼요. “니 뭐 절에 다닌다면서? 참선 어떻게 한대?” 물어오면 이렇게. 이렇게 앉는다 하고, 손은 어떻게 하고 발은 어떻게 하고, 하는 것을 가르쳐 줘야 돼요.
여기의 이 스님은 너무 고차원적으로 설명을 해 놔서, 어떻게 보면 우리가 실제적으로 좌선을 하는데 있어서, 차원은 상당히 높고 그 기본 정신은 여기서 배울 수가 있지만, 구체적인 어떤 행동이라고 할까 좌선 하는 방법이라고 할까 이런 것은 여기 없지요? 대개 “坐禪”하면, 參禪(참선)을 통째로 말하는 것은 아니예요. 그러나 여기 육조스님은 참선을 통째로 이야기해 놨어요.
좌선이라고 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사전적으로 설명을 하면, 참선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앉아서 하는 방법을 좌선이라고 한다고 되어 있어요. 걸어 다니면서 하는 行禪(행선)도 있어요. 누워서 하는 臥禪(와선)도 있어요. 여러 가지 선이 있는데, 그 중에서 왜 좌선을 자주 이야기하고, 많이 이야기하는가 하면, 본격적으로 참선을 할 때는 앉아서 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다고 해서 좌선을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앉는 방법도 있어요. 오래 앉는데 몸에 이상이 없고 편안하고,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몸에 이상이 안 오는 앉는 자세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좌선을 제일 많이 권장을 하지요. 그러나 우리 교과서에 나오는 선요의 고봉스님 같은 이는, 3년 동안 참선을 하셨는데, 한 번도 앉아본적이 없어요.
아예 시작부터 앉지를 않았어요. 한 번 하루쯤 앉아보니까, 그냥 졸음오고, 그냥 망상만 일어나고 그러더라는 거예요. 그래 그 이튿날부터는 일어나가지고 3년을 그냥 도량을 行禪(행선)만 했어요. 행선만...
그럼 언제 앉느냐? 당신 경험에 이야기 해놨는데, 식사할 때 앉았고, 대변볼 때 앉았다는 거예요. 딱 그 두 가지로 앉지 그 외에는 앉은 적이 없답니다. 그러니까 3년간 잠 안잔 겁니다. 잠을 자도 걸어다니면서 잤고...
걸어 다니면서 하니까 망상이 없고 잠이 덜 오고, 그리고 건강이 좋고...
걸어 다니니까 이건 뭐 건강은 보장 된 것이 아닙니까? 24시간 걷는 거예요. 식사하고 대변보고 하는 이 시간 외에는,
도량을 매일 걸으니까 안전하고 건강에 이상 없고, 무리하게 뛰면 건강에 이상이 있지만 슬슬, 화두 놓지지 않을 정도로 슬슬 걷는데, 건강에 이상이 올 리가 없지요. 건강에는 아주 좋아지지요. 그렇게 걸으면 24시간 걸어도 괜찮거든요. 3년간 행선을 하셔서 깨달은 이들도 많고...
협존자 같은 이들은 아예 서서, 좌선을 하지 않고 걷거나 서거나 그렇게 했지요. 그러나 대체적으로 좌선을 많이 했다는 뜻에서 “좌선” “좌선” 하는 것입니다.
좌선을 하는 고차원적인 설명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우선 한번 앉아 보세요. 처음에 오른발 밑에 놓고, 일자로 놓으세요. 일자로. 앞에 딱 균형이 잡히게, 그러니까 線(선)이 딱 일자로 되도록... 그리고 그 위에다가 오른발을 왼쪽으로 당기면 안돼요. 당기지 말고 편안하게 조금 벌려서, 다리를 척 놔 버려요. 편안하게... 그리고 왼발을 벌린 상태에서 다리를 다리 위에다 딱 일선이 되도록 올려놓는, 그것이 반가부좌라고 그러는데 우리나라 사람에게 제일 이상적인 앉음세 입니다.
왜 오른발 위에다 왼발을 얹으느냐? 오른쪽은 用입니다. 作用(작용)!
활동하는 거라고요. 망상. 생각을 일으키는 쪽을 신체로 보면 오른쪽이 됩니다. 물론 왼손잡이도 있지만, 오른쪽이 돼요. 그럼 왼쪽은 體(체)이지요. 그러면 체를 가지고 용을 눌러 버리는 거예요. 오른쪽은 활동하는 것이니까 활동하지 않는 것으로, 활동하는 것을 눌러 버리니까 활동이 스톱 되는 것이지요.
생각이 스톱 되어서, 화두 하나로 집중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반대로 하는 것 보다 훨씬 나아요. 그리고 손도 마찬가지입니다. 손도 그 위에다가 오른손 놓고, 활동하는 것이 오른손이니까 그 위에다 왼손을 척 얹으고... 왼손 體가 用을 누르는 것이 되니까요. 활동을 정지 시키는 것이 되니까 그래서 집중하기가 좋다고 합니다.
이것이 반가부좌인데, 우리나라 사람의 신체조건으로는 제일 이상적입니다. 인도 사람들에게는 온 가부좌. “연꽃좌” 라고도 하지요. 온 가부좌가 인도 사람들에게는 괜찮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온 가부좌가 힘들어요. 억지로 할 필요 없어요. 그거하면 금방 피가 안 통해서 못 견뎌요. 그러면 또 몸 풀고 뭐 한다고 꿈지럭거리고 그렇게 해야 되는데, 그거는 사실은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예요. 걸어 다니면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는데, 그러나 앉는 이야기를 할 바에는 그런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지요. 요는 중요한 것이 뭐냐? 99%의 중요한 것은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
우리나라의 전통 선은 看話禪(간화선)이라고 해서,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지요. 화두를 생각하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화두가 '이 송장을 끌고 다니는 것이 뭐냐?' 이 몸뚱이는 송장이라고 보거든요. 그런데 몸이 지 혼자 가는 것이 아니에요. 뭔가 그 속에 운전수가 있어서, 가자고 하니 가고, 오자고 하니 오고, 시간 됐다고 하니 일어나고, 뭔가 몸에 어떤 느낌이 오면 그 느낌 따라서, 어디 가려우면 가려우니까 손에게 네가 가서 긁어라 하면 가서 긁고, 이렇게 한다고요.
그것을 흔히 우리가 그 주인공. 그 운전수를 마음이라고 이름 하는데,
말이 쉬워서 마음이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파악이 안 된 상태입니다.
제대로 파악이 안 된 상태라고요. 막연하게 그냥 쓰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찾는 일. 그것이 뭐냐? 이것입니다. 도대체 이것이 뭐냐?
“뭐냐?”라고 이렇게 이름을 붙이지만, 그거는 이름을 안 붙여도 상관없어요. 도대체 그것이 뭐냐? 어떻게 생겼느냐? 그것을 파악하라는 일. 그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이고, 그것을 파악하는 것을 시삼마?
한문으로는 “是甚麽(시삼마)”라고 하고 우리말로는 “이 뭣꼬?”라고도 하는데, 그걸 일반적으로 제일 많이 하지요.
그건 또 쉽고요. 뭐 狗子無佛性(구자무불성)이니, 그 다음에
庭前柏樹子(정전백수자)니, 乾屎撅(간시궐)이니, 麻三斤(마삼근)이니 뭐
1700가지가 있어요. 그러나 그거는 그 이전의 배경을 알아야 그것이 문제가 되고, 요거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면 설명하면 그냥 알아들어요.
그대로 문제가 되는 거예요. 우리가 늘 쓰고 있지만 제대로 파악이 안 되었으니까 파악하라 이거지요. “그것을 찾아라.” 손에 물건을 잡듯이 딱 잡혀야 그것이 자기 것이 된다 이겁니다. 그것이 “이 뭣꼬?”라고 하는 화두입니다. 是甚麽 화두...
아까 우리가 강의 들어가기 전에 죽비를 치고 잠깐 禪定(선정)에 들었지요? 그것을 入定(입정) 이라고 합니다. “선정에 든다.” 坐禪(좌선)에 든거지요. 형식적이지마는... 불교에는 형식적이라도 좌선이 加味(가미)가 되어야 그 다음부터 뭐가 제대로 진행이 된다고 보는 겁니다. 법문할 때도 그렇고, 뭘 할 때도 그렇고, 하다못해 1초~1분만이라도 좌선을 하고, 다른 어떤 일이 진행이 되도록 그렇게 되어 있어요. 경전도 다 그렇게 되어있고...
부처님도 ‘선정에서. 삼매에서 일어나서 이마에서 광명을 비추니...’
그 때부터 이야기가 시작이 되거든요. 선정에서 일어나, 삼매에서 일어난다는 말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런 순서도 참 바람직합니다. 그래서 좌선이라고 하는 것이 불교에서 그렇게 중요한 것이고 또 혼자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강원도에 가서 어떤 도반 스님이 토굴을 하나 지었는데, 10년을 별러서 지은 토굴입니다. 어떻게나 기기묘묘하게 자기 딴에는 한다고 했는지, 기술자에게 묻거나 부르거나 하지 않고, 전부 자기가 생각해서 하는 거예요.
뭐 하나 얼른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으면, 그걸 가지고 좌선을 한대요.
몇날 며칠이고 좌선을 하며는 딱 해결 된다네요. 딱 풀리고. 풀리고. 거의 그렇게 해서 풀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주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어요.
자기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는 다 했어요. 이 좌선이라는 것이, 결국 마음 깨닫자고 하는 것인데, 또 어떤 일상생활에도, 마음이 맑아지니까 “식이 맑아진다.” 이런 표현을 해요. “좌선을 하면 식이 맑아진다.” 식이 맑아지니까, 혼란스럽게 마음이 여기저기 끄달리던 것들이 한 곳으로 집중이 딱 되면, 마치 구정물을 한 동이 떠놔서 시간이 오래가면 그것이 삭 가라앉잖아요. 가라앉으면 밑에는 비록 흙이 가라앉아 있다 하더라도 위에는 맑았거든요. 물이 맑아진다고요.
그와 같이 우리 마음이 그런 상태가 됩니다. 그런 상태가 자꾸 지속이 되면, 그 때는 통째로 맑아져 버리는, 그런 어떤 일념이 되면, 그 단계를 거치게 되지요. 참선공부는 그걸 별도로 따로 그것만 지침서가 좋은 것이 있지요. 그 지침서를 가지고 따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 되고, 實參修行(실참수행)그래요. 실참수행을 해가면서, 또 지침서를 봐가면서,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 마침 육조단경에 좌선품이 나와서 좌선에 대한 이야기를 서론으로써 말씀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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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하 반야 바라밀, 마하 반야 바라밀, 마하 반야 바라밀,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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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하다... 대원성님! 감사드립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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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선... 주인공인 마음을 꺠닫고자 하는 일... 구정물을 가라않히면 맑은 물이 되듯,,, 감사합니다 _()()()_
대원성님 고맙습니다._()()()_
坐禪...實參修行... 대원성님, 고맙습니다.._()()()_
實參修行...고맙습니다._()()()_
99%의 중요한 것은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 坐禪...實參修行....대원성님, 감사드립니다_()()()_
마하반야바라밀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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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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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어디에 두느냐? _()()()_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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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에는 1700가지의 종류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가 바로 禪의 핵심이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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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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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體(체)이지요. 그러면 체를 가지고 용을 눌러 버리는 거예요. 오른쪽은 활동하는 것이니까 활동하지 않는 것으로, 활동하는 것을 눌러 버리니까 활동이 스톱 되는 것이지요. 99%의 중요한 것은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바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_()()()_
우리 교과서에 나오는 고봉스님 같은 이는, 3년 동안 참선을 하셨는데, 한 번도 앉아본적이 없어요. 아예 시작부터 앉지를 않았어요. 한 번 하루쯤 앉아보니까, 졸음오고, 망상만 일어나고 그러더라는 거예요. 그래 그 이튿날부터는 일어나가지고 3년을 그냥 도량을 行禪(행선)만 했어요. 행선만...
- 지금, 서울의 현정선원 대우거사님과 부산의 무심선원 김태완거사님도 좌선없이 생활선으로 공부를 마쳤다고 들었습니다.... _()()()_
行禪.......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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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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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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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
'이 송장 끌고 다니는 것이 뭐냐' '이뭣꼬' 고맙습니다 _()()()_
實參修行 _()_ _()_ _()_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 _()_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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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_()()()_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