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불인지 달빛인지, 창문 아래서 하시시를 말았다.
잠 자기 전에 하시시를 하면
잠이 잘 온다.
방은 세걸음이면 끝난다.
낡은 옷장과 폭이 60센티정도밖에 안되는 책상이 한쪽벽에,
맞은 편 벽에는 창문을 맞대고 싱글침대와
침대 발밑에는 방안에 어울리지 않게 30인치 티브이가 있다.
티브이는 나오지 않는다.
전기가 끊긴지 일주일이다.
3층짜리 단독주택에 방이 하나둘셋넷다서여섯일곱개.
그 중에서 내 방이 제일 작다.
집 수리를 대대적으로 하려다 말아서
집안에 사다리가 여러개고 페인트통, 뜯어진 벽지 망치, 흘러내린 벽,
굴러다니는 쓰레기들로
아마도 전기가 들어왔다면 이것들을
밝은 불아래에서는 도저히 눈뜨고 못봐줬겠지만.
여기서 나 혼자 산다.
쥐까지 합하면 몇명쯤 될까.
내가 혼자 이 커다란 집에 사는 걸 알고 고양이 만한 쥐들이 이사를 들어왔다.
전부터 쭈욱 한마리만 보이더니
요새는 크기가 약간 다른 게 보이는 게 그 처음 것이 친구들이든 친척들이든가 끌고 들어온 것도 같다.
이 쥐를 쫓아낼 생각은 없다. 내가 쫓아낸다고 쫓겨갈 것처럼 보이지도 않지만.
혼자서 있는 것보다 쥐라도 좋으니 뭔가 살아있는 소리를 내는 것이
집안에 있으면
나으리라 생각.
문제는
불도 안켜져 컴컴한 이 집에서 쥐는 쥐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 피해 다닌다.
내가 등을 돌렸을 때라든가
내가 화장실에 있을 때라든가
내가 전화를 받고 있을 때만 쉭쉭 움직이는 데
나는 또 나대로 그들을 피해다니는 게 여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어둠속에서 슬리퍼를 질질 끌고 부엌에 가는 길에 쥐가 내 발등을 지 발로
슬쩍 밟고서 지도 미안한지
안밟은 척 하면서 슬쩍 비킨 뺀 적도 있고
내가 무릎까지 오는 통가죽부츠를 신고서 그둘 중의 하나를 밟는 바람에 거의 반은 죽일뻔한 적도 있다.
그들에 대해서 애틋한 마음은 없지만 그렇다고 잠결에 밟아서 죽이고 싶지는 더더욱 않다.
솔직한 심정은 그들을 애완동물 삼아 키워도 상관없다.
그들이 침대 위에서 자는 일만 없다면
어차피 나는 집에서 밥을 해먹는 건 생각도 안하니까 내 부엌 가재도구 위에 내뒹굴어도 좋고 냉장고를 뒤져도 좋다.
그런데
내가 어둠속에서 뭔가를 하고 잇는데 그들이 나를 뒤에서 슬금슬금 노려보거나
내 눈에 띄지 않으려고 재빨리-그들은 하도 살이 쪄서 재빠를 수도 없지만- 지나갈 때는
뒤가 정말로 내 허리까지 오는 머리가 한꺼번에 천정으로 높다랗게 솟는 기분이 든다.
나는 쥐 같은 걸 무서워하는 사람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오래된 우리 학교에는 쥐가 많아서 항상 끈끈이 같은 걸
두고 하교하면 각반에 서너마리씩 잡혀 있었다.
그 치우는 일은 내 당번이었다.
여자아이들이 소리를 꽥꽥 지르고 으으으으하는 동안에
나는 비닐봉지를 하나 들고 그 쥐들을 반을 딱 접어서
종이봉투에 담아서 유유히 쓰레기통으로 가져가는 일을 했다.
몸이 끈끈이에 붙어 있는 것들이 내 손을 물 리도 없고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이런 곳에 혼자산다는 것은,
이 큰 집에 방이 일곱개나 되는 집에
그 중에서 가장 작은 내 방만 빼고서
다 텅텅 비었는데
이런 분위기는 나로하여금 끔찍한 살인사건을 다룬 영화들을 생각나게 하는데
게다가 뒤에서 나를 노려보는 집단이라니!
영화에서는 항상 주인공이 무언가를 놓고나와서 다시
그 장소로 돌아간다.
시청자들은 모두..어...어.... 가면 죽을거야.. 라는 마음이지만 주인공은
어떻게된 영문인지 그 곳에 다시 가서 아니나 다를까 꼭 도끼나 쇠방망이 같은 걸로 찍혀 죽지 않는가.
이 쥐 집단은 그런 장면들을 연상케했다.
이 큰 집 어디에 누가 한달을 숨어있어봐라,
내가 알 수 있기나 하겠냔 말이다.
어둠속에서 뭔가 살아있는 존재를 느끼는 것은
정확히 13일의 금요일이나, 난 지난 여름에 니가 한일을 안다, 같은 류의 공포물에 나오는
뭔가가 등 뒤에서 슉슉 지나다니는 장면과 같다고 보면 된다.
매일같이 그렇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시말하지만
쥐들은 오케이다.
그들을 애완동물 삼아서 딸랑이나 이부자리까지 사줄 형편은 아니지만
내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뒤지는 정도에 만족한다면
하고 싶은대로 하란 말이다.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이 안된다는 데 있었다.
이 집에 있는 쥐들은 처음부터 자신이 없다.
희망을 아예 접어둔 집단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거리에 도둑고양이와 같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제프리와 말콤이라고 이름 지어준
우리 동네 도둑고양이들에게
내가 말을 걸때는 그들은 최소한 멀찌감치서라도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는지 적의를 가지고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
나를 몇초간 주의깊게 져다보곤 하였다.
그 기회를 이용해서
나는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최소한 너희들을 해치진 않을 것이다- 라는 눈빛을 보내면
이해를 하는지 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 쪽에서는 웬간히 됐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 쥐들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는다.
나를 발견하면
내가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조아리긴커녕 1초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사방이 막혀버린 거실에 나와 그들 중 하나가 단둘이 갇혀버린 적이 있었다.
내가 거실로 나와서 책을 읽고 있다가 거실 문을 닫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거실문쪽으로
가서 닫으려는 순간
그가 내가 없는 줄 알고 당당히도 거실로 들어와버렸다.
그런데 놀란 내가 문을 나도 모르게 쾅 닫아버린 것.
그, 즉시 나는 그에게 관심없는 척을 하려고 계속해서 읽던 책으로 눈을 돌렸다.
죽 봐오던 사이니까
태연하게 그냥 넘기려고 했다.
그런데 지는 마치 지꼬리에 다이나마이트가 달려서 몇초후면 자기가 산산조각이라도 날 것처럼 오도방정을 떠는데,
그게 몇분이면 그냥 봐주었을 텐데,
좀 그러다가 말고서 어차피 둘만 거실에 같이 있게 될 것,
그냥 잠잠해지면 내가 비스켓이라도 나눠먹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건 바닥에서 지랄 염병을 떨고 있으니
내가 그를 거실문을 열어서 나가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다가 밟기라도 하면 어떡하냔 말이다.
몇십분이고 계속되는 쥐의 지랄염병을 보면서-비스켓을 모르는척 떨궜는데도
계속해서 지랄 염병을 하는 것이 마치 나에게
씨발 지금 나는 죽게 생겼는데 무슨 과자부스러기야! 하면서
화라도 내는 것 같았다.
정신이 있는대로 곤두섰다.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커뮤니케이션이 안되는 존재와는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해봤자 상황이 악화만 될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적어도 한달은 지금 같이 살고 있고
장담컨대, 그가 내 뒷모습이건 앞모습이건 수십번은 봤다.
그런 세월이 이렇게 흘렀고 아직까지 내가 지들이랑 같이 살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똥줄이 타냔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가
하도 기가막혀
그냥 돌연 정말로 갑자기
야!!!! 그만좀해!
라고 소리를 정말 내 귀가 얼얼할 정도로 질러버렸다.
물도 나오지 않고 전기도, 가스도 끊겨버린 3층짜리 집이다.
너덜너덜 벽은 떨어져있고
방을 나오면 사다리에 머리를 부닥치지 않게 조심,
물이 나오지 않아서
오다가다 알게 된 옆집 총각 에인슬리네 집 욕실에서 샤워한다. - 약간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밤이되면 주택가인 이곳은
깜깜하다. 내 발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집에 산다고 나를 불쌍하게 생각할 것도 아니다.
나는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갈 곳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미 한달치 집세를 새끼 주인에게 냈는데
새끼주인이 스페인으로 갔다.-그녀가 일부러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약간 될대로 되라, 식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었지만 남을 일부러 골탕먹이는 류의 인간은 아니다. 아무리 이 사람때문에 내가 손해를 봐도 좋은 사람인지를 알수 있다. 아무리 한 사람한테 도움을 받고 있어도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인지 알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며칠 뒤 진짜 주인이 나타나서 계약이 끝났고
우리는 이 집을 수리해서 다른 세입자를 받을 것이니
어서 나가달라고 했다.
나는 그들 입장에서 풀리 언더스탠드한 다음에 얘기를 했다.
나는 이미 새끼주인에게 집세를 냈고
니가 진짜 주인인지 몰랐다.
집 수리를 하는 동안에는 집이 비어있을 테니
내가 그동안 여기서 살겠다, 라고.
그들도 흔쾌한 척하며 그러라고 했지만
스리랑카에서 온 그들은 돈과 커리(카레)만 아는 사람들이다.
런던 이 동네에 자기 이름으로 된 집만 12채였다.
어찌어찌 영국으로 들어와서 죽도록 일을 하고 나라에서 주는 공짜 집을
불법으로 세를 줘서 그 세를 받아먹고 그 세 받은 돈으로 다시 집을 빌리고 또 사람들을 들이고 그들에게 돈을 받고 또 다른 집을 빌리고 하는 식으로 돈을 모은 사람들이다.
그들 전 가족, 가족의 가족이 사는 이 동네는 아침댓바람부터 커리 냄새가 진동한다.
정말로 돈과 커리밖에 모른다.
그들 눈에 내가
계약이 끝나기 전까지는
자기 집에서 나갈 것 같이 않게 보이자
전기를 연결하는 키(key)를 빼고
가스를 잠그고 물을 끊어버렸다.
내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도저히 모르겠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영국 전기공사, 가스공사 따위의 전화번호를 주면서
전화해서 한번 알아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말을 나누기도 전에
지하실로 들어가는 열쇠만 찾으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돈과 커리밖에 모르면서 살아온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몇몇 살인극의 한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것만 빼면
나에게 쥐는 오케이지만 쥐는 no reason, 나와 같이 살고 싶지 않은 게 분명하다.
내가 어쩔 수 없는 건
내가 집세를 내는 이 집 주인인지 뭔지 지들이 알리나 하겠냔 말이다.
첫댓글 정민언니 외로워 뵈어요 으흐흑
당신은 귀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