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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07 - 정답없는 문제
S#1. 기숙사 앞
교내 도처에 붙어있는 신입생 환영 포스터, 현수막, 혹은 동아리 신입생 모집 광고들...
수많은 학생들이 아침 수업을 듣기 위해 나서고 있다. 평소와는 다르게 많은 학생들...
S#2. 동아리방
민재는 노트에 신입회원 모집 카피를 써보는 중.
지원이는 수강표를 들고 고민 중.
채영이는 양쪽 다 관여 중.
정태는 소파에 길게 앉아서 신문을 보는 중.
민재 : 월드컵은 8강으로 로봇 축구는 최우승으로! 어때?
채영 : 재미없어. 일단 리듬이 안 맞잖아.
지원 : 현대물리학 개론 듣는다구 했지?
채영 : 어. 서교수님꺼.
민재 : 로봇 축구는 카이스트의 꽃! 이건?
채영 : 갑자기 꽃이 왜 나오니. 거기서.
지원 : (시간표를 체크하며) 그럼 우리가 다 같이 듣는 과목은
데이터 구조론하고 물리학개론하고 두 개밖에 없어.
채영 : 일단 그거라도 세미나 그룹을 만들자.
민재 : 아 멋진 거 생각났다. 이건 어때.
정태 : 이민재.
민재 : 왜.
정태 : 그거 신입회원 모집하기 위한 카피 맞지?
민재 : 뭐 좋은 생각있어?
정태 : 선배들이 책임진다. 후배들의 학점관리!
민재 : 너 그냥 신문 읽어.
채영 : 오우 그거 좋은 생각인데. 그 정도 광고면 백명은 몰려올거 같다야.
문이 열리며 만수가 들어오며..
만수 : 아으.. 귀여운 것들.. 니들 그거 아냐. 유치원에서 하는 거.
참새는? 짹짹! 병아리는? 삐약삐약! 이러면서 애들이 선생님 따라다니잖어.
신입생들 보니까 딱 그거다 어?
민재 : 형은 어째 그리 시간이 많어?
만수 : 무스은 소리. 방금 교수님께서 강의 들어가시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다 해드리고 온 몸이다. 내가.
우리 교수님, 나 아니면 강의실도 못 찾아가시는 분이야. 니들두 알지?
채영 : 참 재명이하고 옥주 그 강의 듣는데. 회로이론 맞지?
만수 : 에이그으 불쌍한 것들.. 우리 모두 그 아이들의 앞날을 위해 일동 묵념... (처연하게 혼자 고개 숙이는)
S#3. 이교수 강의실
이교수가 출석을 부르고 있다.
이교수 : 강우진.. 김경민..
하나씩 부르고 대답할 때마다 얼굴 하나하나를 새겨놓듯 바라본다.
S#4. 동아리방
만수 : 그나저나 이번엔 누굴지 정말 기대된다.
채영 : 뭐가?
만수 : 있잖아. 그거.
민재 : 아아.. 강의 첫날 하나 찍어서 완전히 잡아버리는 거.
채영 : 맞아 맞아. 그런 거 있다. 이교수님.
S#5. 이교수 강의실
이교수 : 오상철.
상철 : 네.
이교수 : 오옥주.
대답없다.
가운데쯤 앉은 재명 걱정스러워서 뒤를 쳐다본다. 아직 오지 않았다.
이교수 : 오옥주. 안왔나?
재명 : (저도 모르게) 금방 올겁니다.
이교수 : (재명을 보며) 자네가 어떻게 알아?
재명 : 아.. 저.. 오다가 화장실 갔습니다.
마이클 : (재명의 뒤에 앉았다가) 나도 봤어요.
옥주, 헤어핀 풀어져서 다시 세팅한다고 갔어요. 거울 보러 갔어요.
하는데 뒷 문이 열리며 별로 급할 거 없이 들어서는 옥주. 화려한 옷에 패셔너블한 헤어스타일.
이교수를 보더니 꾸벅 인사하고는 아무 부담없이 재명을 찾아 줄레줄레 복도를 걸어온다.
오다보면 아무래도 분위기가 이상하다.
둘러보면 이교수, 말없이 쳐다보고 있고. 학생들도 다 쳐다보고 있다.
옥주 불안해서 재명의 옆 의자에 앉으려는데.
이교수 : 오옥주?
옥주 : 네? (다시 서는)
이교수 : 앞으로 지각은 마이너스 일점이야.
옥주 : (별로 걱정없이) 네. (하더니 앉는다)
이교수 : (보다가 학생들을 향해) 다음 시간부터는 출석을 안부를거야.
그러니 지각을 할거면 아예 결석을 하는 게 나아.
대신 매시간 퀴즈 시험이 있는 건 영점처리가 되겠지. 오옥주?
옥주 : 네?
이교수 : 잠깐 일어나보겠어?
옥주 : (일어서는)
이교수 : 그 머리 모양 만드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지?
옥주 : 이거..(자기 머리 만져보며) 한 20분쯤이요..
이교수 : 그 옷을 골라 입는데는?
옥주 : 그냥.. 있는 거 입었는데요.
이교수 : 시간이 얼마나 걸렸냐고.
옥주 : 한 10분쯤..
이교수 : 화장도 했나?
옥주 : 쪼끔..
이교수 : 아주 보기좋아. 개성있고. 앞으로도 그런 모양새를 계속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래요. 앉아요.
옥주, 눈치보며 앉는다.
이교수 : 유태훈.
태훈 : 예.
S#6. 동아리방
민재 : 우리때두, 첫시간에 지각했다고 걸렸던 애, 있잖아.
채영 : 아, 석호?
지원 : 기억난다. 걔 결국은 못견디고 전과했었지. 기계학과루 갔나 그랬는데..
만수 : 그러고보면 난 정말 대단한 놈이야. 그치. 온갖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살아남아서 이렇게 성공했잖냐.
이번에도 나처럼 심지가 굳은 놈이어야 하는데...
아이들, 할말을 잃고 만수를 쳐다본다.
S#7. 이교수 강의실
이교수, 강의중이다.
이교수 : 우리는 전선으로 연결된 세상에 살고있다. 와이어드 월드(wired world).
(하나씩 가리키며) 형광등, 노트북, 마이크...이 회로가 들어있는 수많은 제품들에 둘러싸여 있어.
또 뭐가 있을까? 오옥주?
옥주 : (갑작스런 질문에 놀라 일어서며) 네?
이교수 : 내 수업을 들을 때 주의사항 하나. 두 번씩 질문하게 만들지마.
그건 수업을 제대로 안 듣고 있다는 증거니까.
옥주 : .....
이교수 : 다른 사람들두 마찬가지야. 다들 다음 시간까지 내가 이 과목을 왜 공부하는지,
어떻게 공부할건지 계획표를 짜서 A4용지 5장 이상 써서 제출해.
글자 폰트는 10포인트. 여백이 많은 과제는 받아주지 않겠어.
(기다리지도 않고 계속) 이 강의는 이런 전기회로의 원리와 해석, 설계방법에 대해 배운다.
매시간 숙제는 연습문제 풀이. 그리고 5주동안 프로젝트 3개야. 성적에 25% 반영된다.
학생들 정신없이 메모를 하고 있고.
이교수, 능숙하게 노트북 엔터키를 치면 화면에 나타나는 수업내용.
이교수 : 자, 오늘은 회로변수부터 시작해보는데. 오옥주?
옥주 : (앉았다가 다시 벌떡 일어선다)
이교수 : 회로변수가 뭐지?
옥주 : (바짝 얼어있다)
이교수 : 수업 들어오면서 기본개념에 대한 예습두 안해온거야?
그러면서 머리 만지고 화장하고 옷 골라 입고 그런거니?
(화를 내는 것은 아니고, 정말 의아하다는 듯.. 그래서 더 무서움)
S#8. 석학의 집
옥주 입이 잔뜩 나와서 들어서고,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재명과 마이클.
재명 : 그 교수님 원래 지각하는 학생들 싫어한대. 그래서 그런거야.
옥주 : 아냐, 그 교수님 나를 무조건 싫어하는거야.
마이클 : (미순에게) 안녕하세요. 나는 마이클이에요.
미순 : 그래 얘기 많이 들었지. 니가 그 박교수님을 쫓아온 혀 짧은 애구나.
이 학교에서 공부할만 하고?
마이클 : 아주우 재밌어요.
옥주 : 재밌어? 내가 당하는 게 그렇게 재밌었어?
마이클 : 오우 노우. 옥주는 불쌍했어.
미순 : 왜.
옥주 : 아유 정말 말도 하기 싫어요.
재명 : 오늘 이교수님 첫 강의였는데요.
질문을 서른개 했으면 그 중에 스물다섯개는 옥주한테 하는 거 있죠.
옥주 : 나를 미워하는거라니까요.
그래서 학생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나를 망신시키면서 좋아하는 거라구요.
미순 : 난 또 뭐라고. 야야 나 학교 다닐 땐 선생님이 나한테 질문 같은 거 해주는 게 꿈이었다야.
보통 선생님들이 그러잖냐. 아주 공부를 잘 하는 애거나. 아주 문제아만 기억하는 거.
그 중간에 있는 애들은 기억도 못하고 삼년 지나가는 거지 뭐.
옥주 : (재명에게) 내가 문제아같이 보이니?
마이클 : 나 왜 그런지 알아요. 교수님 옥주를 잴러시(jealousy)해요.
미순 : 뭘해?
재명 : 질투한대나봐요.
옥주 : 왜애?
마이클 : 교수님 옥주보다 늙었어요. 교수님 옷은 그냥 옷. 옥주 옷은 패셔너블.
그래서 잴러시해요.
옥주 : (생각해보는)
진영 : (물잔 가져오며) 뭐 드실래요?
마이클 : (진영을 띠용해서 보는)
재명 : 옥주야, 커피 마실래?
옥주 : 설마 교수님이 그런걸까?
마이클 : (진영에게) 나 마이클이에요.
진영 : 네에 근데 뭐 드실래요?
마이클 : (진영에게) 뭐 드시고 싶으세요? 제가 살게요. 나 마이클이에요. 이름 물어봐도 되요?
모두 이게 뭔 소린가 싶어서 마이클을 보는...
S#9. 박교수 강의실 앞 복도
박교수 강의실 홋수를 기웃거리며 찾다가 드디어 201이라는 팻말을 발견하고 기분 좋아서 들어선다.
S#10. 박교수 강의실 내부
아직 수업 시작 전이라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떠들고 있는 아이들..
박교수 들어와서 강의실을 둘러보는데.. 앞에 세명의 학생이 모여앉아 얘기하고 있는 중.
학생1 : MIT에서 교수였다면서.
학생2 : 아냐. 아주 초짜라든데. 강의는 이번이 처음이랜다.
학생3 : 교과서나 줄줄 읽다가 강의 끝나는 거 아냐?
학생1 : 저번에 해킹대회 열었던 교수잖아. 좀 튀고 싶어하는 교수 아닐까?
학생2 : 좀 있으면 텔레비젼마다 얼굴 내밀고 바빠지는 거 아냐?
박교수 : (끼어들며) 교수가 텔레비젼에 얼굴 내밀면 안좋은가요?
학생3 : 뭐 학점만 잘 준다면 상관없죠.
학생1 : 근데 대개 실력없는 교수들이 학점 짠 거 아냐.
박교수 : 저어.. 대충 어떤 교수들이 인기가 없죠?
학생2 : 실력도 없으면서 숙제 많이 내주고.
학생3 : 게다가 휴강도 안하는 교수.
박교수 : 아 하하.
그때 그들의 뒤가 보이는데 거기 민재와 채영, 지원이 어이없어서 보고 있다.
채영 얼른 민재를 밀어낸다. 민재 앞으로 나서는데.
학생1 : 대개 초짜 교수들이 그래요. 권위세우느라고 쓸데없는 숙제 내주고 괜히 폼잡고 그러드라구요.
민재 : 음흠. 교수님 오셨습니까?
박교수 : (돌아보더니) 아이 얘기가 막 재밌어지는데.
학생1,2,3 황당해서 보는..
그 때 울리는 수업 시작 벨소리.
소리 : (수업벨)
자리 털고 일어나는 박교수. 앞으로 나간다.
교탁 위에 서는데 아무도 박교수를 주목하지 않는다.
잠시 서있더니 조용히 앞문으로 나가는 박교수. 곧바로 다시 들어온다.
문 탕 닫자 그제서야 주목하는 아이들.
박교수, 교탁으로 가지 않고 앞쪽 책상에 걸터앉더니.
박교수 : 안녕하세요, 초짜교수 박기훈이에요.
S#11. 복도
정태가 하품을 하며 어슬렁거리며 오고 있다. 이미 수업이 시작된 시간이라서 복도는 조용하다.
교실 문 앞에 서더니 목운동을 하고 손목시계를 한번 보고 한숨을 쉬더니 문을 연다.
S#12. 박교수 강의실 내부
들어서는 정태.
앞에는 박교수가 서있다가 정태를 본다.
정태 : (꾸벅 인사하며) 죄송합니다.
박교수 : 뭐가요?
정태 : ..늦었습니다.
박교수 : 난 또 뭐라고. 앉아요. 늦을 수도 있지요 뭐.
각자 수업보다 더 중요한 게 있으면 늦을 수도 있고 못 올수도 있잖아요.
정태 : (의심스러워 하며 자리에 앉고)
박교수 : 자아 모두 아직 내 질문에 대답을 안하고 있는데 다시 물어볼게요.
내가 칠십살 된 할아버지라고 생각하고 데이터 구조론이 뭣땜에 공부하는건지 설명해보세요.
학생들 조용하다.
나란히 앉아있던 민재와 채영도 어리둥절해서 서로 마주본다.
박교수 : 아무도 없어요? 흐음.. 그럼 좀 더 쉬운 걸로. 그럼 과학을 왜 공부하는 건지 설명하실 분?
역시 다들 조용하다..
박교수 : 나 따라해봐요. 아아...
학생들 : (어리둥절하다가 몇 명이 아아..소리를 낸다)
박교수 : 에...
학생들 : (좀 더 많이) 에에
박교수 : 이이.
학생들 : (웃기도 하면서) 이이..
박교수 : 발성에는 다 지장이 없어보이네. 그런데 왜 아무도 대답을 안하지요?
채영, 민재를 쿡쿡 찌른다.
민재 할 수 없이 손을 들어.
민재 : 과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인류를 좀 더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섭니다.
박교수 : 아아 드디어 말을 하는 학생이 나타났군요. 학생은 플러스 일점.
우리 이렇게 정합시다. 내 수업시간에 누구라도 무슨 말이라도 하는 학생은 무조건 플러스 일점입니다.
자아 그럼 반문. 과연 과학이 발전하면 인류가 행복해져요?
민재 : ... 예에 그렇...지요.
박교수 : 정말?
민재 : 예?
박교수 : 예를 대봐요. 과학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 예!
채영 : (손을 들고) 너무나 많습니다. 전기에서 시작해서 운송수단. 통신수단..
이게 다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고.. 또.. (웃고) 저어 이런건 초등학교때 했던 공부같은데요.
박교수 : 학생도 플러스 일점. 과학이 우리를 좀 편리하게 해줬다...그게 아니라 우리를 행복하게 해줬냐구요.
예전에는 전기가 없었어요. 그래서 온가족이 밤에는 화롯불 앞에 둘러앉아 군밤 구워 먹었어요.
지금은 온가족이 각자 테레비전만 쳐다봐요. 행복해요?
지원 : 질문 있습니다.
박교수 : 오오 질문도 플러스 일점.
지원 : 이런 이야기가 데이터 구조론강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고 싶은데요.
박교수 : 좋은 질문입니다. 플러스 이점이에요.
여러분 혹시 이런 생각 안 해봤어요? 내가 밤새고 공부하는 게 혹시
인류의 불행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 땜에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너무나 불행해지면 어쩌나..
둘러보지만 모두 조용하다.
박교수 :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여러분은 과학을 왜 공부하나요? 또는 공학을 왜 공부하지요?
학생들 : (조용....)
박교수 : 음... 그걸 모른다면 이 수업은 할 필요가 없지요. 안하는게 나을 거에요.
그럼 다음 시간에 다시 계속합시다.
박교수 즐겁게 웃으며 문쪽으로 나가는데.
정태 : 질문 있습니다.
박교수 : 오우 질문. (돌아서면)
정태 : 그 대답을 교수님은 알고 계십니까?
박교수 : 알아도 안 가르쳐줄거에요. 이런건 컨닝해서 알아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거니까.
(심각하게) 그리고 내가 가르쳐주면 학생은 그대로 믿을거에요? 아무 의심도 없이?
학생 바보 아니에요? ....(다시 웃어서) 그럼.
손가락을 흔들어 바이바이를 하더니 정말로 나가버린다.
S#13. 동아리방
민재 채영 정태 지원 몰려들어온다.
민재, 정태를 어깨동무하며...
민재 : 축하한다. 니 평생에 바보 소리는 처음 들어봤지?
정태 : (언짢아서 민재의 팔을 쳐내고)
채영 : 이거 좀 너무한 거 아냐. 세시간짜리 강의를 십분만에 나가버려?
지원 : 수강표 어딨지?
채영 : 왜?
지원 : 정정할거야. 다른 교수님 강의 들어야겠어.
민재 : 어이어이 좀 참아봐. 뭔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지원 : 더 볼 것도 없어. 수업준비를 안해온거야. 첫시간부터 그런거 보면 앞으로도 뻔한거 아니니?
채영 : 그래도 어쨌든 첫시간에 과제가 없었다... 이건 좋은 출발 아닌가? 응?
우리 4학년이야. 학점 관리하기 좋은 수업같지 않어?
정태 :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이 뭔지 아냐?
채영 : 박교수님이라고 말할려 그러지?
정태 : 언제나 주인공이 되려구 기를 쓰는 인간들이야.
그런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어떻게든 튀어볼려구 별 짓을 다해.
그래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죄다 엑스트라로 만들어 놓고 기분 좋아한다구.
민재 : 근데 말이지. ...
모두 쳐다보면.
민재 : ...과학이 발전되면 우리가 행복해지는 거 맞냐?
S#14. 도서관 외경 밤
창문으로 공부하는 아이들이 보이고...
S#15. 밤 매점
아이들 우글거리며 모여서서 라면을 먹거나 빵을 먹거나..티브이를 시청하는 모습들..
S#16. 밤 기숙사 외경
그 위로 들리는 채영의 소리.
채영 : (소리) 회로이론을 왜 공부하는지.. 어떻게 공부할건지 계획표를 짜오랬다구?
S#17. 채영 지원의 방
채영 컵라면을 먹고 있다.
그 앞에 옥주. 책상 앞에 지원.
옥주 : 응. 언니때도 그런 과제 냈었나?
채영 : (책상 앞의 지원에게) 과학을 왜 공부하느냐보단 좀 쉬운거 같지 않니?
지원 : 질적으로 다르지. 박교수님이야 말장난이고.. 이교수님은 계획표를 짜오라는 거잖아.
채영 : 그런가.. (옥주에게) 그런데 뭐가 문제야.
옥주 : 그걸 A4용지로 다섯장 이상을 쓰래. 도저히 그렇게 쓸 말이 없는걸. 그것두 10포인트루.
채영 : 넌 회로이론을 왜 공부하려고 하는데?
옥주 : 그야 로봇 축구 동아리 하는데 필요하니까.
채영 : 그리고?
옥주 : 그리고... 뭐.. 없어.
지원 : (돌아앉으며) 넌 이 학교에 왜 들어왔니?
옥주 : 음...사촌오빠가 여기 졸업생이거든. 이 학교가 좋다 그래서. 또 등록금도 공짜라고 그러구.
기숙사니까 집에서 나올 수도 있고. 나 그 때 집에서 나오고 싶었단 말야.
지원 : 그게 다야?
옥주 : 그럼 뭐가 또 있나?
채영 : 과연 어렵겠다. 그 숙제.
옥주 : 그럼 어떻게 해애...
S#18. 이교수 강의실
이교수, 강의중이다.
이교수 : (노트북 치며) 이번 학기 첫 번째 프로젝트는 홉필드회로망을 전기회로를 이용해 구현해보는거다.
이걸 matlab이나 pspice를 이용해 컴퓨터 상에서 모의실험해보는것까지. 질문있어?
둘러보면 다들 고개숙이고 있다.
이교수 : 문제가 뭔지 다 파악했나보지? 좋아. (휘 둘러보다가) 오옥주! 홉필드 회로망이 뭐야.
옥주 : (놀라지도 않는다) 잘 모르겠습니다.
이교수 : 모르면 질문을 해야지. 무슨 배짱이야?
다음 시간까지 홉필드 회로망에 대해서 간단하게 요약해와.
옥주 : 저...저만요?
이교수 : 그럼 내가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고 있니? 한달 수업 충실히 들으면 여러분들도 충분히 할수있을거야.
리포트는 4주후 제출하는걸로 하지.
노트북 엔터치면 화면에 뜨는 회로도.
이교수 : 시뮬레이션 결과를 미리 보여주자면 이렇게 돼. 시간이 남는 사람은 실험까지 해도 좋다.
이교수, 설명 계속하고
옥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이교수를 바라본다.
S#19. 구내식당
옥주 재명 마이클이 앉아 밥을 먹고 있다.
옥주는 여전히 시무룩하고...
재명 : 어쨌든 과제는 해가야 하니까. 우리 밥먹고 도서관 가자.
옥주 : 안 가.
재명 : 야야. 과제까지 안해가면 무슨 고문을 당할려구 그래.
옥주 : 나 그 과목 안 들을거야.
재명 : 민재형이 로봇 축구 동아리 회원은 무조건 회로이론 들어야된다구 했잖아.
옥주 : 다른 교수님꺼 들을거야. 회로이론만 세반이나 되잖아.
마이클 : 민재형.
밥먹다 일어나더니 쫓아간다.
(일각)
줄을 서서 식판에 밥을 담고 있는 민재와 채영. 달려온 마이클이 반갑다고 붙으며.
마이클 : 옥주 화났어요. 이교수님한테 혼나고 화났어요.
채영 : 그 얘기 하러 쫓아온거야?
마이클 : 이거 맛있어요. (반찬 하나 집어 민재의 식판에 올려놓으며) 나 이거 다 먹었어요. 하나 더 집어도 되요?
민재 : (채영에게) 내 말했지? 제 2의 만수형이래니까.
(경과)
민재 채영이까지 둘러앉아 밥을 먹으며.
채영 : 에그 불쌍한 것. 왜 하필 니가 찍혔냐?
민재 : (위로한답시고) 괜찮아. 괜찮아. 이교수님두 겪어보면 좋은 사람이야. 안 그러냐?
채영 : 그러엄. 장점이 더 많어. 시간 칼처럼 잘 지키시지, 휴강두 없지,
숙제두 스케줄대루 꼬박꼬박 잘 내주시지..
민재 : (눈치주며) 너 지금 격려해주는 거냐?
채영 : 뭐..하여간 그러니까 좀 더 들어봐. 버텨보라구.
옥주 : 수강신청 정정할거에요. 다른 교수님꺼 들을거라구요.
민재 채영 서로 마주보더니.
채영 : 니가 말해.
민재 : 음.. 옥주야.
옥주 : 네.
민재 : 넌 지금 니 무덤을 니가 파고 있는 거 같다.
채영 : 맞어.
옥주 : 왜요?
채영 : 그냥 참아봐. 이교수님 정말 괜찮은 분이야. 한번 마음에 들면 얼마나 잘해주시는데.
한마디루 의리파잖어.
옥주 : .... 한 번 마음에 안들면요? (일어서며) 나 먼저 가요.
재명 할수없이 따라 일어서며.
재명 : 옥주야 같이 가아.
S#20. 박교수 연구실
남희, 컴퓨터 앞에 앉아 박교수의 눈치를 보고 있다.
박교수는 진지한 얼굴로 손가락에 고무줄을 걸고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어보고 있다.
남희 : 저어 교수님.
박교수 : 어?
남희 : 오늘 수업은 웬만하면 세시간 다 채우고 나오시죠.
박교수 : 나도 그러고 싶지. 일찍 나오면 너무 심심하다구.
남희 : 학생들이 좀..
박교수 : 학생들이 왜?
남희 : 벌써 세명이나 수강신청 정정하겠다고 찾아왔어요.
박교수 : 왜애?
남희 : 그런 애들 있어요. 공부 열심히 하려는 애들..그런 애들은 그냥 놀고 지나가는 수업을 못 참거든요.
박교수 : 그거 정정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건데?
남희 : 물론 교수님이 허락을 해줘야 수강신청서를 빼갈 수 있는데요. 그치만..
박교수 : 그렇게 다 빼주면 어떻게 되지?
남희 : 교수님 수업에 아무도 안남게 되죠.
박교수 : 그럼 나 이 학교에서 짤리나? 어어 그럼 안되는데.
남희 : 그러니까요. 이제 슬슬 교과서 진도를 나가시는 게 좋지 않겠어요?
박교수 : (미소지어 남희를 보다가) 남희양.
남희 : 네?
박교수 : 교과서에 나오는 건 말이지. 남들이 오래 전에 문제점을 다 파악하고 다 해결해놓은 것들 아닌가?
그런건 기본 개념만 알면 되는 거잖아. 그건 내꺼가 아니라고.
최소한 내가 선생이라면 학생들에게 내꺼 만드는 재미 정도는 가르쳐 줘야 되는 거 아닌가?
남희 : (감탄해서 보다가 수줍게 미소지으며) 네에.. 그렇네요.
박교수 : 아 수업시간.. 가봐야지. (일어나 가며) 오오 해피 데이! 오오 해피 데이이..
박교수가 나간 뒤에도 남희 사모하는 눈으로 문을 바라보고 있다.
S#21. 박교수 강의실
아직 수업 시간 전.
민재 채영 정태 지원 앞뒤로 모여 앉아있다.
민재 : 그니까 방법은 하나뿐이야. 뭘 물어보든 무조건 다 대답을 해서
교수님이 더 이상 말을 못하도록 하는거야. 그럼 그 담엔 진도 나가시겠지.
채영 : 찬성 대찬성.
지원 :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한테 그 방법이 먹히겠니?
정태 : 지원이 말에 찬성.
민재 : 일단 밀어보자구. 자아 그럼 우리가 대답할 말은 데이터 구조론이 뭐냐. 그건 채영이 니가 맡어.
채영 : 나 혼자?
민재 : 도와줄게.
정태 : 과학이 어쩌구 하는 건 내가 맡을게. 지원이 지원사격 알지?
지원 : 알았어. 이번에도 안되면 난 정말 다른 교수님한테 갈거야. 그땐 말리지 마.
민재 : 알았다구.
채영 : 오신다 오셨어.
앞문으로 들어서는 박교수.
박교수 : 오오 해피 데이! 오늘은 날씨가 아주 좋습니다.
이 좋은 날씨에 거의 빠짐없이 강의실로 찾아오다니..참으로 주변머리없는 친구들이로구만.
자아.. 지난 시간에 이어서 데이터 구조론이란 무엇인가!
채영 : (손을 번쩍 들고) 설명해보겠습니다.
박교수 : 오오 좋은 출발. 기분좋은 강의시간.
채영 :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짜기 위해서 자료를 얼마나 잘 구성하는가에 대해 공부를 하는 이론입니다.
박교수 : 난 지금 칠십살 먹은 할아버지에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채영 : 에에 그러니까..(민재를 옆으로 툭툭 치는) 예를 들어보자면..
민재 : (얼른 일어나서) 집을 짓는다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0층짜리 건물이라고 하고..
이걸 아주 효율적으로 지을 수도 있고. 아주 엉성하게 지을 수도 있습니다.
채영 : 그러니까 1층에서 3층까지 갔다가 다시 2층으로 내려가서 다시 계단을 찾고..
이런 식이라면 엉성한 설계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기둥도 제멋대로 있고.
방문도 여기저기 달려있어서 헤메게 되는 그런 건물이요.
박교수 : 멋져요 계속해봐요.
채영 : 프로그램도 마찬가집니다. 프로그램을 잘 짜기 위해선 데이터들을 프로그램에 입력해야 되는데..
잘못 입력하면 엉성해집니다.
민재 : 이걸 얼마나 효율적으로 구성해서 입력하는가..이게 바로 데이터 구조론을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박교수 : (노인 목소리) 아하 뭔진 모르겠지만 무슨 말을 할려는진 알겠어요.
(평소 목소리..학생들을 향해) 반론 있어요?
정태가 주도하면서 학생들 박수를 쳐준다.
민재 채영 의기양양해서 앉는다. 둘이 책상 밑으로 하이파이브를 한다.
박교수 : 그럼 다음으로 넘어갈까요? 과학 또는 공학.. 이걸 왜 공부를 하느냐 이건데...
S#22. 이교수 랩
이교수 학생들이 제출한 리포트를 한뭉치 들고 들어온다.
만수 뒤따라 들어오며.
이교수 : 랩 세미나 오늘 몇시부터 하기로 했지?
만수 : 저녁 여섯시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오후 세시에 교수회의 있습니다.
절대로 잊지 마시라고 처장님께서 전화 주셨는데요.
이교수 : 어 알았어. 저기 말이지.
만수 : 예.
이교수 : 두시 40분쯤에 그 얘기 다시 한번만 해줘.
만수 : 예에. 저어 그거 아세요. 교수님 덕분에 저의 기억력이 날로 향상 되가고 있다는거요.
요즘 같아선 아이큐 테스트 다시 받으면 10점은 올라갈거 같습니다. 하하하.
소리 : (노크하는)
만수 : 예에 들어오십쇼.
옥주가 들어온다.
만수 : 어 옥주가 웬일이냐. 교수님 산디과 2학년 오옥주입니다.
이교수 : 알어. 왜?
조금 주저하다가 꾸벅 인사하는 옥주.
이교수 : 리포트 벌써 갖고 온거야?
옥주, 머뭇거리다가 종이한장 내민다.
이교수, 종이 받아들고 보면 수강신청 정정용지.
만수도 힐끗 넘겨다본다.
만수 : 수강신청을 정정한다고?
S#23. 이교수 방
옥주, 죄지은 것처럼 이교수 앞에 앉아있다.
이교수 : 다른 교수님한테 듣겠다는 거니?
옥주 : ......네 그러고 싶어요.
이교수 : 내 수업은 힘들고 다른 교수님 수업은 쉬울 거 같아서?
옥주 : .....
이교수 : 그래?
옥주 : 그런 것도 있구요.
이교수 : (용지 탁자위에 놓으며) 그렇다면 아직은 보내줄 수가 없어.
이런 형편없는 학생을 다른 교수님한테 맡겨버리면 내가 너무 미안하니까. 이건 없던 걸로 하자.
옥주 : (불쑥) 너무하세요.
이교수 : 내가? 왜. (화내지는 않고)
옥주 : 교수님은 처음부터 무조건 절 미워하시는 거 같아요.
제가 잘못한 거 있으면 그거부터 가르쳐주시면 좋겠어요.
이교수 : (보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정정 신청할만도 하구나. 좋아.
옥주 : (반짝 희망에 차서 보는)
이교수 : 하지만 아직은 아냐. 아직까지는 내 학생이니까 내 방식대로 따라와줘야겠어.
이번 리포트 내면, 그때 사인해주지.
옥주 : 이번 리포트라면... 4주 프로젝트 말인가요?
이교수 : 그래. 홉필드 회로망 구현. 요약이 아니라 리포트로.
옥주 : 하지만 정정기간은 1주일도 안남았는데요.
이교수 : 그럼 일주일내로 리포트를 쓰면 되겠군.
니가 정말루 여기에 내 사인을 받고 싶다면 할 수 있을거야.
옥주 : (새침해져서 일어서며) 알겠습니다. 가보겠습니다. (인사하는)
이교수 : 아참..
옥주 : 네? (돌아보면)
이교수 : 남자친구가 있는 모양이든데.. 평소 리포트 쓸 때마다 남자의 도움을 받고 그러는 편인가?
옥주 : ..아닙니다.
이교수 : 그럼 됐어. 이거 갖구 가야지.
이교수, 책상 위의 리포트들을 보기 시작한다.
옥주는 몹시 마음이 상해서 신청용지를 집어들고 돌아선다.
S#24. 복도 대기의자가 있는 곳.
처장 지나가다가 돌아본다. 거기 옥주가 훌쩍훌쩍 울며 앉아있다.
처장 어쩔까 망설이다가 그 옆으로 다가가며....
처장 : 학생.
옥주 : (처장을 보고 깜짝 놀라 일어서 고개 숙여 보인다)
처장 : 어디 아파요?
S#25. 복도 다른 곳
처장과 옥주 앉아서...
처장 : 어떤 교수님이 학생을 무조건 미워한다. 괴롭히고... 그 교수님이 누군데요?
옥주 : 그건...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처장 : 아...그렇겠지요. 그런데 수강 정정도 받아주지 않는다...
옥주 : 네. 저는 학교를 아예 그만 둘까..그런 생각까지 했어요. 정말이에요.
처장 : 내가 처장을 하고 난 다음에 매학기 두명 이상의 학생이 비슷한 상담을 해와요.
그 학생들이 마지막에 하는 말도 비슷해요.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요...
옥주 : (희망적으로) 그럼 뭐라고 상담을 해주세요?
처장 : 상담이란 게 원래 들어주는거지. 뭐라고 정답을 말해주는게 아니에요.
옥주 : (실망..)
처장 : 그런 학생들이 그 뒤애 어떻게 되었나.. 가만 보면 대개 둘 중에 하나에요.
정말로 학교를 그만주는 학생도 있고.
옥주 : (열심히 듣는)
처장 : 그리고 교수를 이기는 학생도 있어요.
옥주 : 교수님을 이겨요?
처장 : 그렇지요. 92학번이었나.. 그 학생은 교수하고 끝까지 대결을 했다고 그래요.
옥주 : 대결이요..
처장 : 교수가 리포트 열장 써와라...그러면 스무장 써가고.. 스무장 써와라..그러면 마흔장 써가고...
옥주 : 그 선배님은 지금 어떻게 됐는데요?
처장 : 박사가 됐지요.
옥주 : (시무룩..)
처장 : 왜요?
옥주 : 전 박사가 되고 싶은 마음.. 없어요.
처장 : (보다가..) 그럼 학생은 뭐를 하고 싶은거에요? 장래에.
옥주 : (다시 울먹거려지는) 저도 그걸 모르겠어요.
처장 : 그럼 머언 장래 말고 올해에는 뭐를 하고 싶어요? 이번 학기.. 이번 달에 하고 싶은 것도 없어요?
옥주 : (처장을 다시 쳐다보는)
S#26. 캠퍼스 전경
밤이다.
S#27. 박교수 강의실 앞 복도
남희가 강의실 안의 소리를 기웃거리며 엿들으려고 하고 있다.
만수 뒤에서 오다가 이게 웬 쾌냐 싶어서 슬그머니 다가가 머리 뒤에 대고 허장강 버전으로.
만수 : 아가씨.
남희 : (깜짝 놀라 돌아보고) 뭐야.
만수 : 우리 심심한데 뽀뽀나..아니 커피나 한잔 하실까요.
남희 : (무시해버리고 다시 안의 동정을 엿듣는)
만수 : 안에 뭐 있어요? (문을 열려는데)
남희 : (기겁을 해서 만수를 잡고) 강의중이야.
만수 : 무슨 강의요.
남희 : 우리 교수님. 아직도 강의를 하고 계신다고.
만수 : 예에? (시계 보더니) 지금 여덟신데?
남희 : 그래. 두시부터 시작한 강의를 아직껏 하고 계신다고.
하는데 뒷문이 열리며 학생 하나가 급히 나와 그들을 지나친다.
남희 : 끝났어?
학생 : 아뇨. 화장실 갈려구요.
하더니 총총 간다.
남희 : 아유 정말 어쩌실려구 이러시지.
만수 : 하여간 여러 가지 갖가지 다하시는군요. 선배님네 그 교수님.
남희 : 저녁도 안드시구.. 아까 점심 때도 짜장면밖에 안 드셨는데. 너무 시장하시겠다아.
만수 : (우잉? 해서 돌아보는)
S#28. 박교수 강의실 내부
박교수는 앞 부분의 아무 책상에 올라가 아예 책상다리를 하고 자리잡고 있고.
학생들은 지쳐서 자세가 흐트러져 있고.
정태가 서서 얘기 중이다.
정태 : 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행복을 주느냐 마느냐 이건 과학자들이 결정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제까지의 역사를 보세요. 전쟁 무기를 만든 건 과학자지만 그 과학자한테 그걸 만들게 한 건 누굽니까?
그걸로 전쟁을 일으킨 건 누구지요?
박교수 : 호오 이제 드디어 남의 탓을 하는 단계로 접어들었군요.
정태 : (약이 올라있다) 이 거대한 사회구조 속에서 몇몇 과학자들한테만 인류의 행복을 책임질 수 있냐.
이런 질문부터가 너무 무책임 한 거 아닙니까?
박교수 : 여기에 반론할 학생 없어요? (둘러보는)
지원 : (손을 든다)
박교수 : 좋아요. 좋아요. 그냥 앉아서 해요. 힘든데.
정태 : (화가 난 채 앉고)
지원 : 반론은 아니구요. 도저히 이해가 안되서 그러는데요. 저희는 지금 철학을 배우러온게아니라 데이터구조를 배우러왔거든요.
어째서 이런 토론을 하느라고 여섯시간씩 앉아있어야 되는지 그걸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박교수 : 음...(생각해보더니) 두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는데.. 첫째는 여러분이 아주 위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래요.
민재 채영 마주본다.
민재, 뭔 소리야?, 채영, 몰라.. 하는 무언의 대화가 오가고..
박교수 : 깡패가 위험하다고 하지만 기껏 몇 명 죽이면 끝나요. 잘못된 정치가가 위험하다고? 그래봤자 기껏 한나라 경제가
흔들리는 거겠지. 과학자 한명이 잘못하면? 지구가 폭파해요. 쿠앙. 그래서 이런 시간이 필요한 거고...
에에 또 하난 뭐더라.. 맞아. 여러분은 예술가기 때문이지요.
민재 다시 채영에게 뭐? 하고 입모양으로 묻고.
채영, 예술가..라고 대답한다.
박교수 : (계속 이제는 교실을 누비며) 예술가는 창의적인 사람입니다. 창의! 창조력! 크리에이티브 파우어! 에에..
창조성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 이제부터 퀴즈시험이나 볼까요?
민재 채영, 경악하는 표정이 되고..
박교수 : 자아 모두 종이 한 장씩 꺼내요. (옆의 학생에게) 아 그냥 노트 한 장 찢으면 되지이. 그럼 이제부터 그 노트에다가...
(생각해보더니 갑자기 주머니에서 뒤적뒤적 아까 갖고 놀던 고무줄 꺼내 보여준다) 이 고무줄에 대해서 씁니다. 뭘 쓰냐..
이 고무줄로 할 수 있는 것. 스무가지만 쓰면 됩니다. 스무개.. 많지도 않아요.
지원 : 이거 성적에 반영되는 건가요?
박교수 : 성적? 아 그럽시다. 스무개 하나당 일점씩 반영하겠어요. 자아 시작합시다. 배고프니까 빨랑들 해요.
채영, 지원을 돌아보면 찡그려 보인다.
학생들 할 수 없이 종이를 내려다보는..
박교수 : 고무줄로 김밥 도시락을 묶는다든가.. 이런 식의 비창조적인 답안은 영점입니다. (혼자 즐겁다)
S#29. 도서관 내부 밤
옥주가 책들을 여러권 쌓아놓고 메모를 하며 보고 있다.
재명이가 종이 커피 두잔을 뽑아온다.
재명 : 이거 마시면서 해.
옥주 : 고마워.
재명 : 어디 봐. 내가 좀 요약해줄까? (책 하나를 집으려는데)
옥주 : (재명의 손을 쳐내며) 됐어.
재명 : 왜? 이거 언제 혼자 다 할려구 그래?
옥주 : 니꺼나 해. 난 남자친구 도움 받아서 리포트 쓰고 싶지 않아.
재명 : 무슨 소리야?
옥주 : 나 이거 일주일 내로 남자친구 도움없이 쓸거야. 그래서 수강신청 정정 사인을 받고야 말거라고.
그게 내가 이번 주 안에 하고 싶은 일이야.
재명, 이게 무슨 소린가 해서 보는데 마이클이 디스켓을 몇장 가져오며.
마이클 : 옥주. 이거 넷웍에서 찾은거야. PDF파일로 다운 받았으니까 이거 프린트 해서 봐.
옥주 : (한숨을 쉬더니 앞의 책들을 끌어 모아 일어서) 나 저리루 가서 할래. 아무도 따라오지 마.
옥주 가버리고. 남은 재명과 마이클.
마이클 : 옥주 이상해졌어.
재명 : 그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한거야.
마이클 : 재명 조심해.
재명 : 뭘.
마이클 : 스트레스 많은 여자. 히스테리 되거나 알콜릭 되거나 남자 버려.
재명 : 뭐야?
마이클 : (진지하게) 진짜야. 미국에 내 걸프렌드도 시험공부하다가 히스테리나서 날 버렸어. 나 아주 슬펐어.
재명, 눈만 꿈벅거리며 보고 있다.
S#30. 박교수 강의실 앞 복도
이제 드디어 강의가 끝나고 학생들이 어두운 복도로 나서고 있다.
그 중에 민재와 채영 등의 모습도 보인다. 다들 지쳐있다.
S#31. 언덕길 밤
정태와 지원과 넷이 걸어오며.
채영 민재의 손을 끌어다가 시계를 빛에 비추어 보며.
채영 : 우와. 아홉시 반이야 아홉시 반. 저녁도 굶고 아홉시 반.
민재 : 아무거나 먹으러 가자. 나 배고프면 난폭해지는 거 알지.
지원 : 난 일하러 가야돼. 먼저 간다.
민재 : 어 정말 너 안늦었어?
지원 : (이미 빠른 걸음으로 가며) 늦었어.
정태 : 니들 지금 꼭 밥을 먹어야겠어?
민재 : 나 지금 니가 순대로 보이는 거 아냐? 따끈따끈하고 길쭉한 순대.
정태 : 난 지금 술 밖에 생각나는 게 없는데.
민재 : 술? (정지했다가 정태를 끌며) 가자. 술 먹으러 가자. 우리 술을 아주 배부르게..아주 터지게 먹어보자구.
민재와 정태 기분좋게 걸어가다가 돌아보면,
채영이 그 자리에 선채, 고개를 잔뜩 꺽고 밤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민재 : 뭐해?
채영 : 저거 좀 봐.
민재와 정태도 하늘을 우러러 본다.
정태 : 뭘 보래는거야?
민재 : 넌 별이 보이냐.
정태 : 별은 커녕 달도 안보이는데.
채영 : 하늘 좀 보라구. 밤. 하. 늘!
민재와 정태 김새서 보는 걸 관두고 가려는데.
채영 팔랑팔랑 뛰어와 그들의 가운데로 들어오며 양쪽으로 팔짱을 끼어 그들을 멈추게 하고.
채영 : 자아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두분은 하루 중에 어떤 순간이 가장 행복하십니까?
민재 : 으으 그놈의 행복 소리만 들어도 머리에서 쥐가 날려구 그런다.
채영 : 난 이 때가 행복해. 공부하다가 고개를 들었더니 창밖이 밤이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보는거야.
(하늘을 보며 큰소리로) 여어 하늘아 잘 있었니? 나도 잘 있다.
정태 어이없고, 민재 코웃음을 치면서도 둘 다 슬그머니 하늘을 본다.
채영 : 봐봐. 딴 건 보지 말고 하늘만 보라구.
민재 : 그냥 껌껌한데 뭐.
채영 : 하늘하고 나하고 둘만 있는 거 같지 그치?
정태 : 그래서 뭐어?
채영 : 아 시끄러. 그냥 좀 봐.
그렇게 하늘을 보는 셋이 좀 멀리 보이고... 그들의 말소리도 들린다.
민재 : 그렇게 치면 새벽 하늘도 괜찮지.
채영 : 밤 새고 나서 보는 하늘 말이지.
정태 : 뭐하고 밤 샜느냐가 중요하지. 게임하다가 밤 샜나. 술 마시다가 밤 샜나..
민재 : 너는 주로 자면서 새지 않냐.
채영 : 니들 좀 조용히 안할래. 무드 깨지잖아.
그들의 머리 위로 밤하늘이 넓게 펼쳐져 있다.
S#32. 도서관 일각 밖은 밤
옥주, 눈을 비비며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다. 묶었던 머리칼이 이리저리 삐쳐있다.
노트북을 앞에 펴놓고 메모한 것을 보아가며 타자를 치고 있고.
잠시 후 재명이 그 뒤로 지나가며 옥주의 책상 앞에 우유 하나와 김밥을 놓고 간다.
옥주가 돌아보면.
재명 : 너 따라 온거 아냐. 지나가는 길이야.
그러면서 저리로 가버린다.
옥주, 그런 재명을 보다가 혼자 웃는. 머리를 긁고.. 덕분에 머리칼이 더 삐치고..
다시 기운내서 메모노트를 들여다보고 타자를 치는.
S#33. 이교수 연구실 밤
이교수 퇴근 준비를 하고 있다. 가방을 들고 일어서려다가 배를 움켜잡고 허리를 꺽는다.
그렇게 좀 참아보다가 다시 허리가 꺽인다. 엄청난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S#34. 이교수 랩
만수 혼자 서서 랩을 읊조리며 춤을 추고 있다.
만수 : 공부도 좋아좋아 박사도 좋아좋아 니들 다 가져 나는 안 가져. 내 인생의 골대는 하나하나하나. 진짜하나 정말 하나.
오로지 하나. 남희남희남희 내 하나의 여자. 그대 어딨나. 나에게로 와.
아놀드소리 : 뭐하냐.
만수 : 뭐하기는 뭐해... 아 오셨어요?
아놀드 : 나갈 때 문 잠거.
만수 : 아 그럼요.
아놀드 : 근데 지금 그거 랩이지.
만수 : 예 하하.
아놀드 : 그거라면 나도 좀 하는데...
만수 : 아.. (난처) 해보시려구요?
아놀드 : 너 아까 보니까 스텝이 좀 아니야. 나 하는 거 봐봐. (마악 동작을 취하는데)
소리 : (전화벨)
아놀드 : 빨리 받구 나 봐. (혼자 연습해보는)
만수 : (전화 받아서) 네 전자과 랩입니... 어 교수님?
S#35. 복도
아놀드와 만수가 달려가고 있다.
S#36. 이교수 연구실
문이 벌컥 열리며 들어서는 만수와 아놀드.
이교수가 책상 앞 바닥에 웅크리고 주저앉아있다.
만수 : 교수니임.. (달려와 부축하려는데)
이교수 : (고통에도 불구하고 뿌리치며) 전화해. 119 불러.
아놀드 : 119 필요없습니다. 이 아놀드가 여깄습니다. 교수님 업히시죠. (앞에 앉는)
이교수 : (퍽 치며) 비켜요. 팔이나 내놔요.
만수는 울쌍으로 우왕좌왕하고. 이교수는 아놀드의 팔을 잡고 일어서려다가 다시 주저앉는다.
아놀드 : 어 안됩니다. 정신 차리세요. 아놀드 앞에서 죽으면 안됩니다.
S#37. 밤 교정
캠폴차 사이렌을 울리며 달린다.
S#38. 캠퍼스 낮
다시 하루가 시작되고...
S#39. 서교수 강의실
서교수 칠판에다 ISAAC NEWTON 이라고 쓰고는 학생들을 둘러본다.
학생들 중에는 민재 채영 지원의 모습이 보인다.
서교수 : 신은 우주를 창조했고, 뉴턴은 우주를 설명했다. 이제 광대한 우주는 몇 글자 만유인력의 법칙 안에 깃들게 되었다...
이 말이 아마 뉴턴을 가장 잘 설명한 말일거에요. 한가지 질문을 해볼까요.
뉴턴이 뭘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아는 학생.
민재 채영, 너무 쉬운 질문이라 서로 보고 웃는다.
채영 : (민망해하며) 사과 아닙니까?
서교수 : 사과.. 다들 그렇게 알고 있지요. 그건 반만 아는 겁니다. 사과 하나가 아니에요. 뉴턴이 만유인력을 생각하기까지는
또 하나의 것이 필요했어요. (칠판에 사과 한알을 그리고) 어느날 뉴턴이 과수원에 앉아있었어요. 사과나무 밑이겠죠.
그때 사과 한알이 발 앞에 떨어졌습니다. 여기까진 당연합니다. 세상의 모든 물체는 받쳐주는 것이 없으면 떨어지니까.
그런데 그때 뉴턴의 눈에 또 하나가 보였던거죠. 뭐냐. (칠판의 사과 옆에 달을 하나 그린다) 달입니다. 하늘에 떠있는 달.
뉴턴은 생각했어요. 아니 왜 달은 안 떨어지지? (학생들에게) 왜 달이 안 떨어지죠? 받쳐주는 것도 없는데?
학생 : 만유인력 때문입니다.
학생들 와아 웃는다.
민재는 웃지 않고 서교수를 곰곰 보고 있다.
서교수 : 우린 지금 물리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물리학이란 것은 뭐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금 있는 것 말고 하나 더
생각하는 게 필요하단 얘기죠. 하나 더 생각하는 게 없을 때 여러분은 아직 과학자가 아닙니다.
민재 : (번쩍 손을 들더니) 질문 있는데요.
서교수 : 예.
민재 : 저어.. 교수님은 왜 과학을 공부하십니까?
채영 : (돌아보는)
민재 : (말해놓고 민망해서) 아 그러니까.. 과학의 발전이, 에.. 그냥 궁금해서 여쭤봤습니다.
서교수 : (웃더니) 뉴턴이 이런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대답이 될지 모르겠네요. 음.. (생각해보고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나의 친구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친한 나의 친구는 진리이다.
민재 : 진리요?
서교수 : 그렇지. 진리.
S#40. 기숙사 전경 밤
그 위로.
소리 : (전화벨)
S#41. 채영 지원의 방
채영 빨래를 개고 있다가 울리는 전화로 가서 받는다.
채영 : 안녕하세요. 행복하세요오... 어...재명이니? 왜? 아니 옥주 여기 없는데. 지 방에서 전화 안 받어? 아이구 냅둬 좀.
걔 또 뭔가 과제물 하나보지 뭐. 걔 뭐에 미치면 전화 끊구 삐삐 끊구 그러잖아. ...재명아.. 너 말야. 내가 커다란 고무줄을
하나 줄테니까 한쪽은 옥주 허리에 묶고. 한쪽은 니 허리에 묶고 그렇게 살아볼래?
S#42. 동아리방 밤
옥주, 컴퓨터 작업중이다. 머리칼은 이제 완전히 엉망이 되서 뻗치고 있다. 옷도 구겨질대로 구겨진 작업복 차림이다.
화면에 뜨는 그래프들.
신중하게 인쇄버튼을 누르자 지직거리며 뽑아내는 프린터기.
옥주, 한 장 뽑아들고 본다. 으흐흐 웃음이 나온다.
(시간경과)
인쇄기는 계속 돌아가며 리포트를 뽑아내고있다.
S#43. 교정 밖 밤
옥주 걸어나온다.
가슴에는 프린트된 리포트를 안고 있다. 기분이 좋아서 팔랑팔랑 춤추듯 걷다가 하품을 한다.
멈추어 서더니 늘어지게 기분좋게 기지개를 켠다.
그러다가 문득 하늘을 본다. 기지개를 켜던 팔이 천천이 내려지며 옥주 처음 보는 듯이 하늘을 본다.
깜깜한 하늘....넓은 하늘...
S#44. 이교수 강의실
학생들 거의 다 앉아있다. 옥주, 재명, 마이클도 보이고. (옥주는 다시 패션 차림으로 돌아가있다)
문 열리자 자세 바로잡는데 들어오는 만수. 쑥스러운지 자꾸 머리를 매만지며 교탁에 선다.
만수 : 어... 오눌부터 이교수님 대신 이 강의를 맡게 된 정만수라고 합니다. 에에...
옥주 재명 등.. 어이없어 쳐다본다.
만수 : 이히히 그럴 리가 있겠냐. 내가 들어온 것은 다름이 아니고..
뒤돌아서더니 '휴강'이라고 큰 글씨로 쓴다.
만수, 뒤돌아 아이들 쪽 보는데 시끄럽게 웅성거리는 아이들.
만수 : 여러분은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카이스트에 이교수님이 출강하신 이래 휴강이란 사건은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교수님께서 급성장염으로 입원하시는 바람에 여러분은 이 역사적 사건을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 이교수님께서 휴강만 하고 이대로 끝내느냐...
만수, 다시 뒤돌아 칠판에 쓴다. <보강 : 2월 ??일 7시>
만수 : 그럼 그날까지 행복하시길 빕니다. 이만..
들어올 때와는 달리 자신만만한 태도로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만수.
옥주 벌떡 일어선다.
S#45. 복도
만수 나오는데 뒷문이 열리며 뛰어나온 옥주가 달려오며.
옥주 : 만수오빠.
만수 : 왜.
옥주 : 교수님 그럼 언제 나오세요?
만수 : 다음주에나 나오실거야.
옥주 : 그럼 어뜩해요오..
만수 : 뭐가.. 니가 제일 좋아할 줄 알았는데..
옥주 : 이 레포트요. 이거 보여드리고 나 수강신청 정정해야 된다구요. 정정 기간이 이번주까지잖아아.
만수 : 너 그 리포트 다 쓴거야? 진짜?
옥주 : 교수님 입원하신 병원 어디에요? 네?
S#46. 석학의 집
아놀드가 중앙에 앉아서 커피를 마셔가며 얘기 중.
주위에는 민재 채영 미순 진영.
아놀드 : 말도 마라. 내가 아니었으면 이교수님 정말 큰일날 뻔 했다는 거 아니냐. 전화를 받고 내가 100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뛰어갔을 때... 으아.. 교수님은 바닥에 넘어져 신음하고 계시지.. 만수 이 놈은 그냥 우왕좌왕 징징거리지..
근데 교수님이 보기보다 무거우시더라고.
미순 : 그럼 댁이 교수님을 업고 뛴거야?
아놀드 : 그렇지. 생각같아서는 병원까지 그냥 업고 뛸려고 그랬는데.. 아무래도 차가 빠를 거 같아서 말이야.
진영 : 그럼 지금 병원에 혼자 계시겠네요.
아놀드 : 혼자 계시지. 이럴 때를 대비해서 결혼이라도 해두셨으면 남편님이 간호를 좀 해줬을텐데 말이다. 안그래 미순씨?
미순 : 거기서 질문이 왜 나한테로 와?
채영 : 어디에요 병원? 우리 가보자. 오늘..
민재 : 돈 얼마 있어? 꽃 사가야 되는 거 아니야?
아놀드 : 스톱. 이교수님 말씀하시길.. 나의 입원을 내 제자들에게는 알리지 마라. 그애들은 공부를 해야하는 몸.
절대 아무도 문병오게 하지 마라. 크아...정말 눈물나는 모성애.. 가 아니고 이럴 때 뭐라 그러지?
미순 : 사성애..아니지 그런 말은 없지?
아놀드 : 사부애. 그런 말도 없나?
미순 : 투 써 위드 러브.
아놀드 : 그건 노래 제목이잖아.
민재, 채영 그저 어이없어 보고 있다.
S#47. 복도
만수 걸어가고 있고. 옥주 따라가며,.
옥주 : 왜 가르쳐주면 안되요? 왜요? 왜?
만수 : 글세. 누구 맞아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러냐? 절대로 절대로 아무도 오지 못하게 해라. 이게 내가 받은 명령이라구.
옥주 : 만수 오빠.
만수 : 왜?
옥주 : 나 울거야.
만수 : 뭐?
옥주 : (벌써 얼굴 일그러지며) 운다아.
만수 : 하아..참.. 야아..
S#48. 병원 외경
S#49. 병실 내부
박교수가 꽃병에 꽃을 꽃꽂이 해보느라고 애쓰고 있다.
이교수, 팔에 링겔 주사기 꽂고 환자복 입은채 누워있다.
이교수 : 어떻게 알았어요? 아는 사람이 없을텐데.
박교수 : 모르는 사람 없어요. 조교 하난 잘 두셨던데요. 뭐. 이거 바나나 먹어도 되나..
이교수 : (입술 깨물며) 정만수... 얘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박교수 : (바나나 하나 들어) 그 친구가 절대 문병 오면 안된다는 얘기까지 꼬박꼬박 다 했으니까 아무도 안 올거에요.
이교수 : ..그래요?
박교수 : 이거 먹어도 되요?
이교수 : 드세요. 많이.
박교수 : 아참.. (옆에 있던 종이가방을 주며) 만수가 이것도 전해달라고 하던데요.
직접 오고 싶지만. 문병 오지 말라고 해서 못 온다구요.
이교수 : 아 이거 우리 애들 리포트 쓴거에요.
박교수 : 그래요? (하더니 도로 뺏어간다) 이건 압수합니다.
이교수 : 박교수.
박교수 : 선배님 내 평생 소원이 뭔지 아세요? 이렇게 입원해서 바나나 실컷 먹고 놀아보는거에요.
그런데 여기서 리포트 채점을 하면 너무 아깝잖아요.
이교수 : (가방 뺏으려는데)
박교수 : (멀찌거니 치우는)
이교수 : (화나서 보다가) 내 한가지 충고를 하겠는데요. 학교에선 선배라고 부르지 마세요.
박교수 : 왜요?
이교수 : 우리나라 대학의 문제점 중 하나가 뭔지 알아요? 폐쇄성이에요. 학연이 없으면 교수 되기 어려운 폐쇄성 말이에요.
사제지간 선후배.. 이런 식으로 연결되서 서로 밀어주는 거. 그거 제일 처음으로 없애야 되는거에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자꾸 선배선배 그러면...
박교수 : 이교수님..
이교수 : ...네?
박교수 : 환자복이 잘 어울려요.
이교수 : 무슨 뜻이에요?
박교수 : 헐렁하잖아요. 좀 헐렁한 것두 어울리는지 몰랐어요. 항상 단정하고 꼿꼿하고 그래서... 이쁘세요. 히히.
이교수 : (노려보다가) 내 리포트 이리 주고 빨리 가보세요.
S#50. 병원 외경
옥주가 병원 건물을 올려다보다가 씩씩하게 안으로 들어간다. 가슴에는 리포트 넣은 서류 봉투를 들고.
S#51. 병실 문 밖
문에 이희정이라는 이름표가 걸려있다.
옥주 이름표를 확인하고 심호흡을 하고 문에 노크를 하려다가 안의 소리를 듣는다.
이교수소리 : 글세 그거 이리 내요. 얼른.
박교수소리 : 압수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옥주 문을 조금 열고 엿본다.
S#52. 병실 내부
이교수와 박교수가 종이가방을 양쪽에서 들고 싸우고 있다.
박교수 : 내가 맡아놨다가 나중에 드리면 되잖아요.
이교수 : 내가 박교수를 어떻게 믿고 이걸 맡겨요? 하나라도 잊어버리면 책임질거에요?
박교수 : 책임져요. 지면 되잖아요.
이교수 : 글세 이리 내라니까요...
하다가 종이가방이 찢어지면 리포트가 바닥으로 쏟아진다.
이교수 침대에서 내려오며.
이교수 : 내 이럴 줄 알았어. 이럴 줄 알았다구우.
박교수 : 그냥 내려오시면 어떡해요? 주사바늘 빠져요오. (이교수를 침대에 다시 올리느라 난리고..)
이교수 : (그러다 문에서 놀라 보는 옥주를 본다) 오옥주 뭐하고 있어. 이거 좀 주워. 얼른!
옥주 놀라서 얼른 들어와 리포트들을 줍는다. 와중에도 박교수와 이교수는 떠들고 있다.
이교수 : 이거 놔요. 됐어요.
박교수 : 바늘 괜찮아요? 안 빠졌어요?
S#53. 밤 캠퍼스
옥주 혼자 걸어오고 있다. 시무룩하다. 걸어오다 문득 멈춰선다.
그 위로 들리는 이교수 소리.
이교수소리 : 열심히 했어. 열심히는 했는데...
S#54. 병실 내부 회상
이제 병실에는 이교수와 옥주만 있다.
이교수는 옥주의 리포트를 검토하는 중.
이교수 : 근데 아직 멀었어. 아직은 남의 꺼 모자이크만 한거잖아. 그렇지?
옥주 : ..네.
이교수 : (옥주를 보고 미소짓더니) 그래도 제법이야. 그동안 잠 못 잤겠는데?
옥주 : ...네.
이교수 : 좋아 수강정정 신청서 내놔.
옥주 : (꾸물거리다가 신청서 용지를 내놓는다)
이교수 : (기분좋게 사인하며) 이 정도면 다른 교수님께 보내도 안심이야. 가봐.
옥주 : (머뭇거리는)
이교수 : 왜?
옥주 : 아뇨.. 이만 가보겠습니다.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이교수 : 어땠니?
옥주 : 네? 뭐가요?
이교수 : 며칠밤 새서 다 끝내고 나니까 어땠냐고... (미소 짓고 있다)
S#55. 교정 캠퍼스
옥주 우두커니 서있다. 문득 하늘을 본다. 밤하늘이다.
옥주 : (밤하늘에 대고) 있잖아요.. 그거 디게 기분 좋았어요.
혼자 웃더니 주머니에서 신청서 용지를 꺼낸다. 그러더니 기분좋게 좌악 찢는다.
S#56. 낮 강의실 앞 복도
민재 강의실을 찾아가다가 저만치서 역시 어슬렁거리며 오는 박교수를 본다.
꾸벅 인사를 하고 박교수는 앞문 쪽으로...민재는 뒷문 쪽으로 가다가 민재 부리나케 박교수에게 뛰어간다.
민재 : 교수님.
박교수 : 왜애?
민재 : 솔직히 말씀드려서 며칠동안 잠도 못잤습니다. 소주도 몇병을 마셨는지 모릅니다.
박교수 : 호오.. 술 마실 때 나도 부르지이..
민재 : 한가지 너무너무 궁금한 게 있어서요.
박교수 : 궁금하다..알고 싶다.. 그거 참 좋은거지.
민재 : 교수님께선 왜 과학을 연구하시죠?
박교수 : (묘한 얼굴로 보는)
민재 : 과학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고 믿기 때문인가요?
박교수 : (주위를 둘러보더니 다가서서 은밀하게) 자네만 알고 있어.
민재 : (덩달아 은밀하게) 예.
박교수 :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민재 : 그럼요.
박교수 : 그건 말이지. 정답이 없어.
민재 : 네?
박교수 : 그런 문제도 있다구. 평생 계속 계속 생각해야 되는 문제. 그래도 생각하는 걸 포기하면 안되는 문제.
그런데 정답이 없는 문제.. 알겠나?
민재 : (버엉)
박교수 히히 웃으며 강의실 앞문으로 들어간다.
민재 멍해서 생각해보며 저쪽으로 걸어가다가 아차.. 돌아서서 뒷문쪽으로 달려간다. 수업에 들어가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