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4일 청림회(1)
안녕하십니까? 오늘 5월달, <청림회> 수업하겠습니다. 몇 페이집니까? (138) 저번에 마칠려고 달려 가다가 넘어져 버렸지요? 그래 가지고 이제, 수업을 마치게 됐습니다. 지금 기억을 유추해 보건대. 지난 달, 한 달 전에 수업할 때. <약초유품(藥草喩品)>이 한 서너 달 지나버려 가지고 빨리 마치려고 했었는데 결국은 마치지를 못하고, 오늘 다시 왔습니다. 그 때 기억을 돌아 보면은 부처님 12분교(十二分敎). 열두 가지. 부처님 남기신 가르침 종류가 열 두 가집니다. 보통 12분교(十二分敎)라고 이렇게 애기 하는데. 그 열두 가지 가르침 중에서 게송(偈頌)이 있습니다, 게송(偈頌). 게송(偈頌). 4구게 라든지, 흔히 뭐, 게송(偈頌)이라고 하잖아요?
게송(偈頌)이 2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고기송(孤起頌)이라고 했고. ‘외로울 고[孤]자(字)’ ‘일어날 기[起]자(字)’. 홀로 운문의 뜻을 가지고 설해놓은 거를 고기송(孤起頌)이라고 이렇게 얘기를 했고.
앞에 산문으로 되어 있는 문장을 축약해서, 다시 한번 요점만 요약해서 운율을 맞춰서 지어 놓은 것을 중송(重頌)이라 합니다. ‘거듭 중[重]자(字)’에 게송(偈頌)할 때의 ‘송[頌]’(字).
그러니까 우리가. 그, ‘고[孤]’(字)라고 하는 거는, ‘외로울 고[孤]자(字)’ 알지요? ‘고독(孤獨)하다.’할 때, 뭐, 고독(孤獨)한 남자, 이럴 때의 고[孤]. 이 고독(孤獨)이라고 할 때의 ‘고[孤]’(字)는 어려서 부모 없으면은, 조실부모하고 외로운 걸, ‘고[孤]’라고 해서 고아(孤兒)라, 그렇게 얘기하고. 연세가 들어가지고, 나이가 들어서 외롭고, 그런 걸 갖다가 ‘독[獨]’이라. 어려서 외로운 걸 ‘고[孤]’라 하고, 나이 들어서 외로운 걸 ‘독[獨]’이라 해서. 독거노인(獨居老人) 내지는 독신(獨身), 이렇게 부릅니다. 나이 들어서 고신(孤身), 안 그러잖아요. 옛 한자에 그래 놨습니다. 고독(孤獨)이라고 할 때. 어려서도 외롭고 늙어서도 외로운 게 고독(孤獨)입니다. 요새는 고독(孤獨)한 사람, 별로 없죠. 어려서 좀 저렇더라도 늙어서 피는 사람도 있고··· 자, 고독(孤獨)한 남자와 함께 오늘도 <법화경> 들어가 봅시다.
이 <약초유품(藥草喩品)>을 한 서너 달 강설(講說)했으니까, 대충은 알겠습니다마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천편일률적으로 산하대지를 다 적시는데 그 산천초목에 자라는 그 초목들이, 삼초이목(三草二木)들이 각기 역량만큼 그 비를 받아서 쓰는 것은. 마치 부처님께서 일음(一音)으로 연창(演暢)하셔가지고 법문(法門)을 이렇게 하셨는데. 중생들의 근기와 욕망과 성품이 저마다 달라 가지고 각기의 ‘깜냥’만큼. 그걸 우리가 ‘깜냥’이라 그러죠. 깜냥이라그러나 뭐라 하나. 감냥.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감냥이라 그러죠. 감냥. 감내할 수 있는 힘만큼 받아 지니죠. 그래, 자기 ‘깜냥’만큼···· 근데 잘못 쓰면 그게, 조~금 비꼬는 투, 비슷하고 그래요. 사실은 깜냥이 견딜만한 힘이잖아요. 제 깜냥만큼, 꼴값하네. 그러잖아요. 꼴값. 모양값을 한다, 이런 말이죠. 모양값, 꼴값.
부처님께서 법문(法門)을 그렇게 원음으로 일음연창(一音演暢)하시니까 중생이 저마다의 자기의 근기만큼 알아들었다. 그래 <약초유품(藥草喩品)>할 때, 약초(藥草)라고 비유를 했는 것은. 이것은 보살(菩薩)이라든지, 큰~ 대근기(大根機)를 위해서 설법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약초(藥草)에 비유한 건, 누굽니까? 소승(小乘), 성문(聲聞)·연각(緣覺)정도를 약초(藥草)라고 비유한다고 했잖아요, 그렇죠? 쪼끔. 저런 보살(菩薩) 근기에 가면. 작은 나무·큰 나무. 나무하고는 풀하고는 다르잖아요? 우리가 왜, 작약도 함박꽃이요 목단도, 모란도 함박꽃인데. 모란은 어떻습니까? 목질(木質)이고. 작약은? 초질(草質)이지요, 바탕이. 풀이잖아요? 그렇잖아요? (예) 그런 것처럼. 초질(草質)과 목질(木質)이 서로 다른 것처럼.
일단 <약초유품(藥草喩品)>이라고 했을 때는 중(中)·하근기(下根機)들을 위해서 이렇게 중심적으로 설명하는 품이다, 이런 얘기죠. 그, 약초(藥草)도 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때요? 일반 범부(凡夫)처럼 살면은? 잡초(雜草)인생이라고 해 가지고. 나 훈아도 뭐, 아는 거야, 나 훈아도. 나 훈아도 뭐 많이 알아요. 그래, 첫 수업 시간에, 한 서너 달 전에 시작할 때 그랬죠.
꽃에는 3종류가 있다. 어떤 꽃이 있다, 그랬어요? 여화(如花)가 있고. 꽃이 하나 피면은 반드시 열매를 하나씩 맺는 여화(如花). 사과 같은 거·배 같은 거·자두, 앵두 같은 거·포도 같은 거·살구 같은 거, 내지는 여러 가지 곡식 같은 거~. 그 조와 콩이나 옥수수나, 이런 것들. 꽃이 피면은 반드시 거기에, 꽃과 똑같은 열매가 열리잖아요? 여화(如花). ‘같을 여[如]자(字)’ ‘꽃 화[花]자(字)’ 그러니까 자세히 사과 같은 거 살펴보면, 그 꽃이 어때요? 결국은 열매잖아요? 그렇죠? 감도. 그 감꽃이 종내는 열매가 되지요. 꽃이 곧 열맨데, 그런 것을 ‘한결같은 여[如]자(字)’에 ‘꽃 화[花]자(字)’써서 여화(如花)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죠.
그래, 이 <약초유품(藥草喩品)> 같은 경우는. 한, 여화(如花)정도의, 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설법하는 거죠.
또 하나의 꽃의 종류가 있으면은 광화(誑花)라고 하죠. ‘말씀 언(言)변’에다가 ‘미칠 광(狂)자(字)’ 써 가지고, ‘속일 광(誑)자(字)’라고 우리, 얘길 하죠. <금강경>에 “여래(如來)는 불광어자(不誑語者)며 불이어자(不異語者)며 여어자(如語者)며 실어자(實語者)며 진어자(眞語者)며 ···[如來(여래) 是眞語者(시진어자) 實語者(실어자) 如語者(여어자) 不誑語者(불광어자) 不異語者(불이어자)]” 그 대목 나오잖아요? “여래(如來)는 불광어자(不誑語者)며 불이어자(不異語者)며···” 하는 대목. ‘광[誑]’(字), ‘속일 광(誑)자(字)’. 남을 눈 속이는 ‘광[誑]’(字). 눈 속인다는 말이 뭐냐? 꽃만 휘황찬란하고 열매는, 실속은, 없는 것. 그런 것을 광화(誑花)라고 하죠. 예를 들면. 능소화 라든지·뭐, 개망초꽃 이라든지·난초꽃 이라든지, 또 뭐가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뭐, 들국화라든지. 씨가 있더라도 미미해서 사람들의 곡식이 되든지 자량(資糧)은 되지는 못하고 꽃만, 화려하고··· 그 뭐 씨라도 해 가지고 약되는 정도는 조금 낫겠습니다마는. 일반적으로 피었다가 지는, 패랭이꽃 같은 거·오랑캐 제비꽃 같은 거·제라늄 같은 거, 뭐 요런 그, 얄궂은 거··· 요런 게 다 뭐예요? 광화(誑花). 광화(誑花). 광화(誑花).
마지막 하나는 뭐가 있겠습니까? 실화(實花). 이, 실화(實花)는 뭐죠? 연꽃. 연꽃을 실화(實花). 꽃이 피는 것과 동시에 열매가 같이 맺어지니까. 인과동시(因果同時), 화과동시(花果同時)가 되니까 그것을 진실된 꽃이다, 이 말입니다. 실화(實花). 실속이 꽉 찬 꽃이다, 이 말이야. 그 때 그 얘기하면서 연뿌리는 구멍이 몇 개 있어요? (10개) 10개. 우째 그래 기억을 잘 하시는지. 집에 가서 헤아려 보셨어요? 정말 헤아려 보셨어요? 몇 갭디까? (10개) 10개 맞습디까? 10개라는 숫자는 원만 숫자고, 우리 불교를 상징하는 숫자.
그러니까 하엽단단단사경(荷葉團團團似鏡)이요. 연잎이 둥근 것도 우리 마음의 모양을 내는 것이요. 연잎이, 여연화불착수(如蓮華不着水)라. 연꽃이 물에 젖지 않는 것도, 우리 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고. 연꽃이 필 때, 다시 안쪽에 열매가, 연밥이 동시에 맺어지는 것도, 우리 중생 속에 부처가 있다고 하는, 우리의 일심(一心), 마음자리를 그대로 또 잘 보여 주는 거죠. 그 연뿌리마저 그렇게 원만구족되어 있는 모양새고. 뿌리부터 줄기 끝까지, 그죠? 잘 되어 있다 해서 연꽃을 우리 불교 상징으로 놔두었어요. 그리고 연꽃은 향기를. ‘멀 원[遠]자(字)’에 ‘향기 향[香]자(字)’, 원향(遠香)이라고 합니다, 원향(遠香).
이게 중국 가니까 가이드가 해석이 안 되는 모양이라. 원향(遠香). 원향(遠香)이라고 이건 바로 연향(蓮香)입니다. 그래 가이드한테 가르쳐주고 왔지. 아는 것도 많지, 그치? 가이드도 가르쳐주고··· ‘교[橋]’(字), 우예 쓰노? 맞아요? 그래 우리 학인들한테, 스님들한테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책이 틀리면 틀렸지 내가 안 틀린다고···” 거짓말도 그래 해야··· 원향교(遠香橋). 원향(遠香). 연꽃이란 게 이게, 함부로 다가 들어가서. 제가 이거 사투리를 써야 잠도 안 오고- 이게 콧구녕을 들이 댈 수 있는 게 아니거든. 그렇잖아요? 잡을 수도 없고, 향기를 맡아서 다른 꽃처럼 이렇게 쉽게 다가갈 수 없어요. 연꽃은. 어떻게? 물이 서로 격(隔)해서, 가로막혀 있기 때문에. 함부로 범접할 수 없어요. 그래서 멀리서, 연못 밖에서밖에 향기를 맡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 연꽃이 있는 데는 꼭 다리를 놔 가지고 관광을 하면서, 그래 원향교(遠香橋)라고 주로 쓴 게, 그런 뜻에 있는 겁니다. 향기가 멀~리서 이렇게 풍겨 오는 거···
그래, 중국의 그, 어딥니까? 졸정원(拙政園)인가? 거기 가서 이제, 삼육(三六). ‘석 삼[三]자(字)’쓰고 36. 이렇게 써 놓고, 그 옆에 이렇게 원향교(遠香橋), 이렇게 써 놨는데 그 원향(遠香)이 연꽃 향긴줄 모르고 “ 멀리서 향기가 풍기고 어떻고··· ”이렇게 해서. 싱긋이 웃고··· 그리 해석하면 안 되고, 그거 연향(蓮香)이다. 그 아가씨 이름이 홍련이라요, 홍련. 김 홍련. 상해 항주대학 나왔는데. 우리 졸업생 스님들 데리고 한 바퀴 돌면서 그 얘기를 했죠.
오늘은 이제. 뭐하다가 또 실화(實花)까지 가서. 한참 뒤로 빠졌네. 그러면서 그 때, 첫 수업 시간 때였던 것 같애요, 아마. 첫 수업 시간인지, 둘째 수업 시간인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기억이 그래요. 그 때 얘기가, 또 그런 얘기 했습니다. “약초(藥草)”가 될려고 하면, 어떤 때 된다, 그랬어요? 아무 빛이나, 뭐, 전기 다마[燈]에다 피는 꽃도 있을 것이고. 햇빛 따라 피는 해바라기 같은 것도 있을 것이고. 달빛 따라 가지고 피는, 밤에 피는 달맞이. 밤에 피는 꽃, 뭐 있던데··· 뭐 있어요? 야래향(夜來香). 야래향(夜來香)도 있을 것이고. 그런데 밤에 피는 꽃 중에서 약초(藥草)가 될라 하면 어떻게 꽃이 핀다, 그랬어요? (별빛이···) 와~! 하여튼 선생님들 최고야. 성격은 제일 안 좋은데 기억력은 제일 좋잖아요. (웃음)
그러니까 이 약초(藥草)가 될라고 하면 빛을 모다기는 모아야 되는데 그 정성이, 저 별빛을 아스라하게 멀리서 모다 가지고. 지가 결국은 꽃이 돼 버렸다, 이거야. 산삼꽃은 어떻게, 무슨 빛을 모둔다, 했어요? (북극성) 하따야~. 이거 큰일났네. 이거 어디 가서 돈도 받도 못하고··· 정보이용료를 진작에 챙겨 놨어야 되는데··· 그래요. 그래 가지고 피는 꽃은 이제, <약초유품(藥草喩品)> 하면서, 잡지식으로 해서, 그렇게 한번 슬쩍 터치하고 넘어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하튼 지금 우리가 하는 부분들이 <약초유품(藥草喩品)>, 여러 가지. 초목과 이렇게··· ‘풀’은 누구에 비합니까? 성문(聲聞)·연각(緣覺)에 비유할 수 있고, 약초(藥草)는. 그 다음에 ‘소나무·잣나무’, 이러한 것들은? 보살(菩薩)들 근기에 비유할 수가 있지요. 일반 중생들은 그 소나무에 기대 사는 칡 넝쿨 같은 거, 등나무 같은 거. 그러니까. “송리지갈(松裏之葛)은 직용천심(直聳千尋)이라.” 소나무를 의지한 칡은 직용천심(直聳千尋)이라. 천 길·만 길, 이렇게 올라갈 수 있고. “모중지목(茅中之木)은 미면삼척(未免三尺)이라” 그, 잡풀 가운데 자라는 나무는 3척을 면하지 못한다, 그런 말 있잖아요? 세상에 이렇게 살더라도. 우리가 불교 공부를 이렇게 하고 할 때는. 안쪽으로는 무조건 신심(信心)이 확고부동하게 다져져 있어야 되고. 바깥으로도 이제, 수행(修行)하면서 익혀지는 것이 부처님 경전이나 선지식(善知識)을 자주 찾아뵙는 길이 소나무를 기대서 사는 길들입니다. 특히, <법화경> 같으면은. 제가 엊그제 <문수선원>에서 강의하면서 이런 얘기를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화엄경>은 마치 여러~ 가지 잡다한, 헬기도 얹을 수 있고·미사일도 얹을 수 있고, 또 작은 배도 수~척, 위에 싣고 다닐 수 있는, 항공모함 같은, 미드웨이()같은, 그런 항공모함 같은 것이라 한다면. 이 <법화경>은 타이타닉처럼, 초호화여객선입니다, 이게. 얼마나 비유가 잘 되어 있고, 그거도 7층으로 된, 아주, 초호화여객선이, 이제 이 <법화경>이 됩니다. <법화경>만큼 잘 다듬어지고, 경전이 정돈된 책이 거의 좀 드뭅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공부하는 화두선(話頭禪)같은 거, 이런 것들은 강의할 때, 뭐, 사격에 비유해서 ‘스나이퍼(sniper)’라고 했습니다마는. 저격수. 저격수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거든요. 타악, 한 방에 끝내는 거, 그게 이제 화두 참선(話頭叅禪)하는 방법들이고. 그래, 저 혼자만 불교 공부해서 잘 먹고 잘 살라 하면은. ‘윈드서핑(windsurfing)’하는 정도. (웃음) 그런 거 있잖아요? 자기 혼자만 이렇게 호흡 잘 쉬고. 산중에서 은은자적()하면서 도인(道人)인 척 하면서 머리 길러 가지고 때 꼬질꼬질한 옷 입고, 그런 거 있잖아요? 장작패고 무위도식(無爲徒食), 무위도식(無爲徒食)인가? 무위자연(無爲自然)하면서 그렇게 사는 분들은, 거의 윈드서핑(windsurfing)··· 그렇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이 <법화경>이 어떤 책이냐, 이러면은. 타이타닉같은 초호화여객선을 타고 가는 그런 느낌입니다. 이런 거에 편승해야, 가기도 수월하고, 아주 초호화, 크루즈 여행 떠나는 길입니다, 이게. 예? 그 중에서 또 산삼 먹으러 또 함, 들어 가 봅시다.
여하튼 이런 글을 읽고, 뭐 어떻게 하고 할 때도. 우리 자신이, 어떨 것 같애요? 큰 스님께서 한번씩 이렇게 얘기합니다. 강강난화중생(剛强難化衆生)이라고. 돌을 갖다가, 아무 차돌같이 해 가지고 물에 담궈 놨다가 햇빛에 놔두면. 물들지 않고 햇빛에 금방 빼~짝, 말라 버리듯이. 그렇게 불교에 젖어들 수 없다, 그러는데. 제가 그런 말씀에 다시 덧붙이자면. 이 <법화경> 같은 거 읽고, 공부하고 이럴 때는 ‘솜’처럼 해 가지고 수~~욱, 빨려 들어가야 됩니다. 조금 전에 우리가 수업 하면서 한 마디 했는 말 중에. 언뜻 떠올랐던 말이. 이, 기록은 남겨야 되니까. 세상이 아무리 바늘 같고, 가시 돋친 듯이 나한테 밀고 들어오더라도. 우리 상태는 ‘솜’처럼 돼야 됩니다. 가시는 무용지물입니다. 가시가 ‘솜’을 찔러봤자 저만 수고로울 뿐이거든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더 나아가면 <아함경>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부처님한테 누가 욕을 하고·욕을 하고. 부처님, 마음에 상처를 안 받겠습니까? 이러니까. “바람을 향해서 먼지를 날려 봐라.” 부처님은 바람을 타지 않는 그런 분이라, 이거죠. 그러니까 바람을 향해서 먼지를 던지면, 어때요? “지 얼굴에 덮어쓸 뿐이다.” 이렇게 말씀하신 게 있어요.
제가, 2003년도에 매미 태풍이 한 번 지나가고 난 뒤에. 아침에 문득 이렇게. 온~ <범어사> 소나무 다 쓰러지고 난리굿이 됐잖습니까? 그 때 <범어사> 소나무, 그 때 다~ 뿌리 채 다 뽑혔습니다. 건물도 지붕도 날라 가고, 그랬는데. 아침에 가만~히 밥 먹다가 생각해 보니까. 그 간밤에 요동치고 다 갔는데. 다 부서지고 삼라만상에, 사람 마음까지도 거기에 조금 다쳤는데. 뭐가 안 부서졌겠어요? ‘허공’만큼은 부서지지 않앴더라~. ··· 그, 의미심장하지요? 세상에, 존재라고 존재를 가치를 둔 것들은 다 부서지고.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어 놔도 이빨 흔들리듯이 다 흔들리는데. ‘허공’은 흔들 수가 없더라··· ‘아··· 그렇게 닮아 가야지.’ 그런 생각을 매미 태풍이 지나간 뒤에 남겨 놓은 일기에 있습니다, 그게.
자, 오늘 한 편 들어가 봅니다. 139페이지죠? (138페이지) 예? 138페이지라요? (31번) 31번이라요? 하··· 어떻게 한달동안 한 번도 안 보고 와서 한다고, 이런 식으로 해 가지고··· (웃음) 저는 초장도 안 찍고 먹어 버릴라고, 이런 식으로··· 되지도 안한다, 이거··· 이런 걸 갖다가 날도둑놈이라 그래요, 날도둑놈. 예? 날도둑놈이라고··· 아이구··· 진짜 <법화경>, 이거 한달에 몇 번이라도 읽고 와야 되는데. 제가··· 저는 안 읽더라도 여러분들은 꼭 읽으셔야 됩니다. (예)
그, 이런 얘기가 있어요. <초발심자경문>에 보면은. [如人(여인)이 夜行(야행)에 罪人(죄인)이 執炬當路(집거당로)어던 若以人惡故(약이인악고)로 不受光明(불수광명)하면 墮坑落塹去矣(타갱락참거의)라시니]. 마치 죄인이 앞서가던 집거당로(執炬當路)어든. 앞에 가는 사람이 참, 죄를 많이 짓고 업장이 두꺼운 사람이 저 쪽에 밤길을 가는데. 여인(如人)이 야행(夜行)에. 이인이악고(以人惡故)로. 그 사람이 아주 못됐고. 성격도 괴팍하고 내 마음에 안 들고, 이런 사람이 한다 하더라도. 그, 집거당로(執炬當路)어든. 횃불을 들고 앞에서 가면은. 그 사람을 따르지 않고 가면 어떻게 돼요? 불수광명(不受光明)하면. 광명을 받지 않으면. 타갱락참거의(墮坑落塹去矣)라. 마치 타갱(墮坑). 떨어진다, 이거야. 갱(坑). 밑으로. 락참거의(落塹去矣)라. 밑에 저기, 낭떠러지 구덩이로 떨어져 가지고. 안 받고 갈 수 없어요.
제같이 좀 모자라고 하지마는 피치 못해 가지고 시줏밥 먹고, 가사 걸치고, 이렇게 중노릇 행세하고 이렇게 사니까. 제가 “이 <법화경> 좀 읽으세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읽어 주셔야 됩니다. (웃음) 말 좀 듣고, 우리 서로 그래 살아가야 되잖아요, 그치요? 저는 아시다시피 개인의 행복이자 가문의 영광이고, 인류의 축복인 사람이잖아요? 사람이 제 자랑 하는 사람은 뭔가 조~금 모자라는 것 같아. 많이 모자라요, 조금이 아니고. 그리고 약점이 많은 사람이야. 성질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그래 그런 사람이 말한다, 그래 가지고 듣기 싫다고 안 들으시면 안 되고. 저는 못 하더라도, 여러분들께서는 반드시, 읽으셔야 됩니다. 삼십일(31)번, 읽겠습니다.
30번에 보니까 그랬네요. 부처님께서 한결같은 음성으로 했는데 중생이 다 알아듣는 것이? 달랐다, 이 말이죠? 그래서.
31. 恒爲一切(항위일체)하야 平等說法(평등설법)호대
항상 일체 중생을 위하여 평등 설법하되. 근기 따라서·방편 따라서 평등하게 법을 설하셨다, 이런 말이죠. 일체 중생을 위해서 평등하게 설법을 하는 거는 뭐, 여기서부터 부처님의 자비가 어떠한 정돈지 대충 짐작이 가고. 또 부처님 지혜의 능력이 어떤지 짐작이 가잖습니까? 일반적으로 우리는 일체 중생을 위해서 평등한 설법이 아니고. 항상 편중되게 이렇게 세상을, 마음을 쓰고 살아가거든요. 오늘 하루도, 아마 학교에서도 내지 집에서도, 그렇게 써 옵니다. 어떻게? 자기가 좋아하는 쪽으로, 자기가 업이 무거운 쪽으로 마음을 쓰게 마련입니다.
如爲一人(여위일인)하야 衆多亦然(중다역연)하며
마치 한 사람을 위하는 것같이. 숱한 사람들에게도 또한 역연(亦然). 그러하다. ‘그러할 연[然]자(字)’. 그러하다. 그러하시며.
常演說法(상연설법)하고 曾無他事(증무타사)하며
항상 연설법(演說法)하고. 법을 연설하시고. 일찍이 다른 일이 없으시더라. 오직 부처님께서 하시는 일들은? 중생 교화에 뜻이 있더라, 이런 말이네요.
그러니까 우리 상좌와 아침에 둘이서 밥 먹다가 터억, 앉아서. 이 어려운 걸 갖다가, <기신론(起信論)> 같은 거, 이런 불교 얘기를 갖다가. “아 저, 알아 듣도 못하는. 스님이 돼도, 너희가 되어도, 출가해도, 알아 듣도 못하고, 모두 공부 안하려고 하는데. 어째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거기 가서 알아 듣겄나? 내, 강의할 맛이 잘 안 나고 내가 그렇다···”
“스님! 한 사람도 못 알아듣더라도 하셔야지요.” (웃음) 고 놈, 이걸 읽었는가, 알았는가···, 그렇죠? 항상 연설법(演說法)하고. 그러니까 중이 강의하는 게 뭐, 얻을라고 하니까 탐심(貪心)이 붙어 버리니까 그게 그렇지. 뭐, 그냥 맨날 밥 먹듯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은 그 강의에 의미를 둘 필요도 별로 없어요, 예?
중[僧]이 하는 일이 그냥, 목탁치고 동냥이나 하고 탁발이나 이렇게 한 바퀴 돌고, 그 다음에 뭐, <반야심경> 한 번 쪼~옥 읽고, 내지 법문 할 자리 있으면 앉아서 법문이 아니라 강의하고, 법문이나 하고··· 요래 사는 게 중[僧]노릇인데, 스님! 뭘 그리 기대를 합니까? 이런 식인데. “아무도 알아듣지 못 하더라도 하셔야지요.” 오늘 여기, 한 분도 안 계시더라도? 저는 해야 됩니다. (웃음) 뭔 말인지 아시겠죠? 설사, 제가 없더라도 여러분들은? 공부, 하셔야지요. 그 뭐, 남한테 보이고 자시고, 이럴 거 아무 것도 없잖아요? <법화경> 꼭 읽어 주세요. 한 달 뒤에. (책 끝까지 잡아 넘기시며) 이거, 한달이면 한 번 읽잖아요? 한달이면 한 번 읽습니다. 그 만해 한 용운 스님이, “문장이 어찌 그리 유려하고 출중하냐?”고, 독립 선언서 쓰면서 공약 3장 남길 때 그렇게 물었더니 뭐라 그랬어요? “나는 아~무 것도 했는 게 없고 <법화경> 3천독(讀) 했수다.” “<법화경> 3천독(讀)”되면 여러분도 다? 한 용운이 아니라 두 용운같은, 세 용운 같은··· 시인이 됩니다, 시인이. 한 용운이 용운도 아니지 뭐.
증무타사(曾無他事). 항상 법을 연설하시고 진리를 말씀하시고 일찍이 다른 잡사(雜事)들은 돌아보지도 아니 하셨다, 이 말이야. 그래, 우리가 이 순간에 여기서 <법화경>을 읽는 것이 부처님 은혜에 얼마나 보답하는 겁니까?
去來坐立(거래좌립)에 終不疲厭(종불피염)하며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黙動靜)에. 가고 오고.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이 법을 연설하는 그런 자리에 있어가지고는 부처님께서는. 종불피염(終不疲厭)이라. 끝내, 어때요? 피염(疲厭). 피곤하고 싫다는 생각을 내지 아니하셨으며
充足世間(충족세간)호대 如雨普潤(여우보윤)하야
세간의 일체 중생을 위해 가지고. 충족시키기를. 마치 여우(如雨). 마치 비가 널리, 산천초목들을 윤택하게 하는 것처럼. 널리 윤택하게 해서
貴賤上下(귀천상하)와 持戒毁戒(지계훼계)와
사람들의. 귀한 사람·천한 사람과 높은 사람·낮은 사람과 또 청정한 사람과 청정하지 아니한 사람. 지계(持戒). 계율을 지키고. 계율을 범하고. 그러니까 청송 교도소에 있는 놈이나 집에서 효도 잘하는 사람이나, 가릴 것 없이
威儀具足(위의구족)과 及不具足(급불구족)과
아주 깨끗하게 잘 차려입고 말쑥하고 예의범절이 뛰어난 사람이나. 8만4천 세행(八萬四千 細行)과 3천 위의(三千 威儀)가 거~룩한 사람이나. 또 불구족(不具足)과. 쪼금, 정신적으로·육체적으로 장애가 있든지, 그 가정교육을 못 받았든지·사회교육을 못 받았든지, 좀 부족한 그런 사람들과
正見邪見(정견사견)과 利根鈍根(이근둔근)에
불교의 소견을 가지고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이나. 사견(邪見). 삿된 소견머리 가진 사람들이나. 이근(利根). 영리하고 말 잘하고, 음? 꾀 잘 부리고, 뭐, 통솔력 있고,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공부 잘하고 하는, 그런 날카로운 근기들. 아주 영리하고 날카로운 근기들. 둔근(鈍根). 둔해 빠지고 좀 모자라고 실수투성이고 주착 덩어리고. 그런 사람들한테 까지도 하나도 차별을 두지 아니 하시고, 어때요?
等雨法雨(등우법우)하야 而無懈倦(이무해권)호니
등(等). 평등스럽게 우(雨). 비 내린다. 무슨 비를요? 법우(法雨)를 내리셔서. 이 때는 ‘우[雨]’(字)는 동사로써 ‘내렸다’, 이렇게 쓰면 됩니다. 그걸 굳이 ‘비 내렸다’까지 안 가도 되겠네. 법우(法雨)를 비 내렸다, 조금 이상하잖아요, 그죠? 법비[法雨]를 비 내리게···, 법비[法雨]를 내리셨다. 평등하게 법비[法雨]를 내리셨다. ‘평등히’는 이제, ‘우[雨]’(字)를 받쳐 주는 부사가 되겠지요.
해석을 하고 보니까 참, 맛대가리 없이 해석을 했습니다. 꼭 간호사가, 선생이 저쪽에 설명하듯이 그리 돼 버렸어요. 그러니까 평등하게 법비[法雨]를 내려 가지고, 어때요? 이(而). ‘하지만’, 이런 뜻이죠. 법비[法雨]를 내려서, 하고 순접으로 받아도 좋구요. 해권(懈倦)이라. ‘게으를 해[懈]자(字)’, 권태기(倦怠期) 할 때의 ‘권[倦]’(字). 나태. 해권(懈倦)하지 아니하셨다.
탄허(呑虛:1913~1983) 스님께서도 번역을, 숱한 책을 번역 하셨는데. 어떻게까지 시간을 아끼셔서 번역 하셨냐면. 택시를 타고, 이렇게 가시는 와중에서도. 차 안에서도, 원고를 집필을 하셨다는 겁니다. 차 안에서 집필하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뛰어나신 어르신 스님들은 그렇게 촌음을 정말 아껴서 쓰셨던 것 같애요. 우리는 그냥 이렇게 지나가듯이 다 던져 버리고, 없잖습니까?
32. 一切衆生(일체중생)이 聞我法者(문아법자)는
일체 모든 중생들이. 문(聞). 듣는다. 아법(我法). 나의 진리. 나의 법을 듣는 자는
隨力所受(수력소수)하야
자기의 역량만큼. 아까 뭐라고 말씀드렸습니까? (깜냥) 깜냥. 꼴값, 뭐 이런 게 많이 나왔잖아요? 꼴값하는 것도 아시지요? 꼴. 모양값. 그 모양이란 게 사실은 꼴값한다, 이 말이 모양값한다·생긴 대로 노네~. (웃음) 이런 말이. 우리 이제 ‘꼴’ 중에서 가장, ‘마음의 꼴’을, 마음을 ‘얼’이라고 하지요. 얼빠진 놈. 정신나간 놈. 이렇게 하잖아요. 정신을 ‘얼’이라고 하잖아요?
그, 정신의 모양이 나타나는 데가 이, 얼굴입니다. 그래서 얼굴을 ‘얼꼴’이라고 얘기하죠. 그래 옛말에는 ‘얼골’이라고 썼죠. ‘얼꼴’. 얼의 꼴입니다. 이게 왜 얼의 꼴이냐면. 사람은 3혼 7백(三魂 七魄)이라고 해 가지고. 마음이 정신을 다스리는 것을 ‘혼(魂)’이라고 하고. 마음이 육체를 다스리는 것을 ‘백(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혼백(魂魄)’이다. 그래, 정신이 정신을 다스리는데 정신적으로 충격받으면은 혼났다, 그럽니다. 혼비백산(魂飛魄散)했다, 이 말은 정신도 못 차리겠고, 몸도 조치할 바를 못 차리겠다, 추스르지 못했다. 혼(魂)도 달아나고 백(魄)도 달아났다는 게.
백(魄)이라는 게 어디에 붙어 있느냐? 7백(七魄)이라고 하는데. 눈 구녕 2개·콧 구녕 2개·귀-제가 이거 말을 거칠게 써서, 절단이라. 절단이라는 말을 써서···-귀 2개, 몇 개예요? 6개. 입까지? 7개. 이래서 이제 7백(七魄)이 됩니다. 얼이라고 하는. 우리 마음이 육체와 더불어서 나와서 서로 상응해서 교감을 바깥의 경계하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이 마음이. 흔적 없는 마음이, 이 육신을 통해서 바깥하고 서로 상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이 눈·코·입·귀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죠? 그래서 이걸 7백(七魄)이라 합니다. 모르셨어요? 예? 저런 거는 기본으로 아셔야 됩니다.
달이, 이렇게 초생달부터 보름달까지 넘어 갈 때까지 초생달됐다가 좀 이렇게 컸다가 보름달이 되어 가지고, 또 다시 그믐이 될 때까지, 줄어들잖아요? 밝은 부문을 혼(魂)이라고 하고. 어두운 부분을 백(魄)이라고 하는 거야. 그래, 혼백(魂魄). 예? 그래 밝은 부분을 백월(白月)이라고 하고. 어두운 부분을 흑월(黑月)이라고 합니다. 참 답답다. 우리나라 교육계가 ··· 뭐하다가 거기까지 가 버렸노? 깜냥하다 그리 가 버렸네요.
그러니까 깜냥이니 꼴값이니 이게 나쁜 말들이 아니고. 마음을 모질게 쓰면 모질게 쓰는 대로 얼굴에 나타나고 자비롭게 쓰면 자비로운 대로 그 사람 얼굴 모습에서 나오죠. 여기 수력소수(隨力所受)라고 하는 거는. 자기가 번뇌에 끄달리는 힘이 어는 정도냐?, 하는 이 말이죠. 어떤 사람은 진심(嗔心)을 많이 일으키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의심(疑心)을 많이 일으키고. 어떤 사람은 남 속이는 걸 많이 일으키고. 어떤 사람은 교만을 많이 일으키고. 별 게 다 있고, 탐심(貪心)도 일으키고 이렇게 하는데. 그런데서, 그런 업력(業力)들이 사악, 다 빠져 버리는 거. 업력(業力)이 빠져 버리고 나면, 업력(業力)이 빠지고 나면 어떻게 되요? 무심(無心)~하게 되잖아요? 고것이 사실은. 불교에서 가장 큰 힘은. 마음 없는 힘이 제~일 좋은 것이고 무심(無心)이 제일 큰 힘이고. 아무리 좋은 마음을 낸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음을 이미 내었던 유위법(有爲法)이 되어서,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 이제는 공부를 하실 때. 뭘 쌓고·두고, 이 치적을 남기기보다는 자기의 존재의 흔적을 지워 가는 것이 정말로 공붑니다. 그걸 갖다가 옛 어른들은 은인자중(隱忍自重)이라든지 숨어서 스스로 즐긴다든지. 훼적도명(?毁迹도?名)이라. 자취를 훼. 감추고 도명. 이름을 숨기는 거. 하고 그런 거를 절깐에서는 흔히 ‘보림(保任)’이라고 하죠. 보호임지(保護任持)라,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은인자중(隱忍自重)하고 훼적도명(?毁迹도?名)하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는 것이 인생지사의 참으로 힘 있는 길이고, 그것이 무심(無心)으로 가고, 좋은 길인데. (책을 스윽, 쓸어내리시며) 이런 걸 자~꾸 많이 읽고 보고 해 가지고, ‘내 <법화경> 얼마만큼 안다.’ 해 가지고. ‘누구한테 배웠는지 아냐? 한국 최고의 그, <법화경> 강사. 용한, 학을 떼는 스님. (웃음) 용하게 학을 떼는 스님··· 이래 버리면. <법화경> 읽었던 공덕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래, 이거 누구한테 배웠나? 이러면. 그 스님 이름이 기억날동말동, 모르겠다, 이래 버리고. 나도 그 대목 배웠는지 안 배웠는지, 모르겠다. 알아도 모른 체~, 하고 사는 게 좋습니다. 알아도 모른 체~, 하고··· 군자(君子)는 여우(如愚)라. 어리석은 것처럼, 그리 사는 거죠.
수력소수(隨力所受)하야. 업력(業力)을 따라서, 자기의 역량만큼. 소수(所受). 받아서 쓴다, 이 말이죠. <법성게>는 뭐라 그럽니까? 귀가수분(歸家隨分). 자기의 분수만큼. 득자량(得資糧). 자기의 양식을 얻는다, 이 말이예요.
住於諸地(주어제지)호대
주(住). 살아간다, 이 말이야. 주거 생활한다, 버틴다. 주(住). 머문다. 어제지(於諸地)에. 이 때 ‘어[於]’(字)는 제지(諸地)의 앞에 위치해 있으니까 전치사로서‘~에’, 이런 뜻이 되죠. 제지(諸地)에. 모든, 여러 가지 경지에, 저마다의 경지에. 제 꼴값대로 잘 이해하고 살아간다, 이 말이야. 예? 자기의 역량만큼. 아시겠죠? 나쁜 뜻은 아니죠? 설명은 다 됐는데··· 구구절절하게도. 우리가 몇 시까집니까? (웃음) 7시 30분까지죠? 깜짝 놀랐네, 15분 동안 어찌할까, 싶어 가지고. 못 하겠다, 빨리 나가야 되겠네. 나는 시간 많다고 생각해 가지고. 여러 가지 경지, 뭐 쪼끔 깨달은 사람, 많이 깨달은 사람, 능력이 있잖아요? 고걸 경지라고 합니다.
或處人天(혹처인천)의 轉輪聖王(전륜성왕)과
그렇게 여러 가지 경지에 머무르되. 어떤 사람은 인간 세상에 돌아와 가지고 뭐가 됩니까?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기도 하고.
釋梵諸王(석범제왕)하나니 是小藥草(시소약초)요
그 제석천, 범천왕의 왕이, 제석천이 제일 대빵이죠. 제범(諸梵)의 모든 대왕이 되기도 하는 것이 어떤 경계예요? 소약초(小藥草)야. 그 정도 되어도 약초. 그래 노 무현이 정도도? 노 무현이 아니라 노 무현씨 정도도? 약초, 소약초(小藥草)도 안 되는 거야. 잡초 비슷하게, 잡초. (웃음) 전륜성왕(轉輪聖王)쯤 돼야 약초가 되잖아요? 작은 약초[小藥草]. 아시겠죠? (예) 그래 제가 노 무현 대통령이나 부시보다 잘 살고 있는 거예요, 인생은. 그러니까 아무도 안 믿데. (웃음) 안 믿는 사람은 그 사람은. 정치라든지 돈이라든지, 이런 데 자기 인생의 목적을 두고 있으니까 우리가 영 낮춰지는 거라. 그런데 불교쪽이라든가, 이런 쪽에 있으면은 영 거룩해 뵈지요, 그 뭐, 당연한 얘기를 그래싸···. (웃음) 조지 부시, 이런 사람들 우리한테 따라 오지도 못 해요. 내 한테 인사해도 내, 만나 줄동말동이야. (웃음) 저 웃는 분들은 제 말 안 믿는 분들이라. (웃음) 안 웃는 분들은 더 안 믿는 분들이고. (웃음) 참, 웃을 수도 없고 안 웃을 수도 없고. 전륜성왕(轉輪聖王)쯤 돼도, 어때요? 조지 부시쯤 돼도 소약초(小藥草)에 불과하고 산삼도 안 됩니다.
33. 知無漏法(지무루법)하야 能得涅槃(능득열반)하며
이 무루법(無漏法)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마음이 어떤 번뇌에 침탈당하지 않는 것. 번뇌에 침입당하든지, 번뇌의 경계에 빼앗겨 버리지 않는, 그런 완전무결한 진리법을 알아 가지고. 무루법(無漏法), 하면 뭐가 돼요? 무념(無念)입니다, 무념(無念). 무심(無心)한 거예요. 무심(無心)한 거. 그 무심(無心)을 다른 말로? 열반이라 하거든요. 능득열반(能得涅槃)하며. 능히 열반을 얻으며. 열반을 얻고 뭘 일으킵니까?
起六神通(기육신통)하야 及得三明(급득삼명)하며
일반적으로 공부를 해도 5신통(五神通)은 있잖아요? 마지막에는 뭐가 있습니까? 누진통(漏盡通)이라 해 가지고 모든 번뇌도 다 된다. 누진통(漏盡通). 득삼명(得三明)하야. 그래서 신통 중에 세 가지[숙명통(宿命通)·천안통(天眼通)·누진통(漏盡通)]를 삼명(三明)이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죠.
獨處山林(독처산림)하야 常行禪定(상행선정)하야
그러면서 혼자, 산 속에 있으면서. 훼적도명(?毁迹도?名)하네요. 항상 선정을 즐기면서
得緣覺證(득연각증)하나니 是中藥草(시중약초)요
연각(緣覺)의 깨달음을 얻나니. 이것은 윈드서핑(windsurfing) 정도, 하는 거다, 이 말이라. 그래도 뭐, 대단히 뛰어난 것은 아니다, 이 말이잖아요? 마지막으로
34. 求世尊處(구세존처)호대 我當作佛(아당작불)이라하야
세존(世尊)의, 부처님 계신 자리를 구하되. 아당작불(我當作佛)이라하며. 내가 마땅히 부처를 지을 것이라 하며
行精進定(행정진정)하나니 是上藥草(시상약초)니라
정진정(精進定). ‘정[精]’(字)라는 것은 참말로 정밀하게, 아주 곱게·곱게 빈틈없이, 세밀하게, 한 발짝도 찰나나 촌보도 물러남이 없이 오직 전진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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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허공’만큼은 부서지지 않앴더라~. ··· _()()()_
가을햇살님! 수고하셨습니다..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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求世尊處(구세존처)호대 我當作佛(아당작불)이라하야 行精進定(행정진정)하나니 是上藥草(시상약초)니라 .... _()()()_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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