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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구세군군산교회(since1909) 원문보기 글쓴이: 복음의일꾼
2011.1.26. 하사관부렝글수련회 헌신예배 간증문
할렐루야!
저는 30년 전 구세군이리영문에 친구 따라 갔다가 구세군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처음 담임사관님이 오늘 브렝글 수련회 헌신예배를 인도하시는 박종덕서기장관님 이십니다.
부족하고 나약한 저를 주님의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고 사랑으로 양육하셨습니다.
저는 이리영문 여청년을 만나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기업으로 얻었습니다. 사관님의 교육과 훈련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깨닫고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이리영문 군기부교로 임명을 받고 구세군의 하사관이 되었습니다.
이리영문에서 두 번째 담임사관님(박재택 참령)을 만나게 되었고, 하사관 브렝글 수련회에 단장님 재무님과 함께 참석하고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성결의 교사 브렝글 처럼 살아 보겠다고 다짐하고 헌신하며 이리영문에서 1년 가량 충성하다가 사업처가 군산으로 옮겨진 가운데 군산영문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군산영문에서 세 번째 담임사관님(김용환 정위)과 인연을 갖고 낯설은 군산에 적응하며 사업을 시작하고 교회를 섬겼습니다. 우리 동부인은 담임사관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며 교회 성장을 위해 정진하던 중 담임사관님이 질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전 교인이 합심하여 기도했으나 사관님은 소천 하시고 영문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주님은 우리의 신앙을 단련하고 믿음의 용량을 키워 주셨습니다.
극심하게 어려워진 교회 실정 속에 네 번째 담임사관님(김상익 참령)을 새롭게 맞이하고 영문 부흥을 위해 담임사관님 동부인을 도와 헌신하며 교회와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1995년2월25일 서기정교로 임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재정비 되기도 전에 군산 제2영문을 개척하라는 구세군대한본영의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담임사관님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영문 개척을 위해 작정하고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담임사관님은 교통사고로 소천 하셨습니다.
두 번이나 담임사관을 잃은 군우들은 매우 낙심했습니다. 또 다시 영문에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영문의 어려움을 통해 주님께서는 저희 동부인이 주님 앞에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순종하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담임사관님 장례를 치른 후 사모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제2영문 개척을 어떻게 할까요?
사모님께서는 사관님께서 개척을 원하셨으며 하나님이 바라실 거라며 그 자리에서 개척을 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후 사모님(김봉순 참령)은 자동차 사고로 받게 된 보험금 전액을 제2영 개척 헌금으로 내주셨습니다. 이 것이 도화선이 되어 군우님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 했습니다. 우리 동부인은 담임사관님을 대신해서 맨 앞장을 서서 영문개척을 준비했습니다. 여러 가지 일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담임사관님이 돌아가신 해 11월16일 구세군동군산영문을 개영하게 되었습니다.(전광표 지방장관님 시절) 이러한 일들은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갖게 했고 성결의 교단 구세군에서 신앙생황을 하는 우리에게 큰 자부심을 갖게 했습니다.
그 해 겨울에 군산 시청으로부터 영문 가운데로 도로가 나게 되어 보상금을 타가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는 영문운영위원회를 결성하고 다른 장소로 영문을 옮기기로 합의를 봤습니다. 지금의 영문자리를 고귀례 부교님의 소개로 계약금을 걸고 계약을 한 후 다섯번 째 담임사관님(박성배 정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새로 부임하신 담임사관님과 함께 명산동 오래된 교회 보상처리를 매듭짓고 새로운 교회 부지 매입처리를 다한 후에 영문 신축을 위해 합심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영문운영위원회에서는 새로 문화동에 구입한 교회 부지 위에 조립식으로 성전을 지어 이사하기로 결정하고 문화동(733번지)으로 이전을 추진 했습니다.
은퇴 사관으로 군산영문에 출석하시던 강영자 사모님이 질병으로 한사랑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최순옥부교가 수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모님의 병원 생활을 통해 그 병원 수간호사를 비롯하여 2명의 간호사를 전도하여 이경숙 수간호사를 구세군사관학교로 보내는 성과를 얻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두 간호사는 최부교가 중매를 서서 결혼 시킨 후 우리교회의 중추적인 일을 감당하는 부교로 양육하는데 힘썼습니다.
전혀 하지 못하실 것으로 보였던 원장님의 사모님 병간호는 우리로 하여금 감동할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잘 섬기셨습니다. 은퇴 사관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본영의 각 영문 1개 시설 만들기 정책의 일환으로 군산시청의 복지과를 방문한 담임사관은 장애인 부모회를 소개 받고 추진하던 중 규모가 너무 커서 본영에 일임하게 되었습니다. 본영은 은퇴사관(김소인 참령)을 초 대 원장으로 임명하고 본격적인 목양원 시설을 설립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서도 최순옥부교의 헌신적인 섬김이 있었습니다.
교회 신축을 위해 오랫동안 기다리던 중 여섯 번째 담임사관(한재오 정위)을 맞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교회 건축을 위해 위원들과 함께 아름다운 영문을 지어 봉헌 하려고 여기 저기 많은 교회 건물을 탐방하며 꿈을 꿨습니다.
최부교가 우리 가문에 시집온 후 죽으면 죽으리라는 열정적인 믿음으로 가족을 전도하여 우리 가문은 모두 구원을 받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우리 3형제는 군산영문에서 함께 신앙 생활하며 부교로 또 하나의 동생은 영문 100주년 때 복지정교로 임명을 받아 영문의 핵심 하사관으로 충성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담임사관 동부인의 열심과 군우들의 변화로 날마다 부흥하기 시작 했습니다. 나라 경제가 IMF에서 서서히 회복하며 명산동 교회의 땅이 매각되어 영문 건축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문건축위원회에서 교회 신축을 결의 하고 건축헌금 작정에 들어 갔습니다. 교회 모든 성도들은 뜨겁게 기도 하기 시작 했습니다.
교회 건축이 시작 할 무렵 군산영문에서 함께 충성 봉사하던 저의 부인 최부교가 말기암(임파선 종양) 진단을 받고 원광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의사들의 생존확률은 5%도 못된 다고 진단 했습니다.
군산에 이사를 와서 교회와 하나님만 알고 열심히 일했던 최부교가 질병으로 어려움을 당하게 되니 무척이나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어려움을 통해 우리를 또 한 번 단련하고 믿음의 용량을 넓히셨습니다. 교회 건축 중에도 담임사관님 동부인은 매일 병원에 찾아 오셔서 기도해 주시고 용기와 희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교인들은 뜨겁게 중보 기도를 날마다 해 주셨습니다. 신축 중인 교회의 모습이 날이 갈수록 변해 가기 시작 했습니다. 나는 병원에서 군산에 올 때마다 영문 신축 공사장에 들려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아 두었습니다. 그건 가슴 뛰는 일이었습니다.
최부교가 치료를 받기 시작할 때는 막내 아들이 고3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 이었습니다. 자율학습이 끝나면 저녁 12시가 넘어 시내버스가 다니지 않아 동생이 매일 차에 실어 왔습니다. 내가 최부교 간호하는데 전념하라고 마음을 써준 것입니다. 대학에 진학했을 때는 입학금을 대주고 지속적으로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두 동생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들어 나지 않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교회 모습이 조금 갖춰지고 있을 때 우리 최부교가 이 교회에 와서 다시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하나님께 간절이 호소 했습니다. 주님의 선하신 능력으로 치료 해 달라고 신축 중인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 드리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 했습니다. 김소인 은퇴사관님은 매일 원대병원에 문병하며 최부교의 투병 생활을 응원해 주셨습니다.
서울 삼성병원으로 옮겨 1년 가량을 항함 치료를 받았으나 최부교의 몸에 면역력이 떨어져 더 이상 항암치료를 받을 수 없어 포기하고 전북 순창에 있는 집을 수리하여 요양하기로 했습니다. 최부교의 투병 생활은 너무 어려운 과정이었습니다. 최부교는 생사를 주님께 맡기고 씩씩하게 살아 갔습니다. 둘 째 아들 수능 시험 끝나고 그 다음날 최부교는 순창 집에서 더 이상 병원에 안가고 요양하기 시작 했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면서 최부교의 몸은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 했습니다.
구세군군산교회는 아름답게 신축되어 봉헌예배를 드렸습니다. 최부교도 아름답게 신축된 영문에서 감격적인 예배를 드렸습니다. 눈물과 기쁨의 감격이 한꺼번에 몰려 오면서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에 감사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순창에 생활하던 최부교는 산과 들에 다니면서 산나물 고사리등으로 반찬을 해먹고 자연속에서 건강을 찾았고 군산영문에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주일을 지키며, 군산에서 5일 직장에서 일하고 금요일 저녁에 순창에 가서 최부교를 돕고 토요일 군산에 와서 자고 주일 예배 드린 후에 순창에 최부교 태우고 가서 나는 월요일 군산으로 출근하는 생활을 9년간 했습니다.
살아 있음이 감사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주님의 은혜라고 생각 했습니다. 김소인 은퇴 사관님의 강영자사모님 섬김을 보고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조금만 흉내 냈을 뿐이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최부교가 건강을 찾고 조금씩 안정되어 갔습니다. 오래 전부터 성경대학에 다니기를 희망하고 있었으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못했었는데 분당에 있는 지구촌교회(이동원 목사)의 성경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군산에서 익산은 자동차로 익산에서 수원은 기차로 수원에서 분당은 버스로 이동하며 매주 목요일 출석 수업을 받으며 목사님이 직접 강의하는 신학교 모든 과정(3년6학기)을 재미있게 공부하며 졸업할 때는 장거리 출석학생으로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싶어 한일장신대학교 평생교육원(2년)서 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영문에서 복지시설을 하게 되면 돕고자 하는 순전한 마음에서 다른 부교들에게도 권면 해서 우리교회는 10명의 복지사가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군산, 순창, 큰아들은 서울(영등포영문 출석),둘째 아들은 전주 병원기숙사에 흩어져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주 안에서 하나가 될까 생각하다가 QT책을 하나 선정해서 같은 QT책 한 권씩 나누어 갖고 매일 매일 같은 날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 하자고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중보 기도하며 영성을 키우고 주안에서 하나가 되어 교통하게 되었습니다. 아 오늘 우리 가족들이 이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겠구나 생각하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피부에 와 닿았습니다.
3년 전 일곱 번째 담임사관(이강인 참령)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역사가 잘못되어 있었는데 담임사관님께 건의하여 잘못된 역사를 수정하고 보니 군산영문 개영 99주년이 되었습니다. 영문운영위원들의 결정으로 개영100주년 행사를 하기로 하고 담임사관님을 위시하여 모든 교인들이 합심하여 기도하며 100주년행사를 계획하고 준비 했습니다.
2009년11월7일은 군산영문 개영 100주년 되는 날입니다. 개영100주년 행사로는 1)"다시 복음 앞에"학생수련회, 2)"회개 능력 거룩한 전진"을 위한 부흥성회,3)"거룩한 전진"을 위한 전교인 한마당 잔치,
4) 100주년 역사책 발간, 5)가족문화원 개원, 6)청소년 체육시설 설치, 7)주일학교 교육관 확장, 8)구세군희망나누미 군산점 개점, 9)서울후생학원 악대초청 군산시민을 위한 음악회 10)군산기독교연합부흥회 구세군 연합성가대 서울후생학원악대와 함께 찬양, 11)군산영문 100주년 기념비 제막, 12)강두원 복지정교 임명식, 13)군산영문 개영 100주년 기념 감사예배, 군산영문 서기정교로 섬기며 개영 100주년을 우리 시대에 맞아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렸습니다.
작년 가정단 주일에는 군산영문의 가정단원 이름으로 주는 "장한 남편상"을 받았습니다. 어색하고 쑥스럽기는 했지만 가보로 후손에게 물려 주라는 목양담당사관님의 말씀에 그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고 김소인 사관님의 사모님 돌보시는 것을 보고 흉내만 냈을 뿐인데 나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시는 가정단원들의 상이라니 하나님의 사랑으로 알고 감사히 받았습니다.
오늘 구세군 하사관 부렝글 수련회를 통해 받은 은혜와 사랑을 헌신하고 결단하는 이 마당에 한가지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영문에 돌아가면 복음 전파에 힘쓰며 복음의 일꾼, 사람 낚는 어부로 전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전도하여 전도왕으로 백화산에 다시 서서 하나님께 간증하며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모든 영광은 주님께 돌립니다.
할렐루야!!
2011. 1. 26.
구세군군산영문 강성원 정교.
사랑의 빛
(장한남편상)
서기정교 강 성 원
손 잡고 동행하는 신뢰의 마음
시련은 지혜를 얻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침 이슬처럼 영롱한 두 사람
그 빛의 사랑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이 폐를 드립니다
2010. 5. 16.
구세군군산영문가정단
*시인 백운순 부교께서 시를 써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