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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부산와인클럽 Wein 원문보기 글쓴이: 케빈
앤젤스 셰어(Angel’s Share), 그대로 해석하면 천사의 몫이다. 오크통에서 숙성중인 와인의 일정량이 매년 사라지는 것을 뜻하는 말인데 혹자는 유명한 호주 와인의 이름으로 기억할 지도 모르겠다. 이 앤젤스 셰어라는 말은 위스키에도 쓰이는데, 위스키 또한 오크통 숙성을 거치기 때문이다. 특히 스카치 위스키(Scotch Whisky)의 경우 3년 이상 오크 숙성한 위스키에만 그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을 정도다. ‘앤젤스 셰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물론 숙성 중인 위스키(혹은 와인)가 공기 중으로 증발하기 때문인데 그것을 숙성 창고를 지키는 천사의 몫이라고 표현했다는 점이 재미있다. 그렇다면 오크통에 남아있는 위스키는 누구의 몫일까?
그에 대해 흥미로운 답을 제시하는 영화가 있다. ‘바로 앤젤스 셰어’라는 표현을 그대로 가져다 쓴 켄 로치(Ken Loach) 감독의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가 바로 그것이다. 2012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영국 하층민 거주 지역 젊은이들의 고달픈 삶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 영화가 애주가, 특히 위스키 애호가들에게 특별한 이유는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를 소재로 스토리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요 플롯마다 등장하는 위스키들, 예를 들면 주인공 아들의 탄생 축하주로 마시는 스프링 뱅크 32년 숙성(Springbank 32 years old)이나 ‘아일라(Islay) 섬의 왕자’로 불리는 라가불린 16년 숙성(Lagavulin 16 years old), 그리고 주인공이 특별한 후각을 부각시켜 주는 크래건모어(Cragganmore)나 글렌파클라스(Glenfarclas) 등은 실제 존재하는 위스키로 영화를 보는 내내 한 잔 생각이 간절하게 만든다.
극 중 위스키 전문가로 등장하는 배우가 실제 스카치 위스키 전문가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찰스 맥클린(Charles McClean)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그의 자연스러운 테이스팅 연기는 실생활의 일부였던 셈이다. 몰트 밀(Malt Mill) 증류소 또한 1962년에 문을 닫은 실제로 존재하는 증류소였다. 타큐멘터리 기법의 대가 켄 로치 감독답게 사실주의 기법을 곳곳에 활용함으로써 극적 재미를 증가시킨다. 이외에도 등장인물들이 증류소를 견학할 때 소개되는 위스키 생산공정이라던가 오크 통 마개 여는 법, 증류소 전경과 실제 증류기 등 애호가의 상식이 될 만한 내용들도 제법 소개된다.
영화 <앤젤스 셰어>의 한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서론이 길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를 보실 분은 주의!) 올드 캐스크에 담긴 몰트 밀 증류소의 희귀 위스키 경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각각의 몫을 제시한다. 먼저 주인공인 로비 패거리가 이미 캐스크 안의 위스키를 다 빼돌린 후 진행되는 경매에서 제시되는 어리석은 인간의 몫. 115만 파운드에 낙찰된 ‘가짜 위스키’를 맛본 미국인 콜렉터는 만족스럽다는 표정과 함께 환상적이라는 표현을 내뱉는다. 어쩌면 가격과 명성에 휘둘리는 인간들에 일침을 가하려는 감독의 의도였을까. 두 번째는 간절한 인간의 몫. 폭력과 옥살이로 얼룩진 인생을 살며 얼굴에 칼자국까지 새긴 주인공 로비는 자신과 가족의 삶을 수렁에서 건져 내기 위해 (아마도) 마지막 범죄를 시도한다. 그 대가는 2만5천 파운드와 번듯한 직장, 그리고 행복한 가족. 범죄를 통해 성립하는 해피 엔딩이라니, 뭔가 꺼림직하지만 위스키의 역사 또한 원래 그러했다. 위스키 밀주를 위해 숨어든 범법자(?!)들이 없었다면 이탄(peat)이나 오크통 숙성 등 위스키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요소들을 발견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엔 순박한 인간의 몫이 제시된다. 바로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로비 패거리를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고 위스키의 세계로 인도한 해리에게 로비가 선물한 ‘진짜 몰트 밀 위스키’다. 측은지심과 위스키에 대한 애정을 겸비한 해리는 진정 위스키의 맛과 향을 즐길 자격이 있어 보인다. 물론, 10만 파운드를 주고 밀주를 즐기는 방법도 있겠지만. 문득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는 성경 구절이 떠오른다. 아, 물론 이 경우에는 ‘천사의 것은 천사에게, 인간의 것은 (그에 맞는) 인간에게 돌려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