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我爲太子時 羅睺爲長子 我今成佛道 受法爲法子 於未來世中 아위태자시 라후위장자 아금성불도 수법위법자 어미래세중
見無量億佛 皆爲其長子 一心求佛道 견무량억불 개위기장자 일심구불도 24. 羅睺羅密行 唯我能知之 現爲我長子 以示諸衆生 無量億千萬 라후라밀행 유아능지지 현위아장자 이시제중생 무량억천만 功德不可數 安住於佛法 以求無上道 공덕불가수 안주어불법 이구무상도 |
↑ 생략부분
25. 爾時 世尊 見 學無學 二千人 其意柔軟 寂然淸淨 一心觀佛 佛告阿難
이시 세존 견 학무학 이천인 기의유연 적연청정 일심관불 불고아난
汝見是 二千人不 唯然已見(여견시 학무학 이천인부 유연이견)
그 때에 세존이 學無學 2000명이 그 생각이 柔軟해서 寂然淸淨하며 一心으로 부처님을 보고 있는 것을 보고 觀佛. 觀佛이라고 하는 것은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 아니지요. 마음속에 부처님만 생각하고 있는 것. 그러고 있는 것을 부처님이 다 보시고는 佛告阿難하사대, 그대는 學無學 二千人을 보는가? “예 그렇습니다. 봅니다.”
26. 阿難 是諸人等 當供養 五十世界微塵數 諸佛如來 恭敬尊重 護持法藏
아난 시제인등 당공양 오십세계미진수 제불여래 공경존중 호지법장
末後同時 於 十方國 各得成佛 皆同一號 名曰寶相如來 應供 正徧知
말후동시 어 시방국 각득성불 개동일호 명왈보상여래 응공 정변지
明行足 善逝 世間解 無上士 調御丈夫 天人師 佛世尊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세존
아난아, 이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五十世界微塵數 諸佛如來를 공양해서 恭敬尊重하고 護持法藏하며 법장을 護持하며, 末後에 끝에 가서 동시에
十方國에서 각각 성불하게 되면 똑같이, 다 똑같이 한 가지 이름으로,
이름을 寶相如來ㆍ應供ㆍ正徧知ㆍ明行足ㆍ善逝ㆍ世間解ㆍ無上士ㆍ調御丈夫ㆍ天人師ㆍ佛世尊이라 하리라.
27. 壽命 一劫 國土莊嚴 聲聞菩薩 正法像法 皆悉同等
수명 일겁 국토장엄 성문보살 정법상법 개실동등
壽命은 一劫이요, 國土莊嚴과 聲聞菩薩과 正法像法도 다 다 동등할 것이다. 아니, 2000명 앉혀놓고 이렇게 싸구려수기를 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수기라고 할 수가 있겠어요? 누구는 개인, 개인 이름 불러 가지고 낱낱이 국토장엄이 어떻고 상법주세가 어떻고 정법주세가 어떻고 국토 이름은 어떻고 이렇게 하고, 누구는 이건 뭐 사람 차별 하는 것도 아니고, 2000명을 똑 같은 이름으로 부처가 될 것이다 라고 하는 것. 여기에서 우리가 저 앞에서도 제가 누누이 강조 했습니다만, 제가 엉터리수기. 싸구려수기라고 했는데 이것은 엉터리도 아니고, 싸구려도 아니고 이것이 지극히 정상입니다. 사람이 본래로 그대로 부처라는 사실. 2000명이라면 그 사람들은 게으른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근기가 별별 사람, 공부의 정도가 별별 사람, 학덕이나 수행력이 별별 사람이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 같이 똑같은 이름으로 부처가 된다고 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알고 보면, 정말 수기의 참다운 뜻을 알고 보면 이것이 지극히 정상입니다. 지극히 정상이라고요. 사람이 그대로, 아무리 그 사람이 나쁘든 선량하든 관계없이 그대로, 현재 이대로 번뇌가 있으면 있는 그대로 부처라는 이 사실을 알리는데, 사실을 알고 보면 그렇게 이름 들먹거려 가면서 국토장엄이 어떻고 상법이고 정법이고 그런 것 거창하게 거론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거론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 2000명에게 맞는 겁니다.
결코 싸구려도 아니고 엉터리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 부처라고 하는 사실은 그야말로 무슨 고유명사가 아니고, 보통 명사다 우리 흔히 하는 소리 아닙니까?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에 사람이 그대로 부처라고 하는 사실.
무슨 닦고 수행을 해가지고 어느 기간이 경과하고 ←이렇게 해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고, 현재 그대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그대로 부처라고 하는 이 사실입니다. 만약에 정말 6바라밀을 실천하고 무슨 수행을 쌓고 시간이 얼마 걸린다고 한다면 2000명이 다 다를 것 아닙니까? 달라야 옳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똑같이 부처가 된다고 이렇게 말할 수가 없잖아요.
그럼 그것이 무효라는 뜻입니다. 영가 증도가에도 求佛施功早晩成가 부처를 구하기위해서 공을 베푼다. 공을 베풀어서 부처된다고 한다면 그거 언제 부처 되겠느냐? 본래 부처라는 사실에 눈을 떠야지 공을 베풀어 가지고, 수행을 쌓아 가지고 부처된다고 한다면 언제 부처 되겠느냐? 그런 이치는 아니다 이겁니다.
그래 본래부처. 여기 법화경도 끊임없이 본래부처를 강조하는 겁니다.
간혹 근기 따라서 어떤 조건을 제시합니다. 몇 년 동안 부처님을 얼마나 부처님을 공양하고 얼마나 수행을 한 뒤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그런 말이 먹혀드는 사람을 위해서는 그런 표현을 했지만, 그 속뜻은요 그것이 아닙니다. 절대 그것 아닙니다. 보십시오. 2000명을 똑같이 부처로 이렇게 한꺼번에 취급할 때는 결코 수행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기간이 얼마나 필요하다면 2000명이 다 달리 이야기가 되어야 옳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똑같이 했을 때는 이것은 현재 상태 그대로 그 사람이 출발을 했든, 아니면 100m를 나갔든, 1Km를 나갔든, 1000Km를 앞서가 있든, 그것 전혀 관계없이 그대로, 아니 뒤로 가는 사람도 똑같이,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뒤로 가는 사람도 똑같이 부처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요.
여기에 우리가 확신을 가져야 됩니다. 확실히 눈을 떠야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법화경에서 최후로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기 직전에 일러준 말씀이다. 결국은 이것이야말로 부처님이 갈무리해 두었던, 속에 깊이깊이 비장해 두었던 진실이다. 그 동안은 이런저런 얼마나 많은 조건을 제시하고 얼마나 많은 어려운 수행을 이야기를 했겠나?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정말 진실이다 라고 하는 내용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기 때문에 그래서 수기라는 말이 많습니다. 많고, 이 사실만 제대로 이해한다면 부처님도 할 일다한 것이고, 우리도 불교공부 다한 것이다. 그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따로 불도를 이루는 것이 결코 아니지요. 다음에 重頌은 생략하겠습니다.
28. 爾時 世尊 欲 重宣此義 而說偈言(이시 세존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29. 是二千聲聞 今於我前住 悉皆與授記 未來當成佛 所供養諸佛 시이천성문 금어아전주 실개여수기 미래당성불 소공양제불 如上說塵數 護持其法藏 後當成正覺 各於十方國 悉同一名號 여상설진수 호지기법장 후당성정각 각어시방국 실동일명호 俱時坐道場 以證無上慧 皆名爲寶相 國土及弟子 正法與像法 구시좌도량 이증무상혜 개명위보상 국토급제자 정법여상법 悉等無有異 咸以諸神通 度十方衆生 名聞普周徧 漸入於涅槃 실등무유이 함이제신통 도시방중생 명문보주변 점입어열반
|
↑생략부분
30. 爾時 學無學 二千人 聞佛授記 歡喜踊躍 而說偈言
이시 학무학 이천인 문불수기 환희용약 이설게언
그 때에 學無學 2000명이 부처님의 수기를 듣고 歡喜踊躍해서 게송으로서 설합니다.
31. 世尊慧燈明 我聞授記音 心歡喜充滿 如甘露見灌
세존혜등명 아문수기음 심환희충만 여감로견관
世尊慧燈明하시니, 참 표현 잘 했어요. 세존은 慧燈明이다.
세존을 달리 표현하면 慧燈明이다. 지혜의 등불이 환하게 밝은 사람이다.
我聞授記音하옵고 우리는 수기 주는 말씀을 듣고, 心歡喜充滿호대 마음에
환희가 充滿해서 마치 감로수를 머리에 부어주는 것을 입은 것과 같습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 “너도 부처야.”하고 감로수를 머리에 부어주는 것.
灌頂. 그러지요. 옛날 소위 대관식. 유럽으로 치면 대관식이고 인도로 치면 왕위를 물려주는데 머리에다 물을 부어주는 겁니다.
그것도 四海의 바닷물을 다 떠다가 그것을 섞어서 4해를 잘 다스리라는 뜻에서 그 물을 머리에다 부어줍니다. 4해를 다스리라는 뜻. 그래서 관정.
물댈 灌자 이마頂자. 이마에다 부어주는 그것이 왕위 계승입니다.
왕위를 물려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바로 부처님의 上首弟子로서 부처노릇을 한다는 그런 뜻에서 불교에서는 灌자를 늘 그런 의미로서 옵니다.
灌자가 그런 뜻이지요. 그래 甘露로서 감로법. 불생불멸의 도리. 그러니까 감로 법문으로서, 감로의 법으로서 灌頂해주는 것을 입은 것과 똑같습니다.
이제 부처님의 上首弟子이고, 내가 부처 대행을 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2000명이 너도 부처이고 나도 부처인데 부처 대행 못하라는 법이 어디 있나? 이제 석가모니 필요 없다 이겁니다. 나도 부처다 이겁니다.
이 灌頂이라는 의미가 그런 뜻이거든요. 이제 父王은 물러앉아야지요.
이제 새 왕이 진짜 왕 노릇을 하는 그와 같은 격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네구절이지만 아주 의미심장하고 요약이 잘된 게송입니다.
이렇게 해서 수학무학인기품은 이렇게 간단하게 끝내고, 그 다음에 법사품. 법사품도 참 좋은 내용입니다. 법화경은 사실은 어떤 이치를 이야기 하는 것 보다는 수기를 이야기 하면서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강조하려고 하는 뜻이 법화경을 자꾸 읽어보면 그것이 아주 돋보입니다. 인간의 그 위대한 존엄성. 이것 밖에 더 있느냐? 이것만 제대로 이해하면 끝이다 하는 그런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친구 찾아갔는데 친구가 평생 먹고도 남을 如意寶珠를 주머니에 넣어줬지요. 그 주머니 속에 있는 겁니다. 그것은 누가 가져가지도 못해요. 뺏어가지도 못하고요. 그와 같은 어떤 마음이 아주 저변에 척~ 깔려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妙法蓮華經 授學無學人記品 第九 終
妙法蓮華經 第四卷 法師品 第十
여기 법사품은 결국은 법화경을 설하는 五種法師. 법화경을 펴는, 불법을 펴는 것이지요. 아까 제가 서두에 포교와 전법의 필요성을 강조를 했는데요. 바로 여기서, 법화경 안에서의 소위 법사. 또는 전법이라고 하는 것은 법화경을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그대로가 불교입니다. 굳이 법화경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하더라도 불교라고 아울러서 생각하면 좋습니다.
이것은 결국은 아까 이야기 했듯이 유통분에 해당되거든요.
迹門에 있어서는 유통분. 말하자면 결론에 해당됩니다.
불교의 결론은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널리 유통시키는 것이 결론입니다.
유통시키지 않으면, 나한테 와서 머물러만 있으면, 물이 흐르지 않고 정체 되어있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 꼭 전하도록 하세요.
요즘 저의 카페는 1년에 한 사람. 새로운 信者 만들기 운동. 이것을 얼핏 이야기를 했더라고요. 참 저의 가슴에 와 닿는 말이라서 정말 가슴이 뜨거웠는데, 신도로서 1년에, 너무 많이 욕심내지 말고 1년에 확실한 신도 한 사람만 만들자 이겁니다. 신도가 100명이면, 1년에 100명이 한 사람씩만 만들면 200명이 되잖아요. 200명이 다음해에 전부 확실하게 1년에 한 사람씩만 만들면 400명이 되잖아요.
그 운동. 그것 해야 돼요. 1년에 확실한 신도 한 사람만 만들자. 물러서지 않는 신도 한 사람만 확실하게 만들면 그거 작은 숫자가 아닙니다. 그런 운동을 해야 됩니다. 정말 그 운동을 펼치고 싶어요. 염화실이라는 카페에서 누가 그런 이야기를 했더라고요. 그래서 자기는 여하한 일이 있어도 1년간 모르긴 몰라도...
저는 신도들에게 그러거든요. 아, 불교에 귀의하게 하려면 1년간 차비 대주고, 차로 태워다 주고, 회비 대신 내주고, 교재 사 주고, 1년간 공 들여라. 그 정도 공 안 들이고 불교 신도 되게 할 수 없지 않느냐? 1년간 신도 회비 대주고 치로 실어다 나르고, 같이 놀아주고, 同事攝도 하고, 최소한 1년간 그 정도 공을 들여야 공들인 보람이 나타날 거다. 그렇게 부탁을 저는 가끔 합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1년에 확실한 신도 한 사람씩만 만드는 것. 그 운동을 우리가 좀 마음에 담아두고, 여러분들도 각계 사찰에서 신도들에게 그런 부탁을 했으면 좋겠고, 또 이 법화경이 참 대단한 경전이니까 어떻게 하더라도 아는 것 만치만이라도 전하는 그런 특별한 각오를 했으면 좋겠어요.
여기는 “법사품” 하니까 五種法師입니다.
그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다섯 가지 종류의 법사가 있는데 책을 가지고 다니기만 해도 法師입니다. 법화경법사라고요. 법화행자입니다.
읽어도 법화행자입니다. 법화경법사입니다. 외워도 법화경법사입니다.
다 외울 것 없어요. 하나만 외워도 됩니다. 한 구절만 외워도 되고요.
受持ㆍ讀ㆍ誦ㆍ書寫 쓰는 것, 사경하는 것. 解說하는 것, 설명하는 것. ←이것을 五種法師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1. 爾時 世尊 因 藥王菩薩 告 八萬大士
이시 세존 인 약왕보살 고 팔만대사
그 때에 세존께서 藥王菩薩로 인해서 八萬大士에게 告하사대, 大士도 보살이지요.
2. 藥王 汝見是大衆中 無量諸天 龍王 夜叉 乾闥婆 阿脩羅 迦樓羅
약왕 여견시대중중 무량제천 용왕 야차 건달바 아수라 가루라
緊那羅 摩睺羅伽 人與非人 及 比丘 比丘尼 優婆塞 優婆夷 求
긴나라 마후라가 인여비인 급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구
聲聞者 求 辟支佛者 求佛道者(성문자 구벽지불자 구불도자)
약왕아, 그대는 이 대중 가운데 無量諸天ㆍ龍王ㆍ夜叉ㆍ乾闥婆ㆍ阿脩羅ㆍ迦樓羅ㆍ緊那羅ㆍ摩睺羅伽ㆍ人與非人ㆍ比丘ㆍ比丘尼ㆍ優婆塞ㆍ優婆夷의 성문을 구하는 사람과 벽지불을 구하는 사람과 불도를 구하는 사람들을 보는가? ←汝見. 이렇게 해서 쭉~ 동참한 모든 대중. 잡중들 까지 龍王ㆍ夜叉ㆍ乾闥婆까지 다 비구 비구니는 말할 것도 없고, 성문ㆍ벽지불ㆍ보살ㆍ불도를 구하는 사람까지 총 망라 해놓고 여기서 총 수기합니다.
앞에 유학무학인기품에 그렇게 2000명을 떨이로 여기는 “떨이 수기장” 제가 그랬어요. 그렇게 2000명을 수기를 줘놓고, 부처님은 그래도 한이 안 풀려요. 그래서 여기서 이렇게 모든 대중을 다 거론을 해놓고 떨이로 수기를 합니다. 보십시오.
3. 如是等類 咸於佛前 聞 妙法華經 一偈一句 乃至一念隨喜者 我
여시등류 함어불전 문 묘법화경 일게일구 내지일념수희자 아
皆與授記 當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개여수기 당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이와 같은 等類가 다 부처님 앞에서 妙法華經의 一偈一句를 듣고, 乃至. 한 시간이라면 좋고, 하루면 더 좋고, 1년이면 더 좋고, 아니 그거 다 때려치우고 한 순간. 一念은 한 순간입니다. 2, 3초입니다. 2, 3초 동안 만이라도 따라서 기뻐하는 사람은 내가 다, 다 그 사람에게 수기를 주되 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마땅히 얻을 것이다. ←이것이 떨이 수기 아닙니까? “떨이 수기”
이것은 완전히 떨이 수기입니다. 아까는 2000명을 선택을 했지만, 여기는 복잡하게 숫자 할 것이 뭐 있느냐? 그 사람은 전부 다 아니 동참 아니 해도 좋다. 인터넷으로 듣든지 누가 전해서 듣든지 테이프를 듣든지 어디서 듣든지 누가 잠꼬대 하는 소리를 듣든지 간에 한 순간, 오래 기뻐하는 것은 말 할 것도 없고요. 한 2, 3초만 ‘야~, 그거 괜찮은 소리다.’ ‘괜찮은 소리다.’ ←이렇게 생각이 드는 사람도 다 부처라는 말입니다. 부처라는 말... 이렇게 수기 하는 것입니다. 이것 “떨이 수기장”입니다. 이것은 此世. 在世제자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우리는 그 때 없었으니까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 부처님열반하신 뒤니까 우리도 해당 되느냐? 되지. 당연히 되지. 그 다음에 또, 부처님멸후 제자입니다.
4. 佛告藥王(불고약왕)
5. 又 如來滅度之後 若有人 聞 妙法華經 乃至一偈一句 一念隨喜者
우 여래멸도지후 약유인 문 묘법화경 내지일게일구 일념수희자
我亦與授 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아역여수 아뇩다라삼먁삼보리기)
또 如來滅度之後에, 부처님이 열반한 뒤에 만약 어떤 사람이 妙法華蓮經을 듣고 乃至一偈一句. 乃至라고 하는 말은 경 전체거나 아니면 한 品이거나 아니면 한 게송. 한 句절을 들어서 一念隨喜者라도 한 2, 3초만 따라서 기뻐한다 하더라도 나도 또한 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준다. 이랬어요. 그러니까 정말 제가 “떨이 수기장”이라고 잘 붙였어요. 부처님 당신은 말할 것도 없고,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이 妙法華蓮經하고 조금만이라도 인연을 맺으면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전부가 부처다. 그 속뜻은 제가 앞에서 열을 내서 강조했던 “본래 부처다.” “사람이 그대로 부처다.” 아무리 번뇌가 많고 업이 두텁고 미련하고 어리석고 하더라도 미련하고 어리석은 그대로 부처라고 하는 그런 사실입니다.
2000명에게 그렇게 엉터리로 수기 하고도 성이 안 차서, 정말 아무리 강조하고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여겨져서 그래서 이렇게 까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一念隨喜. 한 순간, 잠깐만이라도 ‘아, 그거 괜찮은 가르침이다.’라고 이렇게 수긍이 되면 바로 부처다 이 말입니다.
“부처라고 내가 인증한다.” 이 조건은요. 조건이 아닙니다. 이것이 무슨 조건이 되겠습니까? 부처되는데 이 조건이 뭐가 불긍 되겠습니까?
전혀 이것은 조건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냥 형식입니다.
이런 조건이 없이 그대로 부처라는 뜻입니다 속뜻은요.
속뜻을 잘 이해를 해야 되는데 경전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글이야 한문 아는 사람이면 거의 다 알지요. 글 아는 것이 경을 아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제가 늘 말씀드리는 “사람이 부처님이다.” 人佛思想.
이 법화경은 한 마디로 인불사상이라고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정작 오종법사와 10종 공양에 대해서 나옵니다.
“五種法師章”이라고 제가 그랬어요.
6. 若復有人 受持讀誦 解說書寫 妙法華經 乃至一偈 於此經卷 敬視
약부유인 수지독송 해설서사 묘법화경 내지일게 어차경권 경시
如佛 種種供養 華香瓔珞 抹香塗香燒香 繒蓋幢幡 衣服伎樂 乃至
여불 종종공양 화향영락 말향도향소향 증개당번 의복기악 내지
合掌恭敬 藥王 當知 是諸人等 已曾供養 十萬億佛 於 諸佛所 成就
합장공경 약왕 당지 시제인등 이증공양 십만억불 어 제불소 성취
大願 愍衆生故 生此人間(대원 민중생고 생차인간)
만약에 다시 어떤 사람이 受持하고 讀하고 誦하며 解說하고 書寫한다.
妙法蓮華經을 한다. 乃至一偈만 한다 하더라도 이 經卷에 이 책에 있어서 敬視如佛하고, 부처님 보듯이 아주 공경하는 그런 눈빛으로 본다 이겁니다. 그리고는 種種으로 供養하는데 10종 공양입니다.
華香ㆍ瓔珞ㆍ抹香ㆍ塗香ㆍ燒香ㆍ繒蓋ㆍ幢幡ㆍ衣服ㆍ伎樂 乃至 合掌恭敬하면 약왕아, 마땅히 알아라. 이 모든 사람들은 이미 일찍이 十萬億 부처님에게 공양하고 모든 부처님 처소에서 큰 願을 成就하되 중생들을 불쌍히 여긴 까닭에 이 人間세상에 태어났느니라.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이 정도면, 우리 정도만 되어도 벌써 願力隨生한 사람이지 業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아무리 어떤 가정에서 어떤 처지로 어찌어찌 하다가 다시 돌아서 이 자리까지 왔다. 그것 생각할 것 없습니다.
현재 우리가 부처님하고 인연 맺어 졌다는 사실. 그리고 이 대승경전 중에서도 왕인 이 법화경과 인연을 맺었다고 하는 이 사실. 이것만으로 우리는 願力隨生이지 결코 업에 따라서 몸 받은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원력으로 태어났다.” ←이렇게 해놨잖아요.
“부처님 처소에서 大願을 成就해서 중생들을 불쌍히 여겨서 이 人間에 태어났다.” 그랬어요. 그래 그 의무와 책임을 다 해야 됩니다. 의무와 책임을... 중생들을 불쌍히 여긴 까닭에 이 人間세상에 태어났으니까 중생들을 불쌍히 여긴 그 마음을 표현해야 되고, 또 표현할 꺼리는 스님들 공부한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훌륭합니다. 요는 용기가 부족하다면 부족하지만, 저 보다도 훨씬 열배 백배 더 한 분도 이 자리에 많이 있어요.
어떻게 하더라도 자기 인연 따라서, 자기 능력 따라서 그저 부처님의 좋은 법을 펴려고 하는 마음이 참 중요합니다. 정말 지금 같은 이런 위기와 법난의 시기를 봉착하고 보니까 마음에 정말 아주 절실하게 그런 것이 와 닿습니다.
불교는 그 많고 다양한 것 가운데서 어떻게 추려가지고 사람들에게 전할 것인가? 딱 두 가지로 하면 됩니다 두 가지.
사람을 근본적으로 부처라고 보는 것. 그런 문제에 깊이 공부를 하고 거기에 대한 확신을 갖고 그것을 전파해서 그래서 제가 늘 결론은 그것입니다.
사람을 부처님으로 존경하고 받들면 그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다.
아, 부처로서 대접해 주는데, 가짜로라도 대접해 주면 기분 좋아요.
서로가 기분 좋아요. 실지로 인간 본래의 모습에 대해서 정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부처라고 하는 사실에 대해서는 경전이라든지 禪語錄은 더 말할 나위 없습니다. 선어록은 페이지, 페이지마다 그 이야기 해놨으니까요.
그렇다고요. 그것이 아주 불교생명입니다. 사람을 부처님으로 보는 그런 위대한. 그것은 어록 같은 데는 마음心 자를 많이 쓰지요. 그런데 “마음” 하면 조금 거리감이 있어요. 저는 그래서 사람人 자를 씁니다.
사람이면 마음이고 마음이면 사람이니까요. 그러니까 더 가깝게 느껴지는 낱말을 이왕이면 선별해서 쓸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다.” 송장보고 부처님이라고 안 하니까요.
그 다음에 뭐가 또 불교에서 뭐가 장점인가? 다른 종교에서 말하지 못하는 장점인가? 연기의 이치. 이것을 우리가 因緣道理. 因果道理. 여러 가지로 표현이 되는데요. 緣起ㆍ因緣ㆍ因果ㆍ因緣果ㆍ報까지도... 그 이치는요.
이것은 정말 부처님께서 이 세상 모든 존재의 그 어떤 존재의 원리는 바로 緣起다. 因緣이고 因緣果報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한 송이 꽃이 여기까지 오기까지는 얼마나 많고 많은 인연이 동원됐습니까? 한 가지 인연이 결핍되어도 안 되거든요. 한 가지 인연이 빠져도 안 된다고요. 그와 같이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누구의 어떤 일을 막론하고
인과의 법칙에서 어긋나는 것은 없다. 그러니까 전부 인연관계로 풀면 안 풀리는 것이 없습니다. 다 풀려요. 그렇게 알면 어떤 매듭도 어떤 것도 전부 우리 마음속에서 다 녹아져요. 첫째 우리 자신 속에서 녹아져요.
내가 아무리 부처님 上首弟子로서 고통을 받고 있는 병고를 앓고 있다 하더라도, 상수제자가 될 인연은 상수제자 될 인연대로 있고, 내가 병고를 앓으면서 고통 받을 인연은 또 그것대로 있으니까 받는 것이다.
사실 틀림없거든요. 그것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가 하는 것은 그 많고 많은 이유와 조건들은 명확하게 우리는 알 수는 없어도 틀림없는 사실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믿어 들어가면 누구를 원망한다든지 안타까워한다든지 어디 가서 항의한다든지 그럴 이유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20만이 모이고 할복까지 해가지고 조계사 앞에서 피를 흘리고 하는 그런 상황이라서 우리가 이런 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또 하나의 도리라고 생각을 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들으십시오. 이것도 사실은 우리가 전부 저지른 自業自得입니다.
우리가 어린이포교 학생포교 청년포교를 안 해서 그래요. 거기에 대해서 우리가 너무 등한히 했기 때문에 우리국가 모든기관 모든 요소, 요소에 전부 타 종교인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팔은 안으로 굽게 되어있어요. 重處偏墜라. 그 사람들 하고 그쪽 관계에서 그 단체에서 인연을 많이 지었기 때문에 이것이 이치가 아닌데 싶어도 그 쪽으로 기울어지는 겁니다.
그것이 인지상정이라고요. 누구 탓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람을 안 키워놨기 때문에, 우리가 전법 포교를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고 하는 것. 우리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도 우리가 인연관계로, 인과관계로 연기의 법칙으로 풀어야 됩니다.
첫째 이해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이 좋은 가르침을 가지고, 말하자면 요즘같이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아주 기가 막히게 먹혀들 그런 진리의 말씀이니까 여기에 우리가 착안을 해야 되겠지요. 그래서 우리가 전법을 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이 人佛思想. 법화경에서 쭉~ 보아왔듯이 사람을 그대로 부처님이라고 하는 그 사실을 해박하게 이해하고 확신하는 것. 깨달으기까지는 이야기 아니 한다 하더라도 이해하고 확신하는 것. 그 다음에는 모든 현상은 연기의 법칙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 우리 인연이야기, 인과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합니까?
그것을 좀 더 체계적으로, 좀 더 수준 있게 연기의 법칙으로 하면, 그 두 개면 훌륭해요. 그 두 가지면 훌륭합니다.
사리불하고 목건련하고 다른 종교를 믿었는데, 처음에 발심할 때 마승이라는 비구를 만났잖아요. 마승이라는 사람을 만나가지고 마승 비구의 점잖고 품위 있는 모습에 감동 해가지고 당신은 어떤 스승을 모시고 무얼 하는 사람이냐고 하니까 깨달은 석가모니를 모시고, 그 분에게서 배운다니까
“그 분은 뭘 가르치냐? 도대체 뭘 가르치느냐?”
“나는 초보자로서 모른다.”
“그래도 들은 것이 있을 것 아니냐? 당신 인품 보니까 보통 아니다. 나도 인도 사회에서 내 노라 하는 사람이고 천하의 사리불ㆍ목건련하면 인도 사회에서 최고의 지성인으로 알아주는데 내가 보니까 당신 모습이 감동 하겠다. 너무 근사하다. 당신 사상이 훌륭할 것 같은데 뭘 배워서 그러냐 한 마디 전해보라" 하니까,
諸法從緣生 諸法從緣滅. 我佛大沙門 常作如是說. ←이 말 했잖아요.
연기의 법칙. 모든 존재는 연기의 법칙으로 生住離滅 하는 것이고, 생기고 멸하고, 생기고 멸하고 흥망성쇠가 전부 연기의 법칙으로 된다는 그 이치를 석가모니한테 배웠다. 그러니까 그 순간 사리불하고 목건련이 눈이 확 뜨인 겁니다.
‘바로 이거다. 세상이 무엇으로 생겼고, 누가 있으라 하면 있게 되었고 없으라 하니 없어졌고 저절로 생겼다.’ 이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전부 연기의 법칙으로 생겼다.’ 당장 안내해라 해서 마승비구를 앞세우고 부처님 앞으로 인도되어서 그 많은 500명 제자들이 전부 순식간에 부처님에게 귀의하게 되는 정말 희대의 아주 큰 사건. 사건이라면 사건이지요.
500명이 한꺼번에 개종을 했으니까요.
그런 일이 있었지 않습니까? 연기의 법칙. 이것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이야기 못한 것이고, 그리고 사실은 이것은 진리이지,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이지 부처님이 만든 것이 아니니까요.
그것하고 人佛思想. 사람이 부처님이라고 하는 사상.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인간의 존재의 생명. 實相을 이야기할 때는 부처라고 하는 것 가지고 하고,
그 다음에 現相界를 풀어내는 데는 연기의 이치를 가지고 풀어나가면 어디에 걸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당당해요. 복잡하게 교리 많이 외워야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습니다. 두 가지에 대해서 깊이 자기 나름대로 무기를 준비를 해야지요. 자기 나름대로 어떤 이야기의 소재를 충분히 가지고 아주 당당하고 자신 있게 이야기해 주면 그러면 훌륭하지요. 여러분들은 정리만 하면 됩니다.
‘아! 그것이구나.’하고 인정만 하면 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할 수 있습니다. 새로 준비할 필요가 전혀 없지요. 이런
‘인간의 원력으로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났다.’ 꼭 확신합시다.
“아이고 나는 그런 인간 아닙니다. 어울려 이렇게 왔습니다.”
“천만에요.” 전부 원력으로 生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확신을 갖고 살았으면 싶어요.
8. 藥王 若有人 問 何等衆生 於 未來世 當得作佛 應示是諸人等
약왕 약유인 문 하등중생 어 미래세 당득작불 응시시제인등
於未來世 必得作佛(어미래세 필득작불)
약왕아, 만약에 어떤 사람이 묻기를, 어떤 중생이 未來世에 마땅히 부처를 짓는가? 할 것 같으면 이 모든 사람들이 未來世에 반드시 부처를 지을 것이다.
대답해 보이다 이 말입니다. 법화경을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應示是諸人等.
법화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미래세에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다 라고 應示. 대답해 보이다 이 말입니다. 대답하다 이 말입니다.
9. 何以故 若 善男子 善女人 於 法華經 乃至一句 受持讀誦 解說書寫
하이고 약 선남자 선녀인 어 법화경 내지일구 수지독송 해설서사
種種供養經卷 華香瓔珞 抹香塗香燒香 繒蓋幢幡 衣服伎樂 合掌恭敬
종종공양경권 화향영락 말향도향소향 증개당번 의복기악 합장공경
是人 一切世間 所應瞻奉 應以如來供養 而供養之
시인 일체세간 소응첨봉 응이여래공양 이공양지
何以故 善男子 善女人이 法華經에서 乃至一句만이라도 受持讀誦하고 解說하고 書寫하며, 種種으로 經卷에 供養하기를 華香ㆍ瓔珞ㆍ抹香ㆍ塗香ㆍ燒香ㆍ繒蓋ㆍ幢幡ㆍ衣服ㆍ伎樂으로 공양하고 合掌恭敬할 것 같으면 이 사람은 一切世間을 所應瞻奉이라. 마땅히 우러러 본다 이 말입니다.
법화경을 존경하고 법화경을 공양하고 법화경을 좋아하면 세상 사람이 그 사람을 우러러 본다 이 말입니다. ←所應瞻奉이라. 應以如來供養으로 而供養之라. 부처님께 공양 바칠 것으로 ‘여기도 부처님 있네.’ 하고 법화경 심봉하고 법화행자에게 공양 올리게 될 것이다.
10. 當知此人 是 大菩薩 成就 阿耨多羅三藐三菩提 哀愍衆生 願生此間
당지차인 시 대보살 성취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애민중생 원생차간
廣演分別妙法華經 何況盡能受持 種種供養者
광연분별묘법화경 하황진능수지 종종공양자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大菩薩이다. 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成就했건만, 衆生을 哀愍히 여기기 때문에 이 세상에 願으로 태어나서 묘법연화경을 널리 연설하고 分別하는데, 어찌 하물며 다 능히 受持하고 가지가지로 供養하는 것이겠는가? 그것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11. 藥王 當知 是人 自捨淸淨業報 於 我滅度後 愍衆生故 生於惡世
약왕 당지 시인 자사청정업보 어 아멸도후 민중생고 생어악세
廣演此經(광연차경)
약왕아,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스스로 淸淨業報를 버리고, 그저 대접받고 호강하고 편안하게 살고, 얼마든지 그렇게 살 길이 있어요. 여기서 淸淨業報는 그 겁니다. 아주 편안하고 호강하고 띵까띵까 하면서 살 수 있는데 그런 삶을 다 버려버리고, 내가 열반한 뒤에 중생들을 불쌍히 여긴 까닭에 惡世에 태어나서 널리 이 경을 연설한다. 그랬습니다.
우리에게 참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 내가 세세생생 걸어온 길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여기 와서 이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면 그대로 이것이 나의 삶이되고 확인이 되는 겁니다. 내 삶이 확인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所信인데요.
所信이 이렇게 확고부동하게 서면 더 이상 다시 달리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 下品士. 위에는 上品士들을 말하는 것이고, 下品士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12. 若是善男子 善女人 我 滅度後 能 竊爲一人 說 法華經 乃至一句
약시선남자 선녀인 아 멸도후 능 절위일인 설 법화경 내지일구
當知是人 則 如來使 如來所遣 行如來事 何況於 大衆中 廣爲人說
당지시인 즉 여래사 여래소견 행여래사 하황어 대중중 광위인설
만약 善男子 善女人이 내가 滅度한 後에 능히 가만히 한 사람을 위해서 법화경을 설한다 이겁니다. 많이 앉혀놓고 하면 좋지만 한 사람만 위해서 할 수도 있는 겁니다. 乃至 한 구절만 할 것 같으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곧 如來使다.
여래 심부름꾼이다 이겁니다. 우리 어릴 때 초등학생 때 선생님의 심부름하는 것, 한 번 심부름하는 것을 부탁 받았다 하면 한달 자랑입니다.
한 달간 기분 좋은 겁니다. 초등학교 선생님한테 심부름한 번 갔다 온 그것이 한 달간 기분 좋은 거라니까요. 그런데 여기 보세요.
한 사람을 위해서 한 구절만 설명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부처님의 심부름꾼이다. ←如來使. 그렇습니다. 이런 좋은 영광을 우리가 왜 마다합니까?
如來使다이겁니다. 부처님의 사절단입니다. 전부가 부처님의 사절단이라고요. 如來所遣으로, 여래가 보냈어요. 그래서 如來行을하는 겁니다.
여래 일을 행하는 겁니다. 緣起의 理致와 人佛思想. “사람이 부처님이다.” 하는 거기에 우리가 좀 해박하고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 하면, 그러면 부처님의 심부름꾼이거든요. 어찌 하물며 대중 가운데서 널리 신도들 많이 모아놓고 법화경을 설하는 것이겠는가? 이것은 뭐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않으냐? 이런 이야기입니다.
아이고 법사품 좋지요?
- 9강 - 3으로 이어집니다. -
|
한 사람만에게라도 법화경 한 구절이라도 설하는 사람은 如來使
나무 묘법연화경
고맙습니다._()()()_
석대원성님 고맙습니다 ()()()...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_()()()_
_()()()_
감사합니다 나무 묘법연화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