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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다사다난했던 많은 순간들을 뒤로하고, 2019년 새 해가 밝았습니다. 수고하고 애쓰신 모든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새 장을 열어주신 새 해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식구들간의 깊은 격려 속에 더욱 더 든든히 서 가는 쌍샘공동체가 되시길 두 손 모읍니다.
치유나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 디모데후서 4장 7~8절 -
해마다 연말이 되면 위와 같은 사도 바울의 고백이 뇌리를 칩니다. 2018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1년이라고 하는 정직한 시간들을 정말 선한 일에 매진하며 싸움을 했는지, 달려가야 할 길을 제대로 달려 왔는지, 그리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살아왔는지 자문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어느덧 한해가 또 저무는군요. 결코 녹록치 않았을 한해의 삶의 여정 가운데 그리고 가정과 일터, 교회와 여러 공동체 가운데서 맡겨주신 크고 작은 일들을 감당해나가며 수고하고 애쓰신 그 걸음들을 맘껏 격려해 드리고 축복해 드리고 싶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저희 가족은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속에서 그리고 여러분들이 보내주시는 기도의 응원에 힘입어 은혜 가운데 잘 지내고 있습니다. 며칠 전, 큰 녀석 봄이가 겨울방학이 되어서 오랜만에 다바오로 돌아왔습니다. 간만에 시끌벅적 가족의 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늘 함께해 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겨우내 건강 잘 돌보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지나온 석 달간의 조촐한 여정을 나눕니다. 또한 앞으로 진행될 큰 꿈도 함께 나눕니다.
격려해 주시고 기도로 마음을 모아주시면 더없이 감사하겠습니다.
1. 지나온 이야기들
지난번 편지를 쓴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석 달이 지났네요. 바쁘게 살아간다는 것은 여전히 내게 할 일이 있고 또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의미에서 참 감사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몸담고 일하고 있는 치유나무 클리닉이 꼭 그와 같습니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동양의술, 침에 대한 특집 프로의 영향도 있는 것 같고 사람들의 입소문도 작용해서인지 클리닉은 언제나 만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복을 주시는 이유가 무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구나 다 아시듯이 일천한 저의 의술과 실력은 분명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무엇일까? 아마도 그건 예수님께서 환자를 긍휼히 여기셨던 그 연민의 마음, 그 옛날 제가 어렸을 때, 가난했던 시절 변변한 약이 있을 리 만무했던 시골에서 밤마다 찾아오던 배앓이를 ‘내손이 약속이요~’하시며 어루만져 주시던 거칠고 투박했던 할머니의 따스한 손, 여름날 툭하면 물어대던 모기와 풀잎 사이에 숨어있던 쐐기의 무방비 공격(?)을 당해 쓰리고 부어오르던 피부에 어김없이 침 발라 문질러주시던 그 특효약과 비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사람은 무엇으로 치유를 얻는가?에 대한 귀중한 단초를 제공해 주었던 소중한 기억입니다. 약 15년 전, 한 1년간 정상적인 생활이 안될 만큼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 또한 부족하지만 치유자로 부르시고 그 뜻에 순종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클리닉에는 이미 한 달 전에 예약환자가 다 차리만큼 바쁘고도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 분들을 다 열거할 수는 없고 몇몇 분 기억에 남는 분들을 소개합니다.
10월 2일(화), 일전에 소개해드렸던, 75세의 황선생님이 클리닉에 오셨습니다. 지난 번 나무를 안고 쓰러지셔서 불편했던 몸은 치료를 받고 다 나으셨는데, 얼마 후에 오른쪽 얼굴이 뒤틀어지는 구완와사가 왔습니다. 한번인가 치료를 해드렸는데 그 이후로 소식이 없으셔서 사정을 알아보니 금전적으로 어려우셔서 못 오셨던 겁니다. 연세 지긋하신 어른의 타국 살이가 얼마나 말 못할 어려움이 있는지 조금은 아는 터라 그래서 오늘 오시라 말씀드리고 매주 수요일을 어르신을 위한 섬김의 날로 정해서 무료치료를 약속드리고 잘 치료를 해서 보내드렸습니다. 그렇게 어르신은 매주 수요일에 말쑥하게 차려입으시고 바람도 쐴 겸해서 클리닉에 오십니다. “여기에 오는 낙으로 살아요~”라고 하시는 어르신의 말씀에 무한한 보람을 느낍니다.
당일, 선천성 담도폐쇄증으로 치료중인 5살 죤(Jhon)의 엄마 네네 페(Nene Fe)가 극심한 소화불량으로 난생 처음 침을 맞았습니다. 처음엔 겁이 많아서 망설이다가 남편과 아들의 경과를 보면서 확신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아픈 어린 아들로 늘 가슴을 졸이며 살아가는데 왜 소화불량이 안왔겠습니까? 감사하게도 치료 후에 속이 많이 편해졌다는군요.
10월 25일(목), 마리아 빅토리아(Maria Victoria)라는 67세의 전직 변호사인 아주머니가 세 번째 치료를 위해 오셨습니다. 이 분은 유방암 2기에서 3기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병원의 수술 권유를 뒤로하고 친구의 소개로 저희에게 오셨습니다. 이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가운데 이 분이 참 쾌활하고 낙천적인 분이구나 싶었습니다. 당신은 살만큼 살았으니 이제 운명을 달리해도 크게 여한이 없답니다. 물론 본심은 아니겠지만, 치료를 하는 저로서는 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첫 방문 때는 전체적인 치료를 했고, 22일(월) 두 번째 치료부터는 크고 단단한 게 만져지는 오른쪽 환부에 직접 침을 놓고 뜸을 떴습니다. 간절히 기도를 드리면서 말이지요. 원래 여성의 가슴 부위에는 침과 뜸을 해서는 안 되는 곳임에도 달리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 번째 방문, 환부를 확인했더니 크기가 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조직도 전보다 훨씬 더 부드러워졌구요. 함께 감격했고 감사해서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동안 씩씩한 아주머니가 우시네요.
10월 29일(월), 증평교회에서 담임 목사님과 장로님, 두 분의 권사님 총 네 분이 말리꽁꽁교회 성전건축 감사예배와 행사를 위해 다바오에 도착하셨습니다. 한 권사님은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하셨던 분이시고, 또 다른 권사님은 도저히 오셔서는 안 될 것 같은 상황을 뚫고 오셨습니다. 오시기 전날, 바깥일을 하다가 손가락이 부러지는 응급상황이 발생했답니다. 부러진 손가락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미루고 가벼운 깁스를 한 채 정말 믿음으로 오셨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불편하게 오토바이를 타고 산길을 오가는 가운데서도 또 함께 지내고 머무시는 동안에도 크게 덧나거나 붓지 않고 안전하게 미션을 마칠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덕분에 그날 밤, 좀 더 의미를 부여하고자 권사님들이 묵는 호텔방에서 내일 축하자리에 올 말리꽁꽁 아이들을 위해 과자봉지 200개를 만들기로 했던 일은 고스란히 저희 가족의 몫이 되어서 밤이 맞도록 수고(?)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10월 30일(화), 날씨를 위해 기도를 많이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가상히 여기셨나봅니다. 지난 며칠 간간히 비가 뿌렸었는데, 오늘 아침은 화창합니다. 차로 2시간 정도 이동을 한 후,
오토바이를 타고 40분간 산길을 달려 산위의 마을에 도착하니 이미 온 마을 사람들과 귀빈들이 저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식의 진행을 알림과 함께 리본 커팅을 하고 최선을 다해 꾸미고 세운 새로운 예배당에 함께 모여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모든 것이 열악하고 불편했을 상황에서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고 애를 써서 이렇듯 번듯한 예배당이 산등성이에 서있는 모습에 감사했고 이 공간을 효율적으로 더 잘 사용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고 마침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소중한 장소가 되기를 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산적한 많은 일들을 잠시 미루고 오신 목사님과 장로님, 불편한 몸을 이끌고 먼 걸음 하신 두 분 권사님께도 이 지면을 빌어 감사 말씀 드립니다.
11월 16일(금), 마리아 빅토리아 아주머니가 다섯 번째 치료를 위해 오셨습니다. 얼굴이 한결 밝아지셨고 환부는 4분의 1로 줄었습니다. 등쪽의 통증도 완전히 멎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시네요. 얼마나 감사한지요?
12월 6일(목), 캐나다인인 폴(Paul) 가족이 정성이 담긴 성탄 선물과 감사 카드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전부터 이야기했던 네네 페(Neme Fe)의 친정 아버지를 모시고 왔습니다. 그러니까 폴에게는 장인 어른인 셈인데 재미있게도 장인 어른이 사위보다 나이가 어립니다. 이 분은 바나나 농장에서 오랜 세월 일을 하셨는데, 해외로 수출하는 바나나를 배에 선적하는 과정에서 바나나에 화학약품 처리하는 일을 담당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폐가 망가져서 채 다섯 걸음도 못가서 쉬었다 가야하는 그렇게 힘든 상황까지 왔던 거지요. 뜸의 효능을 확실히 맛본 딸이 아버지를 모시고 온 겁니다. 정성으로 치료를 해드렸더니 훨씬 숨 쉬는 것과 걷는 게 편안해 보이십니다. 그렇게 딸이 이틀에 한 번씩 아버지 집에 가서 제가 잡아놓은 동일한 뜸자리를 떠드리고 있는데 실로 놀라운 회복을 보이고 있습니다.
12월 7일(금), 클리닉의 새로운 스텝인 아첼(Archel)이 교사 국가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일하는 틈틈이 공부를 병행해왔는데, 기특하게도 쉽지 않은 시험에 합격하여 이제는 라이센스 교사가 되었습니다. 본인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2일(수), 마침 아첼의 생일이기도 하고 또 황선생님도 오시는 날이어서 생일 겸 교사합격 축하 기념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12월 19일(수), 한국에서 생활하던 큰 녀석 봄이가 왔습니다. 이곳에서 한 달 남짓 지내다 갈 텐데 몸과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고 잘 충전하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2. 앞으로의 이야기들
브로큰샤이어 병원의 지난 병원장인 루벤(Ruben)목사는 여러 면에서 참 훌륭한 분이셨고 특히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는 가운데 한국 교회의 다양한 시도와 시대와 호흡하고자 하는 모습들, 무인카페라든가 무인농장 등 누군가가 지켜보지 않아도 정직하게 운영되는 시스템에 행복한 충격과 감동을 받았던 한국 마니아(?)이자 한국인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깊고 상당히 호의적인 분이셨습니다. 그 분 때문에 이 사역의 장이 펼쳐질 수 있었는데요, 아쉽게도 루벤 목사님이 은퇴하시고 새로운 병원장이 세부에서 새로 오셨습니다. 새로 오신 분은 워낙에 전임 병원장의 명성이 크기에 더 잘해야겠다는 욕심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그런데 그 여파가 자연스레 클리닉에도 미치게 되더군요. 우선 경영의 논리에서 수익을 많이 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지 은근히 압력을 가합니다. 클리닉의 식구인 힐러리와 아첼도 일과가 끝나고 나면 따로 불러서 다른 일을 또 시키는 그런 구조가 되었습니다. 제가 보호해 주어야 할 친구들이지만, 규정상 병원 소속이고 병원으로부터 월급을 받기에 딱히 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전에 루벤 목사와는 선교적인 차원에서 힐링트리 클리닉을 운영하고 장차 훌륭한 제자들을 양성해서 민다나오 전역에 파송하는 전인적 치유센터로서의 면모를 갖추어가자고 이야기를 해 두었던 터였는데, 아무래도 이 약속이 좀 요원해 보입니다. 환자들은 점점 늘어나고 체계적으로 제자들을 양육하여 키워나가야 하는데, 마음 한 켠의 답답함이 가시지를 않더군요. 그래서 한 날은 하나님의 뜻을 여쭙고자 일주일 간 집중적으로 앞으로의 진로를 놓고 기도하기로 하고 기도를 시작한 지 이틀째 되던 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힐링트리 센터를 독립적으로 건축하는 것입니다. 사실 독립적인 공간을 위해 건물을 짓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만, 다바오 시내도 한국 만큼이나 땅값이 비싸고 건축비도 만만치가 않아서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고 또 하나는 건축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에 주저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늘의 뜻을 확인한 만큼 저 나름대로도 기도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도움을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함께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갈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과 조언을 통해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지면 그때 다시 한 번 힘 있게 기도해 주시고 손잡아 주시기를 요청 드리겠습니다.
센터 안에는 영혼의 충전소이자 실제적인 구심점이 될 예배당과 환자들을 돌보고 치료하는 진료실, 오시는 분들이 맘껏 쉬어가실 수 있는 게스트 룸과 작은 찻집, 저희 숙소 정도 우선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실용적으로 잘 지어서 아낌없이 사용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귀한 일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지나온 한해, 변함없는 사랑으로 손잡아 주신 고마움에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를 드리며,
새해에는 뜻하시고 소망하시는 모든 일들이 주님의 은총 안에서 아름답게 이루어지기를 두 손 모읍니다.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서 영육 간에 늘 강건하소서.
2019년 1월 1일
선교지 민다나오 다바오에서
이영일, 손희종, 이봄, 이가람, 이샘 올림
* 기도제목 *
1. 힐링트리 센터(치유나무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붙여 주시기를
2. 힐링트리 센터(치유나무교회)에 가장 적합한 부지를 마련해 주시기를
3. 건축에 필요한 모든 재원을 넉넉히 채워주시기를
4. 이 일을 감당하는 모든 이들이 성령과 기쁨으로 충만하기를
5. 조국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 한국의 교회와 목사님들을 위하여
6. 전 세계에 계신 선교사님들의 가정과 사역, 자녀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