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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트레쉬』
박태식 신부 / 신약학, 영화평론가
"왜 이 일을 하는 거지?" "그게 옳은 일이니까요." 영화 <트레쉬>(Trash, 스티븐 달드리 감독, 극영화/모험, 영국, 2014년, 113분)의 중간쯤 나오는 대사다. 사실 이 대사가 나오는 장면부터 영화의 주제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나니까, 말하자면 <트레쉬>는 옳은 일 하는 사람들을 보여 주기 위해 만든 영화인 셈이다. 이 대화에서 오가는 '옳은 일'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궁금증을 잠시 접어두고 영화 밖의 상황을 살펴보자.
<트레쉬>의 배경인 브라질은 한 때 남미에서도 유명한 부패 국가였다. 1964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브랑쿠 장군은 독재 체제를 구축했고, 친미 반공 정책과 외자 유치를 통해 공업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공업화 정책을 통해 '브라질의 기적'이라 부를 정도의 고도 경제 성장이 가능했지만 1973년 오일쇼크 이후 나라 경제가 형편없이 망가지고 말았다. 양극화 현상이 심해졌고 인권 유린이 극에 달했으며 범죄율이 급속히 상승했다. 군사 구테타가 일어난 국가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하겠다. 그 뒤 1985년에 정치적으로는 민정이양이 되었지만 지속되는 인플레이션과 부정부패를 막지는 못해, 세계적으로 자원이 가장 풍부한 나라들 중 하나지만 빈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2003년 노동자당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간단히 룰라 대통령)이 취임해 브라질을 바꾸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화에는 거대한 쓰레기 매립장이 나온다. 대형 트럭이 도시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쉼 없이 실어 와 던져놓고 간다. 그러다 보니 쓰레기는 어마어마한 산을 이루고 곳곳에서 악취를 풍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도저히 못 견딜 것 같은 환경의 쓰레기 매립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산다. 그들이 모여든 이유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 무엇인가 값이 나갈 만한 것을 찾아 팔아 생계를 이어나가려는 데 있다. 이렇게 열악한 바닥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겐 병원도 학교도 허락되지 않는다. 부패한 정치가들이 쓰레기 매립장의 힘없는 사람들 따위는 안중에 없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들의 이득만 챙기며 나라의 돈이란 돈은 모두 쓸어갈 뿐이다.
브라질의 대도시 리우데 자네이로 근교 베할라에 쓰레기 마을이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14세 소년 라파엘(릭슨 테베즈)에게 어느 날 큰 사건이 생긴다. 쓰레기 매립장에서 우연히 주워든 지갑 속에 엄청난 비밀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지갑을 발견한 날 고위 경찰 간부 카를로스(호세 듀몽)가 쓰레기장에 나타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빠져든다. 지갑 속에 부패한 시장 산토스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단서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스릴러로 바뀌고 다양한 재미를 안겨준다.
시장의 오른팔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했던 호세 안젤로(와그너 모라)가 시장의 돈과 뇌물공여자 명단을 빼돌렸고, 시장은 호세를 찾기 위해 카를로스에게 특명을 내렸다. 돈과 장부를 찾아오고 호세를 죽이라는 것이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호세는 돈과 장부를 절묘한 곳에 숨겼고 그 단서를 지갑 안에 넣어두었는데 경찰이 그의 아파트를 급습하는 바람에 지갑만 쓰레기차에 던지고 자신은 체포되고 말았다. 그랬던 것이 결국 라파엘의 손에까지 지갑이 들어간 것이다. 목숨이 위태해진 라파엘은 친구 가르도(에두아드로 루이스)와 '시궁쥐' 가브리엘(가브리엘 와인스타인)에게 도움을 청했고 세 소년은 위험천만한 모험의 길을 떠난다. 사람의 목숨, 특히 쓰레기장에서 일하는 사람 따위는 인간 취급도 안 하는 악마적인 세력과 용감하게 맞서기 위함이었다.
영화는 두 가지 점에서 볼만하다. 먼저 열악한 브라질 하층민들의 생활 묘사는 충격적이다. 그들은 대도시에서 배출되는 쓰레기와 별 다름없는 처지의 삶을 살고 있다. 쓰레기장 바로 옆 움막을 거처로 삼고 틀림없이 폐수가 흘러들었을 법한 개천에 몸을 담근다. 그러니 피부병이 생기는 게 당연했고, 병을 얻으면 하수구 시궁창으로 격리되고 만다. '시궁쥐'라는 별명이 괜스레 생긴 것이 아니다. 그러니 그곳에서 사람 몇 명이 죽어나간들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특히, 영화에 등장하는 시장의 호화판 저택을 떠올리면 브라질의 양극화 현상이 얼마나 심각하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타락한 부패구조는 브라질 국민 모두를 촘촘히 엮어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여기에 가장 앞장선 자들은 경찰이다. 자신들의 임명권을 가진 정치가를 등에 업고 있으니 경찰이 그들의 개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공포정치가 판을 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국민들의 진솔한 소리를 받아내기에는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권력의 통제를 받지 않는 SNS의 긍정적인 힘이 발휘되는 시점이다. 이들 쓰레기 마을 성당의 줄이아드 주임 신부(마틴 쉰)와 미국에서 온 자원봉사자 올리비아(루니 마라)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지하 언론의 힘을 빌려 브라질의 부패를 고발하는 것이다. 부패한 정치구조에 맞서 오늘날 가장 합리적인 대응책으로 SNS가 부상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주인공 소년들의 정의감도 눈에 띄었다. 그들은 비록 쓰레기 매립장에서 정식 교육을 못 받고 의료 혜택도 못 누리지만 누구보다도 순수한 영혼을 갖고 있다. 허락 없이 돈을 가져갔으나 반드시 그 돈을 갚고, 위험에 빠진 여성을 존중하며, 정의가 무엇인지 잘 이해하면서 그 일에 생명을 건다. 그리고 복수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적을 용서하기까지 한다. 좌절이 아니라 희망을 발견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트레쉬>는 칭찬받을 만하다. 감독은 아마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심각한 부정부패와 끔찍한 불평등 속에서도 브라질의 정신을 여전히 살아있다.'
앞서 설명한 룰라는 다들 알다시피 매우 훌륭한 대통령이다. 그가 걸어온 길을 짧게 훑어보아도 어떤 사람이었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어릴 때부터 거리에서 장사를 하느라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고 구두닦이와 선반공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선반에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경험까지 했다. 그는 어린 시절 남이 씹다가 버린 껌으로 배를 채운 적도 있는 밑바닥 중에 밑바닥 인생이었다. 하지만 노동운동에 뛰어들면서 그의 인생은 바뀌었고 결국 대통령에까지 이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룰라는 대통령을 연임했고, 그의 재임시절 국가부채를 모두 갚았고 브라질을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려놓았다. <트레쉬>의 주인공 라파엘이 누구를 모델로 하는지 금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스티븐 달드리는 <빌리 엘리어트2001>에서 보여주었듯이 따뜻한 희망을 제시하고 <더 리더2008>에서 알려주듯이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줄 아는 감독이다. 독무를 추고난 후 빌리 엘리어트(제이미 벨)가 자신의 춤에 대해 진솔하게 설명한 부분과 <더 리더2008>의 주인공인 한나(케이트 웬슬렛)가 자살하는 장면이 그 대표적인 예다. 거기에 더하여 <빌리 엘리어트>는 영국 광산노동자들의 삶을 화면에 세련되게 담은 것도 인상에 남는다. <트레쉬>의 마지막 장면에 세 소년이 해변에서 천진난만하게 뛰노는 장면과 소년들의 독백을 담은 비디오 필름은 스티븐 달드리의 연출 성향을 잘 보여주는 곳들이다.
<트래쉬>는 앤디 멀리건의 2010년 베스트셀러 <안녕, 베할라>를 각색한 영화다. 이 소설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어 12개국에 번역된 바 있다. 소설을 영화로 만들면서 스티븐 달드리는 구성은 스릴러, 내용은 고발성에 무게 중심을 두었다. 세 소년은 비록 가난하고 무식하지만 천성이 낙천적이라 자신들에게 닥친 두려움을 극복할 줄 안다. 그래서 매 순간마다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헤쳐 나간다. 그 과정이 매우 재미있다. 자신들을 추격하는 부패한 경찰들을 혼내주는 일이며 부자 시장의 집에 몰래 잠입해 중요한 정보를 캐오는 일이며 수시로 저희들끼리 의견대립을 통해 길을 찾아나가는 데, 한 마디로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스릴러의 장점인 추격전과 아슬아슬한 이야기 전개가 재미있었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스티븐 달드리의 역량이 발휘된 것이다.
가끔씩 차를 타고 난지도 옆길을 지나는 경우가 있다. 일산이나 파주 방향에서 일을 보기 위해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길을 들어서면 왼쪽에 거대한 언덕들이 보인다. 한 때 대도시 서울에서 나온 생활쓰레기를 모으는 쓰레기 집하장이었는데 그 위에 흙을 덮어 조성한 난지도 공원이다. 15년 동안 쌓인 쓰레기는 산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손길을 미약했다. 개발독재의 어두운 그림자였다. 소설가 정연희가 쓴 『난지도』의 한 구절처럼 "난지도 쓰레기 산 위로 쏟아져 내리는 불볕은 저주였다. 그 산에 살아있는 것이 있다면 썩어 가는 일과 썩어 가는 냄새뿐이었다."
2002년 월드컵 유치에 맞춰 1991-1996년까지 추진된 매립지 안정화 계획에 따라 공원이 조성된 지도 벌써 20년이 다 되간다. 그래도 아직 그 길을 지나갈 때면 고약한 냄새가 나는 듯하다. 기억에 각인된 냄새가 과거를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영화 <트레쉬>를 보면서 다시 한 번 그 냄새를 맡았다. 난지도 주민들은 지금 어디들 있을까? 요즘도 여전히 쓰레기장을 맴돌고 있을까? 그들에게 주어진 국민의 기본권은 지켜지고 있을까? 부패한 정치가들은 돈과 권력만 손에 쥘 수 있다면 어떤 수치심도 뛰어넘을 수 있는 두꺼운 얼굴을 갖고 있다. 후안무치라고 했던가? 지난 4월에 어느 사업가가 특별한 메모를 남기고 자살했다. 자신과 오랫동안 음양으로 상부상조했던 친구들의 배신에서 맛본 억울함을 항변하는 죽음이었다. 메모에 적힌 당사자들은 그와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며 시치미를 떼었고 심지어 그 친구가 남겨놓은 온갖 증거들을 포함해 모든 게 음모라는 주장을 편다. 반성은커녕 자신이 빠져나갈 길에만 연연한 셈이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면 어떻게 이처럼 부패한 작자들에게 우리의 운명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트레쉬>가 고발하는 브라질의 현실은 우리에게도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영화 마지막에 줄리아드 신부가 올리비아에게 물어본다. "왜 녀석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이 일을 했을까?", "옳은 일이기 때문이라고 하던데요." 감독은 올리비아의 대답을 통해 다시 한 번 영화의 주제의식을 부각시켰다. 관객이 극장을 나설 때 담아두어야 할 말을 마지막으로 점검해 준 친절한 연출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저 재미있는 스릴러 영화 한 편을 보고나온 느낌이었을 것이다.
과거의 남미 국가들 대부분은 군사 쿠데타로 쓰라린 독재의 경험을 했다. 하지만 민중의 힘은 이들을 몰아냈고 사회주의 정권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유명한 우루과이의 호세 무끼아가 브라질에서 한 연설문의 일부를 소개한다. SNS를 통해 이미 널리 알려진 연설문이지만 영화를 보면서 한번쯤 되새겨볼 필요가 있어 실어본다.
이곳에 오신 정부 대표와 관계자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저를 초청해 주신 브라질 국민과
지우마 호제프 대통령에게도 감사드립니다. …
우리 앞에 놓인 큰 위기는 환경의 위기가 아닙니다.
그 위기는 정치적인 위기입니다.
현대에 이르러 우리는 인류가 만든 이 거대한 세력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이 같은 소비사회에 통제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발전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지구에 온 것입니다.
인생은 짧고 바로 눈앞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량소비가 세계를 파괴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고가의 상품을 소비하는
생활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소비가 사회의 모토인 세계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많이
그리고 빨리 소비를 해야만 합니다.
소비가 멈추면 경제가 마비되고 경제가 마비되면 불황이라는 괴물이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대량소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상품의 수명을 단축해야 하고
가능한 한 많이 팔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악순환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모든 사람은 의식주, 의료 및 필요한 사회복지에 의해 자신과 가족의 건강 및 복지에 충분한 생활수준을 유지할 권리를 가지며, 실업, 질병, 심신장애, 배우자의 사망, 노령 기타 불가항력에 의한 생활불능의 경우에는 보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세계인권선언 25조 1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