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새해를 맞으며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회원님! 새 집을 지으면 죽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한 평생 한 번 하기 어려운 일을, 하느님 은총 속에서 무사히 끝내고, 달포에 걸쳐 이사 짐을 나르고 있습니다. 다음 달 소식지를 쓸 때쯤에는 새 집에서 글을 쓰게 될 것입니다.
작년 어느 봄날에 제가 국제 소롭티미스트라는 여성 봉사단체에서 <탁월한 여성상>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거기서 제가 수상소감을 잠시 말씀드렸습니다. “6․25 동란 후에 수많은 여성들이 성매매로 살아가면서 파란 눈, 노란 머리, 까만 얼굴의 아기들을 낳아 기르는 모습을 자주 보았는데, 내가 어른이 되고 교수가 된 후에 문득 문득 그때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 때 그 여성들이 거기 없었다면 내가 그 때의 유엔군들에게 성폭행을 당하여 노란 머리 파란 눈의 아이를 낳은 미혼모가 되었을 것이 아닌가, 그러니 그 여인들은 나의 은인들이고 나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으니, 당연히 그 빚을 갚으며 살아야지...
그래서 나는 지금 그 때 그 여성들에게 빚을 갚기 위하여 성가원을 운영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지금 우리 성가원을 돕는 회원님들은, 자신이 아니 자신의 딸들이, 불행에 빠지지 않은 것을 저처럼 감사하면서, 우리 대신 불행을 살아가는 여성들을 돕는 것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소피아 사장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새로 지은 성가원에 커튼을 달아주겠다는 것입니다. 해마다 연말에는 커튼 달아주는 봉사를 하는 인테리어 회사의 사장인 소피아는 후암 소롭티미스트 문회장님께 금년에도 커튼 백 쪽을 지원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나자렛 성가정 공동체>에 해주라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집 커튼을 다 달아주었습니다. 불이 나도 타지 않는 커튼이고 금액으로 치면 2천만 원은 된다니, 하느님께서 사람을 통해 보내신 선물입니다.
오늘은 미국에 사시는 바오로와 아네스 부부가 귀국 차 우리 새 집을 방문하고 가출소녀들 교육을 위한 기자재를 구입해 주었습니다. 나는 목이 메어서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이면서도, 책장과 장롱과 식탁 등을 손수 가져오느라 수고하고 나서야 병원으로 수술 받으러 들어간 유스티나 자매! 아들과 함께 트럭으로 짐을 싣고 와서 정리해 주고 간 헬레나와 그 아드님 모자! 남편의 회사직원들을 자원봉사자로 보내주어 사무실 컴퓨터 사용체계를 훌륭하게 장착시키는 일에 공헌해 준 벨라뎃다 자매와 봉사자!
주위 분들에게 성가원을 알리고 십여 명씩 새 회원을 인권하여 준 유스티나, 헬레나, 벨라뎃다 자매! 여러 가지 가정용품들을 멀리 인천에서까지 트럭에 실어 보낸 엘리자벳 자매! 오랜 후원자이시면서 건축비를 따로 후원하신 벨라뎃다․데레사․고 이사한 이사님! 연정이와 소정이 부모님! 적금만기증서를 보내주신 마리안나 이사님! SK 텔레콤 Suuny 자원봉사자 청년들을 보내어 이사짐을 나르게 하신 조 상무님부부! 일일이 다 열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억 만금보다 더 귀한 후원이 월 회비를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한 달간의 살림 계획을 잡습니다. 마치 하느님이 보내주시는 월급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천 대 만 대에 이르도록 지켜주시옵기를....
하느님은 우리에게 얼굴을 보이시지 않으십니다. 저는 오래 오래 그 이유가 궁금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개원식을 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오신 분 중 어느 분이 익명으로 50만원을 주고 가셨습니다. 누구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수소문 하다하다 포기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에서야 기도 중에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오 25, 40)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그분은 하느님에게 해 드린 것이므로 절대 내가 알아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큰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50만 원을 주고 가신 그 분 때문에 저는 그만 만나는 사람마다가 다 “이분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모두에게 고개 숙여 감사하고 공손하게 대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다 바로 그분이 50만원을 주고 간 사람으로 생각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얼굴을 보이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가 다 바로 하느님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금년 한 해도 큰 과오 없이 착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해 새 달력을 걸었습니다. 하느님이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결코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을 새로운 한 해, 주님이 우리에게 거저 주신 또 한 해 라는 큰 선물이 달력 안에 들어 있습니다. 저는 달력을 보면서 오늘 기도했습니다. “조심조심 살겠습니다. 열두 달 후에 다시 오늘처럼 새로 건 달력을 보면서 후회하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한 순간 한 순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2004년 금년은 정말 그렇게 조심조심 어질게 살겠습니다. 성가 원을 찾는 모든 분들에게 자애롭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어진 선배가 되겠습니다. 남을 헐뜯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나 직원들의 좋은 점만 보며 살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칭찬할 만한 점만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내가 하는 일마다 모두를 사랑과 기쁨으로 하겠습니다.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오늘 내가 건강한 것을 행복하게 생각하겠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했거나 병원 수술대기실에 누어있지 않은 것을 감사하며 매 순간마다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그리고 매일 밤마다 하느님을 향하여 엎드려 절하면서, 큰 죄 짓지 않고 오늘 하루가 무사히 저물어 치유의 밤이 다시 왔음을 주님께 감사하며 잠자리에 눕겠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새 해 새 달력을 주님이 다시 허락하시면 금년 연말에도 다시 또 새 달력을 벽에 걸며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시는 분들만이 저희 성가원에 후원금을 보내주시는 분들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좋은 한 해 되시옵기를...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기도 중에 뵙습니다.
2004년 1월 11일 나자렛 성가회 이인복 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