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문학> 3호(1934)
이 시는 김영랑의 '순수시’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순수시'는 언어 본연의 아름다움을 갈고 닦아서 쓰는 시로 음악성을 중시한다. 따라서 '순수시'는 시대나 역사, 사상이나 이데올로기의 요소와는 전혀 관계 없이 인간 내면의 섬세한 서정적 정감을 표출하기 마련이다. 인생을 살면서 사람들은 많은 시련과 좌절을 겪게 되지만, 그래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보람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시에는 당시 시대적 요소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지만,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인의 소망과 염원이 잘 암시되어 있다. 즉, '모란'을 소재로 하여 영원할 수 없는 지상적 아름다움에서 기다림과 비애를 노래하고 있는데, 이는 슬픔과 비애까지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려는 시인의 시작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읽는 한국의 명시」 김원호 지음
맹태영 옮겨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