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노래/이수화
잎이 진다. 이 가을에는 오래 살아온 생가(生家) 아궁이에 낙엽을 지피고 축복(祝福)처럼 하루를 살고 싶다.
지금은 여름내 풀을 뜯던 일소들도 시나브로 살이 찌는 아롱사태와 그리고 깊은 산곡(山谷)에 피는 도라지꽃 그 고요한 목숨의 한때를 생각하기 위하여 나의 사유(思惟)는 이 가을에 수정알처럼 빛나야겠다.
잎이 진다. 아침을 나서는 생활의 문턱에도 이름 모를 일년생(一年生) 초본식물(草本植物)이 잎을 떨구고, 가족들의 정갈한 내의(內衣)는 초록(草綠)의 스킨다브스 잎보다도 두터워졌다.
지금은 한갓 사라진 영화(榮華)로움도 언제나 오뇌(懊惱)하던 젊음의 밤들도, 그리운 추억처럼 소중한 때이려니 잎이 지는 산자락 나무숲에 흙이 되어서, 나는 은총(恩寵)의 따사로운 섭리(攝理)이고 싶다.
잎이 진다. 이 가을에는 우리가 살아갈 누리에 낙엽이 져도 나의 기도(祈禱)는 낙엽과 더불어 흙이 되리니- 아아. 지닌 것이 없어도 충만(充滿)한 가슴이여. 이 가을 오래 살아온 생가(生家)아궁이에 낙엽을 지피고, 축복(祝福)처럼 하루를 살고 싶다
**오래된 생가의 아궁이에 낙엽을 지피러
갑시다. 쿰쿰한 냄새뿐인 생가가 우지끈
허리를 펴고 오래된 얼굴들을 불러내겠네요
일소도 게으름을 부리고
도라지는 열매를 움켜지고
소멸의 보랏빛으로 절정이예요
가족의 정은 스칸디나비아 잎같이
두툼해져요 비바람을 건너게될지도
모르겠어요
산자락 나무숲에 흙이 되는 존재들에게
은혜의 따사로운 섭리라는 시인입니다
에밀 시오랑은 '태어났음은 슬픔이여'
라고 했으며
그리스의 음유시인은
'태어나지 않는것이 가장 행복' 이라고
했습니다
시인은 잠잠히 말합니다
충만한 가슴으로 생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축복처럼, 하루를
살고 싶다고. 니체의 '좋다
다시 한번 살아주겠다!' 라는 활자들이
펼져집니다
생물들의 가을
인생의 가을이 이렇게도 아름답습니다
오래되고 사라진, 생가에 불을 지피고
가장 아름다운 하루를 살아야겠습니다
내일은 겨울이니까요.
<신연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