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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사레의 계절 |
장관옥 |
보름달빛이 내려앉은 음성의 작은 언덕 언덕에는 간난 아기 숨결 같은 달콤한 향기가 진동합니다. 수줍은 처녀의 속살같이 뽀얀 색깔의 복숭아가 수줍은 듯 잎 사이로 수밀한 엉덩이를 살며시 내밀고 있지요.
고향마을 인근의 선바위 모퉁이에는 쌍둥이네 과수원이 있었습니다. 인근에 하나밖에 없는 과수원이라서 개구쟁이들의 표적이 된 곳이지요. 철조망이 처져있지만 기둥을 밟고 살금살금 넘어가 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햇가지에 열린 과실이 맛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다년간의 서리 경험에 의하여 축적한 비결이지요. 체육복을 윗도리를 바지에 넣고 허리끈을 졸라매면 훌륭한 자루가 됩니다. 목 부분으로 집어넣어 옆구리와 배까지 불뚝하게 채우면 되니까요.
유월 말이 되면 복숭아 익는 향기가 솔솔 풍겨옵니다. 어디에 무슨 종류가 심겨있는지를 주인보다도 더 정확히 아는 개구쟁이들은 어느 때 따야 맛이 있는지도 잘 압니다. 지난가을 사과 서리 방법으로 가슴에다 복숭아를 품었지요. 서리꾼 집합 장소인 개울가까지 온 것은 좋았는데 온몸이 가려운 것이 아닙니까. 홀딱 벗고 체육복은 바위에 채 질을 하고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유월의 계곡물은 무척 차갑습니다. 덜덜 떨며 속옷 바람으로 오면서도 복숭아를 넣은 체육복 윗도리는 꼭 챙겼지요.
해엄의 사주에는 역마살이 많다고 합니다. 집사람은 항상 불만이지만 직업상, 취미활동 등의 이유로 떠돌기를 좋아하지요. 하지만, 한 남자에게 만족하지 않고 여기저기 떠도는 여자들에게는 역마살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도화살이라고 부르는데 왜 복사꽃을 끌어다 붙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바람난 여인네 남자만 보면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데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요.
제나라의 재사 안영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임금인 경공(景公)의 세 호위 무사가 주인의 권위를 빙자하여 안하무인으로 행동하였습니다. 안영은 경공에게 그들을 제거하라고 하였으나 경공은 그들의 힘이 두려워 망설였습니다. 안영은 한 가지 꾀를 내었습니다. 경공으로 하여금 그들에게 두 개의 복숭아를 하사하고 공이 많은 두 사람이 하나씩 복숭아를 먹도록 어명을 내리도록 진언했습니다. 세 호위 무사는 서로 공이 많다고 다투다 모두 죽었습니다.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란 말을 아시는지요. 복숭아 두 개로 세 사람을 죽인다는 뜻으로 교묘한 꾀로 손 하나 대지 않고 상대방을 자멸시키는 일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예부터 울안에 복숭아나무를 심지 못하도록 한 것은 천상의 과실 복숭아를 사람이 사는 울타리 내에 심는 것이 불경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귀신을 쫓는 나무라 하여 제삿날 조상님의 혼령이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워낙 단물이 많은 나무라서 벌레가 많이 끼고 먹이사슬에 의하여 개구리가 들어오고 뱀이 울안을 넘보니 가려 심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해엄이 사는 동네인 음성과 감곡, 그리고 인근 장호원에는 복숭아가 지천입니다. 이 동네 사람들 복숭아 기르는 것도 일품이지만 똘똘 뭉쳐 내 것을 지키는 것 또한 누구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햇사레를 아시는지요? 복숭아는 햇사레 라는 등식을 만들어 낸 장본인 들입니다. 한해에 250만 상자, 돈으로 400억 원이 넘는 햇사레를 만들어 냅니다. 너무 예뻐서 차마 먹을 수가 없어 두고 보다가 썩혔다고 메일을 보내온 이도 있습니다. 물론 다시 한 상자 보내드렸지요. 맛을 만들고 모양을 만들고, 차마 먹을 수가 없는 그런 복숭아를 만들어냅니다.
순박한 농민들이지만 탁월한 기술력과 엄격한 품질관리로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가장 좋은 복숭아를 원하는 양만큼, 원하는 시간에 보내드립니다. 만족하지 못한 품질이 공급되었을 때는 언제라도 바꾸어 드리지요. 믿고 찾는 분들이 절대 후회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마음이 아름다운 햇사레 농민들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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