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천교(普天敎) 도훈(導訓)을 재 출간하며
어제 저녁에 책이 저에게 도착 했습니다. 책이 상당히 이뻐 보입니다. (저만 그리 보이는지도요 ㅎ).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입니다. 올 봄에 삼덕교(三德敎)의 영생(永生)의 설계(設計)를 마치고 그 다음 무슨 책을 할까 생각하다가 문득 보천교(普天敎)를 연구한 책은 많이 있으나 보천교(普天敎)인께서 만드신 책은 보기 어렵다란 생각이 ----.
그래서 보천교(普天敎) 도훈(道訓)을 재 출간하기로 마음먹고 시간내서 정읍(井邑)에 한 번 내려갔습니다. 보천교(普天敎) 구파 건물에 홀로 들어가 향 하나 올리면서 보천교(普天敎) 도훈(道訓)을 다시 재 출간하겠으니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보천교인(普天敎人)을 만날수가 없어서 동네에 돌아다니며 구파 건물을 누가 관리하는지 물어 보았고 그 분이 어디 사시는지 알게 되었는데 농사를 하시는지 낮에는 집에 아무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결국 비가 내려 회사가 오후에 쉴 때(노가다의 묘미) 인천에서 정읍으로 날라갔습니다.
역시나 저녁에는 그 분이 계셨고 보천교인(普天敎人)이셨습니다. 도훈(道訓)을 한권 받았고 재 발간 이야기를 했으며 하지 치성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결국 보천교의 하지(夏至), 추분(秋分) 치성에 참석하게 되었고 사진 및 동영상 촬영, 증언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천교 책을 재 발간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는데 약간 이상한 인연으로 보천교의 상당한 자료를 e-mail 한 통으로 통으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도훈(道訓) 재 발간 과정중에 “보천교 일반(일제시대 일본이 만든 보천교에 관한 비밀 보고서)”을 꼭 봐야하는 상황에 직면하였는데 구할 길이 없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예전 범증산종단사 작업을 할 때 알게된 스님 한 분이 전화를 하셨고 종교학자 한 분과 다리를 놓아 주셨습니다. 결국 제가 그 분을 찾아뵈었는데 그 분에게서 “보천교 일반”을 아주 거저먹기로 얻었습니다. 이 정도면 하늘이 도와주실 만큼 도와 주신것이라 생각합니다.
단 제가 최선을 다했냐고 물어보면 좀 ...... 죄송할 따름입니다.
책을 만들고 나서 보이는 오류... 그렇게 안보이더니 책 만들고 나서 보이는 .... PDF는 이것도 수정했습니다. 책은 오려서 붙여야 겠습니다.
하기 링크 누르시면 도훈의 다운로드가 진행됩니다. 구굴로 다운하니 무슨 공유메일이 무척 많이 들어와 다시 네이버로 합니다.
예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2021년 12월 22일 밤 11시 30분 보천교 구파에서 동지치성 및 도훈(道訓)을 재 발행한 것 고유하고 책은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http://naver.me/xl8nBOrt
그리고 이 책의 재 출간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재출간사(再出刊辭)
신앙생활의 초반기에 보천교(普天敎)라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어떠한 역사(歷史)를 가졌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으며 특별한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범증산종단사(汎甑山宗團史. 2019.10.3)의 자료 수집 및 편집 작업중에 보천교(普天敎)에 관하여 여러 학자분들의 다양한 연구가 있었으며 일제 강점기 시대에 민족최대의 종교였고 다양한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학자분들의 논문과 여러 단체에서 보천교를 연구한 책자는 쉽게 볼 수 있었으나, 정작 보천교인(普天敎人)께서 스스로 작성한 보천교(普天敎)의 책자는 구하기 어렵거나, 설사 구해도 일반인들이 보기에 너무도 불편하였습니다. 이것이 이 책을 재 출간하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보천교인(普天敎人)께서 만든 책중에 가장 나중에 출간된 책이 도훈(道訓: 1986)이기에 도훈(道訓)을 재 출간합니다.
이 책은 도훈(道訓)에 있는 내용뿐만이 아니라 보천교(普天敎) 교전(敎典), 보천교지(普天敎誌), 시감(時鑑) 및 보광(普光)에 있는 내용중 일부를 추가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여러 증산계열(甑山系列) 신앙인들이 보천교(普天敎)는 왕후장상(王侯將相)을 꿈꾸던 동학신명(東學神明)의 해원(解寃), 또는 난법(亂法)이라 칭하며 월곡성사(月谷聖師)에 대해서도 폄하하는 발언을 자주 목격하였습니다. 그러나 보천교(普天敎)가 없었으면 과연 지금의 증산계열(甑山系列) 신앙이 존재할수 있었을까요?
보천교(普天敎)가 초장봉기지세(楚將峰起之勢)로 일어났기에 여러 인재(人才)들이 보천교로 입교하였고, 수 많은 교파가 여기에서 갈려나갔습니다. 또한 여러 인재들이 보천교(普天敎)의 성공(成功)을 보고 각기 나름대로 증산계열 종단(宗團)을 만들기도 하였고 지금껏 신앙을 유지하는 종단도 있습니다. 보천교(普天敎)가 크게 일어나지 않았으며 대순전경(大巡典經)을 저술한 청음(靑陰) 이상호(李祥昊)선생과 천지개벽경(天地開闢經)을 저술한 학암(鶴菴) 이중성(李重盛)선생께서 증산계열(甑山系列) 신앙을 하셨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증산계열(甑山系列)에서 경전(經典)을 작성한 두 분 역시 보천교(普天敎)에서 신앙을 시작하였습니다.
보천교(普天敎)가 크게 일어섰기에 천하(天下)의 인재(人才)들이 보천교(普天敎) 및 증산계열(甑山系列) 종단(宗團)으로 들어와서 지금의 증산계열(甑山系列) 신앙의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보천교(普天敎)가 초장봉기지세(楚將峰起之勢)로 일어나 이종(移種)물 소임을 다 하였기에 지금의 증산계열(甑山系列) 신앙(信仰)이 존재한다 해도 큰 무리는 아닐것이며, 월곡성사(月谷聖師)는 그런 일을 감당할만한 분이었기에 증산천사(甑山天師)님께서 “이 길이 길행이다”,“만날 사람 만났다” 하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시국대동단(時局大同團)으로 친일(親日)을 했다고 하나, 서양외세가 동양(東洋)을 무력으로 침략하여 무수한 만행을 자행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며, 증산천사(甑山天師)님께서 서양으로 떠 밀려가는 동양(東洋)을 막으셨습니다. 시국대동단(時局大同團)은 친일(親日)이 아니라 당시 보천교(普天敎)를 보존하기 위한 방편이자 서양(西洋)으로부터 동양을 지키려한 노력으로 보는 것이 올바를 것입니다. 또한 보천교(普天敎)가 남모르게 독립운동을 지원한 사실은 이미 여러 학자분들의 노력으로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월곡성사(月谷聖師)께서 천자(天子)가 되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 당시 시대상황을 생각해보면 조선의 독립을 시킨 후 제위(帝位)에 오르는 것을 당연시하는 시대였습니다. 만약 월곡성사(月谷聖師)께서 민주공화제를 주장하였다면 조선말, 일제강점기 상황에서 몇 사람이나 그 의미를 이해하였을까요? 당시 한반도를 강제점령한 일제(日帝)도 일왕(日王)이 집권하고 있었습니다. 해방후 법률로서는 민주공화제 정부가 들어섰지만 사실상 왕과 다름없는 독재정권이 들어섰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와 싸우며, 사람도 사회도 조금씩 성숙하며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민주공화제는 시민사회의 성숙이라는 기반이 없는 경우, 성립이 불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지상선경(地上仙境)이라는 후천(後天) 역시 개개인의 도덕적 성찰과 성숙 없이는 불가능 할 것입니다. 보천교(普天敎) 당시 조선의 독립 후 제위(帝位)에 오른다는 것은 그 시대의 한계(限界)였습니다.
월곡성사께서 유교(儒敎)의 인의(仁義)로 신로(信路)를 변경하였다고 하나 증산천사(甑山天師)님께서 남기신 현무경(玄武經)에도 “대인대의무병(大仁大義無病)”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일본사람에게 일시적으로 천하통일지기(天下統一之氣)와 일월대명지기(日月大明之氣)를 붙여 주셨지만 어질 인(仁)은 내어 주시지 않고 저희들에게 붙여 주셨습니다. 또한 춘무인(春無仁)이면 추무의(秋無義)라 하셨고, 우리 일은 세상의 불의(不義)을 밝히려는 일이라 하셨듯이, 인(仁)과 의(義)를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월곡성사께서 인의(仁義)를 주장함이 어찌 신로(信路)를 변경하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회적 멸시와 일제의 압박 속에서 신앙(信仰)을 유지 및 계승하시고 조국의 독립운동에 헌신한 월곡성사(月谷聖師) 및 보천교인(普天敎人)께 감사 인사를 올리며 이 책이 보천교(普天敎)의 본의(本意)를 알리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미 선화(仙化)하신 월곡성사(月谷聖師) 이하 보천교(普天敎) 존령(尊靈)들께서 못다한 광구창생(廣救蒼生)의 큰 뜻을 천상(天上)에서 이루시기를 후학(後學) 청수(淸水) 모시고 기원합니다. 또한 이 책의 원 저자이신 도강(道岡) 민영국(閔泳國) 선생님께 큰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보천교(普天敎)가 못다한 대동세계(大同世界) 대시국(大時國)의 이상(理想)이 곧 현실에서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끝으로 증산천사(甑山天師)님께서 남기신 시(詩) 하나로 재발간사를 마무리 합니다.
치아곡문모하지(稚兒哭問母何之)하니 위도청산채채지(爲道靑山採菜遲)라
일락서산인불견(日落西山人不見)인데 갱장하설답제아(更將何說答啼兒)오
어린아이가 울면서 어미를 찾는데, 청산에 약초캐러간 것이 더디구나
해는 서산에 지는데 어미는 보이지 않고, 우는 아이에게 장차 무슨말을 하여 달랠것인가
신축(辛丑 2021) 동지(冬至 12월 22일)에 도훈(道訓) 재 출간본이 세상에 나오게 됨을 하늘의 은혜로 생각합니다.
백제의 꿈 매현(梅現) 전경현(全慶現)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