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웨이(My way)가 기억난다.
누구나 「가야하는 자기만의 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어떤 사람에게는 세평(世評)이나 세류와 상관없이
자기만이 가야하는 길이 있다.
그야말로 마이웨이이다.
이는 나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고 이해를 시킬 수 없으며
공감을 받기는커녕 전혀 지지받지 못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나의 길은 꼭 가야만 하는, 거부할 수 없는
신의 소명(召命)일 수 있고 스스로에게는 근원에서부터 자신을
세워주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며 삶을 흥미롭게 하고
충동하고 부추기는 열정일 수도 있는 것이다.
30대 중반 그 혈기 왕성한 때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영혼의 도전과 충격-
우리는 흔히 이를 “큰 은혜를 받았다”라고 일컫는다. -을 경험했다.
그때까지 살아 왔던 나의 인생 전체를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던 사건이었다.
나를 잘 알고 있던 이들 중에는 당시 그렇게 엉뚱한(?)길을 가던
나를 ‘이동훈 목사가 극좌에서 극우로 뛰었다’고까지 나를
걱정하기도 했다.
그 충격과 변화의 진앙지에 시무언 김기동 목사가 있었다.
시무언은 부인할 수 없이 우리 시대 기독교계의 풍운아이다.
그는 아예 철천지 이단의 괴수로 버려진 통일교의 문선명과는 달리
정통기독교회의 일원으로 머무르면서도 기독교회의 환영을 받지
못하는 그럼에도 현금의 한국교회 지도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 보다도
강력한 영적 영향력을 미치고 실제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의 개인적
존경과 흠모함을 받고 있는 그야말로 한 두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한국교회의 딜레마이다.
그는 이렇게 한국교회로부터 부당한 대접을 받음에도 지금도 여전히
신앙과 목회에 큰 도움을 끼칠 수 있는 저술들을 끊임없이 발표하며
이 세상 그 어떤 교회지도자 보다도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기독교회의 진정한 일원이기를 바라는 그리하여 주의 나라가 땅위에
편만하기를 열망하여 세계 곳곳으로 발진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마이웨이의 삶을 살아 간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생애 전 과정을 통해
한국교회의 몰이해와 비난, 핍박에 시달려 왔으며 이러한 그의 형편은
양상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의 주변에서도 별로 차이가 없는듯하다.
그는 거의 언제나 구설수에 올라있다. 그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끊임없이 원망의 대상이 되고 의혹의 대상이 되며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를 알고 일관되게 그를 따랐다고 자부하는
나도 이 대열에서 별로 예외가 아닐는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그는 관점이 너무 다르고 탁월하다.
이는 그가 성경을 보는 해석학적 입장이나 세계관에서부터
성경으로부터 추출해내는 그의 메시지에 이르기까지 그의 전 생애에
걸쳐있는 그의 삶 전체가 그러한듯하다.
그는 너무도 자주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궤도를 벗어나고 시각을
달리하여 사물을 관찰하고 대응하며 이와 동일하게 성경을 대하고
그로부터 말씀하시는 성경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문제는 이러한 그의 차별화된 시각이 학교교육과 세상관습에
비판 없이 그대로 젖어 있는 우리와 달리 도리어 더 성경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그는 한번만 더,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 진실과 본질에
이를 수 있는 쉽고 용이한 길을 곧잘 빠뜨리는 보통의 우리들
같지 않다. 그래서인지 성경이 인간의 경험과 오성에 쉽게
용납될 수 없음같이 그의 논리와 시각과 그의 태도와 방향은
또 다시 구설수에 오른다. 더러 감탄도 하고 놀라기도 하나 비난과
질시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그의 길을 간다.
마치 자신만이 알고 있는 길이 있는 것처럼 아랑곳없이 자기 길을 간다.
아마도 그에게는 베뢰아운동의 성공과 「하나님의 의도」를
확산시켜야 하는 과제가 어쩌면 강박이 있는 듯하다.
이는 적잖은 기간 그 불편함에도 자기 길을 가는 그를 주의 깊게
지켜본 나의 추측 혹 짐작이다. 그렇지 않음에야 그도 굳이 욕을
얻어먹고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누구도 비난받는 것이 즐거울 리 없고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
자랑스러울 리 없다. 그러나 역사를 뒤돌아보면 때로 환영받지
못해도 가야하는 길이 있는 시대의 반항아들이 있었다.
당시 그들은 시대의 부적응아였으며 낙오자 같고 심히 어리석은 자
같았으나 이후 역사를 바꾸어 놓았던 경우도 많았다.
알고 보니 시대를 초월하여 미래를 내다보았던 선각자였으며
개혁가들이었다. 누구도 그가 가는 그의 길에 태클을 걸 이유가 없다.
그는 그의 길을 가야하고 이것이 본인에게는 사명이겠거니와 그에게
주어진 그의 시대에 그가 할 수 있는 과제요 봉사이기도 한 것이다.
시무언에게는 일상적이지 않는 시무언의 길이 있는듯하다.
그렇다면 그는 그에게 주어진 그의 길을 가야한다.
이는 불행하게도 일반의 기대와 바램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당연히 배척과 비난이 따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그의 길을 가야한다.
우리 중 누구도 그가 가는 그의 길을 대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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