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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소설과 카툰에세이 등 인터넷 문화상품이 인기를 끌고 절박한 개인이 부각 된 2003년-
엄청난 사상자를 낸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과 태풍 매미, 이라크 전쟁 발발 등으로 인한 불안감,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의 이월에 따른 보수층의 심각한 상실감, IMF사태 때보다 힘들다는 말이 돌 정도의 카드대란에 따른 경기침체 등으로 대중은 큰 곤란을 겪었다. 이는 구체적인 미래의 상을 제시하는 다양한 실용서, 현실의 힘겨움을 잠시나마 위로받을 수 있는 재미있고 감동적인 책, 거대담론이 아닌 미시적인 입장에서 나를 찾고 세상을 해석하려는 책들의 유행을 불러왔다. 실직한 뒤 다시 취직을 했지만 병원에서 입원한 딸의 수술비가 없어 곤경에 처한 46세의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 화려하게 인생의 2막을 연 사람들을 소개한 [2막] 등이 등장하면서 헤어나기 어려운 수렁에 빠진 절박한 개인이 부각되었다. 젊어서 남은 후반생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는 이대로는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과 ‘어떻게든 다른 사람을 앞서고 싶다’는 의식을 갖게 만들어 세련되게 정리된 매뉴얼을 담은 자기계발서들이 ‘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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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첫 장편소설 [개미]를 발표한 뒤에 이야기를 빠르게 지어내는 능력을 유지하고 싶어서 저녁마다 한 시간을 할애해 단편을 쓴다. 이 책은 그렇게 쓴 단편 18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작가는 책머리에서 이 소설들을 쓸 때 영감을 얻은 이유를 밝힌다. 프랑스판 제목이기도 한 ‘가능성의 나무’는 컴퓨터와 체스를 두어 패배한 뒤 떠오른 생각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컴퓨터가 다음 수(手)를 모두 내다볼 수 있다면, 컴퓨터에 인간의 모든 지식과 미래에 대한 모든 가정을 입력해서 인간 사회가 나아갈 길을 단기적으로, 중기적으로, 장기적으로 제시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자신의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가능성의 나무’는 ‘만약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면’, ‘만약 우리 뇌를 컴퓨터에 직접 접속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만약 정년을 낮춘다면’ 같은 미래의 가능성들을 가지와 잎이 계속 퍼져나가는 거대한 나무 그림으로 도식화하여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음을 은유한 작품이다. 작가는 이처럼 인간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시선으로 인간을 관찰하는 특유의 풍부한 상상력과 통찰력, 그리고 관찰력과 열린 사고를 작품에 담았다. 베르베르는 이 책에서 ‘인간은 파국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은 스스로 묶어 놓은 지식의 한계를 돌파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은 스스로 진보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의 심각한 질문을 던진 다음 그에 대한 답변을 내놓았다. 한국어판에서는 원작에도 없는 환상적이고도 유머러스한 감각이 돋보이는 뫼비우스의 삽화 28컷을 넣었다. 프랑스에서는 ‘가능성의 나무’라는 사이트를, 한국에서는 ‘생각하는 나무’라는 사이트를 기반으로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대화의 장이 마련되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열린책들은 이 사이트를 기반으로 ‘베르베르식 기발한 과학적 상상력의 확산’을 취지로 독자들의 독특하고 기발한 이야기를 공모해 응모작 300여 편 중 31편을 골라 [나무2]를 출간하기도 했다. [나무]는 모두 100만 부가 팔렸다.
2003년 3월의 ‘느낌표 선정도서’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였다. ‘느낌표 선정도서’로는 처음으로 외국소설이 선택된 것인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100여 종에 가까운 책이 나와 있었다. 판매 이익금을 활용해야 하는 MBC는 출판사와 상의해 책 제목을 ‘톨스토이 단편선’으로 바꿨다. 표제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주인공 미하일은 신에게 버림받고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농가에 세 들어 사는 구두장이에게 얹혀 지낸다. 그는 신이 내준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만 용서받을 수 있었다. 그 세 질문은 ‘인간의 안에는 무엇이 있는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다. 미하일은 추위와 배고픔에 죽어가는 자신을 내쫓았다가 측은한 마음에 다시 받아주는 여인의 모습을 보며 인간의 안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또 자기가 오늘 저녁 안으로 죽는다는 것을 모른 채 일 년을 신어도 끄떡없는 구두를 주문하는 부자를 보며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알 수 있는 지식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이 벌을 받는 이유였던 버려진 쌍둥이를 보며 인간은 자신을 걱정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랑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라는 알게 된다. 이 책은 1년이 채 못 되어 100만 부를 돌파했다. 2003년 4월에 [톨스토이 단편선2]를 펴낸 인디북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톨스토이 유물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스토리보다는 이미지나 감성에 호소하는 ‘카툰에세이’ 혹은 ‘에세이툰’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인기를 끌면서 수십 종이 출간됐다. 이 흐름을 주도한 책이 [파페포포 메모리즈]란 이름의 책이었다. 만화계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심승현이라는 생소한 작가가 인터넷 포털 다음 창작만화 카페에서 연재한 작품을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심승현은 한경대 식물자원학과 재학 중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애니메이션 제작사에 입사했다. 낮에 공부하고 밤에는 그림에 매달리는 고생 끝에 2001년 ‘동아·LG 국제만화애니메이션 공모전’에 입선했다. 이어 [파페포포 메모리즈]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출판만화 부문 우수문화콘텐츠로 선정됐다. [파페포포 메모리즈]는 순수한 청년 파페와 착하고 여린 포포의 예쁜 사랑이야기를 통해 누구나 가슴 속에 간직하는 일상의 소소함이나 따스한 감정, 사랑의 추억과 그리움, 자기성찰 등을 과장과 허구를 배제한 간결한 서사로 보여준다. 독특하고 귀여운 캐릭터와 눈에 잘 들어오는 파스텔톤의 포근한 색채가 특징인 이 작품은 기본 설정이나 이야기 구조가 단순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 지나친 계몽이나 교훈성에 거부감을 느끼는 젊은 세대의 코드를 읽고 자연스럽게 접근해 감성과 이미지로 승부한 점이 가장 큰 성공요인이다. 파페는 작가의 자화상이며 포포는 그가 대학생 때 짝사랑했던 여학생이 모델이다. 작품 속의 에피소드 ‘가위손’이 어릴 때 화상을 입은 후유증으로 왼손을 감추고 다녔던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작가는 자신의 모자란 부분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만화를 통해 상처를 치유한다. 소통을 기대하며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을 즐기지만 대양을 누비는 듯한 막막함과 짙은 허무감을 느끼던 디지털 세대가 갈망하는 순수와 서정성을 대변했다. 2002년 연말에 최고의 선물용 도서가 된 이 책은 여자친구에게서 이 책을 선물 받지 않은 병사가 없다고 할 정도로 젊은 세대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2탄 [파페포포 투게더]와 함께 2003년에 100만 부를 넘기는 등 모두 200만 부 이상 판매됐다.
황대권은 2001년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통해 안기부에서 조작한 것으로 밝혀진 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서른 살인 1985년부터 1998년 마흔 중반까지 13년 2개월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그는 갇혀 있는 동안 어학, 생태, 신앙과 영성, 노장사상, 자연치유, 대안사회 모색에 이르기까지 사람살이 전반에 걸쳐 거의 날마다 편지를 썼다. [야생초 편지]는 그중에서 야생초, 생태주의, 영어(囹圄) 생활의 애환에 대한 글만을 골라 한 권의 책으로 펴낸 것이다. <녹색평론>에 실린 생태주의 관련 글을 본 도솔의 주간이 저자에게 연락해 편지묶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책으로 펴냈다. 저자는 수감생활에서 얻은 기관지염을 고치기 위해 야생초와 처음 만났고, 도감을 통해 야생초 이름을 익혔다. 교도소 화단에 100여 종의 야생초를 키울 정도로 야생초에 대한 식견을 넓혀갔는데 책에는 야생풀 하나하나에 대한 저자의 애정 어린 시선뿐만 아니라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구속당한 한 인간의 삶과 인간관계에 대한 매우 진지하고 구체적인 성찰이 담겨 있다. 암울한 시대의 그늘에서 생명의 풀꽃을 키워낸 저자의 삶이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책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야생초 그림이 실려 있는데 그림 효과를 높이기 위해 컬러 인쇄를 했지만 생태 관련 책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재생지를 사용했다. 2002년 10월에 책이 출간되자마자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으며 연말에는 여섯 일간지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될 정도로 책의 가치를 평가받았다. 2003년 1월 MBC ‘느낌표 선정도서’가 되면서 곧바로 종합 1위에 뛰어올랐다. MBC <행복한 책읽기>를 비롯한 여러 방송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한 이 책은 생태 관련 책으로는 최초로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한국의 부자들]은 부자들에 대한 해부형 재테크서의 원조다. 경제 관련 매체에서 기업분석과 벤처기업 이야기를 다루었던 한상복은 거주하는 집을 뺀 자산 총액이 10~1,000억 원에 이르는 한국의 부자 100여 명을 만나 그들의 공통분모를 추려내는 한편, 부자들이 적은 돈을 거액의 재산으로 불려나가는 과정을 생동감 있게 정리했다. 또 부동산과 주식 투자에 대한 부자들의 철학과 노하우를 전한다. 책에 소개되는 벤치마킹 대상자의 평균 나이는 57세, 직업은 교사, 공무원, 회사원, 기술자 등 평범한 서민층으로 태어날 때부터 부자인 사람은 제외했다. 당시 이들은 평균 3억 원이 넘는 집에서 주식과 저축으로 6억 5,000만 원을, 월급과 자산소득을 합해 해마다 1억 5,000만 원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두 달 만에 20만 부를 넘어서며 이후 [한국의 부자들2]까지 모두 70만 부(?)가 팔려나갔는데 이 책의 성공은 우리 사회가 ‘월급형’ 사회에서 ‘자금운용형’ 사회로 바뀌고 있음을 알려줬다. 연초부터 [한국의 부자들]로 부자 열풍이 불면서 2003년 내내 [나의 꿈 10억 만들기], [부의 첫걸음 종자돈 1억 만들기], [부동산으로 10억 만들기], [33세의 13억 부자의 투자일지] 등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자산 목표를 내건 체험자들의 부자 매뉴얼 북이 인기를 끌었다. ‘10억’은 고달픈 사회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의 대변이었다. 또 [설득의 심리학],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메모의 기술] 등 한 가지 핵심키워드를 집중적으로 파고든 자기계발서가 유행하면서 경제경영 분야의 책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대되었다.
[순이 삼촌], [아스팔트], [변방에 우짖는 새], [바람 타는 섬], [마지막 테우리] 등을 통해 4.3 항쟁이나 방성칠과 이재수의 난, 잠녀(해녀)들의 항일투쟁 등 제주도를 역사적 배경으로 깊이 있는 주제와 중후한 문체의 소설을 일관되게 발표해온 현기영은 1999년에 역시 제주도를 무대로 한 성장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발표했다. 망망한 바다에 갇힌 비극적인 가족사를 가진 한 소년이 4.3 항쟁, 6.25 전쟁 등 굵직한 역사의 울타리 안에서 어엿한 문학청년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섬세한 묘사로 그려냈다. 인간의 역사적 실존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면서 한국 현대사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서사성과 남도의 대자연 위에 펼쳐지는 서정성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어우러졌다. 외갓집, 호열자, 말굽쇠 낙인, 묵은성, 봉앳불과 방앳불, 똥깅이, 누렁코, 전깃불, 게우리, 씨앗망태, 팥벌레, 외짝귀, 정드르, 방귀 등 향토적이고 정감어린 134개 꼭지는 아름다운 섬 소년들의 유년과 함께 수만 명이 학살된 비극적인 체험을 잔잔하게 이야기한다. 계간 <실천문학> 1994년 겨울호부터 9회 연재한 것을 2년의 퇴고과정을 거쳐 5년 만에 펴냈다. 출간 후 4년 동안 3만 부 정도가 팔렸던 이 소설은 2003년 6월에 ‘느낌표 선정도서’가 되면서 다시 한 달 만에 20만 부가 판매되었고 지금까지 45만 부가 팔렸다.
캐나다 작가인 가브리엘 루아(1909~83)가 8년간 작은 시골마을을 전전하며 교사로 일했던 젊은 날의 체험을 토대로 만년인 1977년 발표한 성장소설이자 교육소설. 사범학교를 갓 졸업한 18세의 풋내기 젊은 여교사와 황량하고 광대한 평원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가난한 이민자 마을의 초등학생 아이들의 교감을 그린 중단편집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 낙담한 어린 빈센토와 광란의 만남이 이뤄지는 첫 작품부터 부쩍 커버린 메데릭과 가슴 저린 이별을 하는 마지막 작품까지 나이를 먹어가는 각기 다른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이야기들은 한 편의 장편처럼 엮여 있다. 아이들의 변화를 바라보는 관찰자이자 서술자인 여교사의 따뜻한 마음이 진솔하고도 섬세하게 그려진다. 교사단체로부터 교사와 학부모를 위한 추천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던 이 책은 2003년 7월에 ‘느낌표 선정도서’가 되면서 지금까지 5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2003년 6월 21일 자정을 기해 ‘해리포터’ 시리즈 5권인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이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발매되었다. 미국 스콜라스틱 출판사가 발행한 초판부수는 무려 850만 부였으며 그 중 500만 부가 미국에서만 발매일에 팔려나갔다. 전 세계에서 판매된 것은 680만 부에 이르렀는데 그 중 사전 주문부수만도 140만 부나 되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초대박 신화에 영화가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설은 눈앞에 실제 인물이 살아 움직이듯이 상세하면서도 시각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스콜라스틱이 1권을 출간하자마자 여러 영화사들이 달려들었지만 판권을 최종적으로 확보한 것은 워너브라더스였다. 워너브라더스는 7권 모두가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7권 모두를 영화화할 것을 확약했다. 롤링은 계약금을 100만 달러로 낮추는 대신 영화 브랜드 가디언의 역할을 유지하기로 하고 영화 제작 첫날부터 캐스팅에서 세트 디자인, 각본 등 브랜드를 보호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2001년 11월, 1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영화 개봉에 맞춰 텔레비전 광고, 라디오 스팟, 신문 삽지 광고, 빌보드, 웹사이트를 통한 경품 제공, 홍보용 경품 제공과 뉴욕 타임스퀘어 점보트론 광고 등을 위해 4,000만 달러 이상의 마케팅 비용이 투자되었다. 2001년 개봉 영화 가운데 최고의 수익인 9억 6,700만 달러를 기록했는데 [타이타닉]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높은 수익이었다. 다섯 번째 영화인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은 하루 최대 수익 4,420만 달러, 미국 4,285개 지역에서 사상 최다 스크린인 9,000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 미국 이외 지역으로 발송된 전체 프린트 수 2만 2,000벌 등 수많은 기록을 갈아 치웠다. 영화 개봉을 둘러싼 버즈와 열광은 책에 대한 수요도 키워갔다. 문학수첩은 2003년 10월 말에 5권의 초판을 100만 부(20만 질)나 발행하고도 책 확보에 열을 올리는 서점 관계자의 등살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다섯 권으로 과도하게 분책한 것에 따른 정가 상승과 번역에 대한 독자들의 불만의 소리도 적지 않았다.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가 츠지 히토나리와 ‘여자 무라카미 하루키’로 평가받는 에쿠니 가오리가 하나의 스토리를 반씩 나누어 쓴 ‘릴레이 합작’ 소설이다. 10년 후 재회하기로 한 약속을 가슴에 묻어 둔 두 연인 쥰세이와 아오이의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사랑의 행방을 그렸다. 아오이와 아오이의 인생의, 그리고 사랑에 관한 한 모든 것의 절반을 담은 Rosso편은 에쿠니 가오리가, 나머지 절반인 아오이가 모르는 쥰세이와, 아오이가 모르는 아오이의 이야기를 다은 Blu편은 츠지 히토나리가 썼다. 한국어판은 부부번역가인 김난주, 양억관이 동성의 책을 각각 맡아서 번역했다. 2000년에 출간됐지만 반응이 미미하다가 2003년 영화가 개봉되면서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11월에는 연극까지 상영되어 더욱 화제를 끌었다. 흔한 러브스토리를 다루었음에도 인기를 끈 것은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사람들 누구나가 경험했을 만한 감정의 흐름을 섬세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사랑에 초연하고 쾌락에 탐닉하는 듯 보이는 [스캔들]의 조원(배용준 분), 애인에게 다른 사람이 생긴 사실을 알자 집착을 버리고 조용히 사라지거나 아내에게 ‘아웃’ 당하고도 경쾌한 스텝을 밟을 줄 아는 [바람난 가족]의 영작(황정민 분), 애인이 다른 사람을 만나도 조용히 기회를 기다리는 [옥탑방 고양이]의 유동준(이현우 분) 등의 쿨한 남자가 주인공인 대중문화상품이 인기를 끄는 등 ‘열정’이 사라지고 ‘냉정’, 즉 ‘쿨함’이 문화적 트렌드가 된 것도 이 책의 시장성을 키웠다. 2003년에는 또 다른 일본소설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도 단숨에 10만 부를 넘겼다.
정헌재가 페리테일이라는 필명으로 홈페이지에 올렸던 예쁜 그림과 짧은 글을 모은 책이다. 기다리기, 당신의 벽 허물기, 바라보기, 떠올리기 등 4부로 구성된 [포엠툰]은 짧은 한 컷, 또는 여러 컷의 만화를 통해 20대 젊은이의 소박한 사랑을 담았다. 누군가를 가슴 깊이 사랑하거나 이별의 아픔을 겪으며 간절하게 그리워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주어 책으로 출간된 것이다. 속편 [완두콩]은 읽는 이에게 일상의 이야기에서 행복을 찾게 하는 내용으로, 출간 한 달 만에 10만 부를 돌파했다. 이렇게 2003년에는 카툰에세이의 거대한 붐이 일었다. [파페포포 메모리즈]의 심승현, [포엠툰]의 정헌재, [마린블루스]의 정철연 등이 선두를 달리는 가운데 수십 종의 책들이 출간됐다. [마린블루스]는 자신을 성게에 비유하고 주변 인물들도 불가사리군, 쭈꾸미군, 거북이군 등 바다생물들로 의인화하여 그 인물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2003년 대한민국만화대상을 수상했다. 극화 등 이른바 ‘본격만화’는 크게 위축됐지만 만화와 에세이가 결합한 카툰에세이라는 ‘연성 만화’가 큰 흐름을 이루었다. 카툰에세이는 만화계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출판시장과 만화계 모두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던져주며 한때 인터넷소설과 함께 네트워크 시대를 주도할 장르로 평가받기도 했다. 하지만 수준 이하의 책이 지나치게 남발되는 바람에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외면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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