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마이스(John Smyth)는 1608년 유아세례가 신약성서적인 침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신자침례(believer's baptism)에 기초해서 스스로 자신에게 침례(self-baptism)를 베풀고 교회 회원들에게도 침례를 주었다. 그리고 그는 1909년 중요한 교리적 확신에 도달하면서 침례교인으로 자기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그는 구약보다 신약에서는 상대적으로 언약을 말하지 않았고, 사도들은 회개와 신앙고백을 기초로 침례를 받은 사람들을 교회회원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만일 침례가 신앙의 표지(badge)라면 유아세례를 유지하는 것은 성서적 근거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스마이스는 스스로 자신에게 침례를 준 것에 대한 비판에 직면했고, 그로부터 머지않아 워터랜더 메노나이트 교회(a local church of Waterlander Mennonites)에 가입을 청원했다. 이때 그가 제출한 20개조항의 신앙고백서가 나중에 메노나이트 역사자료실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토마스 헬위스와 10명의 교회 회원들은 가입청원을 반대하고 별도로 분리교회를 세움으로써 스마이스와 결별하게 되었다. 스마이스가 이끌었던 무리들은 메노나이트 공동체 가입을 시도했지만 그 생애 동안에는 실현되지 않았다가 그가 1612년에 삶을 마감한 다음 그들에게 흡수되고 말았다.
그런데 토마스 헬위스(Thomas Helwys, -1616)와 소수의 무리들은 스마이스와 의견 충돌을 계기로 1611년경 영국으로 돌아와 런던 근교의 스피탈필드(Spitalfield)에서 역사상 첫 침례교회를 세웠다. 따라서 일반 침례교회를 실제로 시작한 사람은 토마스 헬위스라 볼 수도 있다. 이 때 토마스 헬위스에 의해 발표된 신앙고백서가 “암스테르담에 남아있던 영국인의 신앙선언문”(Declaration of Faith of English People Remaining at Amsterdam)이다. 토마스 헬위스가 죽은 뒤 지도력은 존 머튼(John Merton)으로 이어지고 이어서 47개의 일반 침례교회들이 탄생했다.
[침례교신학], 4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