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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주차장에서 바라본 효령봉(연산봉)
선암사 병정봉에서 바라본 연산봉(효령봉)
◈효령봉(曉嶺峰) 과 연산봉
사람들이 현재 “연산봉”(連山峯)이라 부르는 조계산의 서쪽(송광사 쪽) 봉우리(851m)의 이름이 고려 말 까지 송광산(松廣山)이었다는 사실은 송광사지 등 기록이 전해주고 있다
그러나 연산봉이라 부르게 된 과정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의심 없이 “연산봉”으로 부르다보니 이제는 당연한 연산봉이 되어 표석까지 세워져 있다 하지만 잊히고 묻혀가는 조계산의 속내를 취미삼아 찾아보는 과정에서 연산봉의 또 다른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계산의 서남쪽(연산봉)과 인접한 송광면의 마을 분들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연산봉이라고 부르는 봉우리를 가리켜 “호령봉”이라 칭하는 분들이 있어 뜻밖의 사실에 좀 더 자세한 내력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연산봉이 송광사 측 주봉(방위상으로는 시루봉)임을 감안하여 송광면의 “장안” “신흥” “평 촌“ 등의 어른들을 대상으로 예단 없이 봉우리(연산봉)를 가리키며 이름을 물으니 ”호령봉“이라 기억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았다
“혹시 한자로는 어떻게 쓰는지 아십니까?”
“아! 모르 제에… 우리들이 고런 걸 어떻게 안단 가?”
“글 좀 허는 사람들 헌 테 물어봐야 헐 것이여?” “알만 헌 사람들은 다가불고”…
“우리도 산에 들어 댕긴지가 30년도 훨씬 넘어 부렀구만”…
이와 같은 조사를 통해 이곳 사람들이 연산봉을 부르는 다른 이름(호령봉)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기로 했다
2005년 가을 조계산 보리밥집 주인(최석두)에게 혹시“연산봉”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서슴없이“호령봉”이라고 답했지만 연산봉이 정식 명칭인 걸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한자 표기는 알지 못했다
생각 끝에 주암댐 수몰 직전 까지 “평촌“ 마을에 살면서 지역 일에 앞장섰으며 현재는 여수 서교동에 사는 ”박의영“씨를 찾아가 호령봉에 관해 문의하였다
여기서 뜻밖의 한 가지 수확을 얻을 수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부르기는(발음은) 호령봉이라 하지만 “효령봉”이 정확한 이름으로 기억이 된다며 아마 송광사의 오래된 스님들께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 했다
2005년 12월 송광사에 60년대부터 계셨다는 광원암의 “현봉”스님을 찾으니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내가 게시한 (연산봉에) “연산봉”이란 설명문을 보았다며 “연산봉”이란 이름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며 고칠 것을 주문하였다
현봉스님의 “효령봉”에 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연산봉의 본 이름은 ”효령봉“으로 한자로는 曉嶺峰 이라 쓰며 뜻은 새벽(깨달을) ”효“이고”령”은 연산과 같은 의미의 산줄기 이어질”령“이라 풀이해 주었다.
그리고 실제 연산봉(連山峯)은 송광사와 선암사의 경계로 되어있는 접치로 갈리는 봉우리로서 청량산(장군봉)과 송광산(효령봉)을 이어주는 중간 봉우리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며 현재도 송광사에서는 그곳(”장박골 몬당,“ 옛 지명은 ”장막등“)을 연산봉으로 기록한다고 예를 들었다
“1983년 입적한 구산선사 다비식이 끝난 뒤 말년 수도 처였던 그 봉우리 바로 아래(남쪽 비탈) ”인월정사 터“에다 일부 골분을 뿌린 위치를 ”연산봉 아래“로 기록하고 있다는 설명과 더불어 송광사 쪽 사람들이 ”효령봉“을 ”호령봉“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선암사와 송광사의 오랜 경쟁(대립)의 산물로 선암사 측(봉우리)을 호령한다 해서 호령봉이 되었다고 했으나 아무래도 일반인들은 발음의 편의에 따라 ”효령“이”호령“으로 변화 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선암사와 경쟁 관계에 있는 송광사 측 스님들에 의해 어느 시기에 은근히 뜻을 맞추어놓은 것으로 보아야 옳을 것 같다
이상과 같이 토착민 여러분들의 증언을 들어본 결과를 종합해 볼 때 옛 부터 불려온 “효령봉”이라는 이름이 있었음에도 어떠한 계기를 통해 왜곡 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기록상의 근거(물론 연산봉도 마찬가지)를 찾을 수 없기에 일방적으로 긍정하기 보다는 “효령”이라는 이름과 여러 가지 정황 즉 한자의 뜻과 송광사의 위치 송광사 측의 주봉이라는 점 등을 비교하여 당위성을 분석해 본다
서두에도 있지만 “효령봉”의 한자어 뜻은 “새벽을 밝혀주는 봉우리로 이어진 봉우리“ 또는 동트는 연산봉 쯤으로 풀이가 가능하겠다.
이와 같은 뜻에 맞게 송광사에서 바라보는 연산봉(?)은 정확하게 동이 트는 방향에 우뚝 솟아있으므로 “효령봉”이라는 이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번에는 “송광사지” 등에 나타난 기록을 통해 산의 이름이 바뀌는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2001년 판 송광사지(19쪽)에 의하면
”희종께서 잠저(潛邸) 시(時) 로 부 터 국사(國師)의 도예(道譽)를 중(重)히 여기어 오시더니 그 즉위(卽位)에 미쳐(희종 4년,1208년) 전항(前項) 위업(偉業)의 공언(公言)을 들으시고 가중(嘉重)을 더욱 더하여 산명(山名)을 바꾸어 조계(曺溪)라 하시며 사호(社號)를 고쳐서 수선(修禪)이라 하시고, 잉 (仍)하여 어필(御筆)로 제방(題榜)을 친(親)히 써서 특(特)히 이 업적(業績)을 포양(褒揚)하셨다“
-(희종께서 어릴 때부터 보조국사의 도와 예를 높이 존경해 오다가 왕위에 오르고 나서 길상사에서 승 풍 쇄신운동(정혜결사)에 앞장서서 훌륭한 일을 하신다는 보고를 관리들로부터 받고 크게 기뻐하시어 (송광)산의 이름을 조계산으로 바꾸고 절의 이름도 (길상)사를 수선사로 고쳐서 친필로 쓴 편액을 하사하고 널리 칭찬하여 알리셨다)
-필자 주 해-
이 기록에 나타난 내용으로 현재 연산봉(효령봉)이라 부르는 당시의 “송광산”이 조계산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주산의 이름은 사라지고 봉우리의 이름만 남게 된 것이다
물론 효령봉이란 명칭이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정학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송광산의 주봉으로서 공존했다고 하드라도 본격적으로 효령봉이란 이름이 제자리를 잡은 시기는 송광산과 청량산(장군봉)이 조계산으로 바뀐 이후로 보고 싶다
왕명에 의해 산의 이름이 바뀌었다 해도 민중들 사이에서는 누대에 걸쳐 불러온 산의 이름이 단기간 내에 바뀔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문맹인 산골의 백성들로서는 이름이 바뀐 사실은 물론 그 의미를 이해하고 일상으로 부르기 까지는 한 세대 혹은 한 세기 이상의 오랜 기간이 걸렸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송광산이란 이름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봉우리의 이름인 효령봉만 남게 되어(그 이후에 붙여진 이름일 수도 있음) 절의 이름이 “수선사”에서 송광사로 바뀌었을 즈음(조선 초기로 추정함)에는 예전의 “송광산”도 주봉의 이름인“효령봉”만 남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와 같이 역사적 사실에 비춰 내용을 살펴본 결과에 의하면 “효령봉”이란 이름이 송광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은 말할 나위 없고 송광사에서 이름을 붙여야 할 당위성도 부정할 수 없으므로 “효령봉”이란 이름을 당연히 긍정해야 할 근거로 판단하는 것이다 아울러 결정적인 근거라면 1700년경에 발행된 ‘송광사고’(송광사지)에 엄연히 효령봉으로 표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효령봉”이란 명칭의 당위성에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해도 연산봉이란 이름이 엄연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므로 이 두 명칭간의 관계와 왜곡 또는 오류 가능성에 관한 여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어 그의 배경을 파악해보았다
먼저 “연산봉”과 “효령봉” 명칭간의 상호 배경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연산봉이라고 부르고 있는 한 봉우리의 이름이 연산이 되느냐 효령이 되느냐에 따라 선암사와 송광사 사이에는 자존심이 걸린 함수 관계가 존재해 있기 때문이다
선암사와 송광사 간의 봉우리의 명칭에서 주종 내지는 우월을 주장하려는 그의 핵심은 “연산”이라는 단어에 담겨있다
연산(連山)이란 “산이 이어지다”
즉 장군봉에서 효령봉까지 말발굽처럼 봉우리로 이어온 산줄기의 형상에서 생겨난 산줄기에 대한 표현이다
그러므로 줄기 전체를 연산이라 하는 것은 맞는 표현이지만 연산의 줄기에서 가장 높은 장군봉(조계산의 상봉)이 기점이므로 그 줄기에 있는 다섯 봉우리(효령봉 포함) 모두가 연산의 봉우리 즉 연산봉인(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해석상으로 산(청량산과 송광산)과 산을 연결해주는 봉우리로 보느냐 주봉(장군봉)의 줄기에 이어진 봉우리로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위치나 주종의 관계 성립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양사의 자존심이란 만약 봉우리의 이름이 연산봉일 경우는 기점인 선암사의 배후봉인 장군봉과 주와 종의 관계에 놓이게 되지만 효령봉일 경우에는 송광사의 주봉으로서 장군봉과 대등하게 연산이란 예속적 의미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며 연산봉의 위치 또한 현봉스님의 설명처럼 현재 장박골 몬당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산의 줄기가 연산의 형태를 이루고 있지만 효령봉은 이미 역사적으로 송광사 측의 주봉으로서 장군봉이 청량산(선암사의 주봉)이었던 것처럼 연산과 별개의 봉우리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이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산과 산을 이어주는 봉우리 중의 하나가 연산봉이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갖게 한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청량산과 송광산 그리고 장군봉과 효령봉 각각의 호칭으로 불려오다가 조계산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고나서 양 사 간의 대립이 표면화되던 어느 시기(조선 후기로 추정)에 봉우리 이름 하나를 두고 장군봉과의 관계를 문자 풀이로 접근한 사람의 불필요한 분별이 단초가 되어 현재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효령봉을 긍정함을 전제로 왜곡 또는 오류의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지명이 그렇듯이 산과 봉우리의 이름도 특별한 대표성을 가진 산을 제외하고는 그곳에 사는 민중이나 관계자들에 의해 이름이 붙여지고 불리어 오다가 근대에 들어 기록으로 정리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민중들의 입에만 오르내리고 있는 대부분의 봉우리들이 공식적인 이름을 갖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그 이름마저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우선 “연산봉”이 우리나라 지도상에 공식으로 등재된 이름인지 국립지리정보원(2006. 2. 3) 에 질의해 보았다
그 결과 공식 등재되지 않은 이름이라는 회시(남선희)를 받았다
그렇다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연산봉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전후 사정을 종합해 보건데 이는 조계산에 자리 잡고 있는 역사와 지리적 여건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결론에 접근하게 된다
조계산의 역사는 선암사와 송광사를 중심으로 동서로 나뉘어 그의 영향력 하에 형성되고 발전되어 왔다
그러므로 주민들에게는 양사의 시각에 따라 서로 다른 명칭이나 해석도 그대로 받아들여져 이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나마도 산중 교류가 많던 옛날에는 이해의 폭이 조금은 넓었으나 산골 인구의 감소와 생활환경의 변화로 인해 조계산을 생활 터전으로 드나들며 역사를 만들어 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극소수로 줄어들어 현지인들 간에도 산에 대한 정보 소통이 거의 단절 된 반면 이제는 등산과 탐방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급증에 따라 많은 정보가 전국 어디에서나 필요로 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역주민들로부터 직접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거나 간접적 이어서 왜곡 되거나 부정확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민중들에 의해 만들어 지고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기록에는 없는 이름들이 잘못 표기된 현장이 조계산 곳곳에 게시한 안내판에서 발견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실수나 기록의 잘못이 아니라 도립공원을 관장하는 순천시의 위치와 담당 공무원의 전문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순천시가 선암사와 가까움으로 인해 시민들의 통행(탐방과 등반 등)이 대부분 선암사 측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 조계산의 동편에서 형성된 내용들만이 인식되고 확산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다 하겠다
뿐만 아니라 정보를 수집하고 판별하며 확정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하는 시(담당 공무원) 역시 가까이서 얻기 쉬운 정보에 의지하기 쉬우므로 세심한 확인이 결여 된다면 오류는 당연히 발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계산에는 우리나라 천년 유수의 고찰이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한걸음에 올라 내려다보고는 알 수 없는 유구한 역사가 동서로 나뉘어 골짜기 마다 가득하다
효령봉이란 지명에 관한 결론은 연산봉과 함께 공식 지명이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연산봉이라 불리어 고착되어 가는 과정이므로 확정되기 전에 당사자인 송광사에서 주봉의 이름을 찾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 2006. 2. . 樂山 漸修 生 認 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