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령공주>를 보고난 뒤의 수다.
수다 전에 잠깐! 이번에 구입한 DVD는 우리말 녹음도 있으니, 선택해서 보세요.
만화영화는 어차피 그 나라에서도 더빙이니, 우리말 더빙으로 보는 것도 좋을 거예요.
그리고 DVD가 2장인데, 다른 한 장에는 뭐가 있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이 영화 제작과 관련한 소소한 이야기가 담겼으려나.
빌려가는 분들, 참고하세요. 많이 빌려다 보시고요!
이번에 본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일본 만화영화를 보다보면
디즈니 영화와 다른 점이 확연히 들어와요.
디즈니 만화는 일본 만화보다 배경은 더 현실적이에요. 업, 토이 스토리, 쿵푸팬더...
동물을 주인공으로 그려도, 풍선으로 집을 날려도, 장난감이 말을 해도
만화영화치고는 무척 현실적인 울타리 안에 있어요.
그런데 일본 만화는 그 현실적 배경을 가뿐히 뛰어넘어요.
이번에 본 원령공주, 또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성, 공각기동대, 스카이 크롤러...
배경이 현실이든 현실을 뛰어넘든 다 좋아요. 그런데 중요한 건 그 다음.
디즈니는 현실을 배경으로 하되 그 메시지는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아요.
현실인 척하면서 현실을 외면하거나 좋은 것만 보면서 희망을 갖는 느낌이랄까.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그런데 일본 만화는 현실을 뛰어넘는 무한 상상력을 펼치면서 그 안에는 엄연하고 더러는 무서운
현실이 그대로 담겨 있어요. 인간 세계는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거나 희망적이지만은 않다는 거.
그리고 과연 절대 악, 절대 선이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기도 하고.
디즈니 만화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 악은 없어져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백설공주를 괴롭히던 마귀는 절대 악이고 없어져야 하고, '업'에서 그 못된 할아버지도 악이고 없어져야 하고...
그런 대결 구도를 자꾸 보다보면 그들은 악을 원치 않는 게 아니라 절실히 원한다는 생각도 들죠.
악에 맞서 그것을 물리치면서 영웅적인 선을 달성해야만 그들은 존재감을 느끼니까요.

일본 만화는 악을, 아니 언뜻 악이라고 보이는 것을 살살 달랩니다. 멧돼지여, 노여움을 푸소서!
이런 차이는 아마 그들이 살아온 환경 차이에서 나오기도 할 거예요.
일본은 수많은 자연 재앙에 시달렸고, 인간은 그걸 이길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미국 역사는 '개척'의 역사였죠. 인디언과 싸우고 황무지를 일구고...
인간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으니까요.
그러면서 인간의 힘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달까.

일본은 인간보다도 자연이 월등하게 무서운 존재였는데, 그런 와중에도 자연을 물리쳐야 할 악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자연의 속성을 이해하고 숭배하는 쪽을 택한 거죠. 우리가 기우제를 지내듯.
자연에는 저런 정령들이 있다고 믿으면서... (정령: 만물의 근원을 이룬다는 신령스러운 기운. 네이버사전)

숲에는 저런 시시신이 있을 거예요. 정말로.

사슴 같은 시시신이 나중에 인간을 닮은 모습으로 변하는 장면은 경이롭고 엄숙하기까지 했어요.
하느님이 당신의 모습을 본떠 인간을 만드셨다는 이야기도 생각나고...

인간 부족을 대표하는 '에보시'의 모습이야말로 절대 악과 절대 선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경우였어요.
그는 여성들을 씩씩한 인간으로 만들었고, 그가 자연을 '개척'하는 이유는 편리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였어요. 나중에는 그게 지나쳐 시시신까지 없애버리려 한 게 큰 실수였지만요.
시시신의 노여움으로 어렵게 일군 마을이 하루아침에 날아가버렸지만, 그는 다시 시작하자고 합니다.
아마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에보시와 자연과의 충돌은 계속되었을 거예요.
인간이 '문명'을 이루며 살아가자면 어쩔 수 없이 자연을 침범하게 되죠.
인간이 진정한 문명인이라면 그 수위를 조절할 줄 알 테고, 어리석은 문명인이라면 수위 조절에 실패하겠죠.
디즈니에서 이런 주제로 만화를 만들었다면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아마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눴을 거예요.
자연을 파괴하는 절대적으로 못된 자들. 그리고 그들에게서 자연을 구하려는 영웅적인 소수의 인간들.
만화영화가 아니어도 일본 옛날 영화들을 보면 선과 악이 충돌해도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이 따로 있어서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의 내면에서 어느 순간, 어떤 계기로 악한 부분이 튀어나와 악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서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악을 끄집어내게 만든 요인을 생각하게 하죠.
말하다보니 디즈니 만화를 너무 깎아내려 버렸어요. 디즈니 만화 좋은 거 많은데...
덧붙여... 이 영화가 우리나라는 '전체관람가'인데, 외국에서는 13세 이상 관람가예요. 왜 그런지 아시겠죠?
근데 우리나라 심의위원회에서 '전체관람가'로 한 건, 이 영화를 제대로 안 보고 그냥 붙인 게 아닐까, 의심도 들고. ㅋ.
일본 만화나 그냥 영화들, 이거 또 은근히 잔인한 장면이 많아요. 이래저래 일본 사람들 정말 독특해요.
그리고 덤으로...

육포(?)를 씹던 그 장면.
짧게 써야 하는데, 또 길어졌어요. 난 왜 혼자 수다를 잘 떨까?
첫댓글 등급을 매기는 아이러니는 <불편해도 괜찮아>에 보면 자세히 나와 있더라구요. 우리나라는 불편한 장면만 나오지 않으면 전체관람가로 가구요. 불편한 장면, 예를 들어 성소수자 이야기나 장애인의 사랑장면 등이 나오면 007에 나오는 것보다 훨씬 가벼운 씬인데도 불가를 매기더라구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그 규정을 만든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 걸까요?
ㅋㅋ 발심의 수다 너무 좋아요~ 지금 나가야해서 꼼꼼히 못 읽었는데 이따가 와서 다시 볼게요....앞으로도 쭉 후기 부탁해요~ 역시 극장지기 다우셔~
역시 조예가 깊으십니다..발심의 후기 수다는 언제나 쫀득쫀득합니다..ㅎㅎ
근데 육포라는 말이 나오다니..정말 웃겼습니다. 신해가 한 말은 아닐지..^^
신해는 저번에 '나의 아저씨' 어땠대요? 아이들이 그 영화를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해요.
물어볼께요..근데 별 기대는 마셔요 ^^
달팽이가 엇그제 집에 가면서 '나의 아저씨' DVD 빌려 가고 싶다고 했어요. 흐흐... 기뻐요.
아이들이 나중에 그 영화를 언뜻 기억만 해준다면 좋겠어요.
강서는 또 보고 싶다고 다운 받아달라는데, 불법다운도 안 되더군요. 귀한 영화라...
오잉? 캉서가? 뜻밖인 걸. 하얀초록 DVD 빌려 가지 왜? 당장 보려고?
아니, 다운 받아놓으면 내가 출근하니까 심심할 때, 영화 보고 싶을 때 알아서 보더라구요. 강서는 하나를 여러번
씩 봐요. 보고 또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