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 4, 5일로 이어지는 연휴는 많은 사람들을 출렁이게 했다. 사람들은 도시를 벗어났고 전국의 유동인구는 넘쳐났다. 계곡마다 이름난 곳마다 사람들의 흥성거림에 잠겼으니까. 문제는 나도 그 중의 한 무리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 요즘은 여행도 하나의 전투나 희생의식처럼 여겨진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도로 위에서의 순교. 시간의 희생. 땀과 인내력의 시험 관문. 이 모든 것을 통과해야 비로소 콧속에 바람 한 점을 들이켤 수가 있는 것이니까.
3일에는 떠날 엄두를 내지 못하고 4일 새벽 4시에 일어났다가 도저히 준비를 마치지 못해 거의 5시 45분쯤에야 차에 오를 수가 있었다. 아이들과 집사람과 함께 떠나는 기회가 많지 않아서 각오를 단단히 하고 한편으론 여유롭게 마음을 먹으리라 다짐했다.
서부간선도로를 따라 영동선을 타고 가는 길은 별로 막히지 않았다. 다만 호법분기점을 지나는 구간이 밀렸었고 문막휴게소에서 새별이 엄마가 싼 도시락을 먹었다. 볶음밥이었는데 시장한 터라 아이들과 같이 아주 맛있게 먹었다. 휴게소에서 통행카드 3만원짜리를 구입하고 좀 쉬었다. 휴게소 뒤에 가금류를 기르는 곳이 있었는데 아이들에게 유익한 볼거리라고 믿는다.
만종분기점. 영동선과 춘천에서 시작되는 중앙고속도로가 만나는 지점에서 제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제천, 단양을 통과하여 아주 높은 다릿발로 서 있는 고가 고속도로인 셈이다. 치악산 자락을 끼고 가는 그 길은 산의 웅숭스런 깊은 속을 다소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반가운 것은 이 도로는 엘피지 충전소가 자주 있다는 점이다. 여행에서 늘 걱정스런 사항 중의 하나가 연료 문제인 것이니 아주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풍기를 지나갔다. 사실 부석사와 소수서원만을 들를 생각이라면 이곳에서 나가야 한다. 하지만 하회마을과 도산서원을 가기로 했으니 좀더 가야한다. 서안동을 지나 남안동에 가서야 서안동에서 나갔어야 함을 깨달았지만 19킬로를 허비하고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하회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대학3학년 때 수학여행을 안동으로 간 적이 있었다. 그 때 들러보고는 처음인 셈이니 사람이란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삶에서 그리 쉽게 몸을 빼지 못하는 것인가 싶다. 또한 같은 자리에 다시 머문다는 것도 쉬운 일만 같지 않다.
하회마을은 너무 상업적인 측면이 강해져 있었다. 온통 장사터였다. 추억과 한가함이 머물 자리가 없어서 약간 짜증스러웠다. 조용함을 포기하면 시장의 흥성거림이 있을 뿐이다. 여행은 이런 것이 아니다.
거기에서 나오는 길에 탈 박물관이 있다. 이 곳은 찬찬히 둘러볼 가치가 있는 곳이라 여겨진다. 아이들이 좋아한다.
안동시내를 통과해서 도산서원을 향해 달렸다. 도산서원 거의 다 가서 길 옆에 자리를 깔고 라면을 끓여서 먹었다. 싸온 밥이랑 말아 먹으니 그 맛이 일품이었다.
도산서원은 여전히 그 모습으로 있었으나 역시 사람들이 많아서 좀 그랬다. 사람들은 천 원 짜리 지폐를 꺼내서 도산서원의 건물들과 비교를 하곤했다. 서원 앞의 늘어진 버드나무도 여전하였고 강 건너에 있는 시사단도 그 자리에 있었다. 예전에 수학여행을 왔을 당시 그 강물을 건너서 천렵을 하는 사람들에게 피래미회를 얻어 먹던 기억이 났다. 내가 우물쭈물하면서 디스토마 어쩌고 하니 그 분들이 화를 내며 건네 주던 막소주 한 잔의 기억. 고추장을 흠뻑 찍어서 우석거리며 눈 질끈 감고 삼키던 그 맛. 왜 이렇게 아득하기만 한 걸까.
도산서원에서 나오는 도중에 새별이가 차에 토했다. 구수한 냄새.으억. 아이를 낳아보면 알게 될 것이리라. 봉화쪽으로 14킬로를 가면 청량산 청량사가 있다고 한다. 나도 초행이라 청량사엘 들러 보기로 했다. 청량산 입구는 공사 때문인지 길이 비포장이었으나 절에 올라가는 길은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었고 경사가 어마어마하게 가파른 길이었다. 그 길에도 차들이 올라간 흔적이 있었으니 인간의 힘이라는 것이 기계를 빌리면 아주 상승 곡선을 그리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가 있었다. 마치 그 길은 포장 유무만 떠나면 울릉도 성인봉을 오르는 길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청량사는 절이라기 보다는 암자의 위치를 지니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위치에 있는 절이었다. 건물 두 동을 새로 지었는데 나무를 짜서 만든 전통 건물이라 나무향기가 어리어 있다. 산 아래로 내려다 보는 그 풍광이 예사롭지가 않다. 사람도 많지 않은 저녁 무렵이라 한 시간 가까이를 마루턱에 앉아 있었다. 예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바라만 보고 앉아 있는 우리 가족을 스님들이 곁눈질로 보며 작업을 하신다.
초파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절을 꾸미는 손길이 바쁘다. 청량사는 아주 소박하고 깊은 내공이 있는 그런 절인 듯하다.
청량사에서 더 머물고 싶었으나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 봉화를 향해서 가는 국도가 낙동강을 끼고 가서 그런지 예사롭지 않다. 사과꽃 천지다. 아름다운 저녁 모습이요, 한가로운 내 생의 어느 날이다. 옆에 앉은 집사람은 존다. 차만 타면 잔다. 아이들도 그렇고.
부석사 이정표가 나타난다. 아주 반갑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옛 친구처럼. 주머니를 계산해 보니 3만 5천원이 달랑 남았다. 5천원으로 상추랑 야채를 사고나니 이젠 3만원 이 돈으로 민박을 하고 내일 부석사와 소수서원 관람비를 충당할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나는 늘 현금을 달랑달랑하게 갖고 다녀 버릇해서 그런지 늘 이런 위기의 순간이 잦게 생긴다. 어쨌든 부딪쳐 보기로 한다.
부석사 주차장엔 차들이 사람 만큼이나 버글거린다. 여기저기 민박을 물어보니 오늘은 집이 전혀 없을 것이란다. 낭패다. 풍기에도 꽉 찼을 것이고 영주에나 가야 모르겠단다. 아이쿠야. 장미 식당 민박 앞의 가게에 물어본다. 일반 가정집의 좁은 방도 괜찮겠느냐는 아주머니가 있다. 사람이 몇이냐고 물어본다. 그래서 아이 둘에 우리 부부라니까 좁지만 자 보겠느냐고 한다. 다시 시내로 나갔다가 돌아오느니 그게 났겠다 싶고 배도 고프다.
우리가 묵게 된 집에 도착해서 저녁으로 삼겹살과 점심 때 남은 밥을 챙겨서 먹었다. 이번 여행에 관해서 특히 먹는 문제에 관한 한 집사람의 알뜰함에 나는 경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음식 하나 밥 한 톨도 남기는 법이 없다. 심지어는 참치 찌개를 끓여 먹고 남은 것을 코펠에 넣어서 집에 와서까지 먹었으니 말이다. 이런 추세로 나가면 나도 부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하
새벽에 일찍 잠이 깨었다. 아침을 먹고 부석사에 갔다. 불휘녀석이 해우소가 급하다고 해서 갔다 오는데 아름다운 처자가 알은 체를 한다. 내가 결혼할 때 1학년 학생이었다고 한다. 세상은 참 좁다. 그래서 서산대사가 이르기를 눈길 함부로 갈짓자로 걷지 말라셨다. 내 가는 길이 후일 다른 사람이 참고하는 길이 될 것이라는 거다. 참 옳은 말씀이다. 아침 부석사는 사람도 없고 한가롭다. 선비화가 피어 있는 조사당에 갔다가 사진 찍는 사람들을 만났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도 참 좋은 취미다.
부석사 무량수전. 나는 베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홀로 감동을 할 만큼 미술사적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나 안양루 위로 보이는 태백산맥 줄기의 첩첩함에 절로 아득해진다. 내 습관이나 태도 중에 하나가 이런 것이다. 오래된 것에 대한 경건함과 경의감 말이다. 노인에 대한 조심스러움. 오래된 건물에 대한 나의 경건함. 오래된 느티나무에 대해서 내가 갖는 감정. 오래 써온 물건에 대한 정다움과 애착. 한 번 가본 곳에 대한 추억과 반추.
소수서원. 경자 바위. 건물들 사이로 피어 있는 꽃들. 흐르는 물소리. 사람은 변할지언정, 자연은 의연하다. 인간이란 겸손할 줄을 알아야 한다. 백 년도 못 살 인생이여. 풍기읍을 지나쳐 서울로 오는 길을 재촉하기 위해 중앙고속도로 접속로를 타고 오른다. 한 동안 잘 오던 길이 만종분기점 앞에서 숨막혀 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꾸준히 길을 더듬어 서울에 도착하니 4시쯤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