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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 강좌.
무비스님 - 불교는 쉽다. 9강 - 2 (2009. 08. 05)
14-37 大通智勝佛(대통지승불).
여기는 법화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어떤 이가 물었어요.
아마 그 당시 법화경이 많이 유행을 했었나 봅니다.
問(문), 大通智勝佛(대통지승불)이
十劫坐道場(십겁좌도량)호되 佛法不現前(불법불현전)이라.
不得成佛道(불득성불도)라하니 未審此意如何(미심차의여하)오?
乞師指示(걸사지시)하소서.
師云(사운), 大通者(대통자)는 是自己於處處(시자기어처처)에
達其萬法無性無相(달기만법무성무상)을
名爲大通(명위대통)이요, 智勝者(지승자)는
於一切處不疑(어일체처불의)하야 不得一法(부득일법)을
名爲智勝(명위지승)이요.
佛者(불자)는 心淸淨光明(심청정광명)이 透徹法界(투철법계)를
得名爲佛(득명위불)이요.
十劫坐道場者(십겁좌도량자)는 十波羅蜜是(십바라밀시)요.
佛法不現前者(불법불현전자)는 佛本不生(불본불생)이며,
法本不滅(법본불멸)이라 云何更有現前(운하갱유현전)이리요.
不得成佛道者(부득성불도자)는
佛不應更作佛(불불응갱작불)이니,
古人云(고인운), 佛常在世間(불상재세간)호대
而不染世間法(이불염세간법)이라하니라.
問(문), 어떤 이가 묻기를, 大通智勝佛(대통지승불)이 十劫坐道場(십겁좌도량)호되 佛法不現前(불법불현전)이라 不得成佛道(불득성불도)라 했으니, 未審커라, 此意如何(미심차의여하)오? 대통지승불 이라는 분이 있어요.
그 때, 10겁 동안 도량에 앉아 있었는데도 불법이 나타나지 아니 했어요.
그래서 성불하지를 못 했다라고 하는 말이 있어요. 그런데 이것이 무슨 뜻 입니까? 라고 물었어요. 乞師指示(걸사지시)하소서. 스님에게 간청하노니 지시 좀 해주십시오. 師云(사운), 大通者(대통자)는, 대통이라고 하는 것은,
是自己於處處(시자기어처처)에, 자기 자신. 자기가 어느 곳에 있든지,
處處에서 達其萬法無性無相(달기만법무성무상)을, 名爲大通(명위대통)이다.
萬法이 無性無相하다. 어떤 고정된 성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현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고정된 현상이 있는 것도 아닌 사실을 통달하는 것 = 達.
그것을 통달하는 것. 그것을 이름 해서 大通. 크게 통했다. 통달했다. 라고 이렇게 표현한 것이고, 智勝者(지승자)는, 지혜가 수승하다 라고 하는 것은, 於一切處不疑(어일체처불의)하야, 一切處에서 의심할 여지가 없어서,
不得一法(부득일법)을, 한 법도 얻지 못한 것을 名爲智勝(명위지승)이라.
지혜가 수승해 버리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지요. 세상이 다 시시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不得一法입니다.
지혜가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이 세상에 눈여겨 볼 것이 하나도 없어요. 사람이 지혜가 뛰어나놓으면 세상에 맛이 없어요. 세상 사는데 맛이 없어요. 지혜가 적당 해야지, 적당해서 간혹 한 번씩 取(취)하기도 하고요. 한 번씩 놓아버리기도 하고요. 놓을 줄도 알고 취할 줄도 알고 그래야지 지혜가 너무 뛰어나면 세상에 대해서 한 面(면)도 취할 것이 없어요. 不得一法입니다. 그것은 제 소리입니다. 하하하하하하 여기서는 智勝을 그렇게 표현했고,
佛者(불자)는, 불자는 뭐냐? 불이라고 하는 것. 부처라고 하는 것은
心淸淨光明(심청정광명)이 透徹法界(투철법계)라. 마음이 청정해서 환한 것.
마음이 텅 비어가지고 환한 것. 지금 여러분 마음 환합니다.
환해가지고 透徹法界라. 법계를 꿰뚫어 사무쳐요. 미국 갈 놈은 당장에 미국가고, 영국 갈 놈은 영국가고, 가고 싶은 데로 집에 갔다 어디 갔다가, 저~기 어디 우리 친구는 산사 수련대회가 좋다고 갔는데, 나는 어쩌다 못 가가지고 결국 금방 갔다 왔어요. 금방 갔다 와도 종적이 없으니까요.
그것이 뭐라고요? 得名爲佛(득명위불)이다. 부처를 이렇게 설명 했으면 끝이지요. 十劫坐道場者(십겁좌도량자)는, 10겁 동안 도량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十波羅蜜是(십바라밀시)요. 10바라밀이 그것이다. 10바라밀은 6바라밀에서 방ㆍ원ㆍ력ㆍ지라고 해서 方便ㆍ願ㆍ力ㆍ智慧(방편 원 력 지혜). 그래서 10바라밀이라고요. 화엄경에서는 주로 10바라밀을 이야기합니다.
佛法不現前者(불법불현전자)는, 불법이 現前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佛本不生(불본불생)이며 法本不滅(법본불멸)이라. 부처는 본래 여여히 그대로 있는데, 뭐 따로 생길 것이 뭐 있어요? 달리 현전할 이유가 없어요.
그대로, 그야말로 道不可須臾離(도불가수유리)요. 可離면 非道也(가리비도야)라. 도라고 하는 것은 한 순간도 떠나 있을 수가 없어요. 떠나 있다고 하면 그것은 도가 아닙니다. 그래서 새롭게 현전할 까닭이 없어요.
그래서 佛本不生입니다. 부처라고 하는 것은 본래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있는 것인데 뭘 따로 생겨요? 法本不滅이여. 법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멸할 까닭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云何更有現前(운하갱유현전)이리요? 어째서 다시 앞에 나타날 까닭이 있겠는가? 당연히 佛法不現前(불법불현전)이지요. 불법이 안 나타나지요. 불법이 무슨 물건 같으면 척 나타날 수가 있지요. 그런데 불법은 그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대로 완전무결하게 꽃은 붉고 잎은 푸르고, 까마귀는 검고 까치는 희고, 개는 멍멍하고 닭은 꼬끼오하고, 그대로 완전무결하잖아요.
나는 내 생긴 대로 살고 너는 너 생긴 대로 살고, 그렇습니다.
더 이상 다시 현전 할 일이 없어요.
不得成佛道者(부득성불도자)는, 불도를 이루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佛不應更作佛(불불응갱작불)이니, 여기 더 친절하게 설명해 해놨네요.
부처가 어찌 다시 부처를 지을 수 있겠어요? 다시 부처를 짓지 못한다.
그러니까 불도를 이루지 못하지요. 이미 부처인데, 다시 또 불도를 이루다니요? 그것은 머리위에다가 다시 머리를 얹으는 것과 같아요.
古人云(고인운), 고인이 말하기를, 佛常在世間(불상재세간)호대, 부처님이 항상 세간에 있으되, 而不染世間法(이불염세간법)이라. 세간의 법에 물들지 않는다. 라고 하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기 부처라고 하는 것. 꼭 석가모니부처님 같은, 또 어떤 위대한 도인 같은 그런 걸 상상하지 마세요. 여러분 마음입니다. 우리는 세간 속에 이 마음 가지고 끊임없이 살아가요. 밥 먹을 때 밥 먹고, 화장실 갈 때 화장실가고, 옷 입을 때 옷 입고,목욕탕 갈 때 목욕탕가고, 그런데 그 마음이 어디 거기에 젖습니까? 아무 탈 없이 여기에 와서 이렇게 공부 잘하고 있잖아요.
그 동안 살아오시면서 수많은 경계에 침몰하고 빠졌다가 다시 뜨고,
뜨고 다시 빠지고 했지만, 거기에 물들지 않고 여기에 이렇게 잘 와있습니다.
앞으로 또 어떤 경계에 어떻게 끄달려 갈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 한 생각 놓치지 아니하면 不染世間法(불염세간법). 세간 법에 물들지 않고 잘도 가는 겁니다. 잘도 자기 갈 길 잘 갑니다.
佛常在世間(불상재세간)이여, 부처님은 항상 세간에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의식하고 인연 지어진대로, 내게 인연 지어진대로 가서 밥 먹여야 될 사람 있으면 밥 먹이고, 돌 봐야 될 사람 있으면 돌보고, 잠자줘야 할 이 몸뚱이 있으니까 또 잠자주고, 씻어줘야 되고, 해야 할 일. 당면한 인연들 어떻게 합니까? 다 그렇게 해줘요. 佛常在世間입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내 마음대로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겁니다. 항상 그 자리에 있어요.
不染世間法이라. 그 세간 법에 물들지 않고, 아이 잘 재우고 나는 내 방으로 돌아오는 것이지요. 不染世間法이니까, 세간 법에 물들지 않으니까요.
이 짧은 글이지만 참 의미심장합니다. 깨달은 사람들의 말씀은요. 정말 곱씹고 곱씹어도 맛이 나옵니다. 아무리 우려먹어도 그 맛이 여전한 것이 깨달은 사람들의 말씀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어떤 名詩(명시)라 하더라도, 세계적인 명시라 하더라도, 그것 여남은 번 읽어보면 그 다음에는 맛이 없어요. 그런데 깨달은 사람들의 말씀은 그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씹어도, 씹어도 맛이 더 났으면 났지 감하지를 아니해요.
왜냐? 이해가 깊어지니까 맛이 더 나지요. 뭐 우리가 이런 공부를 해서 최 상승공부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공부 중에서 최 상승공부.
최고의 공부인데 여기서 큰 것을 얻으면 더 좋겠지요. 마음이 확 열린다든지...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그냥 글로, 그냥 글로 이렇게 우리가 공부하더라도, 세상에 이런 글이 어디 있습니까? 이런 공부 없는 것이지요.
14-38 心生法生 心滅法滅(심생법생 심멸법멸).
이것은 유명한 원효 스님도 이 말씀 하셨지요. 그야말로 해골바가지 물 먹고, 그 이튿날 깨서 그 해골바가지 물 다시 찾아서 보니까 정말 해골입니다. 그래서 그냥 토해내고 나서, 토하면서 깨달은 겁니다.
‘아~~ 이 마음이라는 것이 참 요술쟁이와 같은 것이구나. 어제는 아무 것도 모르고 먹으니까 그렇게 시원하게 마셨건마는 오늘 아침에 그것을 보니까 그냥 구토를, 참지 못한 구토를 하게 됐잖아요.
구토를 정말 참 잘하게 됐지, 세상에 정말 그렇게 값있는 구토한 사람은 세상에 또 없어요. 구토하면서 깨달은 겁니다.
왜 이런가? 똑같은 물을 두고 어제와 오늘의 내 마음은 왜 이런가?
心生卽種種法生(심생즉종종법생)하고 心滅卽種種法滅(심멸즉종종법멸)이라. 내 마음이 청정한 물이라고 생각 하니까 그렇게 시원했고, 내 마음이 해골바가지 물이라고 생각 하니까 그냥 구토하는 것을...
야~, 참 신기하잖아요. 이 불법 아니면 이런 이야기 못 들어요.
여러분 늘 불문에 그저 당신 집 드나들듯이 자주 드나들어서 자주 듣는 이야기라고, ‘아 거 뭐 맨날 듣는 소리.’이렇지만, 사실 이런 소리 불문이 아니면 못 듣습니다. 그것 신기하잖아요.
道流(도류)야 儞欲得作佛(이욕득작불)인댄
莫隨萬物(막수만물)하라. 心生種種法生(심생종종법생)하고
心滅種種法滅(심멸종종법멸)이라. 一心不生(일심불생)하면
萬法無咎(만법무구)니라. 世與出世(세여출세)에
無佛無法(무불무법)하야 亦不現前(역불현전)하며
亦不曾失(역불증실)이니라.
設有者(설유자)라도 皆是名言章句(개시명언장구)라.
接引小兒(접인소아)하는 施設藥病(시설약병)이요
表顯名句(표현명구)니 且名句不自名句(차명구부자명구)라.
還是儞目前昭昭靈靈(환시이목전소소영영)하야
鑑覺聞知照燭底(감각문지조촉저)가
安一切名句(안일체명구)니라.
道流(도류)야 儞欲得作佛(이욕득작불)인댄, 그대가 부처를 짓고자 할 진댄, 莫隨萬物(막수만물)하라. 만 가지 물건을 따라가지 말라.
心生種種法生(심생종종법생)하고, 마음이 생기면 가지가지 만물이 다 생겨, 心滅種種法滅(심멸종종법멸)이라, 마음이 소멸하면 種種法이 소멸한다.
一心不生(일심불생)하면 萬法無咎(만법무구)라. 한 생각 마음이 나지 아니할 것 같으면, 만법에 아무런 허물이 없어. 대통령이 무슨 짓을 하든지,
무슨 경찰서에서 뭘 그렇게 어떤 일을 하든지, 또 무슨 경찰이 어쩌고저쩌고 세상에 별별 일을 하든지 그것을 하나, 하나 나아가가지고 그것을 바로잡아서 청정국토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세상 법이고, 세상의 논리이고, 불교적인 해결방법은 내 한 마음 不生할 것 같으면 萬法無咎입니다.
아무런 허물이 없다. 무슨 국회 의사당이 무슨 격투기장이 되든지 말든지, 그것이 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핑핑 날면서 그냥 그렇게 격투기를 벌이더라도 그것을 하나하나 바로잡아주고 하나하나 교화해서 사람 되게 만들어주면 좋겠지만 그것 안 됩니다. 안 된다고요. 그렇다고 포기할 일은 아니지만 그러나 우리는 내 마음 관리할 열쇠하나 있어요. 이것은 아주 만능열쇠입니다.
一心不生(일심불생)하면 萬法無咎(만법무구)니라. 한 생각 마음을 닫아버리면 그 모든 문제 다 해결입니다. 그전에 제가 관악산 연주대에 살 때에, 어떤 노 보살님이 참선을 한다고 턱~ 앉아가지고 참선도 하고 그래요. 서옹 스님한테 다니면서 선법을 좀 배웠어요.
“왜 참선합니까?” 제가 그렇게 물었어요. 물으니까
“속상하는 것 안 보려고 참선하지.” 이래요. 하하 속상하는 것 안 보려고 참선한다는 겁니다. 참선한다고 다 화두 들고 있으니까 며느리가 무슨 짓을 하든지, 아들이 어떻게 하든지, 손자가 어떻게 하든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만사해결이더라 이 것이지요. “속상한 것 안 보려고 참선한다.” 참 명언입니다. 하하하하하.
一心不生(일심불생)하면 萬法無咎(만법무구)라. 한 생각, 한마음나지 아니하니까 일체 세상하고 아무 탈이 없는 것을 괜히 탈이 있다고 자꾸 그러는 것이지요. 이 열쇠 기가 막히지요. 세상에 이 보다 더 좋은 열쇠 없습니다. 어떤 문제도 다 해결할 수 있는 만능열쇠.
世與出世(세여출세)에, 세상과 출세에,
無佛無法(무불무법)하며, 세상에나 출세간에나 부처도 없고 법도 없어서, 亦不現前(역불현전)하며, 부처도 없고 법도 없으니 불법이 現前할 까닭이 없지요. 또 그렇다고 해서 亦不曾失(역불증실)이라. 일찍이 불법을 잃어버린 적도 없다. 잃어버린 적도 없다. 아무 탈이 없어요. 그냥 그대로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뭐 마음속에서 이렇게 일어나가지고, 이미 이것은 저질러진 일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해결해야 됩니다.
우리는 전부 언제부터인가 한 생각 움직여가지고서 無明 → 行 → 識 → 名色 → 六入(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이렇게 흘러가지만...
그것이 처음에 業相(업상)→ 轉相(전상)→ 現相(현상)→ 智相(지상)→ 相續(상속)→ 執取(집취)→ 計名(계명)→ 造業(조업)→ 受報(수보).
우리는 造業 → 受報. 업을 짓고 그 과보를 받고, 이런 상황이지만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業相→ 轉相→ 現相 해가지고 업이 있었어요.
그 업이 한 번 움직였어요. = 轉相. 한 번 움직였다고요. 그래서
밖으로 나타나기 시작해요. = 現相. 그것이 이제 지속되는 겁니다. = 智相ㆍ相續. 그것이 계속 상속이 되어가지고 업을 짓고, 상속이 되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싹 쓸어버리는 그런 공부가 화두를 들든지 기도를 하든지 그냥 一心不生(일심불생)하면 萬法無咎(만법무구)라. 이 주문 외우는 것이 제일 좋겠네요. 一心不生萬法無咎. 一心不生萬法無咎.
設有者(설유자)라도, 설사 불법이라고 하는 사실이 있다손 치더라도,
皆是名言章句(개시명언장구)라. 다 이름이고 말이고 그저 글귀일 뿐이다. 사람들이 말하고 글로 써놓고 지어 내가지고 저것이 불교라고 하고,
저것은 보살이라고 하고, 저것은 뭐라고 하고, 뭐라고 하고 그래 이제 경전이나 어록에 많이 나열 해놓은 것. 그것뿐이다 이겁니다.
接引小兒(접인소아) 施設藥病(시설약병)이라. 어린 아이를 이끌기 위한, 어린 아이를 接引하기 위한 방편이야. 호랑이도 오지 않았는데 아이가 울고 있으니까, 자야 되는데 시끄럽거든요. 자꾸 울고 있으니까 호랑이가 왔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 사람은 호랑이 본 적도 없어요. 자기도 아버지에게 그렇게 자랐어요. 자기도 부모로부터 그렇게 자라가지고 그대로 배워가지고 자기 자식에게, 우니까 “밖에 호랑이가 왔다.” 하니까 아이가 그만 울음을 뚝 그쳐버린 겁니다. 호랑이 구경한 적도 없어요.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요.
그저 배워서 호랑이라고 하는 말을 그저 한 마디 했을 뿐입니다.
부처니ㆍ법이니ㆍ불법이니 하는 것들도 정말 근원적인 입장에서,
궁극적인 차원에서 보면 그런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궁극적인 차원...
그것을 맛보려면 요? 화두 들고 한 번 쪼아 붙여봐야 돼요.
“쪼아 붙인다.” 이러거든요.
화두 들고 하~~ “이 뭣꼬?” “이 뭣꼬?” “이 뭣꼬?” 해서 하여튼 계~~~속 파고 들어가 보면, 그런 어떤 노력이 있을 때 그래도 어느 정도 느끼는 맛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궁금해야지 “이 뭣꼬~~?”하는 그런 궁금증이 진실로 궁금했을 때 그것의 운용이 제대로 되지, 진실로 궁금하지 아니하면 이것은 염불입니다. 誦話頭(송화두)ㆍ念話頭(염화두). 그야말로 외우는 화두 밖에 안 된다고요. 궁금할 때는 그냥 궁금할 뿐이지 뭘... 예를 들어서 언젠가 제가 이야기했듯이, 1억짜리 수표를 방금 놔놓고 옷을 하나 탁 걸치고 그것을 주머니에 넣으려고 하니까 없어졌다 말입니다. 기가 막힐 노릇 아닙니까? 숨이 멎을 노릇이지요. 숨이 멎은 상태로 그냥 있는 것이지 “내 1억짜리 어디 갔나?” “1억짜리 어디 갔나?” “1억짜리 어디 갔나?” 이러지 않잖아요.
이 뭣꼬?” “이 뭣꼬?” 안 한다고요. “무 라.” “무 라.” “무라.” 하는 것은 화두가 안 된다고 하는 그 표현입니다.
“1억짜리 어디 갔나?” “1억짜리 어디 갔나?” 그 사람 1억짜리 잃어버린 사람 아닙니다. 잃어버린 사람은 숨이 꽉 막혀버리지요. 화두가 그리 돼야 됩니다. 그야말로 진실로 의심이 착~~ 나가지고 純一無雜(순일무잡)하게 착~~ 이렇게 나가면 3일이면 끝나요. 그런데 사실 솔직하게 10분이나 되나요? 10분도 안 됩니다. 10분이 뭡니까? 몇 분하다가 도망가서 또,
도망가면 잡아오고, 도망가면 잡아오고... 평소에는 없던 웬 망상이 앉아서 화두 들고 있으면 그렇게 망상이 많이 생기는지...?
그것은 그만치 識(식)이 맑아졌다는 뜻입니다. 평소에는 망상이 그 보다 더 많아요. 그런데 의식세계가 혼탁하니까, 혼탁하니까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어요. 의식이 조금이라도 맑아지니까 자기 정신세계에서 그렇게 많은 생각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지요. 여기 지금 얼마나 청정하고 맑습니까? 먼지하나 없잖아요. 그렇지만 햇빛을 쫙~ 비춰 보시면, 여기 먼지 때문에 볼 수가 없습니다. 지금 여기 먼지 꽉 찼어요. 햇빛만 들어와도 그래요. 우리 정신도 그와 같은 현상입니다. 정말 화두라고 하는 햇빛에 착~ 비춰 보면, 그렇게 망상이 많은 겁니다. 화두가 좋은 것입니다. 진정으로 의심이 착~~ 되면, 일사불란하게 의심이 진행이 되면 참 그것은, 그 맛이라고 하는 것은 천상의 어떤 맛보다도 정말 아주 뛰어난 맛이지요.
그러나 현대인들은 그런 맛을 보기가 너무나도 참 어렵게 정신이 구조적으로 되어 있어요. 아주 산란해요. 아주 산만하고 산란하고...
그 대신에 지식은 많지요. 우리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요.
여기 이제 昭昭靈靈(소소영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어린 아이를 接引하기 위해서, 어린 아이를 달래기 위한 것이고 施設藥病(시설약병)이라. 병에 따른 약을 施設하는 것이다. 병이 없으면 약이 없어요. 처방전이 있을 턱이 없지요. 表顯名句(표현명구)여, 표현하기 위한 그런 명구일 뿐이다. 且名句不自名句(차명구부자명구)라. 명구가 스스로 명구를 만들지 아니해요. 사람들이 하는 것이지요.
還是儞(환시이), 또한 그대들이, 目前昭昭靈靈(목전소소영영)해서, 눈앞에서 昭昭靈靈해. 너무나도 환하게 밝고 신령스러운 것이 있어서 지금 이렇게 말 하는 소리를 듣잖아요. 鑑覺ㆍ聞知ㆍ照燭底(감각문지조촉저). 鑑覺하고 듣고 알고 그리고 비춰보고, 저~ 마음으로 모든 것을 환히 비춰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이 물건은 그 됨됨이가, 그 물건의 속성이 본래 그렇게 되어있어요.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않고 세상을 비칩니다.
그것이 一切名句를 만들어 내어요.
安一切名句(안일체명구)니라. 그것이 있어가지고, 一切名句를 만들어 내가지고 온갖 잡동사니 8만대장경을 만들어 내가지고 사람 속을 시끄럽게 하는 겁니다. 골치 아프게 하고요. 얼마나 많은 말을 만들어 냈습니까?
그런데 임제 스님 법문이야말로 정말 간추리고ㆍ간추리고ㆍ간추려버린 그런 아주 쪽 집게 과외 선생과 같은 그런 엑기스만 딱 뽑아놓은 겁니다 이것이... 그런 것 다 부정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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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一心不生(일심불생)하면 萬法無咎(만법무구)라...한 생각 마음이 나지 아니할 것 같으면, 만법에 아무런 허물이 없다. _()()()_
心生卽種種法生(심생즉종종법생)하고 心滅卽種種法滅(심멸즉종종법멸)이라.ㅡ마음이 나면 모든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모든 법이 멸한다. 一心不生(일심불생)하면 萬法無咎(만법무구)라_()()()_
내 마음이 청정한 물이라고 생각 하니까 그렇게 시원했고, 내 마음이 해골바가지 물이라고 생각 하니까 그냥 구토하는 것을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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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佛法不現前者 佛本不生 法本不滅 云何更有現前


매듭하나 또 풀고요 _()()()_
한생각 마음을 닫아 버리면 그 모든 문제 해결...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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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心不生하면 萬法無咎라...釋 대원성 님!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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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이 마음이들어서 온갖 만법을 만들어낸다. 이내 마음 한 순간 쉬어버리면 모든 것이 해결이다.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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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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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所得 : 어떤 고정된 성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고정된 형상도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한 법도 얻을 것이 없다
一心不生(일심불생)하면 萬法無咎(만법무구)라...한 생각 마음이 나지 아니할 것 같으면, 만법에 아무런 허물이 없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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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咎 ... _()_
佛常在世間(불상재세간)호대, 而不染世間法(이불염세간법)이라...부처님이 항상 세간에 있으되 세간의 법에 물들지 않는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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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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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