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저편 봉황새 울음소리
임 인택
눈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기차 타고 먼 길을 나서고 싶어진다. 아마도 하늘 끝 아득한 곳에서 춤추듯 내리는 눈은 사람들을 더 먼 미지의 세계로 데려가기 위해 우리를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괜히 들뜨고 마음이 바빠진다.
고등학생 시절, 남광주역에서 기차를 타면 명봉 다음 역이 고향 보성역이다. 명봉을 지나면 집에 다와 간다는 안도감과 함께 금방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간 것처럼 반가웠다. ‘명봉 천이라는 작은 개울을 사이에 두고 암수 두 봉황이 서로 그리워하는 울음소리가 마을 부근에 들려오는 형국’이라 해 명봉(鳴鳳)이 되었다는 역 앞의 유래비를 읽고 난 어느 날부터 명봉이란 이름은 내 가슴속에 자리했다. 세상에 봉황새 우는 역이라니! 이렇게 아름다운 이름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문득 봉황새 울음소리가 듣고 싶다. 그 울음소리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래, 명봉에 가보자. 명봉에 가 봉황새 울음소리를 들어보자. 우리는 왜 새가 노래한다고 하지 않고 새가 운다고 할까? 좋아서도 울고, 슬퍼서도 울고. 가장 순수한 자기표현이 눈물 말고는 없어서 새의 노랫소리조차 울음소리로 들렸는지 모를 일이다.
요즘 도시의 기차역은 잘 꾸민 공원에 커다란 쇼핑센터의 휴게실 같다. 건물은 생활이 담긴 공간이기에 당연히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하겠지만, 자동차도 타기 어렵고, 전화도 드물고 인터넷도 없었던 그 시대의 사람들이 기차여행에 대해 품고 있는 동경과 애틋함은 완행열차처럼 느리고 단순함이다. 때론 은은히 울려 퍼지는 흐릿한 안내 방송이 그립기도 한다. 기차역에 서면 삶이 그렇게 쓸쓸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아무리 멀다 한들 하루 만에 올 수 있는 세상에서 찡한 이별의 모습은 플랫폼에 없다. 빠름을 좇는 세상은 정겨움을 몰아내고 깔끔함을 남겨 놨다. 여승무원의 공손한 인사처럼.
명봉역 앞에 서면, 먼저 드라마 촬영지라는 안내판이 마중한다. 1930년 역이 문을 열면서 심어진, 이제는 고목이 된 벚꽃나무들이 마른가지를 달고 옛 영화를 말하듯 줄지어 서있다. 지은 지 60년이 넘은, 붉은 벽돌로 벽을 쌓고 삿갓 모양에 청색으로 지붕을 이은, 적당히 색이 바랜 늙은 역사(驛舍)는 옛 모습 그대로 있어 그 자체가 하나의 풍경이고 풍경화가 된다.
이런 날은 눈을 털고 선술집에 앉아 뜨거운 국물에 데일 듯 얼굴을 묻고 소주나 한 잔 하면 좋으련만, 선술집은커녕 구멍가게 하나 없다. 길 건너편에 천봉사라는 퍽 재미나게 생긴 절집이 하나 눈에 띨 뿐 가까이에 인가도 없다. 몇 해 전만해도 역 앞 도로로 광주 보성 간 차들이 줄을 섰으나, 역 위쪽으로 4차선 도로가 새로 난 뒤로 이젠 마을 차들이나 오갈뿐, 침침한 겨울 오후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의 안개 등불 빛이 흩뿌리며 내리는 눈송이와 부딪칠 뿐이다.
아직 5시도 안되었건만 밤처럼 두툼한 어둠을 껴입은 칼바람이 살품을 파고든다. 꽃잎처럼 나풀거리는 백설의 군무, 고목도 늙은 모습을 감추느라 분칠하기에 바쁘고, 조금씩 하얀 옷을 입어가는 시골 간이역의 고즈넉한 풍경은 시간이 정지 된 마음의 쉼표 같아 편안하다. 갑자기 한기가 느껴진다. 가만히 문을 열고 대합실로 들어간다.
역무원도 없는 간이역.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도, 나를 위해 표를 파는 이도 없다. 표를 사는 곳은 판자로 굳게 막혔다. 창구 위로 열차 시각표와 요금표가 붙어있다. 하루 몇 차례 무궁화호 열차가 선다고 쓰여 있다. 한쪽 벽에는 드라마 ‘여름의 향기’ 주연을 맡았던 손예진과 송승헌의 사진과 사인이 담긴 액자가 걸려있다. 포스터를 읽고 있으면 좁은 역사 안으로 드라마에 출연했던 주인공들이 웃으면서 하나 둘 걸어 들어온다. 젊은 연인은 언제 어디서나 상큼하다.
창밖에는 제법 굵은 눈이 내린다. 밖에 진열해 놓은 장독대 위로 쌓인 눈이 오븐에서 갓 부풀어 오른 하얀 빵 같다. 플랫폼의 불빛을 타고 흰나비처럼. 바람개비처럼 하늘로 눈이 내린다. 백설이 분분하다더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가차 타 보는 것이 소원이던 때가 있었다. 어릴 적, 어쩌다 우마차를 타고 아버지를 따라 20리도 넘는 읍내 장에 가면, 시커멓고 크고 긴 기차가 하늘 아래 길게 호를 그리며 꽥꽥 소리와 함께 순간 눈에서 사라지던 놀라운 모습과, 칙칙폭폭 소리가 남아있는 철로 위로 번득이던 하얀 햇살. 차마 그 모습이 무서워 철길에 가보지도 못했지만 기차가 그렇게 타보고 싶었다.
철길 위로도 희끗희끗 눈이 쌓인다. 어린아이 손바닥 위의 희미한 손금처럼 경전선의 가냘픈 철길이 산속으로 숨어든다. 저 멀리 철길 끝에서 희미한 물체가 움직이더니 점점 가까워진다, 강아지를 앞세운 할머니가 철길 곁을 따라 걸어온다. 담요 같은 두툼한 옷을 머리까지 둘러쓰고 대나무 지팡이에 검은 털신을 신고 있다. 아랫마을 따뜻한 회관으로 마실 간다한다. 봉황새 우는 소리를 들어봤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렇게 눈이 와도 기차 다니겠지요?” 나는 실없이 할머니께 물었다. “기차 타려우? 요새 누가 기차 타나, 전부 자동차들 다 있고, 길도 뻥뻥 뚫렸는데…” 할머니는 내 모습이 안쓰러운지 곧 광주 가는 기차가 올 거라며 일러주고 가든 길을 재촉한다.
고요를 더 고요하게 하는 것은 소리인가 보다. 풍경의 일부가 되어주었던 할머니가 떠나자 주위는 더욱 적막하다. 할머니의 뒷모습이 흐릿한 철길을 따라 멀어져 간다. 걸음걸음으로 자신의 삶을 쌓아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오늘의 농촌처럼 외롭고 쓸쓸하다. 할머니가 남긴 발자국 위로 눈이 덮인다. 하얀 캔버스에 첫 붓질을 하는 화가의 마음이 이렇게 설렐까? 한 걸음, 또 한 걸음, 나도 발자국을 만들어 본다. 사라진 할머니의 삶처럼, 내 삶도 눈에 덥혀가겠지.
두 손으로 귀 덮개를 하고 기차를 기다린다. 입김은 눈 속으로 섞여 들어가 하늘로 올라간다. 눈 위에 찍힌 내 발자국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조금 낯설고 쓸쓸해진다. 그 발자국들이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그렇다. 언뜻 하얀 백지위에 꼭꼭 눌러쓴 반성문 글자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중학생 때 언제든가 오후 청소시간, 내가 맡은 청소 구역도 아닌데 주번 선생님이 불러 세워 청소 안했다고 꾸중하시기에 제가 아니라고 억울함을 얘기했었다. 선생님은 하교 후, 빈 교실에 나를 앉히고 하얀 백지를 주시면서 반성문을 쓰게 했다. 선생님도 무서웠지만 텅 빈 교실이 나를 더 무섭게 했다. 그때 왜 ‘예’하고 대답하지 못하고 선생님을 아프게 했을까 지금도 죄송해 하고 있다. 지나간 날들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만들고, 표정을 만들어 준다.
어디선가 아주 작은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혹 눈 오는 겨울밤 봉황새가 우나 숨을 죽였더니, 소리는 점점 크게 가까워져 온다. 기차의 울림이 선로를 타고 전해지는 소리였다. 한참을 지나자 멀리서 환하게 불을 켜고 눈발을 몰고 기차가 다가온다. 반갑다. 눈바람 속에서도 기적을 울리며 나를 태우러 오는 기차가 있음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우편낭을 손에 들고 기차를 떠나보내는 역장처럼, 머리에 흰 눈을 푹 눌러쓴 향나무가 오늘은 역장 대신 잘 가라 손짓한다.
열차는 예전 10칸도 넘는 긴 몸뚱이를 다 어디 두고 달랑 3칸뿐이다. 날렵하고 우아한 고속열차와는 달리 무궁화호의 손잡이는 여전히 따뜻하다. 숱한 사람들의 체온이 담긴 그대로이다.
명봉(鳴鳳), 봉황새 우는 역.
보라색 오동나무 향기 진동한 5월이 되면 봉황새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으려나. 그때 다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두근거리는 가슴 안고 간이역 명봉에 내려 명봉산 아래 명봉천에서 나도 봉황새처럼 울어보리라.
( 끝 )
첫댓글 대설, 대설날 아침 , 혹 눈이 오려나 힐끔 하늘 한 번 쳐다보며 눈 오는 풍경 하나 올립니다.
아침 내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노래를 듣습니다. 올려주신 음악 감사드리며 음악에 대한 답 글입니다
8시에 떠나는 기차를 타고 봉황새 우는 명봉역을 함 찾아가 보았으면.
한 편의 잘 묘사된 소설 속의 겨울 풍경처럼
아니 수필이어서 더욱 찬란한 작가님의 사색을 엿봅니다.
좋은 작품 감사드리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