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예수님이 필요한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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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누가복음5장27절-39절)
27절-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28절-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
29절-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
30절-바리새인과 저희 서기관들이 그 세자들을 비방하여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31절-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32절-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33절-저희가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34절-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 손님으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뇨
35절-그러나 그날에 이르러 저희가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36절-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합하지 아니하리라
37절-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38절-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39절-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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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자를 부르시는 주님(5장27절-32절)
예수님이 당시 소외당하고 멸시받았던 세리 레위를 부르신 사건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길을 보여주기를 원하시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따라서 우리도 신분이나 처지에 상관없이 예수님의 제자로서 복음사역을 위해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또한 레위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습니다.이것은 그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삶의 최우선 순위로 삼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그는 자기 집에 큰 잔치를 벌여 사람들을 초청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예수님은 그들과의 식탁 교제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오셨습니다.이것을 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불평하였습니다(29절30절).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신 죄인의 친구이십니다.누구든지 죄악 된 과거를 청산하고 예수님을 좇기만 하면 됩니다.
형식주의적 외식을 버림(5장33절-39절)-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는데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며 금식하지 않는지에 대해 논쟁이 있었습니다.이에 대해 예수님은 제자들의 행위를 결혼 잔치의 예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신랑이 함께하고 있는 동안에는 금식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이 신랑되신 예수님이 함께 계심으로 지금은 기뻐하며 즐거워할 때라는 것입니다.하지만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하지 못할 날이 이를 것인데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리고 예수님은 세 가지의 비유들을 들어 형식과 위선에 치우친 유대주의자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첫 번째는 예수님의 길과 유대 종교의 길과는 서로 섞일 수 없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예수님의 길은 새로운 틀을 필요로 한다는 것과 세 번째는 바리새인들이 쉽게 변화되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이것은 예수님을 보는 관점이 변화되지 않는 것에 대한 책망이 담겨져 있습니다.혹시 나에게 아직도 변화되지 않은 구습과 가치관은 없습니까?
더 깊은 묵상
예수님이 소외되고 멸시받는 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시며 접근하신 것처럼 나는 사회에 소외된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대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 과거의 습관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오늘의 기도
오 하나님,저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케하사 겉치레와 교만과 자아로 가득한 옛 사람을 벗어버리게 하소서.날마다 주시는 말씀으로 심령이 새롭게 변화를 받아 주님께서 부으시는 새 술을 담아 내는 새 부대가 되게 하소서.
묵상 에세이
일체감의 자리
한 젊은 여인이 미술관에 그림을 감상하려 왔습니다.미술관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여인은 꿇어앉은 채로 그림을 감상했습니다.미술관 직원이 그토록 힘들게 그림을 감상하는 까닭을 물었습니다."나는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내일 학생들을 데리고 미술품을 감상하러 올 텐데 아이들의 눈 높이에서 이 미술품들이 어떻게 보일지 미리 알아두려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눈이 너무 높아 아이들의 세상을 보지 못합니다.있는 사람들은 눈이 너무 높아 없는 사람의 고통을 알지 못합니다.힘 있는 사람은 눈이 너무 높아 힘 없는 사람의 설움을 느끼지 못합니다.눈 높이를 낮추는 것은 높이는 것보다 어려운 일입니다.건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과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과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과 일체감을 갖는 것은 아주 힘든 일입니다.자세를 낮추고 눈 높이를 낮추기 전에는 그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그를 이해하는 것입니다.겸손(humility),겸손한(humbie)등의 어원은 '휴머스'(humus)입니다.이것은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분해된 유기물 즉 부식토라는 뜻입니다.휴먼(human)의 어원도 같습니다.사람은 어원에서 보듯 자기 자신을 아래로 낮추는 흙의 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참 인간다운 것은 부식토가 될 때입니다. 낮아지는 삶을 그래서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 자세의 달인은 성육하신 예수님입니다.예수님의 삶 예수님이 사람과 하나 되신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 이상으로 멋진 일체감은 없습니다.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천천히 걸으시며 아파하시고 배고파하시고 죽기까지 하셨습니다.이것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의 뜻입니다.
-침묵의 은총/이성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