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의 교도관
다음 카페에 보면 "담장 밖의 교도관"이란 카페가 있습니다. 누가 지었는지 참 이름을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한 단어의 조합으로 볼 수도 있지만 오늘날 교도관의 모습을 가장 잘 함축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담장을 기준으로, 담장 밖에서 살면서 담장 안에서 지내는 교도관들을 잘 드러낸 표현이 아닌가 싶네요. 이런 모습처럼 영화 밖에서 신입 교도관의 시선으로 영화 속 교도관의 모습을 한번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 교도관에 입문할 때 인상 깊게 보았던 영화 두 편을 소개 합니다. 영화 "집행자"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영화로 도입부의 "대한민국 교정현실과 관련 없다"는 안내 문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교정기관의 모습을 살짝 엿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실제 교도소를 배경으로 촬영했고 사형집행장은 세트로 만들었다는 광고문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물론 앞서 안내 문구대로 실제 교정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실과 다른 면이 종종 보입니다.
영화 "그린마일"은 1999년에 나온 비교적 오래된 영화로, 사실 교도관에 관한 영화라기보다 한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그 주된 인물이 사형을 앞둔 흑인이고, 이를 지켜보는 폴이라는 교도관이 그 사형수와 얽힌 이야기를 서술해나가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그린 마일"도 우리나라 교정현실을 반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지요. 미국의 옛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까요.
대부분의 영화에서 교도관은 잘 등장하지 않고, 솔직히 등장한다고 해도 관객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역할이 못 됩니다. 하는 일이 갇혀있는 수용자를 다루는 정(靜)적인 일이기 때문이지요. 혹 나온다고 해도 "쇼생크 탈출"에서 등장하는 교도소장처럼 비리의 대명사로 나오거나 아니면 엑스트라처럼 영화 중간에 잠깐씩 나오는 정도입니다. 최근 인기 있었던 미드, 프레즌 브레이크에서도 - 탈옥을 위해 교도소에 일부러 들어간다는 내용으로 보아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 그 속에 등장하는 교도관의 이미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영화 속의 교도관의 모습은 이처럼 밝지만은 않습니다. 이런 현실이긴 했지만 교정직렬 필기 합격 후 면접을 준비할 때, 면접관에게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교도관의 이미지가 부정적이었습니다" 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었겠지요. 그래서 찾았던 영화가 "그린마일"이었습니다. 그런 동기이긴 했지만 잔잔한 이야기 진행과 하나하나 감동적인 장면들이 상당히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영화 "집행자"의 도입부 - 이게 제 운명일까요?
[영화 "집행자" 중에서 - 철장 앞에 선 신규직원 재경(윤계상)과 선배 종호(조재현)]
영화 집행자 중에서 한 장면입니다.
첫 부분인데 교사 계급장을 단 선배인 종호(조재현)가 재경(윤계상)을 데리고 교도소 사동 내로 처음 들어갈 때 장면입니다. 이때 이제 초보인 재경(윤계상)이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 농담하는데 그 농담을 들은 조재현이 윤계상을 구석으로 밀어부치면서 매서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한 마디 합니다.
"야, 이 세상에서 철장있는 데는 두 군데 밖에 없어. 동물원, 그리고 여기..."
농담하는 재경에게 종호는 이 곳의 일이 쉽지 않음을 말해주고 싶었겠지요.
어쨌든, 운명의 장난일까요? 아님 정말 천직일까요? 저는 종호가 말하던 "이 세상에 철장있는" 그 두 곳 - 동물원과 교도소(혹은 구치소) - 에서 예전에 잠시 일했거나 현재 일하고 있습니다. 군 제대후 당장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서울대공원 곰사에서 행정서포터즈-청년 실업 구제를 위한 인턴제 비슷한 일입니다- 일을 했었고 지금 현재는 구치소에서 교도관을 하고 있으니까요. 그때 곰 사육장에서 먹이를 주고 청소하는 일을 잠깐 했었는데 그때 보았던 말레이 곰이 얼마전 텔레비전에 나오기도 하더군요.
제 이야기는 일단 뒤로 하고, 영화 속의 종호(조재현)의 눈빛이 매섭죠. 신입으로 들어온 재경(윤계상)이 수용자를 만나기 전에 벌써 질렸을 법도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환경이 낯선데다 사방이 온통 철장이니 잔뜩 주눅이 들어있을텐데요. 그런데 실제 교도관들 만나보시면 아마도 놀라실 겁니다. 이 사람들이 과연 수용자를 다룰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매서운 것과는 거리가 먼, 옆집 아저씨 같은 구수한 인상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고 예전 영화에서 보던 폭력적인 모습들은 이제 거의 사라져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 사람들
영화 "집행자"는 그동안 사형을 당하는 사형수나 혹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대부분인 것과 달리, 사형을 직접 집행하는 교도관의 입장에서 그려나가고 있다는 것이 기존의 것들과 다른 점입니다. 대략의 줄거리는 상당기간 사형집행이 정지된 가운데, 흉악범으로 인해 사회적 비난 여론이 일면서 사형집행에 대한 찬성 의견이 높아짐에 따라 결국 이것을 집행을 해야하는 교도관들의 모습을 담은 내용입니다. "집행자"라는 제목도 이런 의미에서 나왔겠죠. 사형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제 생각에는 사형제에 관한 진지한 고민보다는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는 것이 더 정확할 듯 합니다. 어쨌든, 아마 제가 교정직렬 시험 준비하기 전에 이 영화를 먼저 보았다면 직렬을 바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서였겠지만 재경이 처음 사동에 들어갈 때 수용자가 업혀 나오는 급박한 모습 등, 교정현실에 대해서 수용자의 난동이나 누구나 하기 싫어할 법한 사형집행 같은 극적인 면을 많이 보여주고 있거든요. 친절하게 영화 첫 장면에 자막이 올라갑니다.
"이 영화의 일부 장면은 현재 교정 현실과 다름을 알려드립니다"
영화는, 물론 현실을 조금은 반영하긴 하겠지만, 영화로 보아야겠지요.
한편으로 노량진 수험가의 모습과 고시 학원도 나옵니다. 재경이 오랜 백수생활을 거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교도관이 되었고 그의 애인도 역시 어려운 환경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는 만큼 오늘날 청년 실업이 문제되고 있는 우리 사회 현실과 결코 멀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편, 불행하게도 사형 집행에 있어서 사형수 바로 옆에 있는 역할을 맡은 재경이 집행을 끝내고 그의 애인을 만나러 갔을때, 애인으로부터 자신의 아이를 임신 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생명의 끝과 탄생의 역설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요. 어떤 기분일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할 듯 합니다.
동화 같은 이야기 - 그린마일
영화 "집행자"가 비교적 현실적이고 내용이 무거운 편이라면, "그린마일"은 "집행자"보다는 좀 더 환타지적 요소가 있어 부드럽기도 하고 동화같기도 합니다.
노인요양원 같은 곳에 있던 폴(톰 행크스)이 어느날 옛기억을 떠올리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폴은 같이 지내던 할머니, 엘렌에게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고 거기에서 이야기는 찬찬히 진행이 됩니다.
1935년 대공황기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의 삭막한 콜드 마운틴 교도소가 배경이랍니다. 폴은 이 교도소에서 교도관(간수)로 일하면서 사형을 집행합니다. 사형은 법률에 따라 집행하고 그것을 집행하는 것은 간수(교도관)입니다. 그 당시 사형은 의자에 앉혀 전기로 하더군요. 폴은 비록 정해진 법에 따라 집행하는 사형이지만 나름대로 정해진 원칙 내에서 인간적인 모습으로 일을 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요. 그린 마일이라 불리는 초록색 복도를 거쳐 사형수들을 전기의자가 놓여있는 사형 집행장까지 안내하고 그 길을 거쳐 수많은 이들이 전기 의자에서 죽어가는 걸 지켜보는 것도 폴과 그의 동료들의 일이지요. 폴을 존 커피(마이클 클락 덩컨)가 보스라 부르는 걸로 봐서 간수장(그 구역 책임자) 정도 되는 듯 합니다.
"데드맨워킹"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느날 사형수 존 커피(마이클 클락 덩컨 분)가 오게 되고 폴 에지컴(톰행크스)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유하는 그의 신비한 능력을 보게 되면서 존이 죄가 없다고 확신을 합니다. 덩치 큰 흑인 사형수 존이 죄가 없다고 생각하여 존 커피의 전 변호사도 찾아가보지만 변호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존의 외모를 보고, 그 당시 상황을 쉽게 단정하여 존이 아이들을 죽였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결국 폴은 그의 직업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사형을 집행해야하는 처지입니다. 집행 전에 많은 고민을 하고 존 커피에게 탈옥을 제안하기도 하지만 존은 이런 제의를 거절하지요. 그 과정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작은 성의로 존 커피에게 옛날 식의 무성영화를 보여주는데 영화를 보면서 감동해서 울던 존의 모습도 명장면 중의 하나로 꼽을만 합니다.
"그린마일"에서 폴의 모습은 그 방향이 약간 다르긴 하겠지만, 교도관의 모범이 될만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폴은 사형수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평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애를 씁니다. 음악을 틀어주기도 하고 모두들 꺼려하는 난폭한 사형수 와일드 빌(샘 록웰 분)의 공격적인 행동이나 무례한 태도에도 여유와 침착함을 잃지 않고 정해진 원칙대로 처리합니다. 또한 잘못된 일에 벌 줄 때는 과감하게 하기도 하죠.
[존 카피 사형집행 직전 폴의 모습입니다]
존 카피의 사형 직전 폴의 얼굴 표정에는 안타까움으로 울 듯하면서도 억눌러 참는 감정 표현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사형 직전 떨고 있을 존 카피의 손을 잡아줍니다. 그런 모습이 현실을 대하는 모범적인 교도관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영화 속에서 모범이 될 만한 교도관의 모습을 찾아보려는 그때의 저한테는 괜찮은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아래 사진은 폴이 일하는 구역-우리로 치면 사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의 전경이 나옵니다]
영화의 "그린마일"에 대해서 다시 한번 볼까요.
좌우 철장 안에 사형수 들이 있습니다. 정면 맨 끝이 징벌방 정도 되겠네요. 폴이 징글스(존 커피로 인해 신비한 능력을 얻은 쥐의 별칭)에게 혼잣말을 하면서 그 구역을 걸어갑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바로 나이든 폴이 건물 안을 걷는 모습으로 바뀝니다.그리고 다시 폴이 아내의 액자가 놓인 침대 옆에 누워있는 모습이 나오면서,
"우리 모두는 그린마을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가끔은..그린마일이 너무나도 멀게 느껴집니다..."라는 대사가 나오지요. 사진 아래 부분 복도가 녹색이지요. 저는 그린마일이 잔디가 깔린 돌바닥 길 정도로 생각했는데 아마도 이 복도를 말하는 모양입니다. 어쨌든 그린마일을 걸어가는 사형수처럼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 그린마일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다만 그 길로 가는 여정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이겠지요. 그린마일을 보면서 한번쯤 우리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여운을 남겨주는 장면입니다.
사형을 대하는 영화 속 그들의 모습
[폴이 사형직전의 존 카피의 손을 잡는 모습입니다]
폴은 존 카피가 죄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지만 법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사형집행을 해야합니다. 사형직전의 사형수, 악질적인 사람이 아닌 누명을 썼다는 확신이 있는 사형수의 손을 잡는 그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슬픕니다. 어떤 말로도 그 감정을 표현하기는 힘들겠죠. 감정을 억누르면서 폴은 존의 손을 잡아줍니다. 한편, "집행자"에서도 이와 비슷한 모습이 나옵니다.
[사형 직전의 수용자가 심하게 몸과 다리를 떨자, 김 교위(박인환가 몸을 굽혀 그동안 알고 지내던 사형수의 발을 살며시 잡아줍니다.] 밖에는 눈보라가 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중으로 담장과 철장이 쳐진 교도소 담장으로 눈이 펑펑 내리는 가운데 사형을 눈 앞에 두고 두건으로 얼굴을 덮은 사형수가 심하게 몸을 떱니다. 몸부터 다리까지 덜덜 떨고 있는 사형수의 옆에서 예전 그와 친하게 지내던 김교위가 가만히 허리를 굽혀 그의 발을 잡아줍니다. 그리고, 그 떨림이 멈추지요. 사형수가 김교위에게 묻습니다. "지금도 밖에 눈이 내리나요?" 김교위가 가만히 사형 직전의 수용자 옆에서 가만히 먼 곳을 쳐다보며 "그래"라고 대답합니다. 그순간 덜컹하고 의자 받침대가 내려가지요. 법을 집행하는 "집행자", 딱딱한 활자의 법을 따르지만 그 실행에는 다소나마 인간미를 담으려 했던 영화 속의 모습이 비춰지는 장면입니다. "그린마일"의 폴도 그랬고, "집행자"의 김교위도 그랬지요. 물론 전체적인 영화의 내용은 이런 장면에만 맞춰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영화를 보다보면 나름대로 감동적인 모습으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영화 속의 교도관, 그리고 현실
영화에 대해서 몇 가지 적다보니 면접 때 생각이 나네요. 어떤 모습으로 일을 해야할까 하는 고민들, 그리고 그 고민보다 앞섰던 합격에 대한 열망. "그린마일"은 일단 합격하고 보자는 생각에 면접에 대한 자료를 모으면서 보았던 영화이지만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떠오를 정도로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잔잔한 느낌을 준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합격 후 보았던 "집행자"는 내가 앞으로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한 현실을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이야 일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매달 20일이되면 꼬박꼬박 돌아오는 월급날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 일하며 지내고 있지만, 면접때 혹은 교육받고 있으면서 영화를 보던 그때는 나름대로 이것저것 거창한 생각들을 정리해 보기도 했었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루하루 힘들게 보내다보면 단순히 월급쟁이로 시간을 보내겠지요. 그래도 영화에서 기억하던 그 장면을 떠올리며 일을 하는 그 순간 순간을 열심히 지낸다면, 한뼘 쯤은 컸을 법한 내 자신을 볼지도 모르겠습니다. 먼 훗날, 그린마일을 머릿속에 그려볼 때가 왔을때, "그래, 나는 괜찮은 교도관이었어"하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ps. 형의집행및처우에관한법률 제2조 3호에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제2조 정의] 3. “사형확정자”란 사형의 선고를 받아 그 형이 확정된 사람을 말한다.
"사형수"의 정확한 법률상 용어는 "사형확정자"가 맞지만 여기에서는 다들 흔히 쓰는 용어로 "사형수"로 적었습니다
첫댓글 하나님! 나는 교도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