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제안] 사막 위에 세운 경산(景山) —태양광과 벼농사를 가능케 해주는 인공산맥을 상상한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평지에서 짜낸 지혜, 경산공원의 교훈
북경 자금성의 설계에서 백미를 꼽으라면 단연 그 북단에 우뚝 솟은 경산공원(景山公园)과 이를 감싸 안은 호수의 조화일 것이다. 평지라는 지형적 단조로움 속에서 명나라의 설계자들은 거대한 궁궐 단지를 내려다볼 약 50m 높이의 인공산을 축조했다. 이 산은 단순히 흙을 쌓아 올린 언덕이 아니었다. 그 흙을 확보하기 위해 지표면을 파내어 호수를 만들고, 그 호수는 황실의 놀이터이자 궁궐을 보호하는 해자가 되었다.
경관적으로도 이는 절묘한 배치다. 황제의 권위를 북쪽에서 든든하게 받쳐주는 배경이자, 풍수지리적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인위적으로 완성한 고도의 상징물이다. 평지라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굴착과 축조라는 상반된 행위를 하나의 순환 고리로 묶어낸 지혜는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거대한 질문을 던진다.
“만약 우리가 이 지혜를 현대의 기술과 결합하여, 인류가 직면한 가장 가혹한 환경인 ‘사막’에 적용한다면 어떤 기적이 일어날 것인가?”
필자는 이 장면을 상기하며, 사막 한복판에 인류의 생존을 지탱할 거대한 ‘인공 산맥’을 만드는 상상을 시작했다. 고대 전설 속에서 비옥한 땅을 적셨으나 지금은 자취를 감춘 강, ‘사라스바티(Sarasvati)’의 영광을 현대적 인공 산맥으로 부활시키는 대담한 여정이다.
구조적 공학이 상상하는 사막의 산맥
사막에서 인공 산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한 건축을 넘어 지구 공학(Geo-engineering)의 정수를 실현하는 일이다. 필자가 구상한 가칭 ‘사라스바티 월(Sarasvati Wall)’은 높이 50m, 수평폭 140m에 달하는 거대한 삼각 단면의 인공 산맥이다. 이 구조는 자금성의 경산처럼 파낸 흙으로 산을 쌓는 ‘자원 순환’의 원리에 현대적 에너지 공학을 덧입혔다.
첫째, 남측 사면(Solar Armor) — 태양의 바다를 가두다.
폭 100m, 경사각 26.5도로 설계된 남쪽 면은 거대한 ‘태양광 발전의 황금 지대’다. 사막의 강렬한 직사광선을 가장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받아내도록 설계된 이 면은 수백만 개의 태양광 패널로 뒤덮인다. 이는 단순한 벽이 아니라 국가 단위의 전력망을 책임지는 거대 발전소다.
이 아이디어는 이미 중국에서 현실로 검증되고 있다. 청하이성의 공허 태양광 발전소(Gonghe Photovoltaic Park)나 닝샤의 사막 태양광 단지에서는 패널이 강한 그늘을 만들어 지면 온도를 낮추고 증발을 억제하며, 바람 속도를 줄여 사막화 진행을 늦추고 있다.
둘째, 북측 사면(Ecological Sponge) — 그늘과 식생의 요새.
폭 40m, 경사각 51.3도로 설계된 북쪽 면은 인위적으로 ‘깊은 그늘’을 창조한다. 이곳은 농경지가 아니다. 대신 뿌리가 깊은 심근성(Deep-root) 식생을 밀도 있게 조성한다. 이 가파른 숲은 사막의 드문 폭우를 머금는 거대한 ‘생태 스펀지’가 된다. 식물의 뿌리는 50m 높이의 토양을 단단히 고정하고, 잎사귀는 공기 중의 미세한 수분을 포집하여 땅속 깊은 지하 대수층으로 전달한다.
여기에 대기 수분 포집 기술(Atmospheric Water Generation, AWG)을 결합하면 효과가 더욱 커진다. 태양광으로 구동되는 AWG 시스템은 건조한 사막 공기 속에서도 물 분자를 추출해 낼 수 있으며, 이미 솔라 하이브리드형 모델이 실증 단계에 있다. 북측 사면은 이러한 기술과 식생이 만나 인공적인 ‘수직 저수지’를 만드는 혁신 공간이 된다.
셋째, 길쭉한 호수(Linear Lake) — 냉각과 생명의 띠.
산맥의 북쪽 기슭, 산을 쌓기 위해 흙을 파낸 자리는 수십 km에 달하는 길쭉한 호수가 될 수 있다. 자금성 해자의 현대적 변용이다. 이 호수는 북측 사면의 깊은 그늘 아래 숨어 수분 증발을 최소화한다. 호수는 단순한 물 저장소가 아니라, 주변 기온을 낮추는 거대한 ‘기화 냉각(Evaporative Cooling)’ 장치다. 호수에서 피어오른 시원한 미풍은 그 너머에 펼쳐진 벼농사 지대를 보호하는 방막이 된다.
규모의 경제와 벼농사
이 프로젝트가 한낱 몽상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한 경제적 자립 모델에 있다. 필자가 제안하는 10km 단위의 모듈화 건설 방식은 ‘규모의 경제’를 극대화한다.
산맥 하단부, 호수와 인접한 평지에는 약 100~200m 폭의 ‘벼농사 지대’가 조성된다. 사막에서 벼농사는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으나, 사라스바티 월의 보호 아래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50m 높이의 장벽은 뜨거운 모래바람을 머리 위로 튕겨 보내고, 호수는 적정 습도를 유지한다. 남쪽에서 벌어들인 태양광 에너지로 구동되는 자율주행 농기계들은 인공지능이 최적화한 수분을 공급받으며 황금빛 논을 일군다.
이 부분은 사막에서의 벼농사가 가능하다는 한국 농업기술자들의 사례가 빛을 발하고 있다. 이미 수확사례가 입증된 만큼 확대적용은 시간문제다.
또한, 산맥 내부의 거대한 공동(Void) 공간은 차갑고 건조한 환경을 선호하는 데이터 센터와 농산물 저온 저장고로 활용된다. 태양광으로 전력을 얻고, 북측의 그늘과 호수 물로 서버의 열을 식히는 이 구조는 AI 시대에 가장 완벽한 ‘그린 데이터 허브’가 될 것이다. 10km 구간마다 형성되는 ‘스마트 빌리지’는 이 시설들을 관리하는 전문가들과 농부들에게 쾌적한 삶의 터전을 제공한다.
다시, 평지의 지혜를 되돌아보며
수천 년 전 이름 모를 설계자가 자금성 북쪽에 경산을 쌓았을 때, 그는 단순히 흙더미를 만든 것이 아니라 황궁의 기후와 위엄, 그리고 자원의 순환을 설계했다. “평지에서 짜낸 지혜”라는 필자의 서두는 바로 그 통찰의 힘을 경외하는 말이다.
이제 우리는 그 지혜를 사막이라는 거대한 평지로 가져가려 한다. 가칭 ‘사라스바티 월’은 단순한 건설 구상이 아니다. 그것은 기후 위기라는 전 지구적 위협 앞에서 인류가 지형을 바꾸고, 에너지를 창조하며, 사라진 물길을 공학적으로 복원해내는 ‘현대판 신화’의 기록이 될 것이다.
사라스바티가 있는 인도의 타르사막도 가능하고 벼농사를 간절히 원하는 중동사막지역도 가능하다. 에너지와 쌀을 동시에 원하는 아프리카의 사막지대도 물론이다.
태양광이 펼쳐진 모래산맥 정상에 섰을 때, 우리 발아래 펼쳐질 짙은 녹색의 숲과 그 너머 은색으로 빛나는 길쭉한 호수,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벼 이삭의 물결을 상상한다. 인류가 자연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기술이 될 수 있을까.
AI구글제미나이3가 필자의 상상을 그린 단면도 개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