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제 7장
=== 마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 마 7: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여기 비판이란 말도 역
시 평론 혹은 정죄를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에 말한 죄 값의 보응은 누구에게서 받는
다는 것일까? 이것은 틀림없이 하나님에게서 받는다는 것일까? 사람은 누구를 그 죄
대로 갚아 줄 권세도 없고 능력도 없고 또한 죄의 경중을 절대적으로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지혜도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이 어려운 일을 능히 하실 수 있다.
=== 마 7:3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티는 작
은 것이고 들보는 큰 것이다. 남을 아주 정죄하는 그것은 벌써 큰 죄이다. 그 뿐 아니
라 그가 남을 아주 정죄하기 좋아하는 것을 보면 그의 생활 이면에도 여러가지 다른 죄
과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업을 위하여 인물을 비판하여 혹은 채용 혹은 퇴
직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를 아주 정죄하는 것은 죄이다.
=== 마 7:4
외식하는 자. - 이것은 위의 말씀과 같이,(1)자기의 큰 허물을 못보고 남의 작은
것은 볼줄 아는 자 곧, 약대는 통으로 삼키고 하루살이는 걸러 먹는 자요 (2)내부적인
것은 못보고 겉으로 보이는 것은 잘 보는 자를 가리킨다.
==== 마 7:6
윗말 1-5절에서는 악한 마음으로 사람을 판단함에 대하여 경계하셨다. 그는 이제
그 듣는자들이 그의 말씀을 오해해서 남을 대하여 분변없는 주의 곧, 맹목적 타협 주
의에 흐를까 우려하셔서 여기에 적합한 교훈을 주셨음 곧, 주님의 진리와 거룩한 일의
관게에 있어서는 신중히 분변하는 태도가 필요함을 말씀하신다.
거룩한 것. - 하나님께 드렸던 제물이니 제사 후에 제사장들의 소유가 되는 것이
다. 그와 같이 여기서 이것이 영적 제물 곧, 복음을 가리킨 듯하다. 복음의 요점은 우
리를 대신한 속죄 제물이신 그리스도이다. 그로 말미암아 먼저 그의 백성을 향한 하나
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신 희생제가 십자가에서 거행되었다. 그 다음엔 그의 백성이 예
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행위 곧, 복음을 믿는 일에 참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
"거룩한 것"이란 말은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 혹은 그것과 관계 있는 성직이라고 생각
함이 좋다.
개. - 이것은 배교자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도 그것은 배로써 하
나님을 삼는 거짓 일군들을 가리킨다. 바울도 거짓 일군을 "개"라고 하였다.(빌3:2),
거짓 일군의 특색은 (1)먹는 것과 대접 받는 것을 탐하여 다님이요(빌3:19) (2) 개가
보화를 알지 못하고 그것을 먹는 것인 줄만 알고 물고 찢는 것과 같이 거짓 일군들은
복음이 보화인 것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그들의 육체나 치부하는 길로 삼아 복
음을 전한다 하면서 실상은 그 길을 해한다.
진주.- 이것은 진리나 지혜로운 말을 비유하는데 고대의 랍비 문학에도 그렇게 사용
되어 말하기를, "미련한 자에게 지혜로운 말은 돼지에게의 진주니라"고 하였다. 그러
면 여기의 진주는 역시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 혹은 교회의 성직을 가리킨다. 이것을
그 윗 문구의 "거룩한 것"과 딴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 두말은 동일한 내용의
것을 두 가지 방면으로 관찰하는 것이니 하나는, 그것의 거룩함, 다음 하나는 그것의
귀중성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즈안 박사의 해석이다.
돼지.- 이것 역시 위의 개와 동일한 내용의 인물들을 비유하였을 것이다.
====마 7:7,8
여기에 다시 기도에 관한 부탁이 나온다. 여기 기도에 두 가지 요점이 있는데,
(1) 간절히 기도하라는 것.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이 말씀들은 기도함에 있어서 모든 노력을 다 함이
다. 그런데 이 명령사들이 모두 다 현재 시간의 명령사로 되어 있으니 이것은 다 그
행동의 계속성을 표시한다.
(2) 어김 없이 주님을 믿고 기도할 것.
주실 것이요... 찾을 것이요.. 열릴 것이니. - 이 말씀들은, 주님의 신실성에 대하
여 가르치는 동시에 우리는 그를 믿어야 할 것을 가르친다. 칼빈은 말하기를 "하나님
께서 기도를 반드시 들으신다는 사실에 대한 확신처럼 우리의 기도를 작동시키고 격려
시키는 것은 없다. 의심을 품고 하는 기도는 무력하고 냉정하고 태만한 죽은 의식에
불과하다"라고 하였다.
==== 마 7:9-11
이 귀절들에 있어서 예수님의 강이유 논법이 다시 보인다. 죄인인 너희도 자식의
청구를 들어주거든 선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니 아버지야 말할 것이 무엇이랴? 사
49:15; 시27:10 참조.
좋은 것.- 이것은 영적인 것들이니 곧, 성령님의 뜻에 합당하고 또 성령님이 주시
는 것들인데 그것이 물질일 수도 있고 물질 아닌 다른 것들일 수도 있다. 누가 복음에
서는 간절한 기도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하였는데 이와 동일한 내용 있는 말씀이다.
(눅11:13)
====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칼빈
은 이 말씀이 먼저 말씀(7-11)과는 연락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이 바
로 윗말씀과 어떤 관계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것뿐이다. 이 귀절의 우리말 번역은
너무 의역이 되어 있다. 이 말씀의 원문을 글자대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곧, "사람
들이 너희에게 행해 주기를 원하는 바의 모든 것들을 그와 같이 너희가 저희에게 행하
라"고 할 것인데 이것은 두 가지로 적극성을 가지는 도덕률이다.
(1) 인본 주의에서는 기소불욕을 물시어인하라(내가 원치 않는것을 남에게도 행치 말
아라)라고 하여 겨우 악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을 정도이지만 여기서는 자기에게 좋
은 것을 남에게도 하라고 하였으니 적극적 도덕이다.
(2) 이것은 남들이 나에게 선으로 갚아줄 줄 미리 생각하고 행하라는 말아므이 아니
고 남들이야 네게 그렇게 행하건 아니 행하건 나는 그들에게 그렇게 행해야 될 것으로
가르친다. 눅6:30-26의 말씀을 보면 분명히 그뜻이다.
이것은 사랑의 정신으로 선을 행함이니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롬13:8-10). 세
간에는 고래로 이와 비슷한 말들이 많이 있어 왔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다 소극적
인 것이었을 뿐 적극적인 것은 아니었다.
==== 마 7:13,14
여기서 인생의 가는 길에는 "좁은 "것과 "넓은 "것이있다고 하셨으니, 이것은
(1) 고행주의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인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육체의 소
욕대로 방종스러이 살 수 있는 넓은 길과 하나님의 복음 진리대로 따라가는 규범있는
생활의 길을 대립시킨다. 좁은 길이라고 하여 거기에는 낙이없고 고통만 있다 함은 불
가하다. 이 좁은 길에는 도리어 감추인 만나를 먹는 참된 희락이 있는 것이다.
(2) 이것은 자력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상을 포함하는 것인가? 그런 것도
아니다. 여기 이 비유가 포함한 뜻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그리스도의 복음대로 따
라가는 길이 함부로 범죄하는 생활에 비해서는 제한이 있고 절제가 있다. 그러나 이
좁은 길은 하나님의 은헤로 구원얻는 길이니 그 길을 가는 도중에도 생명과 희열이있
고 그 길을 다 간후에는 영생의 면류관을 받는다.
==== 마 7:15
거짓 선지자.- 이것은 거짓 선생을 의미하는 바 위에서 말한대로 사람을 좁은 길로
인도하지 않고 넓은 길로 사람을 꾀어 이끄는 자들이다.
양의 옷을 입고....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 그들이 외식으로는 겸손하며 사랑도
있고 모든 이익을 그들이 교훈에서 약속하니 그것이 양의 옷과같고, 그들의 마음속에
는 생명이, 성령님이 없고 다만 자기들을 위하는 야욕만이 가득하였다. 그것이 곧, 하나
님의 교회를 "노략질하는 이리"와 같은 것이다.
==== 마 7: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여기 열매란 것은 그의 교훈과 그것의 영향과 및 그
의 행위를 의미한다. 혹설에 이것은 행위만을 가리킨다고 하나 이 해석은 합당치 않
다. 그 이유는 좋은 행위도 악사상을 선전하기 위하여 이용적으로 나타나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가시와 엉겅퀴는 인간
이 범죄한 결과로 나타났으니(창3:18), 이 둘은 죄악의 상징이다. "포도"와 "무화과"
는 의와 선의 비유인 듯하다.
==== 마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 이것은 거짓
교훈과 악사상의 무리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벌하신다는 말씀이다. 이 세상에는 악사상
의 소유자들로서 심판 받은 일이 많다. 그러나 최후 심판이 오기 전에는 이 무리가 다
시 일어난다. 이는 마치 밭에서 잡초를 제하여도 얼마 후에 다시 잡초들이 나옴과 같
다.
==== 마 7:21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 이 귀절은 율법을 완전히 행해야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를 가르치시는 듯하다. 이 아래 귀절들이 모두 다 그러한 논조로
흐르는 듯하다. 그러나 여기 이 귀절들은, 구원의 법을 말함이 아니고 심판 곧 정죄
의 법칙을 말하는 것이다. 정죄의 원리가 있고서 그 후에 사죄의 규례가 생긴 것이다.
이 귀절들이 말하는 심판의 원리는 , 후일에 구원의 원리를 말씀하실 준비 계단인 것
이다. 이 귀절들의 말씀을 가리켜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의 도리에 대한 전제하고 하는
것은 가하나 , 은혜로 받는 구원의 제도를 부인한 것이라 함은 똑바른 신학적 관찰이
아니다.
==== 마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여기 "그 날"은 이 세상 끝의 심판날을 이름
이다. (눅10:12). 그 때에는 하나님이 일을 한다고 하던 자들도 구원을 얻지 못하고 떨
어지는 일이 많다. 그러므로 약3:1에 말하기를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였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귀신을 쫓아 내며 주이 이름으
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 거짓 신자들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주님을 사랑하여 그리함이 아니고 다만 자기들의 육체를 위하여
그의 이름을 이용하여 그러한다.
==== 마 7:23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능한 일을 하였
다고 했다. 주님은 어떤 때에 악인들도 이용하신다. 그러나 그들이 주님에게 일시 이
용된 일이 구원 받을 조건은 아니다. 오직 주님은 나를 사랑으로 알아 주시고 나는 주
님을 아는 신앙의 관계가 구원받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
으로 기뻐하라"고 하셨다.(눅10:22)
===== 마 7:24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같으리니. -
곧, 거짓 선지자들이 말을 듣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행하는 자는 반석에 집을
세움과 같다. 에수님의 말씀은 한개의 반석과 같이 든든하나 거짓 선지자들이 말은 모
래와 같이 무너지고 만다. 예수님의 말씀은 영생하신 하나님이 말씀이니 만큼 하나님
께서 그것을 언제나 감시하시며 또 그것을 가지시고 능력을 행하신다.(히4:12,13). 그
러나 거짓 선지자의 말은 죽은 것과 같아서 생명의 능력이 없고 바람에 불리는 모래와
같다.
==== 마 7:25-27
이 부분에서 지혜로운 건축자의 두 가지 지혜와 어리석은 건축자의 두가지 우매가
나타났다. 지헤로운 건축자는 집을 짓는데 있어서 터가 든든해야 될 것을 알았고 또한
장차 풍우가 그 집에 부딪힐 것을 알았다. 그러나 미련한 건축자는 그 두 가지를 다 생
각지 않았다. 우리는 신앙 인격을 건축함에 있어서 하나님 말씀 밖에 기초를 둘데가 없
는 줄 알아야 되며 또는 장래에 우리의 신앙 인격을 시험하는 환난이 온다는 것을 예
감해야 된다.
==== 마 7:29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
예수님은 율법을 가르치실 때에 남의 사상을 취급하듯이 하시지 않았다. 모세의 율법
은 하나님이신 에수님 자신이 모세에게 주셨던 것이니 곧 그 자신의 사상이다. 그러므
로 율법에 대한 그의 교훈의 태도가 권위 있게 나올 것은 필연적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