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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6.07.28
염기 교정
병에 걸리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지요. 특히 건강 관리와 상관없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특정 유전병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그런데 만약 태어날 때부터 몸 안에 있는 선천성 유전 질환을 예방하는 기술이 나온다면 어떨까요? 최근 과학자들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몸속 유전자를 고쳐 질환을 예방하는 교정 실험에 성공했어요. 오늘은 인류에게 새 가능성을 열어줄 것으로 주목받는 기술, '염기 교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60억개 중 하나만 달라져도…
유전 질환에 걸리는 이유를 알려면 먼저 우리 몸에 대한 설계도인 DNA(디옥시리보핵산)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 DNA에는 사람의 유전 정보가 대부분 담겼어요. DNA는 A(아데닌), G(구아닌), C(시토신), T(티민)라는 4가지 염기(鹽基·질소를 함유하고 있는 고리 모양의 화합물)가 길게 배열돼 있는데요. 이 염기 조합이 우리의 눈동자 색, 키, 체질 같은 유전 정보를 결정합니다.
사람의 DNA는 약 30억 쌍, 60억개의 염기로 구성됐답니다. A는 T와, G는 C와 짝을 이뤄야 해요. DNA는 마치 지퍼처럼 두 가닥의 사슬이 서로 꼬여 있는 이중 나선 구조이니, 예컨대 한쪽 가닥이 'A-G-T-C' 이렇게 돼 있다면, 마주 보는 반대쪽 가닥은 'T-C-A-G'가 돼야 합니다. 비유하자면 A, G, T, C 네 글자가 들어간 아주 긴 문장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반대편에는 그에 대응하는 긴 문장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배열된 30억 쌍 염기 가운데 단 하나의 염기만 달라져도, 가령 C에 대응해 G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A가 들어가 있다면 특정 유전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부분을 찾아 고쳐주는 도구가 바로 '유전자 가위'예요. 정확하게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라고 하는데요. 크리스퍼 기술은 세균의 독특한 면역 반응 시스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세균 역시 바이러스 공격을 받는데, 세균은 자신의 몸에 침입한 바이러스의 DNA를 절단해 안에 저장해 뒀다가, 훗날 같은 유전 정보를 가진 바이러스가 다시 침입하면 저장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 바이러스의 DNA를 정밀 타격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지킵니다. 크리스퍼 기술 역시 비슷한 방법을 씁니다. 문제가 생긴 DNA를 잘라내고, 정상적인 DNA로 수정하는 방법이죠. 이 기술을 활용하면 유전자 이상으로 발생하는 난치성 유전병을 발생 초기 단계에서 치료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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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기 하나만 콕 집어 바꾸는 기술
하지만 기존의 유전자 가위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문제가 된 부위의 DNA 두 가닥을 모두 잘라내는 방식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주변의 멀쩡한 유전자까지 함께 삭제되는 부작용이 있었어요. 의도치 않은 변이가 생기거나 염색체가 손상될 수 있다는 우려도 꾸준히 나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 컬럼비아대 디터 에글리 교수 연구진은 유전자 부위를 통째로 잘라내는 기존 방식 대신 '아데닌 염기 교정기(ABE)'라는 새로운 도구를 도입했습니다. 연구진은 아데닌 염기 교정기를 통해 인간 배아(수정란이 세포 분열을 거듭해 모든 기관이 형성되기 전까지의 초기 단계)에서 심장병과 빈혈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의 염기를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연구에는 우재성 기초과학연구원 그룹장과 배상수 서울대 의대 교수 등 국내 연구진도 참여했어요.
아데닌 염기 교정기는 DNA 가닥을 잘라내지 않고, 네 가지 염기 중 특정 염기 하나만 다른 염기로 바꾸는 방식이에요. 문장으로 치면 틀린 글자 딱 하나만 콕 집어 고친 셈이죠. 그 결과 기존 기술에서 자주 나타났던 염색체 손상이나 유전자 결함이 발견되지 않았어요. 염기 교정을 거친 배아는 정상적으로 성장했고, 모체의 자궁에 착상하기 직전 단계(포배기)까지 쑥쑥 잘 자라났습니다.
'맞춤형 아기' 우려도
그렇다면 이제 모든 유전병을 출생 전에 완벽히 치료할 수 있게 된 걸까요? 아직은 '절반의 성공'에 가까워요. 실제 임상에 적용하기에는 해결해야 할 기술적 과제가 남아있거든요. 문제 있는 염기들을 고치려고 해도 아직 다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요. 배아를 구성하는 세포 전체가 균일하게 교정되지 않고 일부 세포만 정상으로 바뀌는 겁니다. 즉, 하나의 배아 안에 교정된 세포와 교정되지 않은 돌연변이 세포가 뒤섞이는 상태가 되는 현상이랍니다. 이번 실험에서도 전체 세포의 50~75% 정도만 교정이 이뤄졌다고 해요.
이번에 연구팀은 인간 배아에서 심혈관 질환 위험을 높이는 'PCSK9' 유전자와 혈액 질환과 관련된 'HBG1·HBG2' 유전자를 대상으로 실험했어요. PCSK9 유전자는 배아 세포 25개 중 19개에서 염기 A가 정상적인 G로 바뀌는 교정이 이뤄졌는데, 약 75% 수준이에요. HBG1과 HBG2의 염기 교정 효율은 각각 52%와 68%였죠. 이처럼 세포 중 일부만 교정된 상태로 아기가 태어나면, 신체 부위마다 유전 정보가 달라져 예상치 못한 건강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번 기술을 두고 서로 다른 생각도 나옵니다. 일부 과학자는 무서운 유전병을 대물림하지 않도록 막아줄 '배아 치료의 중요한 이정표'라고 평가합니다. 반면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아요. 질병 치료보다는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맞춤형 아기'를 만드는 도구로 변질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유전자 염기 교정 기술이 인간 개량의 도구가 될지, 아니면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의학 기술이 될지는 앞으로 인류가 만들어갈 사회적 합의와 윤리적 기준에 달려 있습니다.